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리끼리 >
지금까지 이런 내용의 기사들이 있으면 꼭 미다스의 손이니 뭐니 떠들면서 윤태식 회장의 선택에 대한 내용이 꼭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그런 내용이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
묘한 감정이 든다.
예전에 우리 작품보다 윤태식이라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면 애써 그것을 흩트리고 나보다 작품에 더 집중해주기를 바랐다. 기업하는 사람이 연예인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어 봐야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특집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내 의도에 부합했다고 보겠다.
하지만 막상 내 이야기가 전혀 없으니 또 살짝 섭섭하다.
‘이게 밴드 드러머나 베이스의 심정이려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보컬이 받을 때의 소외감? 그래도 그렇지 팬조차도 이 모든 변화의 가장 큰 역할을 누가 했는지 아는 마당에 정작 기사에서 빼먹어? 아니지. 기사니까 나에 대해서 잘 아는 만큼 일부러 빼준 거려나?’
그렇다고 ‘나도 유명해질 거야! 이거 내가 한 거라고! 나를 알아봐 줘!’라고 떼를 쓰지는 않을 거다. 막상 화제의 중심에 내가 서버린다면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노력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인기가 고프다면 예전처럼 방송하고 얼굴 비추면 된다.
아닌 말로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이들을 연병장에 채워버릴 만큼 호출할 수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이런 기사는 댓글까지 읽어줘야 제 맛이다.
‘절대로 내 이름이 언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애써 찾고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뒤끝있는 남자가 아니라고.’
그저 댓글을 통해 이 기사와 우리 넷플렉스에 대한 여론이 어떠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다.
- 근데 정말로 디지니가 넷플렉스 때문에 바뀐 거야? 넷플렉스보다 훨씬 큰 회사가 그러는 게 말이 돼?
┖Re : 파슘의 공주도 원래 캐스팅 예정이었던 여배우는 그냥 여전사였는데, 최근에 넷플렉스 때문에 교체 됐다고 말 많긴 했어요.
┖Re : 카렌 블랙우드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음!!
┖Re : 동감! 그녀가 뛸 때마다 내 마음도 덜렁! 덜렁! 오우~!
┖Re : 철컹! 철컹! 이겠지.
┖Re : 더럽다. 하여간 저런 남자들이 문제라고.
┖Re : 못생긴 건 보라고 해도 안 본다~
┖Re : 싸우지들 마. 원래 의학논문에 따르면 건강상의 이유로도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보는 거래. 링크는 여기를 누르면 되고 실제로 여성의 신체부위를 볼 때마다 기대수명이 올라가는···
┖Re : 야! 저거 누르지 마! 논문 아니다!
┖Re : 미친! 게이냐!?
┖Re : 내 눈!!!!!
매번 느끼는 바지만, 온라인은 난장판이다. 자신이 봐야 할 것과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며 이것이 없다면 엄한 놈들의 망상에 정신이 찌들어서 오염되어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뿐이다.
당연하게도 위의 난장판을 걸러야 할 부분에 속했다.
- 넷플렉스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 요즘 여성들의 운동을 보면 아름다움을 환호하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묘사되거든.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져. :(
┖Re : 맞음. 특히나 그런 단체의 영향을 받은 영화사들이 자꾸 외면의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는데 넷플렉스는 당당히 외면의 아름다움도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말해줌.
┖Re : 정말 엉터리 같은 말 아니야? 보이는 외면은 무시하고 안 보이는 내면을 보라니.
┖Re : 같은 생각이야. 반대로 보면 외면조차 가꾸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면이 아름다울 수 있겠어?
- 히어로들 몸만 보지 말자고. 알고 보면 다들 공부도 엄청 잘하는 거.
┖Re : 요원들이니까.
┖Re : 재벌이기도 하지. 급하면 발전소도 손수 제작함~
┖Re : 몽땅 다 가졌잖아!
- 그럼 못난이 히어로를 보고 싶은 거임?
┖Re : 못나도 능력 있는 히어로를 보고 싶다!
┖Re : 나오잖아. 빌런으로.
┖Re : 공부 잘하는 못생김 = 빌런 vs 공부 잘하는 잘생김 = 히어로
┖Re : 알았따! 바벨은 성차별이 아니라 외모 차별이었던 것이다!!!
- 어머니! 나를 왜 이리 낳아주셨나요.
┖Re : 아빠 닮아서 그렇단다
┖Re : 네 엄마가 고친 거라서 그렇단다
┖Re : 다들 꺼져주세요!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잘 생긴 것. 머리가 좋은 것. 돈이 많은 것. 이 모든 것이 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능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재능에 대해서 내리는 평가는 너무나도 다르다.
돈이 많아서 그걸 이용해 성공하면 부모님 덕이고, 잘 생겨서 그걸 이용해 성공하면 머리도 나쁜 주제에 얼굴만 믿고 성공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머리가 좋아 그걸 활용해 성공하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셋 다 물려받은 재능이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온도 차는 심할 만큼 크지.’
성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댓글들을 보면 여성도 남성도 그 어떤 성별도 진짜 평등을 원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다 자신들이 입고 있는 손해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상대방의 손을 잡아야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는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애들이야 무시하면 그만이고.’
어차피 대다수는 그들의 싸움이나 그들의 주장에 관심이 없다.
그나저나 저 말은 참 마음에 든다. 아름다움에 환호하는 것이 죄악이 된 세상이라는 것 말이다.
‘역시 온라인에는 현자들이 많아.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잖아.’
남자도 여자도 잘생긴 것은 그 자체로 타고난 재능이다. 그런데 유난히 여성의 외형을 찬양하면 그것이 혐오라며 부축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그 분위기를 더욱 부추기면서 돈을 버는 미디어가 싫었다.
그래서 이번에 PC문제에 대해서는 나섰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행을 타서 ‘꼴페미는 돈이 된다!’라는 인식을 막아버리면 붐이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다행하게도 대충 분위기를 보니 원천 차단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았다.
- 꼭 넷플렉스 때문에 된 것처럼 그러는데 디지니는 원래부터 그럴 의도였다고 보는 게 맞지 않아?
┖Re : 맞아. 갑자기 노선을 바꾼 수준이 아니었어.
┖Re : 관계자들이 그렇다는데 방구석에서 뭘 안다고 그러냐?
- 디지니를 무시하려는 건 아닌데 분명히 영향을 준 건 맞을 거야. 다들 알겠지만 독과점은 안 돼. 경쟁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 케인 파이기 사랑해!
- 라드도 사랑해!
- 애인이랑 같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늘어난다는 건 무조건 좋아. 그동안은 장르가 달라서 서로 억지로 봐주느라 고생했거든. 하지만 요즘은 교집합이 생겼다는 거!
┖Re : 그래서 애인이 있으시겠다?
결론!
이 댓글에도 윤태식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본래 중국집에 가서 신선로 달라고 하면 안 되는 일이듯 내 이름을 보고 싶으면 다른 특집 기사를 클릭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회장실로 돌아온 뒤 나는 자존감을 한없이 끌어올려주는 마법의 단어를 검색했다.
‘co.kr만 넣어주고 한국 기사들을 보면··· 짜잔!’
와우!
‘넷플렉스는 한국 기업!’부터 ‘할리우드에서 나부끼는 대한민국의 깃발!’에다가 나의 실루엣 아래에서 체스판 말판이 되어버린 바벨의 히어로들의 이미지까지 온갖 기사들이 폭발적으로 나온다.
댓글을 봐도 치사량을 웃도는 국뽕에 취할 수 있다. 대신 여기에는 딱 하나의 문제가 있다.
내용이 없다는 것.
“하여간 우리나가 기자들 실력은 알아줘야 해. 죄다 복사 붙이기냐?”
특집이나 심층 취재 같은 게 없다. 원전이 되는 하나를 가져와서 붙이고 복사하고 자르고 이어버리니 막상 시간은 엄청나게 들여서 봤는데 남는 건 별 것 없었다.
공갈빵을 배부르게 먹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미디어 업계 1위는 한참은 먼 이야기가 됐군. 상대가 헛발질을 계속 해줘야 가능한데, 디지니가 완전 제대로 각성해버렸으니.’
내가 유난히 신경쓰는 초유의 기대작이 있다. 디지니에서 아무리 도발하더라도 절대로 응하지 않은 채 무조건 회피하려는 그 작품은 겨울 여왕이다.
영향력도 커졌고 여기저기 내 눈과 귀가 늘어난 만큼 이 작품에 대해 항상 살피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조차 변화를 주고 있다고 했다. 스토리 전반에 걸친 수정이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텐데, 다양성에 대한 적절한 확충이었다.
포인트를 명확하게 잡고 적재적소에 적용하니 이는 파슘의 공주가 결코 행운이 겹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빌어먹을.”
의자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선의의 경쟁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본래는 존재하지 않고 딱 한 편에서 끝났을 파슘의 공주가 이어지는 새로운 미래.
“이러면 나 역시도 디지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상영관에 가야 하잖아.”
딱히 불쾌하지 않다.
*
오랜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유는 세 가지인데 하나는 사업적인 부분이다.
“그냥 눈도장만 찍으면 되는 수준이지.”
2년 전에 시작한 영종도의 테마파크가 완성되었다. 이제 이곳은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일본의 도쿄 디즈니랜드로 가는 관광객을 우리나라로 상당부분 빼앗아오는 관광의 명소가 될 것이다.
각종 기구와 편의시설은 기본이거니와 영종 테마파크는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강점이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각종 동화속의 공주들이 퍼레이드를 펼친다면 영종 테마파크에서는 워쳐와 몬스터 프레더터를 비롯한 GF의 게임 캐릭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바벨의 히어로들도 가세했으니 그야말로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할 게 틀림없었다.
‘배우들도 여차하면 직접 동원할 수 있고.’
이제 한국의 명소라고 하면 서울 아니면 제주도가 고작이었던 시대는 사라지리라. 나 때문 에 용인이나 다른 놀이동산의 고객은 적잖게 줄어들 테지만, 이 역시도 좋은 자정작용이 일어나리라 확신한다.
특히 송파구 테마파크를 보고 경쟁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꼈다. 빼빼로와 사이다로 유명한 이 기업의 테마파크는 시간을 멈춰세운 것처럼 옛적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아무리 잘 관리해도 낡은 티는 어쩔 수 없는 그 느낌 말이다.
‘이래서 독과점이 문제야. 돈을 벌었으면 투자하고 변화를 줘야지 그냥저냥 괜찮으니까 버티고 있잖아.”
혀만 끌끌 찰뿐이다.
귀국한 두 번째이자 세 번째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거다. 예전에 휴가를 맞이하여 게임을 왕창 즐겼을 뿐, 부모님과 동생을 보고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지가 오래되었다고 여겨져서다. 그래서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과 더불어 진수나 성찬이 같은 친구들을 볼 요량이다.
통화를 주기적으로 하고 얼굴을 보고 싶으면 화상통화를 했지만, 그래도 직접 마주하는 따스함과는 거리가 있지 않던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모님이 반겨주셨다.
“우리 귀한 장남이구나. 아들 보면서 반갑다는 말이 자연스러우면 안 되는 거 알지?”
“여보. 오자마자 타박하면 어떻게 해요? 이렇게 우리 아들~ 하고 예쁘게 반겨줘야지!”
“그걸 어떻게 남자가 해? 그런 건 당신이 하면 되고 나는 그냥···”
“지금 건강한 PC를 만들어나가는 장남을 뒀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멋쩍음에 헛기침하는 아버지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했다. 하지만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 역시 있었으니 그건 두 분의 외모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다들 산삼이라도 드셨어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빈손보다는 선물을 안겨주는 편이 더욱 화기애애해지는 법이다. 내가 한 아름 안고 들어간 선물을 거실에 내려놓으려 했는데 이를 받아드는 아머지의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 아들~’하며 안아주시는 어머니 역시도 10년은 젊고 활기에 찬 모습이셨다.
“산삼 같은 거 여러 번 먹어봐야 소용없더라. 자고로 중년은 헬스야.”
“어때? 이번에 등록한 피부샵이 괜찮던데, 아들이 보기에도 그렇지? 역시 오랜만에 본 사람이 제일 정확하다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간 보람이 있는 거예요. 이제는 인정하죠?”
“거 1년 다녔으면 됐지 남자가 자꾸 얼굴에 바르고 잘 때마다 붙이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럼 나도 피부 관리하지 말까요? 서로 쭈글쭈글하게 늙고?”
“···알았어. 같이 가면 되잖아.”
귀가 붉어지도록 고개를 돌리는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가 빙그레 미소지으셨다. 두 분의 모습에서 나는 텃밭이나 일구며 인생의 노년을 즐기는 여유로운 삶 대신 젊은 청춘의 연애시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두가 부모님이 부유함에 적응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누구나 힘들기보다는 편하게 살기를 원한다. 노동이 익숙하셨던 분들이지만 만나 뵐 때마다 누리고 즐기는 삶을 권했고 억지로나마 함께하기를 반복했다.
돈이 안겨다 준 여유는 그간 없었던 취미를 갖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예전보다 맛있는 것과 좋은 것을 취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지셨고 이제는 하루하루 나이들어가는 몸의 건강을 관리하게도 된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이러한 시간들의 완성형과도 같았다.
‘관리가 중요해.’
이제 누가 봐도 부모님은 시장터의 명칭만 사장님이고 사모님이던 외모가 아니다. 진짜로 사장님이자 사모님의 모습이셨다.
“태희는 왔어요?”
“오는 중이라더라.”
“말도 마렴. 아주 집을 동물원으로 만들려고 해서 혼냈거든. 그러니까 따로 집을 사서는 아예 동물원을 만들어버렸지 뭐니. 걔가 올리는 위튜브를 보면 고양이랑 개는 우습고 다람쥐부터 새들까지 아주 난리란다.”
“태희가요? 무슨 돈으로요?”
“뭐긴. 네 아빠한테 보내준 용돈들이지.”
딸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몽땅 태희한테 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입으로는 ‘아이고~’소리를 내며 손수 만든 음식들로 상차림을 하시러 주방에 가셨다. 그러자 쥐죽은 듯이 있던 아버지가 슬쩍 다가와서 말하셨다.
“고여사를 말리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거다.”
“왜요?”
“왜요는 일본 담요고.”
“······.”
“커험! 아무튼, 네 엄마가 이 나이에 필라테스며 하프에 오만가지를 다니는 이유가 다 있다. 늘그막에 취미에 빠져서가 아니야. 참한 며느리를 찾느라 그래.”
< 끼리끼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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