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검사받아 보게? 야, 잘 생각해 봐. 괜히 수치 잘 나오기라도 했다가는 너 발목 잡히는 거다?”
“너도 지금 받잖아.”
“나야 뭐…… 수능도 망했고. 근데 넌 이미 합격장 받았잖아.”
수치 테스트를 받으러 가던 날,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유원을 말렸었다. 강제는 아니라지만 괜히 수치가 높게 나오기라도 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특별한 목표 없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법학과 진학을 목표로 3년 내내 전교 1등을 유지하며 기어코 국내 최고의 대학교에 합격한 유원이라면, 에스퍼나 가이드가 되기에 아까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난 수치 잘 나왔으면 좋겠어. 에스퍼든 가이드든, 나름 공무원 아니냐? 등급 높으면 돈도 더 많이 받고…… 바로 취직하는 거지 뭐.”
“어차피 받아야 할 검사, 미리 받아 두는 게 좋지.”
“그렇긴 한데…… 하여간 괴짜라니까.”
스무 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큰 기대를 하고 간 곳은 아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에스퍼나 가이드가 된다면…… 한 번쯤은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딱 그 정도의 기대로 갔던 센터. 그러나 그곳에서 유원의 인생이 바뀌었다.
“유철현 님…… 에스퍼 수치 D급, 가이드 수치 F급입니다.”
“D급이면…….”
“으음,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미약한 능력이 발현할 수도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센터 입소는 C급부터 가능해서, 이대로 귀가하시면 됩니다.”
센터에서는 에스퍼 수치와 가이드 수치를 동시에 측정한 후 곧바로 결과를 알려 주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끝나 버린 검사에 유원의 친구 철현이 아쉬운 얼굴을 했다.
“에이, 좀 기대했는데.”
“먼저 갈 거야?”
“아니, 같이 왔는데 뭘 먼저 가. 어차피 금방 끝나니까 끝나고 밥이나 먹자.”
“이유원 님.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갔다 와라.”
철현이 유원의 어깨를 툭 친 뒤 자리에 앉았다. 그와 바통 터치를 하듯 자리에서 일어난 유원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위에 손을 올리시고, 20초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검사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짧았다. 유원이 손을 올린 구체 위로 빛이 두 번 들어왔다.
“……?”
분명 측정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측정 결과를 금방 알려 준 철원과 달리 유원을 안내해 준 직원이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초조해할 때쯤,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측정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실장님.”
‘실장님?’
“안녕하세요, 이유원 씨. 중앙 센터 측정 실장 강태수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조금 더 자세한 수치 측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때부터 일이 무언가 평범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측정이 끝난 후, 철현과 함께 장소를 옮긴 유원은 실장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유원 씨는 S급 가이드입니다.”
“네?”
대답은 유원이 아닌, 유원을 따라 올라온 철현에게서 튀어나왔다. 유원은 놀란 얼굴을 하고 실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무 살이라고 하셨죠. 혹시 대학 진학은…….”
“얘 H대 법학과 수석 입학이에요.”
“아…… 그럼 바로 센터 들어오시는 건 좀 곤란하시겠네요.”
실장이 아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유원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입소 날짜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였죠. 원하면 거부할 수도 있고요.”
“네, 거절도 가능하고 학업 사유면 미룰 수도 있긴 한데…….”
실장이 간절한 표정으로 유원을 보며 무어라 말하려다 멈칫하고서 철현을 흘겨보았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철현이 듣는 곳에서 하기는 곤란한 것처럼.
철현은 그것도 모르고 유원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저런 말에 휘둘리지 말라는 듯 제 친구를 열심히 설득하느라 바빴다.
“으음, 친구분은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나 1층에서 기다릴게.”
실장의 말에 철현이 곧바로 짐을 챙겨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조금 착잡한 얼굴을 한 실장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매칭률 때문에 몇 년째 골머리 썩히고 있는 에스퍼가 있어요. 그 에스퍼도 S급인데 선천적으로 가이드들이랑 매칭률이 잘 나오지 않는 체질이라……. 근데 매칭률이 낮아도 S급 가이드라면 가이딩에 부담이 덜하니 S급 가이드가 당장 꼭 필요한 상황이고요. 그래서 유원 씨가 입소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까지 모셨어요.”
유원은 그 말에 곧바로 리온을 떠올렸다. 그날 이후로 유원은 리온의 인터뷰나, 리온과 관련된 영상을 늘 찾아보곤 했었다. 그리고 가끔 영상 속 리온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에스퍼는 늘 인력난이라고 하고, 리온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능하고 뛰어난 에스퍼였으니 업무에 치여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센터에서 간판 에스퍼인 리온의 관리를 소홀히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자신이 가이드가 된다면, 그것도 S급 가이드가 된다면 그런 리온에게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유원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S급 가이드로 센터에 입소하게 되면 언젠가 한 번은 리온에게 가이딩을 해 줄 수도 있을 거고, 그럼 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그를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할게요.”
* * *
“그래서 센터에 들어가기로 했어. 그래도 부모님이랑 상의하고 결정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며칠 뒤에 다시 연락 달라고 하시긴 했는데…… 부모님 의견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너 미쳤냐? 너 대학은? 내일 자취방 보러 간다며!”
잠시 후, 유원의 결정을 듣게 된 철현이 절대 안 된다며 유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마치 자신이 유원의 부모님이라도 되는 양 답답한 얼굴을 한 그가 유원을 타일렀다.
“야, 너 진짜 생각 잘해. 아무리 S급 가이드여도 그건 목숨 걸고 하는 일이고, 네가 지금까지 공부한 거 다 쓸모없어지는 일인 거라고.”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 됐다. 너희 부모님이 잘 이야기해 주시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철원은 내내 다시 생각하라며 잔소리해 댔지만, 유원은 그 말을 한 귀로도 듣지 않았다. 유원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요.”
“……유원아. 네가 그분한테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거야 나도 이해한다. 나도 감사하고 있고, 정말 대단하신 분인 거 알아. 근데 그렇다고…….”
“뭐라고 하셔도 할 거예요. 허락 안 해 주셔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말은 해야 하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유원이 자신을 설득하려는 어머니의 말을 단호히 잘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원의 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여보, 그만해요. 어차피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애 아니잖아. 우리가 반대하면 알아서 대학 입학 취소하고 나갈 애야.”
“입학 취소 신청은 이미 했어요.”
“거봐, 한다면 하는 애라고.”
제 아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부모님은 유원을 설득하려 애쓰지 않았다. 에스퍼와 가이드는 한 명 한 명이 국가의 전력이니 등급이 높을수록 급여도 높아져 지원을 끊는다고 해 봤자 협박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유원은 가이드가 되었다. 한 달간의 신입 교육을 마치고 나면 정말 리온과 같은 센터를 다니고, 리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이드가 되는 것이었다.
‘팬인 걸 너무 티 내면 안 되겠지. 어차피 날 알아보지도 못할 거고.’
중학교 3학년의 유원과 20살의 유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우선 키가 20센티 가까이 자랐고, 꽤 왜소했던 체형은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운동으로 인해 탄탄해졌다.
게다가 딱 한 번 마주친 자신이 그에게 대단한 인상을 남겼을 리도 없었다.
‘아냐.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나아. 위험한 줄도 모르고 까부는 어린애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유원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표정을 굳혔다. 앞으로 한 달 뒤면 리온을 만나게 될 텐데, 아무런 준비 없이 리온을 만날 수는 없었다.
‘너는 보면 참…… 어른스러운 척하는 애 같아.’
‘가끔 골 때린다니까, 믿어도 되나 싶을 때도 있고. 공부만 하고 살아서 그래. 이론만 잘 알면 뭐 하냐, 응용력이 없는데.’
상대는 기억도 못 할 첫 만남이라지만 첫 만남도 좋지 않았는데, 동료가 되어서까지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죠.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센터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에스퍼에게, 그리고 가이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냉정? 이라고 생각해요. 게이트 안에 있으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상황들이 일어나거든요. 그런 상황에선 누구보다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사실 아직 어려운 것 같아요.]
유원이 언젠가 본 적 있는 리온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냉정하고, 공사 구분에 철저한 사람. 유원은 그런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며 리온의 인터뷰를 다시 뒤져 보기 시작했다.
‘착하지만 일 못 하는 동료랑 성격 나쁘지만 일 잘하는 동료 중에서 하나 고른다면 어떤 신입이 더 나을 것 같으세요?’
‘일 잘하는 동료요. 게이트 안에서 중요한 건 성격이 아니라 능력이니까요. 그리고 음…… 성격이 좀 안 좋아도 같이 부딪치고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친한 사이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리온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유원은 그런 리온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른스럽게, 공사를 구분하는 사람. 성격은 조금 나쁘게 보이더라도…… 그래도 어린애로 보이지 않게. 언젠가는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도록.’
지켜야 할 규칙이 굉장히 많아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리온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리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유원은 중앙 센터의 S급 가이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