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저씨! 아저씨! 젠장, 이거 문은 어떻게 열어야 하는 거야…….”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몇몇 승객들은 앞으로 굴러떨어져 의식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 버스 안에는 리온의 가족을 제외하고도 다섯 명 정도의 승객이 움직이고 있었다.
기사의 자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기사에게 운전을 똑바로 하라며 화를 냈던 승객이 기사에게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기사는 기절한 것인지 뺨을 치는 손길에도 깨어나지 않고 그대로 늘어져 있었다.
버스의 몸체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나갈 방법이라고는 창문을 깨고 나가는 것밖에 없을 것 같은데, 비상용 망치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창문이 깨진 틈도 너무 작았고 그마저도 차가 뒤집혀 하늘 쪽을 향해 있어서 탈출하기엔 용이하지 않을 듯 보였다.
한 번에 한 명 정도가 겨우 나갈 수 있을 크기.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그 틈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엄마, 아파아…… 흐엉. 끅.”
“리온아. 울지 마. 우리 리온이 씩씩하지? 금방 나갈 수 있을 거야.”
“여기 피 나. 그리고 이상한 냄새 나…… 머리 아파.”
리온이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리온의 말대로 버스 안에는 기름 냄새가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거기 괜찮습니까?”
누군가 버스 바깥에서 승객들에게 말을 걸었다. 도로를 달리던 다른 차량 운전자가 사고를 발견하고 다가온 모양이었다.
“이거, 틈이 너무 작은데…….”
“여기 애가 있어요!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애! 일단 얘부터 좀 받아 주세요!”
깨진 창 가까이에 있던 승객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어린아이는 리온밖에 없었으므로 분명 리온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 이거 상태가…… 일단 애부터 주세요! 애부터 꺼내고 이 틈 좀 넓히든지 해 봅시다!”
“엄마, 싫어. 같이 나가자. 나 혼자서 나가기 싫어…….”
승객들이 리온에게 어서 오라는 듯 팔을 뻗자 겁에 질린 리온이 고개를 마구 내저으며 엄마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엄마, 나 혼자서는 싫어…….”
“리온아. 일단 나가서 저기 아저씨랑 잠깐만 같이 있어. 엄마가 금방 따라갈게. 응? 저기 깨진 틈이 너무 작아서 지금 당장은 리온이밖에 못 나갈 것 같아.”
“그럼 기다렸다가 엄마랑 같이 나갈래. 엄마가 여기 밴드 붙여 줘…… 가방 안에 밴드 있잖아. 응?”
불안해진 리온이 투정을 부리며 말했다. 그러나 리온의 엄마는 어떻게든 리온을 먼저 내보낼 생각이었다.
기름 냄새와 불길한 열기가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온아, 엄마랑 아빠는 어른이야. 엄마가 전에 말했지? 어른은 어린이한테 도와 달라고 안 하니까, 도와 달라는 어른이 있으면 다른 어른 불러올게요, 하고 직접 도와주지 말라고.”
“응…….”
“어린이는 어른을 못 도와줘도, 어른은 어린이를 도와주는 게 맞는 거야. 리온이가 엄마 아빠만큼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지면 엄마 아빠가 리온이한테 도와 달라고 하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리온이가 혼자 저기 위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키가 크지 않잖아. 맞지?”
리온의 엄마가 차분하게, 그러나 평소보다 조금 빠른 말투로 말했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 아기 아닌데…….”
“리온아, 아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게 맞는 거야. 어른들은 리온이 도움 없어도 나갈 수 있지만 리온이는 혼자서 못 나가면, 그럼 리온이가 제일 먼저 나가는 게 맞겠지?”
“그래. 리온이 이리 줘. 내가 위로 올릴게.”
“엄마, 싫어. 엄마!”
“리온아, 아빠한테 와. 어서!”
리온이 불안한 기분에 와앙 울며 엄마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결국 아빠의 품으로 넘겨졌다. 리온은 엄마에 이어 아빠마저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까 봐 필사적으로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빠, 싫어. 같이 가. 같이 놀이동산 가기로 했잖아! 같이 나가!”
“그래. 같이 가려면 일단 리온이가 먼저 나가야 해. 여기서 나가면…… 그럼 놀이동산도 가고 리온이 좋아하는 돈가스도 먹으러 가자. 일단은 나가야 해. 응? 착하지.”
“애 이리 주세요. 아가, 엄마 아빠 금방 따라오실 거야. 일단 먼저 나가 있자.”
리온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겨졌다. 발버둥을 치며 싫다고 부모님에게 손을 뻗었지만 결국 풍채 좋은 아저씨의 손에 들려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아저씨는 리온의 발버둥에 얼굴을 몇 번 채이고도 끝까지 리온을 위로 올려 보내 주었다.
“그놈 참…… 힘 좋네. 커서 큰사람 되겠다.”
“싫어. 흐엉. 엄마, 아빠아…….”
“아이고, 얼굴이 눈물투성이네. 얘야, 이리 오려무나.”
버스 위에 올라타 있던 사람이 리온을 건네받고 리온이 타고 있던 버스는 이미 뒷바퀴 쪽에서 불길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임에도 아이를 구출하겠단 일념으로 버스에 기어오른 운전자는, 간신히 리온을 받는 데 성공했다.
리온을 품에 안은 운전자가 달래 주려고 애를 썼다.
“착하지. 엄마 아빠도 금방 나오실 거야. 잠깐만 저기서 기다리자. 여기는 위험하니까…….”
“싫어, 싫…….”
바깥에 나오고 나서야 고약한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된 리온이 발버둥을 멈췄다. 리온 역시 바퀴 쪽 불길을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버스 아래로 샌 액체는 주유소 특유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불과 기름이 섞이면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배워서 아는 리온이었다.
“저기, 저기 불났어요. 우리 엄마 아빠 저기 있는데…….”
“아이고, 잠시만. 일단 좀 떨어져서 기다리자. 애들이 보기에는…….”
리온을 안아 든 운전자가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는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는지 리온이 불이 붙은 버스를 보지 못하게 하고 그를 자신의 차로 데려갔다.
“이거 이대로는 안 돼. 뭐라도 집어 던져서 앞 유리를 깨지 않고서는…….”
버스 위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하던 남자가 창문에 난 틈을 넓히기 위해 도구를 찾으려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막 리온을 차에 태우고 방법을 찾으려 할 때였다.
쾅―!
무언가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운전자는 필사적으로 리온이 탄 뒷좌석의 창문을 가리며 외쳤다.
“안 돼. 보지 마. 보면 안 돼.”
“엄마, 아빠. 엄마아…….”
하지만, 리온이 아무것도 모를 만큼 어리진 않았기에, 그 눈물 콧물 섞인 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였다. 과로로 인한 사고였기에 예상할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며 매스컴이 연일 떠들어 댔지만,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고의 생존자는 리온 한 사람뿐이었다. 전복된 버스가 폭발에 휘말리면서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버스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리온은 한순간에 고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잃은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다.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했었다.
친척이라고는 이모 하나뿐이지만 그 이모마저도 연락 두절이 된 지 오래라 리온은 시설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원장님을 만나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자라면서 리온은 서서히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어린아이이던 자신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데다가 이상할 정도로 더운 버스 내부를 그저 기분 나쁜 상황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 버스 안에 있던 어른들은 모두 상황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른이라고 해서 그 상황이 두렵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버스 안에 있던 어른들은 어린 리온이 두려워할까 봐 그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발버둥을 치던 리온을 끝까지 안아 바깥으로 내보냈다.
리온을 내려 주기 위해 버스 위로 올라왔던 그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운전자 역시 운이 나빴더라면 그대로 버스 위에서 폭발에 휘말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버스 위로 올라와 리온을 받아 빼내 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위해 망설임 없이 친절을 베풀었기에 자신이 살아남은 거였다.
그 사실을 자각한 후부터 리온은 자신도 어른이 되면 그런 어른이 되리라고 다짐했다.
그 사람의 선의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그 버스 안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돕는, 자신을 구해 주었던 사람들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S급…… S급입니다. 이런 수치는 또 처음 보네요.”
“……제가 에스퍼라고요? 그, S급이면 제일 높은 등급 아니에요?”
그렇기에, 스무 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받은 검사에서 자신이 S급 에스퍼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리온은 놀라면서도 이내 곧 확신했다.
자신에게 그런 거대한 능력이 오게 된 것은 분명 운명일 것이라고.
자신을 구해 준 사람들처럼 자신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엄마의 말처럼 이제 제게는 그들을 도울 능력이 생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