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최고의 가이드죠.”
정말 최고의 가이드라니. 리온 스스로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억지웃음을 유지하는 리온이었다.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게이트 앞을 가득 채웠다.
“매칭률이 좋다 보니 가이딩 속도도 빠르고, 워낙 어른스러운 친구라 많은 것을 배우면서 훈련했습니다.”
‘인내심이나 짜증을 삭히는 게 늘긴 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
“이번 게이트에서도 좋은 호흡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온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말했다.
“그럼 이만…….”
“아, 잠시만요. 마지막으로 이유원 가이드께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려는데 그때 기자 하나가 인파를 뚫고 나와 유원에게로 마이크를 내밀었다. 당황할 법도 한데, 유원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마이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강리온 에스퍼께서 호흡이 잘 맞는다, 많이 배웠다고 해 주셨는데 이유원 가이드께서는 함께 지내면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역대 최강의 능력을 가진 에스퍼라고 평가받는 분이신데,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나요?”
리온이 당황한 얼굴을 하고 유원을 돌아보았다. 자신이야 인터뷰에 익숙해진 사람이니 질문에 무난한 대답을 할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아직 낯선 유원이라면…….
‘매번 사고나 치고 다니시는 분이 최강의 에스퍼라니 최강도 참 별거 없다고 느끼긴 했습니다.’
제게만 싸가지 없을 뿐, 타인에게는 예의 바르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 최상의 상황이 떠올라 몸이 파르르 떨렸다.
다른 사람 얘기도 아니고, 그렇게 치고받는 내 얘긴데 긴장한 나머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알아. 안 돼, 말려야 해.
그렇게 마이크를 제 쪽으로 가져오려는 순간, 유원이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분이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시니까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리온이 당황한 채 눈을 깜빡거렸다. 멍청한 얼굴을 하고 굳어 버린 리온을 사이에 두고 기자가 다시 물었다.
“가이드가 되신 지 반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S급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각오 한마디만 들을 수 있을까요?”
“책임감 있는 노련한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팀이라 제가 뒤처지지만 않는다면 게이트를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 않게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상한 것과 달리 무난하다 못해 자신을 치켜세워 주기까지 하는 대답에 리온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유원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센터장이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상황을 정리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 팀원들이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대열을 정리할 수 있도록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자들 역시 필요한 장면을 웬만큼 확보한 것인지 무서울 정도로 몰려들 때와 다르게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몇몇 기자들은 에스퍼와 가이드들에게 인사를 해 주는 여유를 보여 주기도 했다.
‘하여튼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니까. 언론의 자유니, 권리니 다 좋다고 쳐도 그런 게 안전보다 중요한가.’
기자들을 보내고 임시 숙소 안으로 들어온 센터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리온에게 잔소리를 했다.
“야, 너는 기자들 앞에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잖아.”
“아니, 그게…… 신기하니까…….”
리온이 반박하지 못한 채, 그러나 얼굴 가득 억울함을 띤 채 말했다.
‘물론 카메라 앞에서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더 이상한 거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고.’
리온이 유원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연기를 잘하는 건지, 기자들 앞에서 평소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면서도 사실을 말한다는 듯 올곧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리온이 유원을 빤히 쳐다보며 걱정에 빠졌다. 무시할 수 없는 시선에 유원이 결국 돌아보며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냥.”
저것 봐. 평소랑 다를 것 없는 이유원이잖아. 퉁명스러운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된 리온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고, 기자도 진짜 극한 직업이네요. 게이트 코앞에 죽치고 앉아서 기사를 써야 한다니. 설마 일주일 뒤에도 저러고 있을까요?.”
“아마 그럴걸.”
“그건 진짜 목숨 걸고 쓰는 거 아니에요? 게이트가 잘 닫히면 다행이지만, 우리가 늦기라도 했다가는…….”
서하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눈에 띄게 걱정하는 서하를 본 현서가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만약 시간이 모자라서 게이트를 못 닫기라도 하면, 일단 강리온이 눈 뒤집혀서 날아갈걸? 저 사람들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죽치고 있는 거니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단정 짓는 건 나쁜 습관이에요.”
“그래서, 안 그럴 거야?”
현서가 묻자 리온이 고민에 잠겼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온다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갈 것 같기는 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우선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내가 인명 구조에 나서는 게 제일 효과적이지만…….”
“거봐. 섣불리 단정 짓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현서가 그것 보라며 리온의 이마를 가볍게 밀며 말했다. 리온이 툴툴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그게 맞는 일이잖아요.”
“그래, 그래.”
현서가 리온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곤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일 없도록 열심히 해야지. 나도 짐 덩어리는 안 되게 노력할게.”
“짐 덩어리라니. 소중한 가이드님이신데.”
조금 긴장한 것 같은 진하가 리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S급 게이트라니, 긴장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신참은 선배들이 도와주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제일…… 막내일 수밖에 없겠네. 그래도 나이로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꽤 있는데 경험은 내가 꼴찌잖아.”
나이로 따지면 가장 어린 것은 유원이었다. 지난번, 게이트 안에서 크게 다칠 뻔한 일도 있었으니 더 신경을 써 줘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유원 씨는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더라고.”
“응?”
“훈련할 때 보니까 움직이는 것도 빠르고, 잘하던걸?”
에스퍼가 게이트 안에서 가이드를 지키는 것은 의무였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에스퍼가 가이드를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가이드들도 꾸준히 훈련을 받아야 했다. 적어도 잡몹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갖추어야 한다는 센터장의 지론 때문이었다.
“내 보기엔 너도 잘해. 고작 두 달도 안 됐는데 그 정도면 말이야.”
진하는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움이 빨랐다. 쉬는 시간, 가이드들의 훈련 장면을 구경하던 리온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할 정도였다.
“에이, 뭘. 그래도 유원 씨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지.”
“걔는…… 원래 운동 좋아한대.”
리온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들었던 말이나, 옷 아래 감춰진 탄탄한 근육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훈련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것이란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 것도 알아? 오, 철천지원수처럼 굴 땐 언제고 관심이 많은가 봐?”
“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럴 시간 있으면 게이트 안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 매뉴얼이나 읽어.”
놀리는 듯한 말투에 리온이 가방에서 두꺼운 매뉴얼 책 하나를 꺼내 집어던졌다.
큭큭대며 책을 받아 든 진하가 매뉴얼을 읽기 시작했다.
“리온아. 너도 이미 각오하고 있겠지만 이번엔…… 진짜 싸우지 마라. 저번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가는 이번엔 해프닝 정도로 끝나지 않아. 알지?”
“알아요. 그 말만 대체 몇 번을……. 정말 그런 일 없을 거예요.”
그렇게 진하를 떨쳐 냈는데, 이번에는 센터장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다가와 잔소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번에 있었던 사건이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 당부해야 묵묵히 듣는 시늉이라도 하지.
“벌써 다섯 번째라고요.”
“항상 불붙는 건 네 쪽이잖아.”
“……시비는 항상 이유원이 먼저…… 아니에요. 절대 안 그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긴장되는데 센터장까지 자신을 붙잡고 이러니 마음이 두 배로 불편했다.
리온이라고 S급 게이트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이 팀의 주축이 자신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팀 전체에게 영향이 갈 것이다.
리온은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너스레를 떨었다.
“잘 끝내고 돌아올게요. 저 아시잖아요. 사고는 간간이 쳐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사람이라고요.”
“그래. 매번 다쳐서 돌아오긴 했지만 치명상은 늘 피해 갔었지.”
“살아야 다음 일도 하죠. 그러니까 웬만하면 몸조심할게요.”
“……웬만하면?”
“아, 피곤하다. 게이트 예상 오픈 시각까지 아직 좀 남았죠? 잠깐 낮잠이라도 자놔야겠다.”
리온이 불신의 눈초리를 애써 못 본 체하고 자리를 피했다.
센터장이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쉬며 리온의 등에 대고 말했다.
“몸조심해라. 난 센터 일 때문에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일주일 뒤에 봬요. 더 일찍 보면 좋고요.”
리온이 발걸음을 돌려 센터장을 배웅했다.
그에게 한 말대로, 다음 일을 위해서라도 몸을 함부로 내던질 생각은 없었다.
몸이 언제나 생각을 따라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몇 시간 정도만 자자. 일어나면 쉴 시간도 없을 테니까.”
리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간이침대 위에 누웠다.
예상 게이트 오픈 시각까지는 이제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