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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
“예?”
“트럭이고 자시고 건물부터 다녀옵시다.”
성큼성큼 나서시고는 슬리퍼를 신었지만 태희가 바로 말렸다.
“아빠! 잠옷!”
“옷이야 상관없어. 이 일이 더 급하지.”
“여보. 당장 갈아입고 나와요!”
“···먼저들 가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주렴.”
패기 가득하던 가장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에 두 모녀가 픽 웃었고 어색하게 흐르던 긴장감이 확 풀어졌다.
잠시 후 요동치는 트럭을 타고 우리 가족은 회사에 도착했다. 익숙하지 않은 등기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대로변의 4층 건물. 오가며 본 적은 있지만 딱히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그 건물이 내것이라고 하니 여러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이게 정말 우리 아들 건물이라고?”
“정말로 오빠 꺼야?”
“그렇다니까.”
“대박!”
영리하다고 해도, 아직 고등학생인 태희에게는 상황의 이해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건물 내부로 가장 먼저 달려 들어갔다.
“쟤는 캄캄한 건물이 무섭지도 않나봐.”
“오빠 건물이라며? 오빠 꺼는 불 꺼져도 안 무서워.”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은 4층뿐이다. 나머지는 애초에 입주한 회사가 없으니, 다 불이 꺼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배추 녀석. 아직도 퇴근을 안 했나보네.’
현재 시각은 오후 10시가 넘었다. 이때까지도 규환이가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업무량이 소화하기 버겁다는 뜻도 된다. 녀석을 보조하기 위한 직원채용이 시급해 보였다. 하지만 이는 내일 할 일이다.
“건물도 깨끗하고 너무 좋네. 점점 경제도 좋아진다고 하니까 슬슬 회사들도 들어오겠지. 그래. 요즘 신문 보면 부동산이 무조건 최고라더라! 우리 아들 너무 자랑스럽네.”
마냥 신기해하는 태희. 아들을 믿어주시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는 텅텅 비어있는 건물 쪽에 관심을 보이셨다.
“태식아. 입주자가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괜찮은 거니?”
“그렇긴 한데, 딱히 임대를 줄 생각은 없어요. 제가 다 쓸 거거든요.”
“전부? 이 큰 건물을?”
“네. 하다 보니 직원들도 더 채용해야 하고 부서별로 두자면 다 쓰는 편이 나아서요.”
“···모를 일이구나. 당최 뭔 얘기인지 이해도 안 가고.”
그저 ‘도깨비놀음’이라며 너털웃음을 흘리실 뿐이었다.
가족들에게 1층부터 4층까지를 보여드리고 그간 내가 해온 일들을 설명해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자본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은행을 통하고 중계 수수료를 통한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정도를 말씀드렸다.
추후 관심을 갖고 물어보신다면 모를까, 지금 이 자리에서 미주알고주알 이해시켜드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일 가게도 이리 옮겼으면 싶은데요.”
“아니다. 우리 아들이 사업을 한다는데 부모가 되어서 방해를 해서야 되겠니.”
“아직 정정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실수했어. 내가 다 쓸 거라는 얘기 전에 먼저 대답부터 들어둘 걸.’
부모님의 자식 사랑 부분에 대해서 내가 간과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 상황만 해도 과거의 내 모습보다는 훨씬 낫지 않던가. 죄책감을 갖기 보다는 더욱 성공하여 부모님 명의의 건물을 사드리는 쪽으로 목표를 크게 잡기로 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4층까지 올라왔을 즈음, 배추가 막 복도에 나왔다.
“엇? 사장님?”
우리 가족들의 심장을 다시 한 번 요동치게 만든 한 마디였다.
오늘 약속하고 처음으로 사용하는 표현. 지금 앞에 있는 직원은 사실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러나 아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은 그 한 마디에 너무도 큰 감격을 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딱 봐도 우리 가족들인 것 같으니, 괜히 더 정중하게 대해주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직도 퇴근 안 한 거야? 할 게 그렇게 많아?”
“안 그래도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나와 보았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퇴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일을 잘 해주는 것도 좋지만 몸 생각도 같이 하면서 해.”
“네. 감사합니다.”
깊이 인사하고는 나가는 모습이 내 위신을 세워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부모님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는 지금은 ‘나이스 어시스트!’라고 해주고 싶을 정도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부지런한 직원이구나. 안심이 돼.”
“세상에. 오빠가 드라마처럼 말했어. 건강부터 챙기라는 사장님이야.”
“우리 아들 점점 새로 보게 되네?”
“아. 뭘요.”
이것으로 트럭 구매를 위한 설득은 끝이 났다. 부모님은 더 이상 내 의견에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시곤 하셨는데, 트럭을 사주기로 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잘 커주어서 고맙다는 의미였다.
“오빠! 나중에 나 수의사 되면 1층은 동물병원!”
여동생은 부모님과는 감상평이 조금 다른 느낌이다.
32. 게임 중
회사로서의 모습을 갖춰나가며 새롭게 필요한 직원 고용을 시작할 즈음, 플레지 내에서도 몇 가지 이슈가 생겨났다. 그 첫째는 테스트 서버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었다.
『*공지*
안녕하세요. 플레지 운영팀입니다.
아직 정확한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테스트 서버가 오픈될 예정입니다. 테스트 서버에서는 플레지 에피소드 VI : 위더우드 영지가 업데이트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위더우드 영지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우드랩 마을, 나이트 타운과 중앙의 커다란 황무지를 포함하는 영역입니다. 이로써 본토는 지금의 1.5배 넓이로 확장됩니다.
2. 위더우드 성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성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칸트성과 동일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내성의 지하에 던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성 지하에 자리한 이 던전은 성을 차지한 길드원이 독식하게 됩니다.
3. 나이트 타운의 북쪽에는 기사 클래스의 통과의례를 위한 신규 던전, ‘시련의 통로'가 존재합니다. 입장 조건은 제라드로부터 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는 것이며 아이템 창을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
···
8. 새로운 아이템이 추가됩니다.
a 불굴의 물약 : 이 소비 아이템은 나이트에게만 효과가 있는 2단 가속 물약입니다. 초록 물약 적용 상태에서 사용할 시 2단 가속이 됩니다.
b 진중함의 물약 : 이 소비 아이템은 spell power +1의 효과가 있습니다. 매지션 클래스에게만 효과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c. 마법의 투구 시리즈 : 마법을 사용하게 해주는 특수한 투구입니다. 오직 나이트 클래스만 사용할 수 있으며 세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법의 투구 ? 치유 : 힐, 익스트라 힐.
마법의 투구 ? 신속 : 피지컬 인챈트 : 민첩성, 裏決뵈?.
마법의 투구 ? 힘 : 인챈트 웨폰, 디텍션, 피지컬 인챈트 : 근력.』
공지사항의 핵심 포인트는 곧 나이트 클래스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었다. 전용 물약부터 투구에 이르는 신규 아이템들은 설명만으로도 유저들에게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가장 앞부분에 있는 한 문장이었다.
테스트 서버 오픈!
‘이제 한 발 빠른 정도로는 부족하게 됐어. 최소한 두 발을 빠르게 준비해야 해.’
그동안 플레지는 폐쇄적으로 운영해왔다. 때문에 업데이트 이전의 테스트 역시도 회사에서 자기들끼리만 확인하는 정도였고 유저들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듯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테스트 서버를 운영하게 된다면 업데이트의 파급 효과에 대해 눈치 빠른 유저들은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지난번의 메일 브레이커 사건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유저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래도 미래 정보까지 거머쥔 녀석이 장사꾼한테 당하면 안 돼지.’
기억을 꼼꼼하게 되짚었다.
앞으로 있을 위더우드의 업데이트. 이 때 시세가 가장 크게 변하는 품목이 무엇이었던가.
모두가 공지에 열광할 때 내가 준비해야 하는 두 발자국 빠른 행보.
그 해답은 무엇인가.
답은 곧 떠올랐다.
‘우선은 한 발자국 빠른 것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크로스 보우를 매입해야 돼. 노강부터 +6강화까지 전부. 이뿐만 아니라 제작 재료들까지도 가능한 만큼 다 살 거다.”
“또 뭔가 삘이 꽂혔구먼?”
“업데이트는 가속 물약에 마법 투구인데 웬 활?”
휘파람 불며 느낌을 강조하는 진수와 의문을 표하는 성찬이었다.
“짜식들아. 느낌이 아니라 분석이다. 그런데 사장님 대우해준다며 그건 어디 갔어?”
“아차.”
“그냥 직원들 더 뽑으면 그때부터 하는 거로 하자. 우리끼리인데 조금 뻘쭘하잖아.”
픽 웃어 넘겼다. 사실 친구들이 위계질서에 대해 고민하고 말해주었다는 것을 통해서 이미 충분한 대답을 들은 마당이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신규직원들이 채용되면 그때부터는 알아서 처신할 게 틀림없으니 괜히 더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공지 내용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다시 봐봐. 나이트 중심의 업데이트잖아. 이러면 소외받는 집단은 누구겠냐?”
“얘네 빼고 나머지겠지.”
“엘프랑 로열에 매지션?”
“그렇게 생각하면 견적이 안 나오지. 나이트랑 똑같은 무기를 쓰면서 차별받는 쪽을 떠올리라고.”
“아하!”
“소드 엘프?!”
“정답.”
불굴의 물약이나 마법의 투구를 착용할 수 없는 직종. 그러면서도 싸움의 방식은 기사와 흡사한 이들. 바로 소드 엘프들이다.
‘장비 제한에 이은 2차 타격이지.’
엘븐 우즈의 등장과 함께 착용할 수 있는 방어구에 클래스 제한이 생겼다. 그 결과 기본 방어력이 6인 방어구는 대부분 착용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나이트만 2단 가속이 가능해졌다. 소드 엘프와 나이트의 근접 전투력은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진 것이다.
업데이트 공지만을 가지고 말하는 중이기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 격차는 엘프의 정령술이 나와야만 해소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엘프만을 위한 추가 콘텐츠가 등장하지 않는 한 결코 좁혀지지 못한다는 의미다.
오기로 검을 들고 버티는 이들이나 콘셉트를 유지하는 소수만이 남게 될 뿐이었다. 때문에 엘프들은 다시금 활을 들게 된다.
‘검 값이 떨어지고 활의 가치가 상승하는 이유였지.’
꿈속 기억에 따르면 +7크로스보우가 +8 카타르와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했었다.
“듣고 보니까 당연한 건데 왜 나는 공지보고 저 생각을 못했지?”
“알면 우리가 사장하고 태식이가 직원 했겠지. 그런데 길드에는 어떻게 할까? 미리 말해줘야지 않겠어?”
“아니. 비밀 엄수야.”
자고로 빈틈은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과 함께 생겨나기 마련이다. 우리 세 명만 움직이면 조용히 매집하며 다른 유저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길드원들이 같이 행동하면 크로스 보우와 재료인 원석의 시세는 급격하게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다른 유저들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지난 메일 브레이커 사건을 떠올리면 된다. 작은 입소문이라도 새어나갔다가는 말짱 황이 되어버린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파워 글러브 때와 마찬가지로 길드원들한테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정도면 되었다.
“오케이. 그거 말고 다른 할 일이 또 있어?”
“물론이지.”
남들보다 두 발 앞선 준비. 이것은 위더우드 이후의 업데이트인 용의 협곡을 타깃으로 한다.
역대급의 사냥터가 생기는 이 업데이트 때는 고레벨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면서 유저들의 스펙 역시 대폭 상향된다.
박진감 넘치는 사냥과 레벨업! 최강으로의 길!
‘이런 노가다스러운 건 쓸데없고.’
게임으로 돈을 벌려는 나 같은 녀석은 다른 쪽을 공략해야 한다. 용의 협곡 업데이트로 말미암은 흥미로운 변화! 그 중에는 수표 시스템이 있다.
‘정확하게는 보석이지.’
여타 게임과는 다르게 화폐에도 무게가 부여되는 플레지는 특성 상 대량의 골드를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고가의 아이템을 거래할 때는 아이템끼리 물물 거래를 하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용의 협곡 이후에는 사파이어가 수표 역할을 한다는 말씀.’
획득은 가능하지만 딱히 제작에는 물론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 애매한 보석, 사파이어. 이는 용의 협곡 업데이트 이후에 가치 있게 된다.
각 마을의 창고지기 옆에 난쟁이가 추가 되는데 이 NPC는 일반 사파이어를 500골드에. 최고급 사파이어를 1,000에 판매하고 또한 매입한다. 즉, 사파이어를 사고 파는 것에는 손익이라는 게 없는 셈이다.
만약 테스트 서버가 오픈되지 않았다면 나는 위더우드 업데이트 이후에 이를 매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보다 두 발 먼저 움직이기로 했으니 오늘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일반 사파이어들은 개당 100골드. 최고급 사파이어는 개당 300골드에 매입 들어가.”
“에? 그걸 그 가격에 판매 할까?”
“어차피 헐값이다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면서 쟁여두는 애들이 꽤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며 대꾸했다.
“괜찮아. 어차피 팔 놈들은 다 팔게 되어 있거든. 게다가 이건 나중을 위한 거니까 차근차근 저축한다고 생각해 둬.”
가지고 있어봤자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아이템이다. 지금부터 이렇게 금액을 치고 있으면 결국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다. 아마도 그 시점은 위더우드 업데이트 이후로 예상된다. 그때쯤 되면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들이 손절매 한답시고 내놓을 터다.
영리하게 다른 상품을 찾을 거다. 이래서 정보의 우위가 반칙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인 선택을 대번에 우스꽝스럽도록 만드니 말이다.
그때 진수가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분이 오신 거냐? 내면의 소리가 들려?”
‘이 새끼. 아직도 강화에서 못 벗어났나.’
내심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번에는 딱히 핑계를 댈 것이 없었다. 사파이어 이야기는 예측이 아니라 예언의 수준이 될 테니 말이다.
“···아마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노라니 성찬이가 진수의 뒤통수를 쳤다.
“짜샤. 또 어디서 뻘 짓을 하려고. 그때 개고생 해놓고 그분은 또 뭔 그분?”
“우매한 녀석 같으니. 네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그 믿음이 돈이었잖냐. 날아간 장비가 아직도 어른어른하다!”
“한 번만 더 했으면 +9강을 띄울 수 있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벌고 나면 한 번 더 콜?”
“육갑 떨고 있네!”
티격태격하는 진수와 성찬이였다. 이후로 우리는 서먼 몬스터 마법서와 오우거의 피 시세를 보고 각각의 습득률을 비교했다. 그 뒤에는 작업을 어느 쪽에 치중할지 등등 돈이 되는 방향을 짚었고 그쪽으로 매진하도록 결정하였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라고는 해도 게임은 즐기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 역시도 휴식할 겸 작업 이외의 플레이를 즐겼고 그중에는 점심 메뉴나 만원 빵 등의 소소한 내기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개 키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