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씨 첫날이니까, 적당한 난도로 열리면 좋겠다.”
“그게 마음대로 되냐.”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호출되어 달려온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게이트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니, 무슨 새벽부터 이 난리야.”
“게이트가 언제 시간 가려 가면서 나타났나. 아, 근데 저거 언제 다 열리는 거야? 나 잠깐 라면 좀 먹고 와도 되나?”
아직 게이트가 열리기 전이라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리온이 그 소란을 뚫고 유원을 게이트 앞으로 데려갔다. 진지한 얼굴을 한 리온이 유원에게 게이트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에서 배웠겠지만, 이게 열리기 전의 게이트야. 열리면 게이트 측정부터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갈 거고, 열린 게이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 이내에 처리해야 해. 웬만한 건 일주일 안으로 처리되지만…….”
3일도 지나지 않아 정리되는 게이트도 있긴 하나, 몇 날 며칠을 매달려도 처리하기가 버거운 게이트도 꽤 있었다.
리온이 생각하기 싫은 상황을 떠올리곤 눈가를 찌푸렸다.
“만약 우리가 못 잡으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애꿎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리온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당장 가까이 보이는 곳에만 초등학교 하나가 있었고, 주위로는 아파트 단지가 몇 군데나 자리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와도 잡을 수는 있지만,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아무튼,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게이트였으면 좋겠다.”
유원과 일하는 첫날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리온은 늘 눈앞에 나타난 게이트의 등급이 낮기를 빌었다.
뭐가 됐든 자신이 일주일 안에 처리할 수 있는 게이트이길. 4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매번 똑같이 비는 소원이었다.
“어, 열린다.”
끼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게이트의 파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리 측정해 둔 게이트의 등급은 B. 가끔 사전 측정치와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아닌 것 같았다.
“넌 처음 업무 들어갔을 때 겁먹어서 토했었지, 아마?”
“그러는 너도 도망갔다가 선배들한테 잡혀 왔었으면서!”
“야, 야. 싸우지 마. 유원아, 첫날이니만큼 몬스터들 보는 것도 처음일 테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다 싶으면 바로 말해.”
리온이 으르릉거리는 후배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어디서든 게이트 안의 몬스터에 대한 영상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크게 달랐다.
괜찮다고 큰소리를 치던 신입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겁에 질려 주저앉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닌지라, 리온이 유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정 무서우면 내가 다 처리해 줄 테니까, 나한테 바로 달려오고.”
이 무뚝뚝한 신입이 놀라 뛰어오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진 않았지만, 리온은 유원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부러 호들갑을 떨며 웃었다.
“네.”
예상대로 재미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뭐, 겁을 먹으면 그것대로 귀여운 거고 아무렇지 않게 일을 처리하면 유능한 인재이니 좋은 거겠지. 아무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 리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들어갑시다.”
“그래.”
그렇게 에스퍼 일곱, 가이드 다섯으로 구성된 파티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한 최소 인원은 에스퍼 다섯, 가이드 셋이지만 오늘은 신입이 있으니 조금 넉넉하게 꾸려진 편이었다.
“아, 저번처럼 더러운 놈은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게이트 안에서는 옷 갈아입기도 힘든데, 끈적끈적한 거 달고 일주일 내내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번엔 씻을 수 있는 곳부터 찾아 놓자.”
게이트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에 이골이 난 멤버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게이트 바깥은 새벽빛이 도는 아침이었는데, 이곳은 해가 쨍쨍한 낮이었다.
“애들 떠드는 소리만 들어도 알겠지만, 게이트 안에선 이런저런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들어오면 지형 파악부터 하는 게 우선이야.”
리온은 짧게 상황을 설명해 준 후, 염력을 사용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곤 하늘 위에서 이리저리 지형을 살피더니 말했다.
“네 기준 남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큰 호수가 있어. 보스는…… 저쪽인 것 같은데. 호수를 따라 쭉 가다 보면 동굴이 있네. 저 안에서 심상치 않은 파장이 느껴져.”
“역시 리온 선배. 최고예요.”
“자, 어서 출발하자고.”
에스퍼 일행은 리온을 나침반 삼아 걷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호숫가에 짐을 푼 에스퍼 일행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땅은 다섯 시 방향, 그리고 열한 시 방향에서 몰려온다. 하늘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이쪽은 신경 쓰지 마.”
“네.”
에스퍼들은 가이드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킨 후 가져온 몬스터 유인제를 터트렸고, 그와 동시에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여기저기에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키아악!”
“내가 이쪽을 맡을 테니까, 넌 그쪽만 집중 마크해!”
리온과 다른 에스퍼들이 몬스터를 소탕하는 동안 짐을 푼 곳에서는 가이드들의 경호를 맡은 에스퍼, 서하가 유원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말을 걸고 있었다.
“반가워요. 난 한서하라고 해요.”
“이유원입니다.”
“리온 선배 매칭 가이드가 나올 거라고는 진짜 생각도 못 했었는데, 살다 보니 진짜 별일이 다 생기네요.”
서하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유원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녀는 역대급 능력치를 가진 S급 에스퍼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어 준 이 어린 가이드에게 관심이 많았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센터 내의 모든 에스퍼들과 가이드들이 그럴 것이었다.
“리온 선배, 가이딩 해 준 적 있어요?”
“네.”
“어쩐지. 오늘따라 안색이 좋더라고요. 화장이라도 한 줄 알았다니까요?”
서하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늘 자기 몸 상하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꾸벅꾸벅 졸면서도 일하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는데, 이제 그런 모습 볼 일은 좀 줄어들겠네요. 유원 씨가 나타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네?”
“……아. 몰랐겠구나.”
서하가 뒤늦게 자신의 입을 가렸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어차피 이젠 가이딩 문제도 해결된 데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의 매칭 가이드인데,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되겠지 싶어서 유원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지금까지 유원 선배랑 파장이 맞는 가이드가 없었다는 건 알고 있죠? 그게, 매스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생각보다 좀 더 심각했었거든요.”
“심각했다면, 얼마나요?”
“만성 가이딩 부족인데 S급에, 제 몸 사리지 않고 일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죠. 코피 흘리는 건 예사고,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쓰러진 적도 비일비재했어요.”
그땐 나도 생초보라서 얼마나 놀랐었는지, 으으.
서하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는데요.”
“당연하죠. 에스퍼 인권 문제로 기사라도 나면 곤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온 선배가 쓰러졌다는 게 알려지면 여기저기서 불안해할 게 분명하잖아요. 센터에서 기를 쓰고 기사 나는 걸 막았었죠.”
그녀의 말에 유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아차,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어른의 사정이려나? 서하가 유원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말했다.
“무엇보다 리온 선배도 그게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센터장님보다도 리온 선배가 더 싫어했을걸요?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고.”
“…….”
그러나, 그 말로도 유원의 구겨진 미간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인 듯했다. 신입에게 벌써부터 조직의 어두운 면을 보여 주었나 싶어, 서하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리온 선배가 은근…… 아니, 대놓고 워커 홀릭이거든요. 저번에도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탈진하는 바람에 센터장님이 일주일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라고 하셨었는데, 절대 못 쉰다고 센터장님하고 싸운 거 있죠? 세상에, 일주일 유급 휴가를 거절하는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이야기하다 보니 진심으로 리온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서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튼, 센터가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굴리고 그러진 않아요. 다만 리온 선배는 유난히 가이딩 파장이 맞는 사람이 없는데, 워커 홀릭에다가 능력까지 있다 보니 유독 힘들게 일하고 일했었죠. 그런데, 이제 유원 씨가 있으니까 안심이에요.”
서하는 마지막으로 유원을 치켜올려 주며 그를 다독였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유원은 리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태 매칭률이 가장 높은 분이 40퍼센트를 넘기지 못했다고 했었나요?”
“아, 네. 그마저도 A급 중에서는 34퍼센트가 가장 높은 매칭률이었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죠.”
유원은 처음 가이딩을 해 주었을 때 제 손을 꽉 붙잡고 있던 리온을 떠올렸다. 볼을 발그레하게 붉힌 채 싱글거리는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유원 씨는 정말 우리 센터의, 아니, 우리나라의 구세주예요.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일했으면 좋겠어요.”
웬만하면 같은 게이트에도 많이 배정됐으면 좋겠고……. 서하가 은근슬쩍 진심을 내비치며 말했다.
S급 에스퍼인 리온과 S급 가이드 유원. 이 두 사람과 함께하는 게이트라면 분명 다른 사람들과 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일 게 분명했다.
“이번엔, 리온 선배도 양껏 가이딩 받을 수 있겠네요.”
어쩌면 최단기간 게이트 클리어 기록도 갱신할 수 있을지도. 서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하가 고개를 주억이든 말든, 유원은 고개를 들어 제 쪽으로 날아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리온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리온 쪽으로 날아든 몬스터들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것만은 확실히 보였다.
“……다치지 않고 돌아와야 할 텐데.”
유원은 잘 보이지 않는 리온의 형태를 찾아, 눈을 가늘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