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는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직 공지도 안 나갔는데.”
“그냥…… 들었어요. 그래서, 누가 다친 거예요?”
리온이 향한 곳은 일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이었다. 일괄 알림을 보내 주는 곳이기도 하니 정보가 가장 빠르게 도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센터장실로 가려다 사고가 난 상황이라면 가장 바쁜 사람이 센터장일 거라는 것을 용케 생각해 내고 발걸음을 돌린 것이었다.
“센터장님한테 이야기는…… 들으셨어요?”
“새로 생길 게이트에 관한 거라면 들었어요.”
“리온 씨는 이미 알고 계시니까 말해도 괜찮겠죠. 지금 그것 때문에 비상이에요. 명단 완전히 새로 짜야 할 것 같다고…… 센터장님께서 엄청 곤란해하시고 있거든요.”
쿵,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명단을 새로 짜야 할 일이 생겼다는 건 명단에 있는 사람이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할 만한 일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큰일이죠. 누구라도 다치면 안 되지만 S급이신 데다가 지금 게이트도 계속 생기고 있는데……. 아무리 빨리 회복하신다고 해도 수술 들어가셨으니까 당분간은 복귀 어려우실 것 같아요.”
중간부터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져서 직원이 무어라 말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S급, 명단, 수술.
몇 가지 단어만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리온 씨?”
“네?”
직원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리온이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리온의 얼굴을 본 직원이 조금 놀란 듯 말했다.
“괜찮아요? 많이 놀라셨나 봐요. 하긴 리온 씨도 얼마 전에 크게 부상입으셨었고…… 같이 게이트에 들어갔던 분이니까 더 그러시겠죠.”
“…….”
“이렇게 되면 지금 당장 배치 가능한 센터 소속 S급 에스퍼가 리온 씨랑 효빈 씨, 두 분뿐인 게 되니까, 명단이 어떻게 재조정될지…….”
“……네? 에스퍼요?”
멍하니 굳어 있던 리온이 한 단어를 듣고 당황해서 되물었다. 에스퍼라니, 그럼 유원이 다친 게 아니라는 건가?
“네?”
“그…… 잠시만요. 제가 다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와서요.”
“아, 맞다. 그랬었죠.”
순간 리온이 부산 게이트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직원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허둥댔다.
“센터장님한테 아직 새 게이트 얘기만 들으셨던 거였구나. 저는 부산 게이트 얘기까지 다 듣고 오신 줄 알았어요.”
들어오자마자 누가 다친 건지부터 물어봤는데. 조금 답답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친 사람이 정확히 누구고, 얼마나 다쳤는지를 빨리 알고 싶었다.
“현서 씨가 크게 다쳤어요. 하필 오늘 민현 씨가 다른 데 나가 있어서 나오자마자 치료하지도 못했고…… 바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아직 수술 끝났다는 소식도 안 왔어요.”
“현서…… 선배가요.”
사람이 다친 일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현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따지자면 오히려 존경하는 선배인데도 속으로 안심하게 된 리온이었다.
이런 걸로 안심해도 되나 하는 자괴감보다 다친 사람이 유원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커, 순간 입꼬리가 치켜 올라갈 뻔한 리온이었다.
“얼마나 다치셨는데요?”
“옆구리 쪽 관통상이라는 것 같던데…… 부위도 부위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민현 씨나 새로운 신입분이 당장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일 거예요.”
직원이 부산 게이트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보스를 잡다가 현서가 크게 다쳤고, 다행히 다른 인력들로 보스를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밖으로 나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려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했다.
급하게 현서를 내보내느라 다른 팀원들도 나오는 것이 늦어져 상황이 꽤 혼잡해졌다고 한다.
“다들 자잘하게 다쳤다는데, 크게 다친 사람은 현서 씨뿐일 거예요.”
“하아…….”
다리에 힘이 풀린 리온이 벽을 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유원에게는 확실히 큰 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심장이 평소의 속도로 뛰는 것 같았다.
“연락이 안 돼서 답답했거든요.”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 조금 머쓱해진 리온이 소심한 핑계를 댔다. 다행히 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 아마 좀 전까지는 그쪽도 핸드폰 못 받았을 거예요. 크게 다친 사람도 있고 자잘하게 다친 사람들도 있다 보니 핸드폰 받기도 전에 병원부터 간 모양이더라고요.”
“게이트 종료된 게 언제인데요?”
“음…… 한 시간 정도 지났네요. 검진 시간이랑 이것저것 생각하면 한 시간 내로 돌려받지 않으실까요?”
비틀거리며 일어난 리온이 직원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을 나왔다. 우선 괜찮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음은 얌전히 연락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현서 선배. 괜찮겠지…….”
안도감이 가시고 나서야 현서를 걱정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리온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둘 중 누구였든지 똑같이 착잡했을 거야. 다 같은 게이트에 들어갔던 동료고, 또 당장 다음 주에 다른 S급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잖아. 물론 유원이는 내 매칭 가이드니까 조금 더 신경 쓰이긴 했지. 하지만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친 사람이 누구였든지 똑같은 마음으로 걱정했을 거야.’
리온이 머릿속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리해 보며 상황을 정리했다. 안심이 되고 나니 그제야 제 행동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게 되어서였다.
‘절대 다친 사람이 현서 선배라서 안심한 게 아니야. 현서 선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어. 그냥…… 매칭 가이드니까, 가이딩 걱정에 막막해서 그런 거겠지.’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럽던 마음이 제멋대로 날뛰고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들어 유원과 관련된 일이라고는 하나같이 혼란스러운 일밖에 일어나질 않았지만, 오늘만큼 이상한 날도 없었다.
더 어이없는 건 머리가 터질 것처럼 답답한 이 마음이 유원을 만나기만 하면 그 순간만큼은 진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는 거였다.
‘웃기네. 걔 때문에 이렇게 머리 싸매고 있는 건데, 정작 정신 차리려면 걔가 있어야 한다는 게.’
리온이 자조적으로 웃고는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일단은 연락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리온이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다 웅 하고 울리는 진동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싸가지 : 게이트 나왔어요. 바로 올라갈게요.] 오후 6 : 37
공략 팀이 한바탕 뒤집어졌다는데 당사자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담담한 말투로 문자를 보내왔다.
잠시 심호흡을 한 리온이 떨리는 손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나왔냐? 다친 데는 없고?] 오후 6 : 39
자잘하게들 다쳤다니까 얘도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겠지. 리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싸가지 : 저는 괜찮아요. 현서 선배가 크게 다치셔서 다른 팀원들은 내일이나 되어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후 6 : 40
[너는 왜 바로 오는데?] 오후 6 : 41
[싸가지 : 가이딩 며칠 못 했잖아요. 형은 다른 가이드한테서 제대로 가이딩받기 힘드니까 제가 바로 가야죠.] 오후 6 : 41
[싸가지 : 진하 씨도 게이트 들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오후 6 : 41
맞는 말이었다. 유원도 진하도 없이 시간을 보낸 것이 벌써 며칠째였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가이딩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보니 가이딩을 받아도 유원이 있을 때와 상태가 달랐다.
하지만 게이트에 있을 때만큼 힘을 쓰는 것도 아니고, 협조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은 내내 느긋하게 몇 방울짜리 가이딩을 받고 있었더니 힘들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과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때와 비교하자면 비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쌩쌩한 상태였다.
하지만 리온은 지금 너무 힘들었다. 가이딩이 부족한 것과 몸이 아픈 것과는 달랐다. 무엇이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리온 자신에게 무언가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선 유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몇 시에 출발하는데?] 오후 6 : 43
[싸가지 : 7시 20분 기차 탈 것 같아요. 택시 타고 집에 도착하면 10시 반쯤 될 것 같네요.] 오후 6 : 45
3시간 정도 남았나. 우선 유원이 돌아오면 S급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이제 와서 내가 페어 얘기를 꺼내는 것도 웃긴 거겠지.”
잠시 고민하던 리온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싫다고 싫다고 난리를 치면서 취소한 신청이었는데 이제 와서 제 쪽에서 다시 신청서를 내미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었다.
“차근차근하자. 차근차근.”
이 혼란스러움의 원인이 뭔지 아는 것부터가 우선이었다. 그리고 저 없이 들어간 첫 게이트가 어땠는지도 물어볼 것이다. 페어 이야기는 그다음에 꺼내도 늦지 않았다.
[센터장님 : 하는 거 없는 거 다 아니까 센터장실로 올라와.] 오후 7 : 00
상념에 빠져 있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리온이 핸드폰 화면을 끄고 센터장실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