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컨트롤이 필요하겠네요.”
능력을 처음 각성시켰던 날, 리온은 교육 센터의 훈련실 하나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거대한 능력은 쉽사리 컨트롤되지 않았다. 능력을 빠르게 각성시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업무에 투입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센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S급 에스퍼의 등장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입을 맞춰 둔 것이 무색하게도 훈련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인터뷰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어온 탓에 정신도 없었다.
“열심히 할게요.”
“일단 절대 힘을 다 쓴다고 생각하지 마요. 우선 이 정도로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만 힘을 써 봅시다.”
리온은 그럼에도 씩씩하게 차근차근 상황에 적응해 나갔다. 다행히 리온은 습득력이 빠른 편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훈련실 하나를 초토화시키고, 야외 훈련을 하다가 나무 몇 개를 흙째로 뽑아 버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겼긴 했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가벼운 물건을 부수지 않고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S급 에스퍼들이 적응 기간이 좀 오래 걸려요. 특히 강한 특성일수록. 그런데 한 달 정도 만에 이 정도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정말요?”
“네. 음, 그래도 한 가지 꼽자면 동시 동작이 다른 것에 비해 서툰 게 조금 아쉽긴 한데…… 다른 장점이 상쇄할 만큼 커서요.”
세 달로 예정되어 있던 훈련 기간이 한 달 만에 끝이 났고 리온은 겨울이 다 끝나기 전에 센터에 정식으로 입소하게 되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리온은 꽤 들떠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빨리 뭔갈 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일이 쉽지는 않다지만…… 그런 일이니까 더더욱 내가 해야지. 애초에 쉬운 일만 하면서 살 생각은 없었으니까.’
지금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때까지는 약간의 영웅 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마음도 들었고, 여러모로 자의식과잉이 심한 시기였다.
지금의 리온에게는 뒤늦게 찾아온 일명 중2병처럼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S급 에스퍼 신입이라니, 진짜 구세주 같다.”
“현서 이후로 4년 만에 나온 S급 에스퍼 아닌가?”
“교육 센터 훈련실 하나 날려 버린 신입이 너야?”
“우리가 뭐 가르쳐 줄 게 있으려나. 우리보다 훨씬 셀 텐데.”
선배들도 리온을 치켜세워 주었다. S급 에스퍼가 게이트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력이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히 반가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리온은 그 말들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만큼 멋지게 제 힘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다.
‘게이트에 들어가면 분명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다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줘야지.’
같잖은 포부까지 세우며 들어가게 된 게이트.
리온은 그곳에서 주제 파악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
“이쪽이 더 급해!”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 난다고!”
센터 안에서는 여유롭고 친절하기만 하던 선배들이었지만 1분 1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투 상황에서까지 리온을 귀여워해 줄 수는 없었다.
선배들을 편하게 해 줄 거라고 다짐한 리온은 게이트에 들어온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티 내고 다니진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으면 정말 창피할 뻔했어.’
그나마 사람들에게 큰소리 떵떵 치고 다니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처음엔 원래 다 그래. 그래도 벌써 1인분 정도는 하던데 뭘.”
“맞아, 첫날이 이 정도면 진짜 빠르게 늘 것 같은데.”
“제가요? 그냥 아무것도 못 하고 어벙하게 군 것 같은데.”
“나 처음 게이트 들어갔던 날을 생각하면 그건 뭐 어벙하게 군 것도 아니야.”
선배들이 위로해 주긴 했지만, 남들의 위로 섞인 평가보다 스스로 느낀 실망감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실전 감각을 키우겠답시고 자진해서 게이트에 많이 배치해 달라고 센터장을 찾아가 면담을 했을 정도였다.
“실전 감각도 중요하지만, 너 아직 매칭률 높은 가이드도 없고…….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간다고 생각하고…….”
“실전만큼 확실한 연습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꼭 빠르게 선배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센터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무게감을 가지는 직책인지조차도 전혀 모를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리온은 하루가 멀다고 센터장실을 찾아가 그를 괴롭혀 가며 원하던 바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실전 감각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잡기 어려운 것이었다. 중앙 센터에 들어온 지 두 달째, 어느덧 완전한 봄이 찾아왔지만 리온은 여전히 크고 작은 사고를 쳐 가며 신입 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뷰 같은 건 부담스러워서……. 정작 일은 선배들이 다 하고 있는데 인터뷰에서는 제가 다 해결한 것처럼 나가는 것도 싫고요.”
“저희도 최대한 빼 드리고 싶은데, 괜히 인터뷰 계속 거절했다가 미운털 박히면 진짜 별것도 아닌 일로 물고 늘어져서 리온 씨가 더 피곤해질 거예요……. 긍정적으로 보면 이런 인터뷰가 센터 입소에 좋은 이미지를 주기는 해요.”
그런데도 S급 에스퍼라는 이유로 온갖 관심은 리온에게만 쏠렸다. 처음의 들뜬 마음과 달리 리온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쳐 갔다.
그렇다고 그만둘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신감을 많이 잃은 터라 이런 자신감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걸지, 그마저도 리온의 마음에 짐이 되었다.
‘S급 에스퍼라고 다들 띄워 주고, 길거리에 걸어 다니기만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는데……. 내가 그런 주목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처음엔 영화처럼 멋있게 다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짧지 않은 시간 누적된 가이딩 부족도 원인이었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다. 그저 자괴감이 들 뿐이었다.
그런 감정이 자꾸만 쌓이다 보니 자잘한 실수가 점점 늘어 갔다. 그중 최악이었던 날은 템포가 늘어져 게이트 공략이 늦어지다 못해 시간을 초과해 버린 날이었다.
“리온아, 일단 너는 나가!”
“나가라고요? 하지만 아직 보스가…….”
“이제 보스는 우리끼리도 처리할 수 있어. 입구 쪽으로 날아간 몬스터는 우리가 어떻게 못 해. 여기서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너니까 네가 처리해야 해. 어서!”
“네, 네!”
시스템은 리온이 S급 에스퍼라는 이유로 A급 게이트가 아닌 이상 리온이 들어가는 게이트에 높은 등급의 에스퍼를 많이 배치해 주지 않았다.
S급이라고 해 봤자 아직 신입이라 숙련된 B급 에스퍼보다도 못한데, 참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센터장이 신경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인력난의 상황에서 신입의 적응기까지 배려해 줄 여력은 없었다.
그 게이트에 들어간 팀원 중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리온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게이트를 향해 간 잡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 리온이 게이트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젠장, 나갔잖아.”
열심히 잡몬스터들을 처리해 봤지만 혼자 처리하기엔 수가 많았다. 한 번에 여러 방향을 향해 공격하는 게 당시엔 유난히 더 서툴렀던 리온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국 처리하지 못한 몬스터 한 마리가 게이트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리온이 곧바로 근처에 있는 마지막 몬스터를 처리하고 게이트 밖으로 향했다.
그 게이트는 중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학교는 게이트가 발생하고부터 바로 휴교 조치에 들어갔다지만, 근처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어디로 간 거야.”
리온이 몬스터를 찾아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한 바퀴 훑어볼 생각이었다.
“악!”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소년의 비명이 리온의 귓가를 자극했다. 리온이 곧바로 소리가 난 쪽으로 날아갔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곳에는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몬스터와 범생이 스타일로 보이는 중학생 하나가 대치하고 있었다.
그 학생은 겁에 질려 보이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이 있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리온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몬스터에게 공격을 날렸다.
“키엑!”
“휴우.”
공격을 성공시킨 리온이 남학생의 상태를 살폈다. 얼핏 봤을 때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괜찮아? 아, 옆구리에 상처가…….”
‘내가 좀 더 능력 있었으면 게이트 공략까지 시간이 이렇게 걸리지도 않았을 거고, 얘가 다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리온이 속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자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러기도 잠시, 몬스터가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리온이 몬스터가 깨 놓은 창문을 통해 그것을 쫓아 나갔다.
“젠장, 현장 통제를 어떻게 한 거야. 아니지, 놓친 내 잘못인가? 아직 능력 쓰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잡몬스터에 불과했기에 처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학생에게로 돌아온 리온이 뻘쭘해서 현장 통제를 탓해 봤다가 도로 자신을 탓했다.
다친 것도 서러울 텐데 왜 여기에 들어왔냐고 혼내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서였다.
‘잘못한 건 자기가 더 잘 알 테니까…… 굳이 내가 혼낼 필요 없겠지. 내 잘못도 있고.’
“저, 저기. 에스퍼님…… 인가요?”
살짝 맞닿은 손에서는 떨림이 느껴졌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안경 아래 감춰진 큰 눈에는 안도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리온의 초조하게 날뛰던 심장이 조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