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렸다. 문이 열렸어!”
“수진, 수진아! 우리 자기! 해냈구나!”
게이트의 문이 열린 걸 먼저 발견한 것은 가이드들이었다.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분다 싶더니 한참 떨어진 곳에 나갈 수 있는 게이트가 생성된 것이 보였다.
“어차피 이리로 올 텐데, 뭘 그렇게 뛰어가요.”
“네가 사랑을 아냐?”
수진의 페어 가이드인 민호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에스퍼들이 떠났던 길로 달려갔다. 그리고 진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저럴 만한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진하가 유원을 힐긋 바라보았다. 유원은 당장이라도 에스퍼들에게 달려가고 싶은 얼굴을 하고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있었다.
아마 마음은 굴뚝같지만 달려갈 용기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마음이야 애틋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럴 만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런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진하가 돌아올 에스퍼들을 기다렸다.
“헉, 허억.”
“뭘 그렇게 달려와요. 게이트 열린 거 보니까 보스도 잘 처리한 것 같은…….”
“미안한데 지금 그런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 먼저 갈게.”
“잠깐, 등에 업힌 건 누구……?”
태환이 민현과 축 늘어진 누군가를 업은 채 게이트 출구 쪽으로 달려갔다. 얼핏 본 민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리온 형……?”
뒷모습만으로 그의 등에 업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챈 유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잠시 후, 유원이 지친 얼굴을 하고 모습을 드러낸 에스퍼들을 붙잡고 물었다.
“리온이 형 왜 저래요? 무슨 일이에요?”
“나가자.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
“민현 선배도 있었잖아요. 근데 왜……!”
“나가서!”
현서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완전히 넋이 나간 듯, 평소의 어른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하나하나 이야기할 힘이 없어 유원아. 그러니까 나가서 얘기하자.”
“맞아 유원아 일단 나가자. 나가서…… 나가서 다 설명해 줄게.”
“선배도 진정해요. 괜찮을 거예요.”
뒤따라온 에스퍼들이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몇 마디 말로 진정될 리가 없었지만, 우선은 게이트에서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왜, 왜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못해 이런 상황에서 아는 것도 없다는 게…….’
유원은 그 뒤로 어떤 마음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리온이 의식 없이 태환의 등에 업힌 채 나가는 모습을 본 이후로 유원이 기억하는 다음 순간은.
“강리온 에스퍼가 조금 전 의식 불명 상태로 응급실로 이송됐는데요!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강리온 에스퍼가 부상을 입은 이유와 내부 상황을 여쭤봐도 될까요?”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라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인 질문들이었다.
* * *
“하아. 저놈의 기자들은 정말 최소한의 인간성이라는 것도 없는 건지.”
“잘못하면 휩쓸릴 수도 있는 거 뻔히 알면서도 게이트 앞에서 죽치고 있던 인간들인데, 뭘 바라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하아.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든 막아야 했는데 방법이 없었어. 그놈의 언론의 자유가 뭔지 참.”
병원 VIP 라운지에는 S급 게이트에 들어갔던 팀원들과 센터장, 그리고 중앙 센터의 몇몇 직원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에스퍼들은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가이드들 역시 일주일 동안 이어진 강행군 때문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리 한 병원의 VIP 병동을 통째로 빌려 두기는 했지만, 그 병실조차 쓰지 못할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이 있으니 게이트 공략이 마무리되었는데도 센터장의 마음은 편안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아직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이들에게 이런 것을 묻기 불편했지만, 센터장에게는 모든 걸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묻자 주찬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스 급소 공격에 성공해서 상황이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마지막 발악인지 보스가 리온이한테 다리를 휘둘렀어요.”
“그런 상황이야 흔하잖아. 리온이가 그런 것도 예상 못 할 정도로 경험이 없는 애도 아니고. 왜…….”
“그뿐이 아니라, 그전에 리온 형이 다리를 다쳤었어요. 아마 그래서 그 공격 받았을 때 착지가 힘들었을 거예요. 형이 전부 치료하면 저도 힘드니까 힘 아껴 두라고 하셔서 그대로 마무리했는데…….”
민현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리온은 자신이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로 그 다리를 땅에 디뎠고,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고통에 비틀거렸다.
이미 잔뜩 지쳐 있었던 데다가 리온이라면 당연히 그 공격을 손쉽게 쳐 내리라 생각한 팀원들의 대처가 늦었고, 리온은 그대로 보스의 다리에 맞아 날아갔다.
“뒤늦게나마 쳐 내긴 했지만…… 완전히 막아 내진 못했어.”
태환이 자책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그 상황에 처한 것이 다리 부상을 당한 리온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을 것이었다.
리온이니까 괜찮겠지.
그 생각이 결국 모두의 발목을 잡았다. 날아간 리온이 나무에 강하게 부딪혀 쓰러진 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강한 에스퍼라고 해서 절대 다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하아.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한심해.”
“다른 데도 아니고 S급 게이트에서의 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너무 자책하지 마. 그건 그냥 사고야.”
센터장이 의례적인 말을 하며 태환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에스퍼들이 태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리온도 결국 사람인데, 그의 힘에 안일하게 숨어 버린 탓에 이 상황이 만들어졌다.
“괜찮은 걸까요. 상태는…….”
“아직 수술 중이에요?”
“……그래. 끝나는 대로 연락 도착할 건데 아직 아무 소식 없는 걸 보면…….”
의식이 없는 채로 게이트에서 나온 리온은 그대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곧바로 이어진 검사에서는 다행이랄 것 없는 소식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장기 내 출혈이 보이고, 갈비뼈가 세 대 부러졌습니다. 다리에도 골절이 보이고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외상으로 인해 머리 쪽이……’
‘머리요? 그럼…… 힘든 수술이 되는 건가요? 최악의 경우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건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리온이 수술에 들어간 것이 벌써 8시간 전의 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고되게 이어진 여정이 마무리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고 한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
“괜찮을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온 선배잖아요. 이래 놓고 또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킁.”
애써 괜찮은 척하려던 주찬이 말을 시작하자마자 터져 나온 눈물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제가 능력이 더 좋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좀 나았을 텐데…….”
“네 잘못 아니야.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마. 너도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내서 치료했잖아.”
“그래. 그리고 네가 치료해서 그래도 그 정도인 거야. 아니었으면…….”
그나마 민현의 즉각적인 치료마저도 없었다면 리온이 누워 있는 곳은 수술대 위가 아닌 다른 곳이었을지도 몰랐다.
“흑, 흐윽. 어떻게 해요. 괜찮겠죠? 괜찮아야 하는데.”
“울지 마 김민현. 네가 우니까 나도 괜히, 괜히…….”
“아, 진짜 분위기 이렇게 만들지 말라고.”
민현의 눈물을 시작으로 팀원들이 하나둘씩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펑펑 우는 이도 있었고, 눈물을 떨어트리지 않으려 애써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
유원은 그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그저 완전히 넋이 나간 채 사람들의 말이 들리기는 하는지 모를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며칠 정도는 병원에 있어. 검사도 검사고, 쉬는 것도 쉬는 거지만…… 이 병원 1층까지 기자들이 깔려 있어. 도대체가, 기사만 쓰면 끝이라는 건지.”
센터장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자들이 기삿거리에 눈멀어 병원이든 게이트 앞이든 가리지 않고 죽치고 있는 거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리온의 상황이야 때맞춰 센터 쪽에서도 공식적으로 보도할 테고, 그러지 않아도 기자들이 알음알음 소스를 찾아 보도하기도 할 것이었다.
다만 리온 말고도 휴식을 취해야 할 인원이 한둘이 아닌데 그들의 휴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병원 앞에서 죽치고 있는 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수술 끝나면 우리 쪽에서도 어련히 알아서 알려 줄 텐데 하아…….”
지이잉―.
센터장이 다시 한번 한숨을 쉬는 순간, 그의 핸드폰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지친 표정으로 화면을 확인한 센터장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아,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무슨, 무슨 전화예요?”
전화를 받자마자 화색이 도는 센터장의 얼굴을 본 에스퍼들이 센터장의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그를 잡아먹을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센터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서 더 자세히 들어 봐야 알겠지만, 수술 잘 끝났단다. 의식 회복은 경과를 더 봐야겠지만.”
“하아.…….”
팀원들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긴장이 풀려 그대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단 한 사람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들어가서 좀 쉴게요.”
“어, 어어. 그래. 너희도 들어가서 좀 쉬어. 고비는 넘겼다니까 너희도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마음 놓고 회복해야지.”
그가 말하기도 전에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유원이 대답도 듣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사이가 그렇대도 그렇지…….”
“그래도 게이트에서 좀 친해진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봐요.”
어떻게 일주일을 붙어 다닌 동료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일까. 누군가가 유원의 냉정함이 너무하다는 듯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