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온 선배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리온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솔직히 리온이 네가 없었으면…… 나도 지금만큼 버텼을지 모르겠다.’
모두가 리온의 이름을 불렀다. 리온 역시 처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부름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게이트 안에 들어왔을 때는 못 버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골머리 썩을 정도는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난도가 높았다. 여태 게이트를 다니면서 좀 짜증이 난다거나, 다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정도는 해 봤지만 공략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게이트는 없었다.
‘괜찮은 걸까…….’
다른 사람들은 리온이 있어 다행이라고, S급 게이트에서도 역시 리온이라면서 그의 능력을 칭찬했지만 그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힘들어지면 밑천이 드러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고되기 짝이 없었다. 고작 이틀 차임에도 이미 지쳐 있었고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어쩌면 그들보다 더 불안감을 끌어안고 있었다.
힘든 티를 냈다가는 괜히 분위기를 해칠 것 같아 티를 낼 수도 없었다. 티를 내기는커녕 투정 한 마디조차 위험하다는 생각에 한껏 멋있는 척을 해야 했다.
만약 티를 냈다간 자신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팀원들에게도 영향이 갈 것이 분명했다.
팀원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지만 정작 머릿속이 가장 복잡한 것은 리온이었다.
그래서일까. 유원이 불침번 근무를 설 차례가 되어 혼자 남게 된 텐트 안에서, 꾹꾹 눌렀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흐윽…….”
마음 같아서는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서러웠다. 그러나 마음껏 울었다가는 팀원들을 깨우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설움과 불안을 꾹꾹 눌러 가며 울고 있는데, 갑자기 텐트의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
텐트 안에 들어올 사람은 주찬 아니면 유원밖에 없었다. 리온이 눈물을 급하게 닦아 내며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시선에 유원이 잡혔다.
“왜, 무슨 일…… 있어?”
울고 있던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붉게 달아오른 눈가는 어둠이 가려 준다손 쳐도 코가 막혀 나는 맹맹한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
유원은 아무 말 없이 리온을 바라볼 뿐, 그대로 멈춘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아이씨, 부끄럽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 알면 다들 신경 쓸 테니까…….”
“게이트, 역시 괜찮다고는 해도 힘든 거죠.”
리온이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했다. 그러나 유원은 그리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내가 힘들면 안 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형은 왜 힘들면 안 되는데요.”
“…….”
얼핏 듣기에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시비 같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이 조금 일그러져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힘들면 안 되는 건데요.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도 내가 힘들어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괜히 동요할 테니까 사람들한테 피해 끼치는 것보다는…….”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혼자 숨어서 울 정도로 힘들면서, 왜 자기 생각은…….”
유원은 나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왠지 더 서러운 기분이 든 리온이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무시하며 말했다.
“중요해. 나한테는 중요하다고. 나한텐 이게 전부야. 나는…….”
그러나 이미 두 눈 가득 고인 눈물을 말릴 방법은 없었다. 리온의 볼을 타고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누가 그런 말을 하는데요. 다들 형한테 의지하고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형이 이렇게 몰려 있는데도 몰아붙일 사람들은 아닌 거, 잘 알잖아요.”
“그래. 다들 속상해하겠지. 그러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유원이 리온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유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화가 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평소 감정 상태를 그리 잘 드러내지 않는 유원이었기에 더 낯선 얼굴이었다. 유원이 두 눈에 눈물기가 가득한 리온을 보며 말했다.
“세상에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게 어디 있는데요. 매번 자기는 다쳐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서면서 정작 힘든 건 몰라줬으면 좋겠다니. 착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아요?”
“…….”
“굳이 저한테 말하라는 게 아니에요. 현서 선배, 아니. 태환 선배님한테라도…….”
“너는 이해 못 하겠지.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이해 못 할 거야. 근데 나는 그렇게 해야 해. 그게 내 역할이야.”
속 터지는 말에 유원이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온이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의 선의 덕분에 살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
리온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이미 한심한 꼴을 실컷 보여 버린 거, 어차피 알고 있을 얘기 그냥 말해 버릴까 싶기도 했다.
‘그래, 이유원은 이런 이야기 들어도 분명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나 하겠지. 이미 아는 얘기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내 걱정에 더 스트레스 받을 사람도 아니니까…….’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눈물이 한번 터지고 나니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 다 털어 내고 싶었다.
게다가 유원은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인간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제 입으로 털어놓으면 조금이나마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리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난 보육 시설 출신이야.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고 맡아 줄 친척도 딱히 없어서 시설에서 자랐어.”
“…….”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낸 리온에 놀란 유원이 어깨를 흠칫했다. 그 모습을 본 리온이 피식 웃곤 말했다.
“……스무 살 넘어서부터 내 입으로는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그 대상이 너일 줄은 몰랐네.”
리온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엄마! 버스가 신기하게 생겼어!”
리온이 아직 초등학생이던 시절의 일이었다. 일전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에 놀이동산에 데려다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리온의 아버지는 어느 날 연차를 내고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서 하루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된 데다가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게 된 리온은 그날 잔뜩 들떠 있었다.
“손잡이가 없고 의자만 잔뜩 있어!”
“시외버스라서 그래. 자,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 메자.”
리온의 어머니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리온에게 안전벨트를 채워 주며 말했다. 리온은 창가 자리에 앉아 터미널을 가득 채운 버스를 보며 신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스가 엄청 많아!”
“이거 타고 한참 가다 한 번만 갈아타면 놀이동산에 도착할 거야.”
“오늘은 왜 우리 차 안 타?”
“차가 상태가 좀 안 좋아서, 수리센터 갔던 거 기억 나지? 아직 거기에 있어. 주말이나 되어야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연차까지 냈는데 며칠 전 차가 갑자기 말썽을 부린 탓에 버스를 타고 놀이동산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어린 리온에게는 더 신나는 일이었다.
“버스가 이렇게 많이 있는 건 처음 봐!”
“자, 이제 출발한다.”
들뜬 리온을 태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옆에 앉은 리온과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 옆에 앉은 아버지. 그리고 그리 많지 않은 승객들을 태운 버스는 순조롭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놀이동산을 간다는 생각에 창밖으로 차가 지나가는 것만 봐도 신이 나는 리온이었다. 그렇게 차를 몇 대나 봤을까.
“아저씨! 거, 운전 똑바로 안 합니까!”
차가 거슬릴 정도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차선을 이리저리 벗어나며 이동하는 버스 탓에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여 항의를 표시할 정도였다.
결국 승객 중에서도 누군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기사에게 소리를 쳤다. 그러나 기사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거참, 아저…….”
쾅―!
“꺄아악!”
“엄마!”
화난 승객이 다시 한번 기사를 부른 순간, 갑자기 굉음과 함께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아악!”
“사람 살려!”
“으으…….”
사람들의 비명과 뒤집어진 시야. 리온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리다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아아…….”
“리온아. 엄마 여기 있어. 잠깐만, 잠깐만…….”
옆에서 안전벨트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리온의 엄마가 버스의 유리창 위로 떨어졌다. 깨진 창을 딛고 선 그녀는 울고 있는 리온의 벨트를 풀고 안아 주었다.
“엄마, 아파아…….”
“부딪혔어? 어떻게 해, 리온아. 아. 여보. 괜찮아?”
버스가 뒤집히면서 날아온 물건에 부딪혔는지 리온의 팔에 상처가 나 있었다. 리온의 엄마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이 아픈 것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리온을 안은 채로 옆자리에 앉은 남편을 불렀다.
“리온아. 여보. 괜찮아?”
다행히 세 사람 모두 안전벨트를 단단히 멘 덕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셋은 우선 유리창에 발을 딛고 선 채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