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다 있어? 뭐? 최강의 에스퍼도 별거 없다고?”
“진정 좀 해라, 진정 좀.”
리온이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 이후, 리온 일행은 무사히 던전을 빠져나와 게이트를 닫는 데 성공했지만, 그사이 유원과 리온 사이에서는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아니, 그래도 네가 선배고…….”
“나도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고요!”
리온은 센터장 앞에서 펄펄 뛰며 화를 냈다.
아무래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유원이 자신을 싫어할 만한 이유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고, 혹여나 말실수한 적도 없다. 오히려 몇 번이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 유원을 감싸 주기 위해 모른 척, 괜찮은 척 넘어가 줬는데 돌아온 게 고작 이런 것이라니.
이대로 있다가는 멱살잡이라도 할 것 같아, 돌아오자마자 혼자 센터장을 찾아 속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다른 애들 오면 물어봐요. 이번엔 진짜 나도 많이 참았으니까.”
“정말 걸리는 거 없어? 아니, 애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나도 그게 궁금하거든요?”
리온이 툴툴거리며 의자 위에 기대앉았다. 제 매칭 가이드에 페어 신청서까지 제출한 사이이니 좋게 지내고 싶었다. 지금도 그러고 싶긴 하지만, 유원이 저런 식으로 나와서야 저 역시 그를 좋게 대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애한테 처음 가이딩을 받았을 때 그 기분을 느껴 본 만큼 걔를 막 대하려고 해도 막 대할 수가 없어요.”
“그렇겠지. 아무렴 매칭 가이드니까.”
리온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 짜증이 치밀어 올라 가이딩을 해 주겠다던 유원을 무시하고 그대로 게이트를 빠져나왔었다.
“……나도 당연히 잘 지내고 싶다고요.”
그러나 생명수처럼 달콤한 가이딩을 선사하는 당사자는 리온에게 쓰디쓴 상처만 남겼다. 신은 공평하다지만, 이렇게까지 공평할 필요는 없는데.
“지금까지는 가이드가 없어서 문제이더니, 매칭률이 역대급인 S급 가이드가 있는데도 이 꼴이라니…… 정말 꼴이 우습게 됐네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모르겠네. S급 가이드 놀랄까 봐 별 대단하지도 않은 게이트에 S급 하나, A급 둘, B급 둘로 팀 편성해서 호강하게 해 줬더니만.”
“그러니까요!”
리온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말했다.
물론 곱게 자란 도련님인 것 같으니 던전이 편하지만은 않았겠지만, 이번 파티는 센터장의 배려가 물씬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S급 에스퍼에다 A급 에스퍼가 둘에, 가이드 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좋고 센터의 사람들과 사이가 좋은 B급 가이드 지수.
게다가 후방을 받쳐 준 B급 가이드 둘도 생초짜가 아니었다. 센터의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가이드였다면 센터장님이 웬일이시지, 하고 놀랄 만큼 친절한 구성이었다.
“별로 힘든 것도 없었는데. 역시, 내가 싫어서…….”
“야, 야.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센터장은 시무룩해진 리온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만히 유원을 떠올렸다. 얌전해 보이는 놈이었는데, 최강의 에스퍼고 뭐고 별거 없다는 소리를 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리온이 거짓말했을 리도 없다. 뭐, 자세한 사항이야 같이 게이트에 들어갔던 서하나 주찬을 불러다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불러서 얘기 한번 할게. 너무 마음 쓰지 마라. 그리고 너, 가이딩 안 받았지?”
“……네.”
“아무리 싫어도 페어 신청서 제출한 이상, 이제 한 몸이나 다름없어. 페어 신청서 취소할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좋든 싫든 매칭 가이드였다. 리온은 며칠 전, 손수 사인해 제출한 페어 신청서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 좀 식히고 가서 쉬어. 얼굴 다친 것도 치료 받고.”
“이런 것 가지고 뭘 치료씩이나 받아요.”
“그런 거 하나하나 방치하다가 큰일 나는 거다, 이놈아. 4년이나 굴러 놓고 아직도 그걸 몰라?”
“아, 알았어요. 치료 받을게요.”
리온이 센터장의 잔소리에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센터장은 상처를 치료 받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리온을 돌려보내 주곤 패드를 들어 센터 소속 에스퍼들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어, 주찬이. 바로 복귀했네?”
[S급 가이딩이 좋긴 좋더라고요. 엄청 쌩쌩해져서 바로 복귀했어요. 할 것도 있고, 한서하도 월급값 좀 하라고 쪼아 대서……. 아, 왜! 사실이잖아!]
옆에서 서하가 툴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센터장은 가볍게 그것을 못 들은 척했다.
“물어볼 게 있으니까, 내 방으로 좀 올라와라.”
[아, 네.]
그리고 잠시 후, 센터장은 제 앞에 선 주찬에게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을 묻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다고?”
“네. 다들 놀랐다니까요. 사실 그 전부터 좀 이상했어요. 리온 선배가 팔 좀 건드렸다고 정색하면서 몸을 뒤로 빼질 않나, 말도 계속 짧고…….”
내심 유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주찬이 구시렁거리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제가 보기엔 리온 선배가 그 성격에 많이 참았거든요?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도 그 정도로 참았으면 뭐, 리온 선배치고는 노력한 거죠. 근데, 그 신입이 리온 선배의 그런 노력을 무시하고 일을 뻥! 터트려 버린 거예요.”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센터장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자, 주찬이 신이 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진짜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리온 선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최강의 에스퍼고 뭐고, 별거 없다고요.’ 이러는 거 있죠!”
“허어…….”
유원의 흉내까지 내 가며 상황을 재현하는 주찬을 바라보던 센터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별종의 짝은 별종이라 했던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폭탄을 둘씩이나 떠넘기는 건 좀 너무한데.
“그래서, 유원이는 어디 갔는데?”
“씻고, 옷 갈아입고, 센터 복귀하겠다고 자기 집으로 갔어요. 센터에도 샤워장 있고 여벌 옷 다 있는데, 아무튼 재수 없는 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입한테.”
“센터장님도 이유원이 리온 선배 대하는 걸 보셨으면 그런 말씀 못 하실걸요.”
리온의 열성 팬이라도 되는 듯 열심히 그를 변호하는 주찬을 보며 센터장은 작게 웃었다.
하긴, 비단 센터 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리온을 싫어하는 신입이라니, 그런 별종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일단 알겠다. 가서 네 일 봐. 그리고 걔, 아직 신입이다. 괴롭히지 말고, 편견 가지지 말고 잘 대해 줘라.”
“알고는 있죠. 그래도…….”
“말 붙일 거 없어. 너도 가이딩 받아 봤으면 그 애가 센터에 얼마나 큰 전력인지 알 것 아냐?”
센터장의 말에 주찬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센터 내에서 리온을 좋아하는 에스퍼들이야 대부분 순해 빠져선 남을 괴롭히지 못할 종자들뿐이었다.
“일단 알겠다. 나가 봐.”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입을 이렇게 자주 만나게 되는 것도 오랜만이네. 센터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원과의 면담 계획을 세웠다.
* * *
한편, 센터장실에서 나온 리온은 친한 동료들에게 자신의 무용담과 서운함을 한껏 털어놓고 있었다.
“……진짜 그랬다고?”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조금 과장되게 기억할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리 강리온 후배님, 여간 다혈질이어야지.”
제학의 말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건 그래,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네 구세주나 다름없는 사람이잖아. 좀 잘 대해 줘.”
강우마저 유원을 싸고돌자, 열이 뻗친 리온이 지나가던 지수를 붙잡았다.
“지수야, 너도 들었잖아. 얘기 좀 해 줘.”
“맞네, 너도 같이 갔었지? 진짜 그랬어?”
졸지에 한가한 사람들에게 붙잡힌 지수가 곤란한 얼굴로 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온은 ‘어서 말해!’ 하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재촉할 뿐이었다.
“음……. 조금 기분 나쁠 만하게 말하긴 했는데요,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아무래도 첫 게이트고, 긴장도 많이 했을 테니까…….”
“봐 봐. 지수도 신입 편이잖아.”
“아니, 그렇다고 편드는 건 아니에요. 유원 씨가 리온 선배 기분 상할 만하게 말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거란 뜻이에요.”
마음 여린 지수가 유원을 나쁘게 말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리온은 유원의 입장 따위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까지 날뛰는 거야? 우리 리온이, 좀 다혈질이긴 해도 이렇게 화내는 일은 잘 없는데.”
선배 에스퍼의 말에 리온은 다시금 그 상황을 떠올렸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걔가 나보고, 아니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글쎄, ‘최강의 에스퍼고 뭐고, 별거 없다고요’ 이랬단 말이에요!”
“서, 선배.”
“그래, 딱 저런 재수 없는 면상을 하…… 고.”
지수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리며 말을 잇던 리온이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헛숨을 들이켰다.
“콜록, 콜록……!”
“괘, 괜찮아요?”
지수가 사레가 들려 쿨럭거리는 리온의 등을 두들겨 주었지만, 그의 시선은 한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센터 로비 중앙 계단을 내려오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느새 말끔한 얼굴이 된 유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