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낯선 조합이네요.”
“그러게, 너랑 같이 게이트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올해의 두 번째 S급 게이트가 생성될 예정이라는 것이 정식으로 공지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게이트가 생성됐다.
지난번에는 게이트가 발생할 징조를 그나마 빨리 알아챈 덕에 대비할 시간이 조금 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쉬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미리 알았어도 다른 게이트가 줄줄이 생겼었으니 이것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진 못했을 거야.”
센터장까지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센터는 어수선한 분위기로 술렁이고 있었다. 올해 마가 껴도 단단히 꼈다면서 굿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당장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소리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센터로 달려온 효빈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나도 현역 생활하다 보면 언젠가 S급 게이트 한 번쯤은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네.”
“은퇴했는데도 들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네요. 생색내면 안 되겠다.”
효빈은 센터장의 말에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소소한 장난도 잠시, 금세 게이트 공략을 위한 회의가 시작됐다.
“게이트 수치는 지난번 S급 게이트와 비교했을 때 조금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어. S급 게이트 중에서는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야.”
센터장이 게이트에 대해 조사한 것들을 브리핑했다. 다행히 S급 게이트치고는 수치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수치보다 중요한 상성은 직접 들어가 봐야 아는 것이었지만, 곤란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양한 특성의 에스퍼들을 배치했으니 어떤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S급 에스퍼 2명, A급 에스퍼 4명으로 이루어진 공략 팀은 굉장히 낯선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선 S급 에스퍼가 두 명이 배치되었다는 점도 그랬지만, 센터장에다가 이제 막 교육을 마친 신입이란, 정말 억지로 떠올리려 해 봐도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조합이었다.
“저, 저, 저는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치유계 A급 에스퍼. 이제 막 중앙 센터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정현이 선배들 사이에 끼인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를 살폈다.
‘민현이랑 동갑이라고 했던가. 걔도 센터 막 들어왔을 때 딱 저랬는데.’
치유계 에스퍼라는 능력 특성상 다른 에스퍼들보다 일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긴 했지만 이제 막 센터에 들어온 신입이 들어가게 될 첫 번째 게이트가 S급 게이트라는 것은 꽤 가혹한 일이었다.
손까지 떨면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이미 게이트가 생겨 버렸으니까 대비 훈련을 길게 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도 들어가서 멍청하게 우왕좌왕하는 건 절대 용납 못 한다.”
“그럼…….”
“내가 직접 훈련 지휘할 테니까 쉽게 갈 생각은 하지 마라.”
“하아, 저 게이트에서 나온 지 세 시간도 안 지났는데…….”
“나도 이제 겨우 하루 지났어.”
게이트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에스퍼들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하지만 투정이나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에스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센터장의 말에 집중했다.
“화요일에 부산으로 내려갈 거고 월요일에는 마지막으로 쉬어 둬야 할 테니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오늘 포함해서 4일이다. 딱 4일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훈련해.”
센터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에스퍼들에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자주 말을 걸곤 하던 센터장이기에 에스퍼들은 훈련이 시작되어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겠거니 생각하고 대답했다.
“네.”
“넵.”
어느 정도 상태 봐주면서 시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에스퍼들이 잠시 후 훈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훈련실에 갇힌 에스퍼들은 조금 전 자신들이 했던 태평한 생각을 후회하며 차라리 기절해 버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 * *
“그렇게 힘들었어요?”
“어. 나는 그래도 좀 버틸 만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난리였지. 새로 들어온 치유계 에스퍼 만나 본 적 있어?”
“정현 씨 몇 번 만났죠.”
“걔는 거의 울 것 같던데. 센터 들어오자마자 고생이야.”
지옥 같았던 훈련이 끝나고 가이딩을 받기 위해 유원의 가이딩실을 찾은 리온이 유원과 손을 잡은 채 재잘거렸다. 여태 유원에게 가이딩을 받으면서 이렇게 수다를 떤 적이 없었는데, 낯설면서도 꽤 편안한 마음이었다.
복잡한 생각은 우선 이번 게이트를 처리하고 나서 생각하자고 머릿속 한구석으로 밀어내 버린 리온이었지만, 쉽게 떠오르는 웃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극한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가이드들까지 다 내보내고 훈련을 시키시는데, 이제 막 들어온 애가 어떻게 버티겠어.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는 게 대단하더라.”
“꽤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열심히 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신입이잖아. 잘 챙겨 줘야지.”
밀려오는 가이딩에 기분이 좋아진 리온이 노곤한 말투로 말했다. 가이딩도, 유원과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평화로운 일상도 모두 리온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죠, 정현 씨.”
“민현이는 아주 신났더라. 비전투 에스퍼가 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진짜 그렇게 좋아하는 건 또 처음 봤다.”
“저번에도 많이 힘들어했으니까, 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겠죠.”
묘하게 이야기를 재미없어하는 것 같은 말투였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한 리온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번엔 S급 가이드가 너밖에 없네.”
“그러게요. 효빈 선배 매칭 가이드가 A급이라.”
S급 가이드 두 명이 들어갔던 저번 게이트와 달리 이번엔 S급 가이드가 유원 한 사람밖에 없었다. S급 에스퍼인 효빈의 매칭 가이드가 A급이었기 때문이었다.
“페어 신청할 만큼 매칭률이 높은 건 아니라 그냥 매칭 가이드라고 하긴 하는데, 항상 같은 게이트 들어가니까 사실상 페어나 마찬가지지. 우리랑…….”
우리랑 비슷하지 않냐고 말하려던 리온이 말을 멈추었다. 저와 유원은 매칭률이 낮아 페어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아닌데 비슷하다고 하면 약 올리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다.
‘이번 게이트에서 나오면…… 그땐 다시 페어 신청서를 넣어 볼까.’
그럼 이번처럼 유원을 게이트에 보내 놓고 혼자 불안해할 일도 없을 텐데. 리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페어 문제에 있어서는 내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다시 신청하자고 하면 좋다고 하지 않으려나.’
“가이딩 아직 더 필요해요?”
“어, 어?”
나름대로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해 보고 있는데 유원이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물었다. 가이딩은 조금 전부터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그냥 이 순간을 조금 더 느긋하게 보내고 싶어서 말하지 않고 있던 리온이었다.
“센터장님한테서 알림 왔어요. 10분 후에 다시 훈련 시작이라고.”
유원의 말을 듣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정말 단체 알림이 떠 있었다. 소리도 못 듣고 있었다니 어지간히도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정 한번 빡세네. 가이딩 이 정도면 충분해. 가이드들은 따로 훈련 일정 없어?”
“있긴 한데 정규 가이딩 시간 끝나고부터예요.”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시는구먼.”
리온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타이트한 일정을 선호하는 자신마저 빡빡하다고 느낄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일 것이었다.
“가이드들이라고 봐주진 않을 것 같던데. 센터장님 훈련 방식 완전 옛날 방식이야. 아마 가면 ‘옛날에는 가이드들도 잡몬스터 몇 마리 정도는 잡아 와서 식량 자급자족했다.’ 하면서 무기 잡는 법부터 가르쳐 주실걸.”
“그거 괜찮네요.”
“너도 참 특이하네. 다른 가이드들이었으면 벌써 싫다고 소리 질렀을걸.”
리온의 말을 증명하듯 어디선가 ‘싫어!’ 하는 고함이 들려왔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꼭 이번 S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가이드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자기 몸 정도는 스스로 지킬 수 있으면 좋죠. 에스퍼분들처럼 대단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짐은 되기 싫으니까요.”
“에이, 뭐 짐까지야. 게이트 안에서는 가이드 보호하는 것도 에스퍼 의무 중 하나인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적당히만 훈련받아.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리온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나 지켜 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이드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었다.
“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가 봐야겠다. 너 정규 가이딩 시간 끝날 때쯤이면 에스퍼들 훈련 끝날 테니까 엇갈리겠네.”
“먼저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그래, 고생해. 이따 집에서 봐.”
리온이 그렇게 말하고 가이딩실을 나왔다. 집에서 보자는 별거 아닌 말이 낯간지럽게 느껴져 괜히 뻘쭘해진 그가 조금 급하게 가이딩실의 문을 닫았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이번 게이트에서 나오고 나면…… 그때 제대로 생각해. 일부터 해야지, 강리온.”
센터에 들어온 이후로 일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종일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하지만 그 감각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이딩 덕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훈련실로 향하는 리온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