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를 들어 올리는 것은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힘과 시간을 들이게 된 리온은 시시각각 지쳐 가고 있었다.
‘가이딩이 부족해서 피곤한 적이야 차고 넘쳤었지만, 이렇게 힘든 건 또 처음이네.’
10분 정도 지났을까, 공격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들어 올렸을 뿐인데 벌써부터 팔이 후들거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정도라고 해도 나무들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들어 올린 것이니 당연히 힘들 만도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리온이었다.
센터장이 최대한 빨리 저 망할 보스의 머리를 다 태워 버리면 좋을 텐데.
리온이 힘들게 시선을 돌려 센터장의 상태를 살폈다.
거대한 몬스터가 들어 올려지면서 게이트 안에 길게 그림자가 졌다. 때문에 센터장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격을 준비하는 듯한 자세의 실루엣이 보이긴 했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효빈의 사슬이 보스를 결박하는 순간, 어두워진 게이트를 단숨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만드는 불꽃이 센터장 쪽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르르르…….”
보스가 만들어 낸 그림자와 강렬한 빛, 두 가지가 합쳐지며 눈앞이 아찔해진 탓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은 소리가 몬스터에게서 새어 나왔다. 눈 아래에 어딘가가 꿈틀거린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선배, 입! 입 쪽도 묶어요!”
리온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보스를 들어 올려 고정시켜 둔 것만으로도 급속도로 힘이 떨어지고 있었기에, 정말 사력을 다한 외침이었다.
다행히 효빈은 그 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인지 리온의 말대로 사슬을 조금 더 늘어트려 보스의 얼굴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면적이 짜증 날 정도로 넓다 보니 겨우 몇 번을 두른 것이 최선이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조치일 것이었다.
‘하아…… 어지러워.’
최대한 센터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그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산의 머리를 태워 버릴 만한 불꽃이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사력을 다해 보스를 들어 올린 덕에 불꽃은 옮겨붙지 않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체력으로는 열기조차 견디기가 힘들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리온은 체력이 아닌 정신력으로 버텨 가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크릉!”
하지만 상황은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보스가 눈을 뜨고 있던 속도보다 빠르게 입을 열었다.
“꺄악!”
순식간에 끊겨 버린 사슬에 효빈이 비명을 질렀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사슬을 늘어트리긴 했지만 멀리서 보기에도 팔을 덜덜 떨고 있는 채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 봐. 얼마 안 남았어. 정말 조금만 더! 마지막 발악이야. 이 고비만 넘기면 돼!”
머리 위에서 센터장의 고함이 들려왔다. 리온이 입술을 깨물어 휘발돼 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겨우 조금 움직인 것뿐인데, 공격조차 되지 않는 포효를 한 번 내질렀을 뿐인데, 이 정도라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저게 몬스터라는 걸 알았다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되었을지 가늠조차 가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슬슬 버티고 서 있는 것이 힘들어지고, 눈물인지 아닌지 모를 액체가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단전에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이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래서야 걱정할 필요 없다고 큰 소리 뻥뻥 친 게 부끄럽네.’
유원에게는 ‘나는 내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라며 핀잔을 준 것이 겨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역시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후우, 하아…….”
리온이 겨우 심호흡을 하며 보스를 떨어트리지 않도록 버텼다. 그래도 지난번 S급 게이트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무력함에 자괴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때랑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사실만은 그대로였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이유원이 내 꼴을 보면 이렇게 될 거 바보같이 잘난 척은 왜 했냐고 말하겠지. 아, 이번엔 그런 소리 들어도 진짜 어쩔 수 없다. 할 말이 없겠어.’
이런 상황에서도 드는 생각이 겨우 이런 것이라니,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내 가이드.
귀찮다 못해 짜증 날 정도로 나를 걱정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쥐어박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주 사랑스러운 가이드.
처음엔 그냥 짜증이 났고, 얼마 전부터는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고.
상종도 못 할 놈까지는 아닌데 가이딩 효율도 높이고 사이도 개선해 볼까 하고 가벼운 생각으로 다가가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더 나은 효율도 포기하고 유원이 안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줏대가 없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겪게 되니 이번엔 정말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돌아가면 또 싸우겠지만…… 이번엔 마냥 짜증 난다고 느끼진 않을 것 같아.’
리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어느새 축축해진 코 아래를 옷 소매로 닦아 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센터장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지만, 보스도 목숨의 위협이 느껴지는 순간까지 느릿하게 여유를 부리지는 않았다.
“크르르르!”
큰 소리와 함께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딱 이 고비만 넘기면 돼. 리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이 찢어지도록 강하게 입술을 깨물곤 다리에 힘을 줬다.
효빈의 사슬은 어느새 완전히 튕겨 나가 있었다. 혼자 보스의 움직임을 상대하게 된 리온이 이 정도로 힘을 끌어 쓰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은 힘을 쥐어짜 무형의 힘으로 보스를 강하게 압박했다.
“크르르, 크릉!”
보스가 몸을 뒤틀 때마다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내리찍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게 능력을 무리하게 끌어 쓰는 것의 반작용인가. 글자로 읽던 것보다 훨씬 끔찍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너지면 지금껏 버텨 온 것도 다 쓸모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물기가 아주 조금 남은 수건을 온 힘을 다해 쥐어짜듯, 한 방울의 힘이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이미 터져 버린 입술을 앙다물었다.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가 입술에서 나는 것인지,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어도 반작용이 오기 시작한 몸은 의지만으로 버텨지지가 않았다.
“큭…….”
후들거리던 다리 한쪽이 완전히 힘을 잃었다. 균형을 잃은 리온이 넘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다리가 아닌 능력을 지휘하고 있는 팔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보스를 떨어트리는 것보다는 볼썽사납더라도 제가 바닥에 처박히는 것이 더 나았다.
“……어?”
“입술 그만 깨물어요.”
하지만 리온은 넘어지지 않았다. 그를 단단하게 받쳐 준 팔을 통해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식혀 주는 가이딩이 흘러 넘어왔다.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그런 거 생각할 틈이 있어요?”
아니, 없지. 당황함도 잠시, 리온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다시 땅을 딛고선 보스를 강하게 압박했다. 가이딩이 실시간으로 흘러 넘어오게 되면서 죽을 것 같던 몸 상태가 조금 진정되었다.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을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몸 상태가 나아지자 야속할 정도로 느리게 느껴지던 시간이 제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르르륵!”
끝없이 흘러 들어오는 가이딩을 받는 족족 방출해 낸 리온과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화력을 방출한 센터장이 동시에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를 끌어냈다.
“됐다…….”
그렇게 보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크기만큼이나 질긴 목숨이었다. 머리가 완전히 타 버릴 때까지 움직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보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해서 리온의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리온이 주저앉은 센터장과 언제 쓰러진 것인지 모를 효빈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몬스터를 도로 바닥에다 내려놓았다.
쿵―
최대한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조용히 내려놓는 것에는 실패했다. 땅이 한 번 크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 버린 보스의 머리가 파스스 흩날렸다.
“너.”
멀리 게이트가 열린 것까지 확인한 리온이 그제야 유원을 돌아보았다.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유원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가던 길 그대로 갔어요. 저 혼자만 온 거예요.”
달려온 것인지 유원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덕분에 고비를 넘겼지만, 리온에게는 그 도움의 고마움보다 유원의 돌발 행동에 대한 화가 앞섰다.
“네가 뭐라고 혼자 여기까지 와. 운이 좋았으니까 괜찮았던 거지, 오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겼으면? 누가 너보고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와서 도와 달래?”
상황이 끝났다는 안도감보다 유원이 왜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우선이었다. 리온이 엉망이 된 얼굴도 닦지 않은 채로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