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잘못된 거 아니야?”
“기계는 고장 안 나요. 검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데요.”
“저, 그래도. 한 번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혹시 모르잖아요.”
리온이 측정실 직원에게 사정했다. 매칭률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던 리온은 다른 사람들보다 측정실에 자주 드나들곤 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보다 낯이 익은 리온에게 측은지심이 일어난 직원이 조금 고민하다 말했다.
“……기대하지는 마세요. 딱 한 번만 더 해 보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시고요. 한 명만 봐 줬다고 말 나오면 저희도 피곤해지거든요.”
“고맙습니다.”
리온이 측정실 직원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런 리온과 달리 유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측정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리온은 기계가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꼈다. 이 기다림 끝에 다가올 결과를 보는 것이 조금 두려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게 억지를 부려 다시 측정했는데도 매칭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거봐요. 그대로일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측정실 직원이 괜히 미안해 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결과가 납득되지 않았던 리온이 유원을 돌아보았다.
“이상하지 않아? 왜 매칭률이 더 떨어져?”
“그럼 형은 더 올랐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당연한 거 아냐? 지금 정도면, 그래. 솔직히 아주 좋은 사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낫잖아.”
매칭률은 서로를 향한 호감도에 영향을 받는다. 리온 스스로도 예전보다 유원을 이해하고 있었고, 유원도 한창때에 비하면 리온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심지어 게이트 안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울어 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매칭률이 더 떨어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얼굴을 하고 유원을 바라보던 리온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측정실 직원을 뒤늦게 의식하고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나가자, 나가서 이야기해.”
“아, 안녕히 가세요. 리온 씨, 유원 씨.”
“수고하세요.”
유원의 손목을 붙잡고 측정실을 나온 리온이 다시 유원의 가이딩실로 향했다. 달려오다시피 가이딩실에 도착한 리온이 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
“그런가 보네.”
유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자 그 침묵을 긍정으로 결론 내린 리온이 헛웃음을 지었다.
둘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건 자신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혹시 유원은 매칭률이 올랐을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싫어하고 있었던 걸까.
“너, 나 싫어해? 싫어해서 이러는 거야?”
“아니에요, 싫어하는 거.”
“말이 안 되잖아. 매칭률이 떨어질 만한 이유가 그것밖에 없는데, 너는 당연히 매칭률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도 네가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고? 그럼 한번 말해 봐, 그걸 왜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리온이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딩실은 기본적으로 방음이 어느 정도 되기는 하지만, 소리치는 것까지 막아 줄 정도는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바깥에 있던 사람들도 이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왜 그게 당연한지 말해 보라고. 그 당연한 이유, 나도 좀 알자.”
리온이 화를 가라앉히려 애를 쓰며 이를 갈았다. 게이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분명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정말 나도 조금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거였나.’
유원과 잘 지내 보려는 마음이 커 그만큼 노력했던 리온이었기에 지금 이 98퍼센트라는 수치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아주 매정하고 차갑게 와닿았다.
“그렇게 기분 나빠하실 필요는 없어요. 매칭률 1퍼센트 떨어진 게 불안할 수도 있지만, 98퍼센트도 못지않게 높은 수치잖아요. 가이딩 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고요.”
“알아, 높은 수치인 거 아는데. 내 말은 나는 이 결과가 이해가 안 되는데 왜 너는 예상했다는 듯 그렇게 태연하냐는 거야. 네가 날 싫어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그럼 내가 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신 거예요? 제가 형에게 그 정도의 사람은 된다니 좀 기쁘네요.”
“지금 무슨 소리 하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든, 걱정을 하든 말든 늘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제 생각을 조금은 하신다니까 정말 기뻐서요.”
유원이 작게 조소하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리온이 입을 꾹 다물고 주춤거렸다.
“한 번도 형 싫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근데 형, 매칭률 저하의 원인이 왜 꼭 저한테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나, 나는 처음에 비해서 너 좋아해. 그러니까 당연히…….”
“처음에 비해서…… 라. 형 말처럼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뭐?”
유원이 조금 씁쓸한 얼굴을 하고 웃었다. 왠지 모르게 화를 낼 수 없게 되어 버린 리온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처음엔 몰랐으니까요”
“뭘 몰랐다는 건데.”
“형이 어떤 사람인지요. 형을 멀리서만 보던 때는 그냥 막연히 멋있다고만 생각했어요. 사람을 구하는 것도, 위험을 무릅쓰고 에스퍼라는 직업을 가진 것도.”
리온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그저 그가 멋있기만 했다. 차라리 그때 뉴스에서 리온의 부상 소식이 매일같이 들리기라도 했다면, 리온의 인터뷰에서 피곤함과 괴로움이 한 점이라도 느껴졌더라면, 알았을 텐데.
자세한 내막 같은 건 몰라도 어느 정도 짐작이나 유추라도 해 봤을 텐데. 그리고 센터로 들어오던 날 제 나름 각오라도 했을 텐데.
물론 리온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센터에 들어와 리온을 접하며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리온은 제게 여전히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답답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가 이런 생활을 피곤해했다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 당연하게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서운하고, 실망스럽고, 답답한 기분까지는 들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다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자신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는 듯한, 너무할 정도로 여전한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착잡하다 못해 바닥을 쳤다.
‘너 나 진짜 싫어하는 거 아니구나.’
‘그럼 우리 매칭률, 더 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말을 듣고 화를 낼 때는 답답했다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매칭률이 올랐을 수도 있지 않겠냐며 기뻐하는 걸 보니 보았을 때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 새벽의 대화는 아무것도 아닌, 분위기에 휩쓸려 스쳐 지나간 대화에 불과했던 걸까.
“저는 형 싫어하지 않아요. 싫어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네요.”
“사람 마음이 다 다르니까 이해하기 힘든 건 알겠는데,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어쩌라는 거야 그럼. 게이트에서 책임감 없게 도망가 버리는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 나는 에스퍼인데.”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형은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잖아요.”
유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젠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피곤했다.
“답답해요.”
“어?”
“그게 다예요. 매칭률 떨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렇게 화낸 거였잖아요. 생각해 봤는데, 제 생각에도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는 것 같네요.”
유원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리온이 바보같이 눈을 깜빡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다음 타임에 가이딩 예약 잡혔어요. 만약 가이딩 필요해서 오신 거면 예약 잡고 와 주세요.”
“어, 어어? 어…….”
당황한 리온이 그대로 유원의 가이딩실을 나왔다. 화가 나지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나온 리온이 가이딩실 문을 닫자마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동료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싸웠어요?”
“유원 씨도 너무한다. 오늘 막 퇴원하고 돌아온 사람인데 오늘은 좀 참아 주지.”
“야, 참아 준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아냐, 됐어. 안 싸웠어.”
“진짜? 안에서 큰 소리 나던데.”
지수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리온을 바라보았다. 큰 소리가 났으니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리온이 유원의 다리를 부러트리네 마네 하면서 화를 냈던 것이 겨우 몇 달 전의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은 이런 잔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었는데, 지금은 화가 나지도 않았다. 보통 때와 달리 어떤 변화가 생겼기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그랬다.
“……협조 요청 들어온 건 없어?”
상황이 이러니 차라리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리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센터로 돌아온 협조 요청이 하나 있었고, 리온은 잠시나마 잡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되었다.
“…….”
“저기, 이쪽…… 아직 다 안됐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바로 해 드릴게요.”
아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온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러 가서도 도통 집중하지를 못하고 주춤거렸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 것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아직 덜 나은 거 아니야? 상태 안 좋으면 제발 말 좀 해. 너 일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괜찮다니까요. 그냥 조금…… 딴생각하다가 그런 거예요.”
“네가 언제 일하면서 다른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휴일에도 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함께 나온 에스퍼 하나가 리온의 상태를 걱정하며 잔소리하듯 말했다. 하지만 리온은 정말 몸 상태에 이상이 없었기에 본인도 답답할 뿐이었다.
“……너무 오래 쉬다 와서 그런가 봐요.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리온이 제 양 볼을 손바닥으로 내리치고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너무 오래 쉬어서, 그리고 올랐을 거라고 기대했던 매칭률이 오히려 떨어져서 충격이 컸던 탓에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이 분명했다.
‘그냥 평소처럼 싸가지 없는 말이나 하지 왜 괜한 소리를 해 가지고 기분 이상하게 만드는 건지.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해 봐야겠지.’
리온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자재를 치웠다. 너무 쉬운 일이라 그런지 잡생각 정도는 할 수 있는 여유가 됐다. 상황마저 리온을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리온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매칭률이 떨어진 것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유원의 씁쓸한 표정만을 떠올리며 곱씹고 있었다는 것을.
그 답답한 기분이 리온을 얼마나 오래 괴롭힐지도 전혀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거리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