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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살라딘 왕자가 뛰어난 인물이며, 성군이 될 자질을 갖추었다는 데에는 충분히 동의했다.

그러나 성인(聖人)이라 불릴 정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신앙심이 깊긴 했지만…….

“왜 살라딘 왕세자가 성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될 사람이니까.”

오토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잘해 줄 수밖에 없는 거야. 성인의 발자취에 함께하고 있으니까. 나로서는 영광이지.”

“도대체가….”

카미유는 오토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오토가 덧붙였다.

“적어도 살라딘을 대함에 있어서는 사심 따위 눈곱만큼도 없어. 아버지인 압둘 2세라면 몰라도.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으음.”

“그러니까 색안경 끼고 보지 말아 줬으면 해.”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색안경을 벗기로 했다.

“그래서 질투하는 거고. 정말 큰 사람이거든, 살라딘은.”

“장난 아니었습니까?”

“진심인데?”

“…….”

“허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팍 씨.”

“그건 걱정 마십시오.”

카미유의 말은 진심이었다.

‘전하가 아니면 누굴 모신단 말입니까? 아무리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 군주가 나타났다 할지라도, 제 주군은 오직 전하뿐입니다.’

카미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오토의 침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보초를 섰다.

카미유는 늘 이랬다.

늘 오토의 침실 밖을 지켰다.

작은 의자에 앉아 새우잠을 자면서….

* * *

쥐새끼를 잡아낸 덕분에 알살람으로 가는 여정은 매우 쾌적해졌다.

오토가 흘린 역정보는 적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공격 준비.”

멀리서 왕세자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던 이스마일족 전사들이 원통형의 기다란 무기를 꺼냈다.

<신의 징벌>이라 이름 붙은 이 무기는, 끝에 마정석 폭탄이 달린 이 원통형의 대전차화기로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했다.

땅을 파면 마정석이 나오는, 오직 칼리프 왕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조준.”

명령이 떨어지자 10명의 전사들이 일제히 왕세자 일행의 행렬을 향해 <신의 징벌>을 겨냥했다.

“셋, 둘….”

그때.

촤라라락!

모래 속에 숨어 있던 33인의 영혼기사들이 일제히 솟구쳐 올라 이스마일족 전사들을 덮쳤다.

“으악!”

“으아아악!”

영혼기사들은 이스마일족 전사들을 아예 도륙 내다시피 했다.

“감히 폐하의 행차를 막는 자들에게는 죽음만이 있으리라.”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들이니까, 죽여 줄게. 호호호.”

“이 버러지 같은 놈들! 크흐흐!”

아가토·힐데가르트·막시무스가 이스마일족 전사들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이스마일족 전사들은 저항해 보았지만, 33인의 영혼기사들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전리품을 챙겨 가자.”

“그래, 쓸 만한 무기 같으니까.”

“캬캬캬! 오래간만에 피 맛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군!”

그렇게 이스마일족 전사들을 모조리 처치한 영혼기사들은, 모래바닥에 떨어진 <신의 징벌>과 탄두들을 챙겨 행렬로 복귀했다.

그게 다 오토가 역정보를 흘린 덕분이었다.

적들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을 유도해서, 미리 매복해 있다가 처치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역정보를 흘려서 몇 번의 반격을 가한 덕분에, 여정은 매우 쾌적해졌다.

예상치 못한 기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토는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스으으.

알살람으로 가는 동안 오토의 눈은 항상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에는 마나 포션을 달고 살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이미 첩자를 잡아내지 않았습니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게 싫어서.”

“예…?”

“혹시 모르잖아.”

오토는 지난번 <해골섬 전투> 당시 에이버리가 무려 세 마리의 크라켄을 소환해낸 걸 아직도 의식하고 있었다.

‘이미 빌드는 꼬였어. 내가 아는 정보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냐. 항상 조심해야 돼.’

나비효과로 인해 여기저기서 변수가 터져 나오는 이상 더는 마음 놓고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이제부터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순 없었으므로, 오토는 틈날 때마다 하사신에게 말을 걸었다.

“야, 있잖아.”

“…….”

“아까 마신 차 있지? 그거 향 꽤 괜찮더라?”

“…….”

“근데 이 세계에는 커피가 없나? 너 커피 알아?”

“…….”

“커피가 뭐냐면….”

대답을 하든 말든.

오토는 하사신이 무슨 대나무 숲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수다를 떨었다.

그런 오토의 아무말대잔치는 그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듣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고문이 따로 없었다.

“으윽.”

오죽 했으면, 곁에 있던 카미유가 눈살을 찌푸리며 낙타를 몰아 자리를 옮겼을 정도.

주르륵.

입을 꽉 다문 채 묵비권을 행사하던 하사신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했다.

‘이, 이 새끼 말이 너무 많다.’

카이로스의 심안마저도 방어해낸 하사신이었지만, 오토의 <투 머치 토킹> 앞에서는 차츰차츰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LA에 있었을 때….”

오토는 투시를 활용해 주변을 경계하면서, 하사신에게 끊임없이 아무말대잔치를 쏟아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수도 알살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지형이 바뀌었다.

모래사막이 끝나고, 자갈사막이 펼쳐졌다.

두두두두두두두!

저 멀리서 한 무리의 기병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해 왔다.

왕세자를 호위하게 위한 칼리프 왕국군이었다.

“왕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술탄께서 보내셨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그제야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던 오토의 눈이 다시 본래 색을 찾았다.

그런데….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기병대뿐 아니라 족히 수만 명은 될 법한 군대가 좌우로 쭉 늘어서 행군하는 게 보였다.

“저 병력들이 다 무엇이냐?”

“예, 왕세자 저하.”

기병대의 지휘관이 살라딘의 물음에 대답했다.

“술탄께서 이번 사건을 일으킨 누리스탄족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셨사옵니다.”

“뭐라?”

“그래서 누리스탄족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대가 출정 중인 것이옵니다. 술탄께서는 누리스탄족들뿐 아니라 이참에 왕조에 충성하지 않는 부족들을 모조리 토벌하실 생각이시옵니다.”

“아니! 전쟁이라니!”

살라딘이 기겁했다.

“관련자들만 찾아내 처리하면 될 것을! 어찌 아바마마께선 전쟁을 일으키셨단 말인가!”

“하오나 왕세자 저하.”

지휘관이 조심스레 말했다.

“누리스탄족들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왕조의 위엄이 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들은 잘랄라바드를 파괴하고, 감히 왕세자 저하를 시해하려 했사옵니다. 또한, 유수프 경과 기사들이 전사하였사옵니다.”

“누가 그걸 모르는가? 이번 사태를 주도한 자들에 대한 응징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아!”

살라딘이 깊게 탄식했다.

“내 알살람에 도착하면 아바마마를 만나 뵙고 간언을 드릴 것이다. 전쟁이라니. 당치도 않다.”

살라딘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타고 있던 낙타를 버리고 아예 말로 갈아타기까지 했다.

“은인께서는 천천히 오십시오. 저는 급히 술탄을 뵙기 위해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오토는 먼저 가겠다는 살라딘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조심해서 가 계세요. 알살람에서 뵙죠.”

“예, 은인이시여. 이랴!”

살라딘이 기병대를 이끌고 수도 알살람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휴.”

그런 살라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오토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알살람으로 가는 길.

“왕세자가 왜 전쟁을 반대하는 겁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을 일으킨 술탄의 행동이 더 합리적인 거 아닙니까?”

“맞지.”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전쟁을 일으켜야지. 그게 맞아. 안 그러면 다른 부족들도 왕조를 우습게 볼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전쟁을 반대한다는 건 너무 이상주의적인 거 아닙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예?”

“칼리프인들은 우리랑은 생각 자체가 달라. 우리 식대로 이해하면 안 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칼리프 왕국이 괜히 제국의 무덤이겠어? 찍어 누르면 찍어 누를수록 더 거세게 저항하는 게 칼리프인들이야. 괜히 전쟁을 일으켜 봤자 피해만 누적될 뿐이고, 반감만 커질 거라고. 살라딘 말대로 범행을 주도한 관련자들만 찾아내서 응징하는 게 맞아.”

“음.”

“괜히 1년 365일 중에서 364일을 내전 중인 국가라고 그러겠어? 이건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야.”

“그럼 술탄은 그걸 몰라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알지, 잘 알지. 왜 모르겠어. 근데 입장 차이란 게 있잖아. 지금 술탄의 왕권은 무소불위에 가깝고, 경제력과 군사력도 상당히 올라와 있는 상태야.”

“자신감이란 겁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기 묻혔던 강대국들처럼.”

“맙소사.”

“기회라고 생각하겠지.”

“기회…?”

“안 그래도 울고 싶은데 때려줘서 고맙다고 생각할걸?”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지금 술탄은 자신의 치세 동안 적대적인 부족들을 모조리 토벌하고, 내전의 역사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어. 가장 위대한 술탄으로 역사서에 기록되고 싶은 욕망에 차 있겠지.”

“누리스탄족들이 명분을 제공해 버린 꼴이겠습니다.”

“정답.”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전쟁을 일으키는 거야. 술탄 입장에선 더 없이 좋은 기회니까.”

“하지만 칼리프인들의 저항정신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권력이란 거야. 술탄은 칼리프인이면서 정작 칼리프인들에 대해서는 외국인인 나보다도 이해력이 떨어져 버린 거야. 권력이 그래서 무서워. 사람 눈을 멀게 만들거든.”

“권력이라….”

“그 와중에 북부 이스마일족은 알게 모르게 술탄을 도와줄 거야. 개전 초기부터 칼리프 왕국군이 압승을 거둬야 저항세력 내 이스마일족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테니까. 어휴. 음흉한 노인네 같으니.”

오토는 산상노인 라시드의 검은 속내까지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어질어질하긴 한데. 칼리프 왕국의 정세야 우리랑은 크게 상관없는 문제니까. 일단 알살람으로 가자고.”

“예, 전하.”

“탈 것도 바꿀 때가 됐네.”

먼저 간 살라딘처럼, 오토도 낙타에서 내렸다.

“이제부터 자갈사막이니까 말을 타는 게 훨씬 빨라. 우리도 갈아타자고.”

“예, 전하.”

“그동안 고생했어.”

오토가 그간 고생해 준 낙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1주일 힘들었을 테니 너도 이제 쉬ㅇ….”

그 순간.

찌익!

낙타가 오토의 얼굴을 향해 침을 내뱉었다.

“악! 내 눈!”

오토가 눈을 붙들고 괴로워했다.

“푸릉! 푸르릉!”

낙타가 씩씩대며 콧바람을 내뿜었다.

그간 오토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분명해 보였다.

“야 이! 미친 낙타 놈아! 왜 침을 뱉고 난리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오토가 낙타를 향해 악다구니를 써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한편, 바로 옆 낙타에 묶여 있던 하사신은 그런 오토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정말 몰라서 화를 내는 건가?’

하사신은 어이가 없었다.

‘낙타도 네놈 수다에 지칠 대로 지쳤다! 이 말 많은 놈아!’

하사신은 보았다.

오토가 쉴 새 없이 지껄이는 동안 낙타의 표정도 함께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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