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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110화

“무, 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더 좋아하는 사람이 져 주는데 왜 내가 져 줘. 아니, 그것보다…….”

리온이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을 더듬었다. 뭐라도 반박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뜨거울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로는 무슨 말을 해도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날 좋아해?”

잠시 후, 겨우 정신 줄을 잡은 리온은 변명하기를 포기하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유원은 눈치가 그리 느린 편이 아니니 자신이 이런 얼굴로 거짓말을 해 봤자 더 우스운 꼴만 될 것 같았다.

“내가 거절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야기하는 건데? 그럼 지금보다도 더 어색한 사이가 될 건데.”

“역지사지라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뚱딴지같은 소리에 리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좀 한 번에 알아듣게 말해 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 걸까.

“게이트 안에서, 형이 저한테 달려왔을 때.”

“…….”

“그때, 그 모습이 꼭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내가 그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지. 리온이 어제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다급한 감정만 남아 있을 뿐,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처음부터 아픈 건 별로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땐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형이 왜 매일 다쳐 오는 건지 이해가 갈 만큼.”

“……너 변태냐?”

리온이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왜 매일 ‘강리온의 저런 면은 닮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는 건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저도 확실한 게 좋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기라도 한 건지 살짝 웃은 유원이 리온과 눈을 마주했다. 만류하는 팀원들을 뿌리치고 리온에게로 달려갈 때,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뛰었던 거였다.

‘가지 마요. 저 안 데려다줄 거예요.’

‘혼자 갈게요. 가야 해요.’

‘혼자 어떻게 가요. 전속력으로 뛰어도 꽤 걸릴걸요. 게다가 아직 게이트 안에 몬스터가 남아 있어요. 괜히 혼자 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요. 가지 마요. 누가 누굴 걱정해요. 괜히 정해진 자리에서 움직였다가 일만 더 만들지.’

여진도, 주섭도. 그리고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팀원들도 모두 말렸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말없이 사라지면 자신을 찾기라도 할까 봐 미리 말을 한 것일 뿐, 동의를 구하고자 한 말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달리기 시작한 유원은 자신이 꾸준히 운동을 해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리온을 지킬 힘은 없더라도, 리온처럼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없더라도, 위급한 상황에 그에게로 달려갈 힘 정도는 있어서 다행이라고.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 무슨 정신으로 그걸 상대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센터장의 특훈을 들은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호신용 작은 칼을 가져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또렷이 기억이 났다.

‘윽…….’

다쳤을 때는 아프다는 생각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다급한 마음에 통증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조금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달려 리온을 발견했을 때쯤에는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유원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코와 입, 심지어는 눈에서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반작용이 강하게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원은 망설임 없이 비틀거리는 리온을 받쳐 들었다.

‘네가 뭐라고 혼자 여기까지 와. 운이 좋았으니까 괜찮았던 거지, 오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겼으면? 누가 너보고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와서 도와 달래?’

리온은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유원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이제까지 리온이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누가 너보고 이런 짓 하라고 시켰어?’

성격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엉망으로 일그러진 리온의 얼굴이 좋았다.

그리고 그 얼굴이, 자신을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좋았다. 이제 리온도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에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주 현실적인 말이었다.

‘……내가 왜? 내가 너한테 뭐라고.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그, 그냥 평소처럼 해.’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는 게 곧바로 익숙해질 리는 없지. 하지만 조금 전, 리온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유원이었다.

조금씩 어지럼증이 심해지고 있는 탓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결정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서로 닮아져 버린 자신과 리온이 같은 마음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역시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건가 봐요.’

“더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저일 것 같지만, 형은 어때요?”

“어?”

조금은 피곤하지만, 맨정신으로 눈을 뜨고 나서도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유원이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리온에게 물었다.

“아직 형한테 저는 매칭 가이드일 뿐, 일을 그만두고 나면 남이 될 게 분명한 그런 사이인가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묻는 유원, 그리고 내가 꿈을 꾸나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리온이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시선을 돌릴 틈도 없이 한참 동안 그 눈을 바라보고 있던 리온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

이렇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리온도 게이트에서 나가고 나면,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유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네가 말하는 방식 진짜 싫었어.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사람 속을 박박 긁어 놓으면서 말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하필 네가 내 매칭 가이드라는 게 싫기도 했어.”

“……신랄하네요.”

“그런 주제에 가끔씩은 사람 헷갈리게 만드니까 더 짜증 나기도 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확실히 지금의 리온에게 유원은 특별했다. 그가 자신의 매칭 가이드가 아니게 되더라도, 당장 내일 일을 그만둬 버리게 된다고 해도 하루 종일 유원의 생각만 머릿속에 떠다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유원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유치할 정도로 싫었고, 자신에게만 친절할 게 아니면 차라리 모두에게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좋은 것 같기도 해.”

“의문형이네요.”

“……내가 이래서 네가 싫다는 거야.”

리온이 유원을 살짝 흘겨보았다. 어째 유원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같았지만, 돌고 돌아 겨우 그의 진심을 들었는데 여기서 회피해 버리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아직 잘 모르겠긴 해. 확신하기에는 조금 섣부른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지금 얘기만 하자면, 지금은…….”

리온이 침착해 보이려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여유로워 보이던 유원이었는데 저런 말을 던져 놓고는 저도 긴장한 듯, 주먹 아래 놓인 이불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확실한 게 좋다니까 그래, 확실한 것만 말할게.”

“…….”

“일단 또 이딴 식으로 나서서 다쳐 오면 그때는 너, 다른 가이드든 근처의 나무든 어디가 됐든 묶어 놓고 갈 거야.”

리온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 꼴을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안 하던 짓 하면…… 신경 쓰여. 그렇다고 평소처럼 툴툴거리면 화가 나기도 하는데, 또 이젠 좀 서운한 기분도 같이 들고.”

별말도 아닌데 낯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리온이 거슬릴 정도로 두근거리는 심장 위로 손을 살짝 올린 채 말을 이어 갔다.

“……쪼잔한 얘긴 거 아는데, 솔직히 다른 사람들하고 쉽게 친하게 지내는 거 짜증 나. 나한테는 하루가 멀다고 시비에 시비였으면서 남들하고는 왜 그렇게 쉽게 잘 지내는 건데?”

“그게 신경 쓰였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한 건…….”

“그래, 나지. 나였는데……! 그렇게까지 잘 지내길 바란 건 아니었다고. 네가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그리고 정작 나하고는 맨날 싸웠잖아.”

리온이 조금 부끄러운 심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괜히 공중에 손을 휘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 살게 된 이후로는 싸운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남들에게 더 친절하고 살가웠던 건 사실이었으니 뭐.

“짜증 나, 짜증 나는데…… 신경 쓰이긴 해. 됐지.”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낯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유원은 멍청하기는커녕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이 정도면 알아듣고도 남을 만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먹 아래 말려 있던 이불이 어느새 느슨하게 풀린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아직 통증이 있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켜 리온에게 조금 다가간 유원이 물었다.

“그럼 그냥 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도 돼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뭐, 한…… 99퍼센트 정도는 그럴지도.”

리온이 괜한 심술을 부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꼭 우리 매칭률 같네. 아니지, 매칭률 떨어진 지가 언젠데 99퍼센트야.

리온이 소심하게 제 말을 정정했다.

“……98퍼센트?”

“2퍼센트는 앞으로 열심히 채워 넣으면 되겠네요.”

하지만 유원은 그런 사소한 심술에도 기분이 좋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예쁘게 휘어진 두 눈이 리온의 심통 난 마음을 녹일 만큼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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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 99퍼센트의 사랑 (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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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 99퍼센트의 사랑 (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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