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입이 그랬으면 말이라도 안 하지.”
“…….”
“알 만큼 아는 놈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몇 시간 뒤, 리온은 게이트를 다 정리하고 나온 센터장 앞에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었다. 나오자마자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이 리온이라고 좋지는 않았지만, 할 말이 없었기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뜸 통보하고 혼자 튀어 나가는 바람에 긴급 상황이니 뭐니 기사 뜨고 난리 난 거야 뭐, 수혈이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미리 연락해 둔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네 마음대로 아무 병원이나 가 버려서 언론 팀에서 대처하기도 전에 정보 줄줄 새고.”
“…….”
“나오자마자 이유원 가이드 어떻게 된 거냐고, 강리온 에스퍼가 이렇게 행동하는 거 이례적인 일인데 혹시 순직이라도 한 거 아니냔 질문 받고 그대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번 게이트는 S급 게이트이니만큼 당연히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게이트였다. 평소였다면 리온이 자체적으로 다친 유원을 병원에 데려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게이트 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자와 응급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 둔 구급차를 모조리 무시하고 혼자 날아가 버린 리온 때문에 온갖 루머가 돌아다니게 되었다.
게다가 응급실과 병원 복도에서 사색이 된 리온을 본 사람들이 ‘이유원 가이드가 많이 다친 것 같다, 표정이 장난이 아니더라.’라고 글을 올린 것이 중간에 와전되어 유원이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까지 돌아다니게 되었다.
리온이 게이트에서 나간 뒤, 남은 팀원들이 게이트를 정리하고 나갈 때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한 시간 사이에 잘못된 정보가 얼마나 많이 퍼진 건지, 나가자마자 쏟아지는 질문에 유원의 상태를 직접 살핀 센터장마저도 순간 ‘진짜 상처가 크게 덧나기라도 한 건가?’ 하고 주춤거렸을 정도였다.
“그리고 수혈이 급한 상황이라 놀랐을 건 이해하지만, 상처 치료 정도는 정현이한테 받고 가야지. 아무리 깊은 상처가 아니라지만 상처가 벌어져 있는 상태로는 오히려 출혈이 계속될 텐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마음이 급해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러니까 사람들까지 단체로 패닉이 와서, 하아……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리온이 입을 꾹 다물고 바닥 격자의 개수를 세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스스로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아……. 됐다, 됐어. 일단은 여기까지 할 테니까 이제라도 머리 좀 식혀.”
나오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유원의 상태에 대한 해명을 하고, 유원을 원래 있어야 할 병원으로 이송시킨 뒤 급하게 들어온 보고까지 전부 처리하느라 진이 다 빠진 센터장이 더 혼낼 힘도 없다는 듯 저리 가 버리라고 손짓했다.
유원의 가이딩으로 상태가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리온 역시 반작용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터라 치료와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여튼 둘이 똑같아졌어. 제일 닮으면 안 될 부분을 닮아 버렸다고.”
리온이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센터장을 뒤로하고 그의 병실을 나왔다. 말이 입원이지, 노트북과 태블릿 등을 잔뜩 쌓아 두고 있는 것을 보니 사실상 병원에서 근무를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저 쌓인 일 중 일부는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 리온이었다.
“괜찮으세요? 그……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가…….”
“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리온이 자신을 걱정하는 유원의 어머니에게 손사래를 쳤다. 학회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왔다가 유원의 얼굴을 아는 동료 의사에게 연락을 받고 곧바로 그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그녀는 일정을 다 취소하고 유원이 퇴원할 때까지 아들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이것도 리온이 유원을 데리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날아온 것에 대한 나비 효과였다. 원래 입원이 예정되어 있었던 병원으로 갔다면 곧바로 응급실이 아닌 VIP 병동으로 이동했을 거고, 그랬다면 그녀가 소식을 듣고 바로 이리로 달려올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 애가 도움을 받은 이후로 강리온 에스퍼님을 정말 존경했어요.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던 애였는데 말이에요.”
어머니의 입으로 듣는 유원은 리온이 모르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이후로 내내 자신을 존경해 왔다는 유원.
리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합격한 대학도 포기하고 곧바로 센터에 입소했다는 유원.
“저번에 다치셨을 때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정말…… 저희도 걱정했지만,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힘들어하더라고요.”
몰랐던 이야기,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
리온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하나같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실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다 보니 그때 그 학생의 부모님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생김새가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분명 이분이 맞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리온 에스퍼는 저희 가족한테, 특히 우리 유원이한테 너무 감사한 분이세요. 예전에도 꼭 사례를 드리고 싶었는데 거절하셔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고요.”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유원이도, 저희 가족도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원의 어머니가 리온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애가 영 부끄러움이 많아서 표현을 못 하는 거지, 강리온 에스퍼님 정말 좋아하고 존경해요. 엄마로서 장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에스퍼님이 괜한 자책하지 않으시길 바라고 있을 거예요.”
“…….”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푹 쉬세요. 유원이는 늦어도 내일 정도면 일어날 거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엄마이기 이전에 저도 의사니까 어떤 상태인지는 저도 잘 알아요.”
유원의 어머니가 리온을 다독여 주었다. 그 따듯한 온기에 안심이 된 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한 거 없으니까 고개 숙이지 말고, 에스퍼님도 몸이 많이 상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만 들어가서 푹 쉬셔요. 일어나면 제가 먼저 알려 드릴게요.”
유원의 어머니가 리온을 그의 병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아들을 대하듯 리온을 토닥여 준 그녀가 힘들었을 텐데 편히 쉬라고 다시 한번 말하곤 아들의 병실로 돌아갔다.
* * *
유원이 깨어난 것은 처음 그를 진단했던 의사가 말했던 대로, 다음 날 새벽이었다고 한다.
정작 리온은 침대에 몸이 닿자마자 잠들어 버린 탓에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일어나 버렸기에 이미 웬만한 사람들이 유원을 다 만나고 난 다음에야 유원을 만날 수 있었다.
“모…… 몸은 괜찮냐?”
리온이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는 당황스러워서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자신은 유원에게 고백 비슷한 말을 들은 것이었다.
게다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까지 잔뜩 들어 버렸으니, 평소대로 유원을 대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리온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말을 한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 다른 사람들 많이 왔다 갔다며.”
“센터장님이 제일 먼저 오셔서 혼내고 가셨죠.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어서 덜 혼난 것 같기도 하고요.”
리온이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다가 피식 웃었다. 돌발 행동을 한 유원에게 한 소리 해야 하긴 하는데, 어머니가 바로 옆에 계시니 크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을 거고. 어색하게 쩔쩔매다가 도망치듯 말을 끝내 버렸을 것이 뻔했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하냐. 위험했잖아. 운이 좋아서 그 정도로 끝난 거지, 자칫하면…….”
자칫하면 리온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게이트 안에 남은 몬스터가 얼마 되지 않았고, 대부분 큰 위협이 되지 않을 만한 것들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별거 아닌 몬스터라고 해 봤자 에스퍼의 기준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유원이 피지컬이 좋고, 힘이 좋다지만, 그만한 상처로 끝난 것은 운이 상당히 따른 일이었다.
“형이 제멋대로 해도 된다면서요.”
“그게 그런 뜻이 아니잖아. 누가 너보고 목숨까지 걸고 일하래? 너 없어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긴 했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너보고 효율적으로 일 안 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기라도 했냐고.”
“어째 우리 역할이 바뀐 것 같네요.”
유원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래서 역지사지가 중요한 건가 봐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저한텐 중요해요. 이제 형도 비슷한 상황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줄 거 아니에요.”
여전히 비꼬는 것 같지만, 어딘가 개운해 보이는 말투였다. 그와 반대로 리온은 상당히 초조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데, 얘기해 보고 싶은데…… 정작 말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져.’
분명 게이트에서 나가면, 유원이 일어나고 나면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정작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리온이 괜히 헛기침만 하며 분위기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