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천둥산 꼭대기에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번개는 더욱 거세졌다.
체감상 거의 30초에 한 번씩 번개가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덕분에 오토 일행 중 누구도 번개를 맞지 않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번개에 맞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잠깐 사이에 서너 방쯤 맞다 보면 어질어질해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그 와중에 오토는 대단히 큰 불행을 겪었다.
번쩍!
쾅!
“으아악!”
한 번 맞고.
번쩍!
쾅!
“으갸갸갸갹!”
두 번 맞고.
번쩍!
쾅!
세 번 맞고.
그 후로도 오토는 계속해서 번개를 맞았고, 참다못해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그, 그만해! 그마아아아안!”
연속으로 맞는 것도 한두 번.
무려 13번 연속으로 번개를 맞다 보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혼자만 맞는 것 같아 자리를 바꿔 보기도 했지만, 번개는 오토를 표적으로 삼기라도 한 듯 집요하게 공격해 왔다.
이쯤 되면 누군가 일부러 번개로 공격한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고무고무 망토를 입었다고 한들, 30초에 한 번씩 번개를 맞다 보니 슬슬 몸 이곳저곳이 저릿했다.
적은 데미지라 할지라도 그게 누적되다 보니 부담이 상당했던 것이다.
“으으… 으으으으!”
오토가 신음을 내며 진절머리 치던 중.
번쩍!
쾅!
또다시 번개가 오토의 정수리를 때렸다.
“…죽여라, 그냥.”
오토는 번개를 피하는 걸 포기해 버렸다.
제아무리 초인이라 한들 내리치는 번개를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
“괜찮으십니까?”
카미유가 멀찍이 떨어져서 오토에게 물었다.
“괜찮아 보ㅇ….”
번쩍!
쾅!
“으갸갸갹!”
대답하던 도중에 또다시 번개가 오토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
“…….”
“…….”
일행은 오토가 계속해서 번개를 맞자 걱정보다는 황당해했다.
고무고무 망토를 입어서 죽지야 않을 테니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지만, 유독 번개가 오토만을 노리고 내리치는 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쯧쯧.”
카이로스가 혀를 찼다.
“그러게 작작 하라 그러지 않았느냐, 뺀질아.”
“내가 뭘 했다고 작작 하래!”
오토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한 게 없긴 뭘 없느냐?”
“뭐?”
“그 악마의 책으로 허공법계에 접속하지 않았느냐.”
“으응?”
“허공법계의 존재는 이 드넓은 우주에서도 제대로 아는 이가 몇 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그런 곳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었으니, 네 녀석의 운이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운이 나빠진다고?”
“천기누설이란 말도 모르느냐?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그 정도로 다행인 줄 알아라, 뺀질아.”
“야 이.”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것도 너 때문에….”
번쩍!
쾅!
“으아아악!”
번개에 맞은 오토가 나자빠졌다.
“껄껄껄!”
카이로스가 고소하다는 듯 그런 오토를 보고 웃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카미유는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오토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쭈? 같이 맞기 싫다는 거지? 지금?”
눈치 빠른 오토는 카미유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카미유가 극구 부인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했다.
정말 오토가 걱정됐다면 이렇듯 최소 5미터 이상은 멀찍이 떨어져 있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고무고무 망토 덕분에 오토가 죽을 일은 없었으므로, 애초에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앞으로도 허공법계에 접속하는 건 조심해라, 뺀질아. 번개 좀 맞는 걸로 끝난 거면 천만다행이니.”
“천만다행이 아니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
“글쎄다.”
카이로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갑자기 큰 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몰살당하거나, 일이 재수 없게 꼬이거나, 심할 경우….”
“……?”
“천적이 나타나 네 녀석을 죽일 것이다.”
“천적?”
“물과 불. 빛과 어둠. 모든 세계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느니라. 그런데 네 녀석과 같이 허공법계에 자주 접속하는 것은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우주의 법칙이 징벌을 내리는 것이다.”
“그, 그렇군.”
“그 징벌이 천적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카이로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오토에게 경고했다.
“죽을 거다.”
“으음.”
“그러니까 조심하란 말이다.”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언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
‘천적이 나타난다라… 잠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거 완전히…….’
천적이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나니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건이 벌어지는 건가?’
오토는 그제야 게임 영지 전쟁의 메인 시나리오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그 사건이 벌어지는 건 미래의 일이었지만.
* * *
그 후로도 오토는 계속해서 번개에 맞았고, 기어코 세 자릿수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한 번만 더 맞으시면 100번째입니다.”
“그딴 거 세지 마!!!”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그걸 하나하나 세고 있었던 카미유가 더 얄미웠다.
“그러다 진짜 승하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
“딸꾹질도 100번 하면 죽는다는데, 아무리 망토를 입고 계신다 한들 번개에 100번 맞으시면 진짜로 죽을지도….”
바로 그때.
다다다!
카미유는 오토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같이 죽자! 같이이이이이이!”
“뭐, 뭐 하시는 겁니까!”
“혼자 죽을 줄 알았냐!”
오토는 아예 어릿광대 트릭스터의 재간 권능을 활용해서, 카미유의 등 뒤로 텔레포트했다.
“……!”
카미유는 그런 오토의 텔레포트에 반응하지 못했다.
오토가 사용하는 무호흡 텔레포트는 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조금만 방심하면 뒤를 잡히기 마련.
덥석.
오토가 카미유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같이 맞자.”
“노, 놓으십시오!”
“나만 맞을 순 없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서웠다.
번쩍!
콰아아앙!
한 줄기 번개가 떨어져 오토와 카미유를 강타했다.
“끄으으으으으으으으으!”
“커헉!”
오토와 카미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번개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서, 고무고무 망토를 입었음에도 감전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그 결과.
털썩!
카미유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오토는 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으응?”
오토는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알 수 없는 상태창이 떠오르긴 떠올랐는데, 흐릿해서 도저히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뭐라는 거야?’
오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최대한 상태창을 읽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어렵사리 상태창을 읽어 본 결과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알림: <업적 : 번개의 선택을 받는 자>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업적…?’
이는 오토조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업적으로서, 난생처음 보는 퀘스트였다.
[알림: 번개 에너지를 흡수해 마나가 영구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알림: 번개 에너지를 흡수해 마나가 영구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중략)
[알림: 번개 에너지를 흡수해 마나가 영구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마나홀에 정신을 집중해 보니 마나의 양이 기존보다 1.5배는 늘어 있었다.
전화위복.
우주의 균형을 깨뜨리는 존재로 간주되어 재수가 지지리도 없었고, 그래서 번개를 맞았지만 그게 오히려 마나의 총량을 늘려주는 호재로 작용했던 것이다.
“오?”
오토는 마나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 걸 보고 매우 좋아했다.
안 그래도 트릭스터의 재간 권능은 마나가 엄청나게 많이 소모되어서, 함부로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마나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니, 오토로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번개를 100번이나 맞은 게 오히려 득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토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서, 갑자기 확 성장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동료들의 입장에선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후후후.”
오토가 기절해 있는 카미유를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될 놈은 된다니까?”
* * *
비로소 천둥산 꼭대기에 도착한 오토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아주 커다란 멧돼지의 석상이었다.
“취, 취익!”
바그람와 오크들은 멧돼지의 석상을 한눈에 알아보고 크게 놀랐다.
천둥 발굽 부족의 오래된 기록에서 등장하는 차우차우의 모습과 석상의 생김새가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취익. 차우차우가 정말로 이곳 천둥산에 잠들어 있었다니. 취익.”
바그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취이이익! 차우차우다!”
“차우차우가 진짜 있었다니! 취익!”
천둥 발굽 부족의 오크들 역시 크게 놀라며 경이롭다는 눈빛으로 차우차우의 석상을 바라보았다.
“취익. 하지만 진짜 차우차우가 아니지 않은가. 저건 석상이다. 취익.”
바그람이 오토에게 물었다.
“석상이지. 지금은.”
오토는 그렇게 대답하더니, 차우차우의 석상을 향해 다가갔다.
쩍!
쩌억!
그러자 석상 표면이 갈라지며, 짙은 회색 털이 드러났다.
- 킁킁… 킁킁킁!
석상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차우차우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파직!
파지직!
그런 차우차우로부터 강력한 전류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쾅! 쾅! 쾅! 쾅! 쾅!
마치 차우차우가 깨어난 것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서 벼락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차우차우.
천둥·번개를 지배하는 신수(神獸).
오크 군주 바그람의 탈것이자 반려동물로서, 세계대전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게 되는 전설의 멧돼지였다.
- 뀌익, 뀌이익.
차우차우가 오크들을 훑어보다가, 바그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로부터 약 3초 뒤.
- 뀌익… 뀌이이이이익!!!
차우차우가 괴성을 내지르며 바그람을 향해 덤벼들었다.
우릉, 우르릉!
차우차우의 발굽 소리는 마치 천둥이라도 치는 듯 거대했고, 육중한 체중 때문에 땅에 지진이라도 난 것만 같았다.
“취, 취익?!”
바그람은 차우차우가 갑작스레 돌진해 오자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야만 했다.
제아무리 바그람이라 할지라도 차우차우에게 치였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바그람의 판단은 옳았다.
콰아아아앙!
와르르르르르르르!
바그람 대신 차우차우에게 들이받힌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무슨 탱크도 아니고, 바위를 부숴 버린 것이다.
- 뀍, 뀌익! 푸르릉! 킁킁킁!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우차우는 어떠한 데미지도 입지 않은 듯 씩씩거렸다.
“취익! 왜 이러는 거냐! 췩!”
바그람이 다급하게 오토에게 소리쳤다.
“왜 이러긴.”
오토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널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그런 거지.”
“취익?”
“차우차우는 천둥 발굽 부족의 족장한테만 반응해. 차우차우의 관심사는 그거 하나야. 자신을 찾아온 천둥 발굽 부족의 족장이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취, 취익!”
“지금 차우차우가 판단하기엔 니가 자격이 없는 거지.”
오토의 말마따나, 차우차우는 재차 바그람을 노려보며 다시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자격…?”
“제압해야지.”
오토가 바그람의 물음에 답했다.
“굳이 혼자서 할 필요는 없어. 다 같이 하더라도, 일단 제압만 하면 돼.”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귀신목으로 만든 몽둥이를 슥 하고 꺼내 들었다.
“우리가 원래 쓰던 무기는 안 통하니까, 이걸 써.”
고무고무 망토를 입고, 야만의 몽둥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그게 차우차우를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천둥산 꼭대기의 무시무시한 벼락과 차우차우가 뿜어내는 전기를 방어해 내면서, 이 거대한 멧돼지를 기절시켜서 제압하는 것 말이다.
“다 같이….”
오토가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
번-쩌어어어어어억!!!
새하얀 섬광이 세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콰앙!
콰아앙!
쾅!
콰아앙!
쾅! 쾅! 쾅! 쾅! 쾅!
수십여 발의 번개 줄기가 마치 폭격처럼 내리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