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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의 사랑 81화

“아무튼 다 필요 없고, 싸우지는 않는다니까 다행이다. 유원이가 많이 봐주는 거겠지만.”

“아니거든요. 제가 완전 많이 봐주는데.”

“유원이는 애가 좀 어른스럽잖냐. 너는 애 같고.”

“뭐래, 걔가 더 애 같아요.”

리온이 콧방귀를 뀌며 센터장의 말을 비웃었다. 예전엔 리온도 유원을 재수 없다고는 생각할지언정 애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유원이가? 너랑 싸울 때만 빼면 나이에 비해 되게 어른스러운 편 아닌가.”

“에이, 걔…….”

유원과 있었던 일을 말하려던 리온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게도 왠지 이 이야기는 자신 혼자만 알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걔 뭐?”

“아니, 보다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고요. 암튼 신설 팀 파이팅하시고요. 저 최대한 빨리 게이트로 복귀시켜 주세요.”

“어, 네 담당의 선생님과 충분한 상의 끝에 결정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고 있어.”

“아, 그 선생님은 호들갑이 너무 심하다니까요.”

“그래, 그래.”

이 또한 본전도 찾지 못한 리온이 센터장실에서 쫓겨났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당사자인 제가 괜찮다는데 왜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진짜 괜찮은데.”

애먼 다리를 통통 두드려 본 리온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걱정받는 것이야 익숙했지만, 이번만큼 사람들의 호들갑이 길었던 적은 없었다.

“다들 호들갑이 심해…….”

리온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달리 그렇게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는 발걸음이었다.

* * *

“어제 별일 없었어? 집에 있다가 큰 소리 나면 바로 센터에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아, 놀리지 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잘 화해했어.”

“진짜? 몸으로 화해한 건 아니고?”

리온이 자신을 놀리는 진하의 등을 한 대 때렸다. 한 대 맞은 진하가 아픈 척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진짜 아파. 진짜.”

“웃기지 마 엄살떨긴.”

사실 손이 나갈 정도의 장난은 아니었는데, 어제 일을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묘해져서 진하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물론 진하가 말한 의도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몸으로 화해했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냥 평범하게 화해했거든. 몸으로 화해는 무슨 몸으로 화해야.”

“과하게 반응하는 게 더 수상한데?”

“네가 이상한 눈으로 보니까 이상하게 보이는 거지. 아무튼 업무 복귀시켜 달란 말은 또 거절당했어.”

“그럴 줄 알았어, 너 그때 상태 많이 안 좋았었다니까. 그전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좀 자중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대체 몇 달을 쉬게 할 생각인 거야?”

“앞으로 한 달은 더 그럴 것 같은데. 지금 일 아예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 기준으로는 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리온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하는 일도 나름대로 보람 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자신이 없다고 돌아가지 않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불안하다고. 게이트 안에서 돌발 상황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해. B급 게이트 정도야 별로 걱정 안 되지만, A급 게이트 그것도 꽤 까다로운 게이트면…….”

“다른 사람들을 좀 믿어. 센터에 S급 에스퍼가 너 한 명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선배들은 항상 바쁘잖아. 근데 난 B급 에스퍼들만 있어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한 업무만 하고 있고.”

“무시하냐?”

“아, 놀리지 마. 그런 소리 아닌 거 알면서.”

더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발목을 잡힌 기분이었다. 리온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툴툴거렸다.

“적어도 한 달은 더 걸릴 것 같은데.”

“게이트 후처리 팀 어느 정도 틀 잡힐 때까지는 기다려 달라더라.”

“적어도 한두 달은 그 일 때문에 바쁠 것 같다던데.”

“누가?”

“민현이가.”

진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원래 민현은 게이트에 들어갈 일이 적어서 그런지 다른 에스퍼, 가이드들과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게이트에 다녀온 이후로는 진하, 그리고 유원과 꽤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았다.

“아, 걔랑 이번에 새로 들어온다는 A급 치유계 신입이 주축이 될 테니까 그 말이 거의 정확하겠네.”

“어, 그러니까 아직 게이트 복귀까지는 멀었다고 생각해 둬.”

“아니, 다른 데서는 에스퍼 인권 침해니 뭐니 하면서 말 많던데, 우리 센터장님은 왜 이렇게 바른 생활 사나이냐?”

“센터장님보다 혹사당하고 싶은 네가 더 이상해.”

진하가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리온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네가 전에 말해 줬잖아. 센터장님 현역 출신에, 그때 너무 고생해서 후배들한테 최대한 잘해 주고 싶어 한다고.”

“근데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것도 문제잖아. 좀 강하게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너한테는 센터장님 방침이 제격이야.”

“센터 들어온 지 반년도 안 지난 게 벌써부터 다른 사람들이랑 말하는 게 똑같아졌어.”

어째 자신만 빼고 센터의 모든 사람이 한편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리온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한두 달…… 한두 달……. 그동안 유원이도 게이트 안 들어갈 텐데, 둘 다 오랜만에 게이트 들어가면 신입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거 아니야?”

“유원 씨 신입 때 그랬어?”

“……아니, 생각해 보니까 처음부터 멀뚱하니 일만 했던 것 같네.”

그래서 신입이라는 생각이 좀 덜 들었던 건가. 입으로는 매번 자신을 열받게 하지만, 적어도 업무 능력이나 처리로 열받게 한 적은 없는 유원이었다.

‘그래서 더 재수 없었지. 잊고 있었네.’

리온이 혼자 유원의 생신입 시절을 떠올려다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진하가 물었다.

“너는 신입 때 어땠어?”

“나?”

“어. 신입 때 맨날 사고 치고 그랬던 거 아냐?”

“…….”

평소 같았으면 자신을 뭘로 보는 거냐며 펄쩍 뛰었을 리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딱히 부정할 수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대체 어쨌길래 아무 말도 못 해?”

“묻지 마. 누구한테나 신입 시절은 있는 거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그럼 그냥 궁금한 대로 살아.”

리온이 절대 말해 줄 생각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머리는 이미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스무 살, 1월생인 리온은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측정을 위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를 찾았다. 제게 기대가 없었던지라 어차피 해야 하는 검사, 빨리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별 기대 없이 갔었는데, 결과가 나오자마자 직원의 표정이 굳더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되었었다. 무언가 잘못된 건가,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직원이 리온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만요, 이쪽에 뭐 마실 거라도 좀 가져다드려.”

“네, 확인해 봤습니다. 네, 오셔서 최종적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게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려 달라던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추측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심각해진 분위기에 눌려 핸드폰도 만지지 못한 채 기다리기만 하던 리온이 자신의 측정 결과를 듣게 되었을 때, 리온은 제 귀를 의심했다.

“S급…… S급입니다. 이런 수치는 또 처음 보네요.”

“……제가 에스퍼라고요? 그, S급이면 제일 높은 등급 아니에요?”

“우선 재측정 결과도 동일해요. 확실한 건 중앙 센터 쪽으로 가서 최종적으로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아마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리온보다 더 들떠 보이는 얼굴을 한 직원이 말했다.

S급 에스퍼.

S급이라는 등급 자체도 굉장히 드물지만 이번에 나온 결과는 조금 더 특별했다.

지금까지 나온 수치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측정 수치 칸이 굳이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나, 하던 생각을 깔끔하게 날려 버려 줄 정도로 압도적인 수치.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 직원이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런 순간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세상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보통 미세한 차이 정도만 나지, 측정 결과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경우는 없거든요. 아마 이대로 확정될 거예요.”

리온이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중앙 센터의 직원이 리온에게 에스퍼에 대한 것을 길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간절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거절권이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지만…… S급 에스퍼는 정말 드물고, 큰 도움이 되는지라 꼭 부탁드리고 싶…….”

“할게요.”

아직 이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도 않았지만 리온은 덥석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게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라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경찰을 꿈꾸고 있었지만,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리온의 마음을 생각했을 때 이쪽이 더 제격이기는 했다.

“그럼 내일 바로 중앙 센터로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만 알려 주시면 저희 쪽에서 모시러 가겠습니다.”

직원이 리온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세라 급하게 약속을 잡았다. 다소 빠른 결정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기에, 리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날 중앙 센터로 가기 위한 시간을 정했다.

리온은 집에 돌아온 뒤에야 뒤늦게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에스퍼에 대한 것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미 결정한 일이고, 번복할 생각은 없었으니 에스퍼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면 알수록 그저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내가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는 거야.’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남게 된 자신에게 세상이 준 숙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들뜬 마음으로 센터에 들어가서일까, 리온의 신입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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