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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84화

“진짜라고요?”

“진짜야. 근데 넌 무슨 센터장실을 네 방처럼 드나드냐.”

“이번엔 안 올 수가 없었잖아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센터장실로 쳐들어간 리온이 센터장에게 말했다. 센터장 역시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명단 짜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짜는 건데 어쩌겠냐. 공지는 안 나갔지만 2주 가까이 게이트가 안 생기더니 이번엔 동시에 세 개나 생길 조짐이 보여서 어쩔 수 없어. 어제까지만 해도 하나였는데, 오늘 하루 동안 두 개나 보고가 들어와서는.”

“3개요? 그럼 제가…….”

“지금 징조 보이는 게이트 외에 게이트가 또 생긴다면 그땐 너도 긴급으로 투입될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런 일은…… 최대한 없길 바라야지.”

센터장이 골이 아프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게이트가 언제는 사람들 편의 봐주면서 생겼냐마는 이번엔 정도가 좀 심했다.

“올해는 S급 가이드가 둘이나 들어와서 좀 편해지나 했더니, 아주 마가 꼈어.”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다른 세 군데도 아마 내일이나 모레 안에 미리 명단 나갈 거야. 다행히 한동안 게이트가 안 열려서 너 빼고는 못 넣을 만한 사람이 없었지만…… 이게 다 해결되기 전에 또 생기면 그땐 진짜 비상이지. 넌 물론이고, 나까지 들어가야 할 판이니까.”

센터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센터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된 이후로부터는 게이트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자신은 물론 다른 센터에서 일하는 에스퍼들까지 전부 끌어와서 게이트에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하, 능력 있는 신입들이 많이 들어온 해에는 그만큼 게이트가 많이 열린다는 말이 그냥 떠도는 이야기이길 바랐는데…… 이렇게 되니까 괜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S급 가이드 둘에 A급 치유계 에스퍼도 들어왔으니까…… 확실히 올해 큼직한 신입이 꽤 들어오긴 했네요.”

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냥 우연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괜히 미신에 솔깃하게 되는 법이었다.

“S급 게이트도 게이트지만…… 이런 식으로 게이트가 생기면 다들 당분간 죽어 나갈 텐데 말이야. 하아…… 이러다 또 S급 게이트라도 터지는 거 아닌지 불안하네.”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어쨌거나…… 명단은 오류도 아니고 되돌릴 수도 없다는 거네요.”

“그래, 너희 둘이 페어로 등록된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어. 당사자도 별말 없던데 네가 달려와서 물어볼 줄은 몰랐네.”

“아니, 게이트에 따로 들어가는 게 처음이잖아요. 이례적인 상황인 건 맞으니까.”

리온이 입술을 살짝 깨물곤 말했다. 상황을 듣고 나니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기는 했다.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유원이는 야무지니까 너 없어도 잘하고 오겠지.”

“아니, 그래도…… 좀 그렇잖아요.”

“좀 그렇긴 뭐가 좀 그래. 어차피 너도 마지못해 같이 있는 거면서.”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데. 하지만 반박하기에는 여태 해 온 말들이 있으니 격하게 반박하는 것도 우스울 것이었다.

리온이 입을 꾹 다물고 한발 물러섰다.

“알겠어요. 며칠 뒤면 출발할 테니까…… 저만 뻘쭘해지겠네요.”

“아, 지금 같이 살고 있으니까…… 남의 집에서 혼자 지내야겠네.”

센터장이 그건 좀 우습게 됐다면서 살짝 웃었다. 하지만 연이은 게이트 발생 예고로 센터장 역시 바빠진 터라 길게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더 얘기할 거 없으면 그만 나가.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아서 정신없으니까.”

“알겠어요.”

“아, 그리고 당분간은 중요한 일 아니면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것도 금지야.”

반쯤 쫓겨나다시피 센터장실에서 나온 리온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자신 없이 유원 혼자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상상이 안 됐다.

‘센터장님한테 말은 안 했다지만 자기도 좀 걱정되지 않으려나. 물론 다른 에스퍼들도 다 능력 있지만…….’

센터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모든 게이트를 자신과 함께 들어갔는데 혼자서 게이트에 들어가려니 어색하기도 할 테고, 여러모로 긴장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그렇게 생각하니 유원이 조금 걱정되는 리온이었다. 내심 유원도 자신의 부재 때문에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기도 했다.

“돌아가면 얘기 좀 해 봐야겠다.”

리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다녀왔습니다.”

조금 늦게 귀가한 유원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늦는다는 이야기는 미리 듣고 알고 있었기에, 리온은 놀라지 않고 유원에게 말을 걸었다.

“명단 봤지?”

“무슨…… 아, 게이트 명단이요.”

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딩 신청 때문에 오는 알림은 바로바로 확인하다 보니 명단이야 거의 뜨자마자 확인했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리온이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도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건 추측에 불과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페어로 등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리온과 달리 자신은 다친 곳 하나 없이 건강했으니 말이다.

“봤어요. 금요일에 출발할 것 같던데요.”

그러나 리온의 예상과는 달리 담담한 대답이었다. 물론 평소 성격을 알기에 대놓고 불안해하거나 호들갑을 떨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담담한 반응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조금 정도는 긴장할 줄 알았는데.’

긴장은커녕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게 왜 서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에 들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걱정 안 돼?”

“뭐가요?”

잠시 망설이다 걱정되지 않느냐 묻자 의아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정말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 건가. 리온이 뻘쭘하게 말했다.

“아니, 나 없이 게이트 들어가는 건 처음이잖아.”

“아아.”

유원이 그제야 리온의 반응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리온의 매칭 가이드로 주목받은 것을 시작으로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을 때도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으니까.

조금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하는 일이야 언제나 똑같고, 오히려 마음이 조금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유원이었다.

‘적어도 형 걱정에 마음 졸일 일은 없을 테니까. 둘 중 한 명만 들어가야 한다면 내가 들어가는 게 더 나아.’

그리고 생각해 보니 리온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더 좋은 점도 있었다.

“좀 어색하긴 하겠지만 괜찮아요. 같이 들어가는 분 중에 같이 게이트에 들어간 적 있는 분들도 있고.”

“아, 현서 선배랑 지수 누나 있었던가.”

하긴 S급 가이드가 들어가니 S급 에스퍼도 하나 들어가겠지. 그나마 아는 에스퍼와 들어가는 게 다행인가.

자신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는 나름 괜찮은 조합이었지만, 그래도 리온은 못내 이 조합이 괜찮은 건지 걱정됐다.

아니, 사실 어떤 조합이든 그냥 그 안에 자신이 없다는 것부터가 불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없고, 대처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리온이었다.

“시스템에서 이름이 빠진 것도 아니니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위험하지 않은 게이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일 시작한 지도 꽤 됐으니까 별로 걱정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런 리온과 다르게 유원은 이 상황을 전혀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일에 잘 적응해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이었지만, 묘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좋은 경험이 되겠네.”

“그러게요.”

이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리온이었지만 당사자가 저렇게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데 제가 나서서 말을 더 보태는 것도 꽤 우스운 일일 것이었다.

리온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네.”

걱정스럽고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이었던 건가. 어쩐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리온이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말했다. 여태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머쓱할 정도로 대화는 싱겁게 끝나 버렸다.

“나만…… 신경 쓰이는 건가.”

잠시 후, 제 방으로 들어온 리온이 홀로 꿍얼거렸다. 유원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니, 이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신만 유난을 떠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 너희 둘이 페어로 등록된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어.’

페어로 등록하지 않아도 불편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번만큼은 유원과 제가 페어가 아닌 게 큰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리온 한 사람뿐이었다. 모두가 페어가 아니라 시스템에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 이렇게 배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원까지도.

페어 신청이 승인되기 직전 그 신청을 철회해 버린 것은 리온이었건만, 어째 이 상황에서 서운해하는 것도 리온뿐이었다.

그렇다고 도로 페어 신청을 하자고 하기엔 페어 신청을 망설인 이유도 있었고, 괜한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유원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자신이 나서서 말하면 왠지 진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몰라, 자기가 괜찮다는데 뭐.”

결국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리온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생각해 봤자 변하는 것도 없는 일, 자신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 다짐한 리온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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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 99퍼센트의 사랑 (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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