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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첫눈에 반했다니.’

오토는 자기도 모르게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그 정도 얼굴인가?’

물론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이 세계 최고의 미남이라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게임 영지 전쟁에서도 희대의 쓰레기 캐릭터가 오토 드 스쿠데리아.

‘잘생긴 건 맞는데…….’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저주에 걸려 있는 캐릭터이니만큼, 외모라는 장점마저 없다면 누가 손을 대겠나 싶다.

‘이게 그렇게까지 잘생긴 건가? 다들 잘생기지 않았나.’

매일 보는 얼굴이다 보니, 정작 오토 본인은 자신의 얼굴이 얼마만큼 잘생긴 것인지 잘 자각하지 못했다.

사실 카미유, 카심, 카이로스 등 주변 인물들 또한 한 인물하기에 그 정도가 잘 체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못 알아줘서 미안해.”

오토가 엘리제에게 사과했다.

“그땐 어쩔 수가 없었어. 나도 너무 당황해서…….”

엘리제와의 인연은 게이머 김도진이 계획했던 게 아니었기에, 당시로서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

엘리제와 엮이는 순간 빌드가 꼬인다는 걸 알았기에, 생존이 최우선 목표였던 오토는 일단 도망치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해한다.”

“뭘 그런 걸 이해해. 내가 나쁜놈이지. 무조건 내가 잘못한 거야.”

오토가 은근슬쩍 엘리제의 옆으로 가 앉았다.

스윽.

오토가 엘리제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땐 내가 미안했어. 소문을 듣고 당황해서 그랬던 것뿐이야.”

“……그랬나.”

“헛소문이 많았잖아.”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줄 알았다.”

“에이, 그럴 리가.”

오토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지금 와서 보면 자기 같은 여자가 어딨다고.”

“음?”

“예쁘지, 배울 점 많지, 나 잘 챙겨주지, 속 깊지, 사랑스럽지, 그리고…….”

“그리고?”

“귀엽지.”

“귀, 귀엽나? 내가?”

“응.”

오토가 슬쩍 엘리제의 어깨에 제 머리를 올려놓고 비비적비비적 치댔다.

“자기 귀여워.”

“나, 나는 잘 모르겠다.”

엘리제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랐다.

‘바로 이거지.’

엘리제가 부끄러워하는 그런 모습이 오토의 눈에는 더없이 귀여워 보였다.

“근데 말야.”

오토가 엘리제에게 물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건…… 자기는 그냥 내 얼굴만 보고 좋은 거야?”

“저, 절대 아니다.”

“정말~?”

“너는 책임감이 강하다. 부하들도 잘 챙기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

“헤헤.”

“나는 느낄 수 있다. 네가 모두를 위해 얼마나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

“어깨가 무거울 텐데도 늘 웃으며 힘든 내색 한 번을 안 하지 않나.”

순간 오토는 엘리제의 말에 정곡을 찔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항상 그랬다.

사실 오토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

세계대전을 막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막중한 부담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적이 없었다.

늘 꾹 참고, 속으로 삼켰다.

때론 중압감에 숨쉬기조차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그게 미래를 알고 있는 자로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자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무게라고 생각했기에…….

“그걸 어떻게 알았…… 흡!”

오토는 더는 말하지 못했다.

‘아앗……!’

엘리제의 입술이 오토의 입술을 포갰다.

오토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뒤이어 오토와 엘리제가 서로를 휘감고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슥, 스윽.

오토와 엘리제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옷을 풀어헤쳤…….

‘안 돼!’

오토는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들고,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지금은 수련 중이야. 여기서 이래 버리면 어떻게 수련을 해.’

엘리제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아.”

엘리제는 도저히 참기 힘들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자제력을 발휘해 오토에게서 떨어졌다.

엘리제에게도 자제력을 발휘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 밤이 늦었다. 이만 자자. 내일 수련하려면 자야지 않겠나.”

“으응…….”

엘리제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망치는 오토의 방을 나섰다.

‘차, 참아야 돼!’

오토는 그런 엘리제를 붙잡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지금은 마신의 출현에 대비해 폐관수련을 진행하며 무력을 키워나가는 시기.

여기서 사랑을 나눠 버리면 마음이 콩밭에 가 앞으로의 수련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두려웠기에, 차마 본능에 몸을 맡길 수가 없었다.

지금 하는 이 수련이 앞으로 두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것이었으므로…….

* * *

한편, 오토와 엘리제가 폐관수련에 든 동안 북부제국은 천천히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시키며 북해를 건널 준비를 했다.

북부제국군의 규모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순수 전투 병력만 거의 50만에 달하는,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군(大軍)이었다.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는 병력의 이동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신하들을 모아 놓고 선언했다.

“그대들은 들으라.”

강철 옥좌에 앉은 바실리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전쟁은 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본국의 오랜 숙원이다. 우리 민족은 건국 이래 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그간 우리 민족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던가.”

“예, 폐하.”

“우리 민족을 늘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꿨다. 허나 대륙 진출은 늘 실패했다. 저 대륙 놈들은 우리의 대륙 진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바실리가 옥좌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들었다.

“우리 민족은 몇 세대나 발전된 기술을 통해 진보를 이룩해내었다. 추위를 극복했고,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었다. 저 나약한 놈들은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다. 대륙은 본국의 강철 군홧발 아래 철저하게 부서질 것이며, 식민지가 될 것이다.”

신하들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울컥,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북부제국의 대륙 진출은 그 역사가 무려 700년이 넘어가는 오랜 숙원.

그간 숱하게 실패해 왔던 숙원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으니, 북부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감정이 복받쳐 오를 만했다.

게다가 이번 대륙 진출은 사실상 기정사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할 수 있었다.

“흑흑, 흑흑흑.”

“크흑.”

오죽했으면 눈시울을 붉히며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하들마저 있었을까.

“곧 본국의 숙원이 이루어지리라. 강철 군홧발의 힘으로.”

“강철 군홧발의 힘으로!”

북부제국의 대소신료들이 입을 모아 우렁찬 목소리로 바실리의 발언을 복명복창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는 병력의 이동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황궁을 떠나 직접 해군기지로 향했다.

이번 원정은 북부제국의 대를 이어 준비해온 정복전쟁이었으므로, 바실리는 몸소 친정(親征)하여 대륙을 정벌할 계획이었다.

“흑해를 건너기까지 얼마나 남았나.”

“예, 폐하.”

해군기지에 도착한 바실리의 물음에 총사령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한 달 안에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제1차 원정군이 병력을 수송하여 흑해를 건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후속 병력은?”

“대륙인들의 군사력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불필요할 것으로 사료되오나, 제2차와 제3차 원정군 역시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좋군.”

“제1차 원정군이 흑해를 넘어 해군기지를 구축하고 일대를 장악하고 나면, 제2차 원정군이 키이우 왕국을 공격할 예정이옵니다. 제3차 원정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할 것이옵니다.”

“툰드리아는?”

“따로 1개 군단을 편성해 놓았사옵니다. 제1차 원정군이 흑해를 건너는 동시에 툰드리아 공격도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한 달이라 했나?”

“예, 폐하.”

총사령관이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원정을 더욱 빠르게…….”

“아니.”

바실리가 고개를 저었다.

“700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한 달을 기다리지 못할까. 이번 원정은 완벽해야 한다. 앞당길 필요는 없다. 본래 일정대로 차질 없이 준비하라. 또한.”

바실리가 덧붙였다.

“엄중한 군기를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바실리는 서두르려 하지 않는 이유는, 북부제국군의 고질적인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북부제국군은 특유의 호전적인 민족성과 문화 탓에 구타, 가혹행위, 각종 부조리와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었다.

게다가 보드카를 물처럼 마셔대는 문화 때문에 장병들 대부분이 알콜중독에 시달리고 있어서,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터져 나올 지경.

평시에도 그렇듯 엉망진창인 군대가 전시상황에는 얼마나 개판일지는 불 보듯 뻔한 노릇.

바실리가 괜히 군기를 강조하며 일정을 느긋하게 잡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한 달이라.’

바실리의 시선이 저 멀리 흑해 너머로 향했다.

‘한 달만 기다려라. 대륙이 우리의 강철 군홧발 아래 놓이게 될 테니.’

바실리는 오직 그 생각으로  조급한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 * *

위기(?)를 넘긴 오토와 엘리제는 계속해서 폐관수련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폐관수련이 끝나는 그날까지 모든 잡념과 욕망을 떨쳐버린 채 오직 수련에만 집중했다.

엘리제와의 수련은 깨달음의 연속이었고, 오토는 몇 번이나 벽을 깨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갔다.

오토는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했다.

세계관 최강자인 엘리제와 10번 대련하면 2~3번 정도는 이길 정도까지 발전한 것이다.

수련 마지막 날.

스릉……!

오토의 검 쿠란이 엘리제의 목 언저리에서 멈췄다.

“……어?”

오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간 꾸역꾸역 어찌어찌 이겨오긴 했지만, 이렇듯 깔끔한 승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축하한다.”

엘리제가 미소를 지었다.

“많이 발전했다.”

“저, 정말?”

“그 정도면 대륙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에이.”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있는데 최강은 무슨. 이인자 정도지.”

엘리제는 대답 대신 오토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토 역시 그런 엘리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홀린 듯 다가섰다.

오토와 엘리제가 폐관수련한 시간이 무려 8개월.

덕분에 오토와 엘리제 사이의 유대감은 엄청나게 깊어져 있었고, 서로를 향한 마음 역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상태였다.

또한, 서로를 향해 참아왔던 욕망 또한 쌓일 대로 쌓인 상태이기도 했다.

오토는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사랑해.”

오토가 엘리제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한다.”

엘리제 또한 자신의 마음을 자제하지 않고 온전히 표현했다.

“가자.”

오토가 엘리제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엘리제는 오토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그녀 역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기에.

오토와 엘리제는 정신없이 서로를 탐닉해 갔다.

“하아, 하아아-!”

“아아, 아아아-!”

침묵의 대화가 흘렀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서로 취한 듯 내뱉는 숨결에 교감이 오갔다.

부드러운 살결이 맞닿고, 심장과 심장이 마주하며 쿵쾅거리며 두 사람의 영혼이 공명(共鳴)했다.

오토와 엘리제가 두 손을 꽉 잡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윽고 오토가 엘리제에게로 향했다.

엘리제는 그런 오토를 기쁘게 맞이했다.

그렇게 오토와 엘리제는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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