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온이 다친 이유는 굳이 동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검색창에 리온의 이름 세 글자를 쳐 보기만 해도 그의 상태가 어떤지, 어떻게 해서 부상을 입게 되었는지 꽤 상세하게 나와 있었으니 말이다.
유원은 그 상세한 기사를 몇 번이고 읽어 내리며 제가 직접 겪었던 상황을 곱씹어 보았으나, 그래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온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다. 그에게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신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진심 어린 걱정 따위는 그 상황에서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지나가는 말에 불과했을 거라는 것.
알고는 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랬어야만 했냐고, 하다못해 제대로 치료라도 받고 전투에 임했으면 안 됐던 거냐고 물어보기라도 하고 싶지만,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며칠째 잠들어 있으니.
병원에 계속 있다가는 그대로 그의 병실에 달려가 제발 대답해 달라고 어깨라도 붙잡고 흔들게 될 것 같아서 휴가마저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힘들게 만든 휴가 일정이니까 예정대로 내일까진 쉬어.’
일이라도 하면 잡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 곧바로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센터장의 배려로 하루를 더 쉬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고집을 부려서라도 그 휴가는 반납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에스퍼라는 것이 그런 직업이라는 건 알지만, 망설임 한 점 없이 본인을 희생하는 쪽을 택했을 리온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어떤 때는 보스의 입안으로 뛰어드는 리온이 상상돼 한참을 괴로워하기도 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곧 깨어날 거라고 하긴 했지만…….’
내일이면 S급 게이트 공략이 끝난 지 일주일이 된다. 일주일쯤이면 깨어날 거라더니, 회복이 너무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 유원이었다.
“야, 이유원.”
“나가라고 했잖아. 이야기할 기분 아니야.”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는데, 지원이 유원의 방문을 두드리며 유원을 불렀다. 또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겠구나 싶어 조용히 축객하던 유원이 이어진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 깨어났단다. 방금 뉴스 속보로 나왔어.”
유원이 곧바로 문을 열고 나와 거실 티브이를 보았다. 그의 말대로 티브이 화면 아래 뉴스 헤드라인이 떠 있었다.
[에스퍼 강리온, 의식 회복]
리온이, 긴 잠에서 깨어났다.
* * *
“으헝. 저 진짜 선배 죽는 줄 알았다고요.”
“아, 미친 달려들지 마. 이번엔 진짜 죽을지도 몰라.”
“왜 울고 그래. 누가 보면 선배 진짜 죽은 줄, 훌쩍. 알겠다…….”
주찬과 서하가 리온의 침대 옆에 서서 울먹거렸다. 두 사람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원들 역시 조금 울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멀쩡해요. 의사 선생님 얘기 다들 들으셨잖아요.”
“지금이야 멀쩡한 거 알지, 근데 그때는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다고.”
“그래, 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일 아니야.”
“그래도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었잖아요. 전 진짜 괜찮아요. 그렇게 안 했으면 더 큰 일이 날 수도 있었던 거니까.”
이 병실 안에서 제일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리온이었다. 리온은 침대에 기대앉은 채로 심각한 얼굴을 한 팀원들을 달랬다.
“괜찮다니까. 다들 너무 오버하지 마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2주 정도면 낫는다잖아요. 다리는 뭐…… 그동안 안 걸어 다니면 되지.”
리온이 다리를 팡팡 두드려 보이며 말했다.
치료계 에스퍼의 힘이라고 해도 만능이 아니기도 하고,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상에 더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해서, 때를 놓치면 안 됐는데 민현이 급한 곳에 힘을 쥐어짜서 쓴 상황인지라 정작 리온의 다리는 완벽하게 치료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래도 민현이 응급 처치 정도는 해 둬서 2주 정도 조심하면 되는 상태였다.
“누가 보면 내 다리가 부러지기라도 한 줄 알겠어.”
“그래도…… 제가 그때 형이 뭐라고 하든 치료를 끝내 뒀어야 했는데…….”
“괜히 자책하지 마.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그리고 힘 아껴 둬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나 구급차 타기도 전에…….”
“형!”
“강리온!”
리온의 농담에 팀원들이 경악한 채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어요. 그냥, 그런 농담할 정도로 괜찮다는 거예요. 다들 너무 심각해 하니까.”
“그래도 안 돼. 네 목숨 가지고 하는 농담,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사람 없어.”
“하아. 그래도 우리 휴가 끝나기 전에 너 일어난 거 보고 퇴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내일 나가거든.”
현서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리온이 깨어난 것도 보지 못하고 복귀해야 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우린 그대로 내일 센터 복귀해. 너는 며칠 더 쉬어야 할 거야. 아직 검사받을 것들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넌 좀 쉬어야 해.”
“저 괜찮은데. 그냥 바로 복…… 귀는 아무래도 무리겠죠. 네.”
리온이 단호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팀원들을 보고 꼬리를 내렸다.
다리만 좀 조심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랬다가는 동료들이 자신을 업고 다니기라도 할 것 같았다.
리온은 쓰러져 있었으니 그때 본인의 상태를 모르겠지만,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동료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입원해 있는 동안 빠르게 회복하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수술까지 받은 몸인데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가이딩은 안 필요해? 일주일 가까이 가이딩 못 받았잖아.”
“응? 아…… 능력을 안 써서 그런가. 별로 그렇지는 않네. 멀쩡해. 오히려 푹 자서 개운한걸.”
리온이 진하의 말에 누군가를 떠올리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가이딩이라고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 그를 찾던 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유원이는?”
“아, 어제 퇴원했어. 바로 복귀하고 싶다더라. 워커 홀릭인 건 안 닮아도 되는데 하필 걔는 닮아도 그런 걸 닮냐.”
“좀 있으면 다혈질인 면도 닮을까 봐 좀 무섭네요.”
“야, 죽을래?”
리온이 주찬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곤 킥킥거렸다.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복귀했구나. 하긴 센터도 항상 인력 부족인데 이렇게 다인원이 한 번에 휴가를 냈으니까 마음이 편하진 않겠지.’
“그게 프로 의식이라는 거지. 내가 아주 잘 가르쳤네.”
“선배가요?”
“말대꾸할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껄끄러운 리온이었다. 그래도 매칭 가이드인데, 그리고 게이트 안에서 나름대로 사이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눈 뜨자마자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중 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렇긴 하네…….’
“그럼 나 얼마나 쉬어?”
“센터장님 지금 오고 계신다니까 와서 말씀해 주시겠지.”
“그래, 너 아직 검사받을 거 많아. 우리가 잠깐만 이야기할 시간 달라고 해서 편의 봐주신 거고 너 저녁 시간 끝나면 바로 검사실 투어 돌아야 해.”
“진짜 괜찮은데…….”
“네 말은 못 믿어. 아무튼 우린 내일 아침에 퇴원하니까 갈 때 인사하고 갈게.”
민철이 리온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 웃었다. 장난기 많은 그였지만, 오늘은 진지하면서도 어딘가 울컥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알겠어요.”
“그래, 검사 잘 받고 푹 쉬어.”
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을 가득 채웠던 팀원들이 리온의 병실을 빠져나갔고, 잠시 후 도착한 센터장이 리온을 보고 어울리지도 않게 눈물을 흘렸다.
“몸 좀 사려라, 인마.”
“저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
“말을 해도.”
“아야.”
리온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센터장이 눈물이 쏙 들어간 얼굴을 하고 게이트의 처리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리온이 가장 궁금해할 소식이었다.
“……그렇게 돼서 네가 제일 크게 다쳤고 나머지 에스퍼들도 자잘한 부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S급 게이트에서 나온 피해 치고는 양호한 편이지.”
“다행이네요. 다친 사람도 없고.”
“무슨, 네가 다쳤는데 다친 사람이 없긴 왜 없어.”
“이제 멀쩡하잖아요.”
리온이 해사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제 몸 아까운 줄도 모르는 리온이 답답하긴 했지만, 잔소리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은 그저 리온이 깨어난 것에 대해 마냥 기뻐하고 싶었던 센터장이 리온을 보고 마주 웃었다.
“그래, 그래도 며칠은 더 쉬어. 복귀는 다다음 주로 잡아 놓을게. 마음 같아서는 더 쉬게 하고 싶지만…… 그보다 더 쉬게 하면 넌 무급으로라도 출근할 것 같다.”
“다다음 주 월요일에 복귀면…… 하아. 이렇게 길게 쉬면 좀 쑤시는데.”
“그렇게 일하는 건 삭신이 안 쑤시고? 아무튼 나도 더는 양보 못 해.”
리온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한 이틀 정도만 덜 쉬고 출근하고 싶긴 하지만, 센터장의 배려를 너무 거절하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테니까 시간 날 때 또 병문안 올게. 푹 쉬어라.”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리온이 센터장을 배웅했다. 그 뒤로는 몇 가지 검사가 이어졌고, 슬쩍 당장 복귀해도 괜찮지 않냐고 물었다가 의사에게 짧은 잔소리를 들은 리온은 자신의 병실로 돌아와 누웠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어서 그런 것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일주일 가까이 잠들어 있던 핸드폰을 보니 아는 사람들에게 온 연락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오래된 것부터 천천히 읽던 리온이 뒤늦게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장 최근에 온 문자를 읽었다.
[싸가지 : 갈게요.] 오후 10 : 31
조금 전에 도착한 연락이었다. 다른 용건 없이 간결하게 용건만 적힌 것이 딱 보낸 사람의 성격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똑똑―.
멍하니 문자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조금 당황한 리온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병실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