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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96화

“뭐야, 왔으면 기척을 좀 내지.”

“딱히 조용히 오지도 않았어. 네가 딴생각한다고 못 들은 거지. 게이트 훈련은 잘돼 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큰 의미 없으려나.”

S급 게이트를 대비하느라 게이트에서 돌아온 진하와 짧은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매일 붙어 다니던 진하였는데 온갖 잡생각과 게이트 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리온이었다.

“어, 뭐…… 그렇지.”

“정현 씨는 좀 어때? 걔도 참 힘들겠더라. 나도 첫 게이트가 S급 게이트이긴 했지만 들어오자마자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신입 교육받으면서 치유 계열 에스퍼는 게이트 들어갈 일 많지 않을 거라고 들었을 텐데 날벼락이겠다.”

“정현 씨랑 친해?”

“아마 너보다는?”

진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하긴 센터장이 구상 중인 게이트 후처리 팀의 최종 멤버에는 진하도 들어가 있을 테니 몇 번 만나 보기야 했겠지.

‘얘라면 내 얘기를 듣고 비웃지는 않지 않을까.’

잠시 게이트 후처리 팀 인원들과 어울리는 정현을 떠올려 보던 리온이 문득 든 생각에 진하를 올려다보았다.

진하도 장난기가 많은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진중한 면이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적어도 리온의 이야기를 듣고 비웃지는 않을 것 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어디 가는 중이었어?”

“이번 타임에 가이딩 신청 들어온 게 없어서 간식거리나 사 오려고 했는데. 왜?”

마침 한가하기까지.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리온이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운을 띄웠다.

“거…… 한가하면 얘기 좀 할까. 같이 S급 게이트 들어가 봤던 동료로서 말이야.”

“뭐야, 그냥 얘기하면 되지 뭘 그렇게 말을 가져다 붙이고 그러냐.”

척 보기에도 수상한 행동에 진하가 수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하여간, 리온은 속이 투명해도 너무 투명한 사람이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난 아직 정현 씨에 대해 잘 모르는데 너는 좀 안다니까.”

“직접 말 걸고 친해지면 되잖아.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낯을 가렸다고?”

물론 리온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어깨동무를 하며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편이었다. 본인도, 그리고 리온을 아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리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물론 그러고 있지. 근데 친해질 시간이 적잖아. 그러니까 발로 뛰는 거지.”

“뭐…… 아는 거라면 말해 줄 수 있긴 하지.”

다행히 넘어온 듯한 진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제스처에 안심한 리온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후처리 팀 신설 얘기로 자주 만난 거면 민현이랑 그, 유원이랑도 자주 만났겠네?”

“음, 평소보다는? 그런데 나보다는 유원 씨를 더 주축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 난 그냥 가끔 낀 정도였거든.”

“아하. 그래도 교육 센터에서부터 본 거네?”

“그렇지.”

어쨌거나 자신보다는 유원과 정현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거였다. 리온이 마른침을 삼키곤 말을 이어 갔다.

“……다들 친해?”

“친하냐고? 음…… 나만 빼면 나머지는 다 그런 것 같네.”

“너만 빼면? 아, 걔가 너 별로 안 좋아하지.”

“난 유원 씨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말이야.”

“네가 너무 능글맞아서 그래. 센터장님보다도 더 아저씨 같아. 외국에서 살다 온 애가 왜 그렇게 아저씨 같냐?”

유원이 진하를 싫어하는 이유 따위 죽었다 깨어나도 눈치채지 못할 리온이 말했다. 웃음을 겨우 참은 진하가 네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수상하게 웃지만 않으면 괜찮을 텐데.”

“으음, 글쎄…… 어쨌든, 정현 씨 좋은 사람이지. 좀 소심하긴 하지만 착하고, 성실하고. 게이트 안에서도 큰 전력이 될 거야. 그리고 유원 씨랑 친하니까 붙여 놓으면 금방 적응할지도.”

“……그렇게 친해?”

정현과 하하 호호 떠드는 유원의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 리온이었다. 조금 굳어진 표정에 상황을 대강 눈치챈 진하가 리온을 슬쩍 떠보았다.

“유원 씨가 정현 씨를 잘 챙겨 주지. 되게 꼼꼼하게 챙겨 주더라. 신입이라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 신입 땐 별로 신경도 안 썼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걔랑 정현 씨 사이에 들어온 신입이 몇 명이나 되는데.”

“글쎄…… 유원 씨가 느끼기엔 좀 특별한 신입일 수도 있지.”

“특별?”

“들어오자마자 S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정현 씨가 뭐랄까 되게 신입 같거든. 진짜 신입이긴 하지만 진짜 딱 ‘신입’ 하면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

확실히 센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신입 같다기보다 사회에서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혹은 나는 약해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애초부터 만반의 각오를 갖추고 들어온, 신입다운 신입이라고 해 봤자 열의에 불타는 신입인 경우가 대부분인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정현은 그냥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뎌 잔뜩 겁에 질린 새끼 사슴 같은 사람이었다. 센터에 아주 드물게 들어오는 유형의 신입.

리온도 챙겨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으니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입을 챙기는 사람이 유원이라는 것은 조금 싫은 기분이었다.

“신경 쓰이지?”

“뭐, 뭐가?”

리온이 진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정곡을 찔린 리온이 고개를 격하게 내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하고 친하게 잘 지내면 좋은 거지 뭘 그런 걸 신경 쓰냐.”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영 별론데.”

“표, 표정?”

리온이 제 얼굴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곤 눈을 끔뻑거렸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지. 거울이 없으니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 리온이었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음…… 어떤 표정이었냐면.”

진하가 조금 전 마주했던 리온의 표정을 떠올렸다. 리온은 평소에도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나는 편이었기에 리온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었지만, 조금 전 본 얼굴은 진하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기에 슬쩍 찔러 보자 누가 봐도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펄쩍 뛰며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것이, 조금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닌 척하긴. 너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러고 다니면 센터에 금방 소문 다 날걸.”

“……그 정도라고……?”

리온이 조금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애초에 표정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리온이었기에 제 표정 같은 것을 의식해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질투라도 하는 거야?”

직설적인 말에 리온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번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둘러댈 말이 없을 만큼 확실한 반응을 보여 버린 탓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잠시 얼굴에다 손부채를 부치던 리온이 겨우 진정하고 말했다.

“질투 좀 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잖아. 걔는 내 매칭 가이드인데 나하고 친하게 지낼 것이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질투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아직 완전히 인정하지 못한 감정을 남에게 먼저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동료 사이의 서운한 감정일 뿐이라며 자신의 감정을 절반만 인정한 리온이 겨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동료 사이에서도 질투나 서운한 감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냥 친하다는 게 신기해서…… 물어본 것뿐이라고.”

하지만 역시 리온은 거짓말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끝으로 갈수록 흐릿해지는 목소리에는 조금의 자신감도 실려 있질 않았다.

“그래서 정현 씨가 싫어?”

“아니거든.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정현 씨는 열심히 하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힘들 만한 상황인데 티도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평소 같았으면 ‘이런 신입을 본받아야지!’ 하고 옆에 끼고 다니면서 예뻐했을 텐데. 왜 지금은 영 탐탁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내가 이렇게 쪼잔한 사람이었나? 겨우 그런 이유로……. 아, 정현 씨 앞에서까지 티 내면 어떻게 하지.’

바보 같은 마음이라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알아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둘이 닮아 가고 있네.”

그런 리온을 보던 진하가 넌지시 말했다. 닮아 가고 있다니. 그 뚱딴지같은 말에 리온이 진하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둘이 점점 닮아 가는 것 같아.”

어떤 면이 닮아 가고 있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 혹시…….

“……성격이 나빠져 가고 있다고?”

“푸핫.”

여과 없는 말에 진하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리온은 이래서 재미있는 친구였다.

‘이걸 알려 줄까, 말까. 바보짓 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알려 주지 않으면 영원히 엇돌 것 같단 말이지.’

진하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 일밖에 모르는 친구에게 조언을 해 줘야 할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까. 초조한 얼굴의 리온을 바라보던 진하가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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