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강 >
“구청장님께서 어떻게 이곳까지 방문하셨습니까?”
허리를 직각으로 꺾거나 왕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등의 소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런 걸 가지고 건방지다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하라고 해.’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글로벌 법인이 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얽매일 이유가 하등 없다.
‘내가 말이지. 누구보다 탈한국을 하고 싶던 시대에 서민으로 살아온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 이거야.’
대한민국을 나는 적당히 사랑한다. 한때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사로 전역하고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며 강요적인 애국심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감성 대신 이성이 돌아왔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국가는 충성과 희생의 대상이 아니라 애인과도 같다.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내어주는 만큼 받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무조건 내 앞길을 막고 자꾸만 더 내놓으라는 애인처럼 굴어 버리면 언제든 떠날 것이다.
때리고 윽박지르거나 울며 떼쓰는 경우보다 매우 스마트한 방식이라 하겠다.
‘삥 뜯으려고 해봐. 내가 당신 인생에서 충격적일 만큼 새로운 일을 만들어줄 테니까.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의 강짜를 보여주겠어.’
그리 생각을 마치고 보고 있을 때였다.
구청장이 내 머릿속에는 전혀 없는 물음을 던졌다.
“윤태식 회장께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그거?’
표정 변화는 없지만 내심 어리둥절한 채로 내가 조용히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말입니다, 교육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삥을 뜯으려고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는 거지? 맥락이 안 맞을 텐데?’
정치자금과 교육. 이 연결고리가 영 이상하다.
설마 교육에 가장 방해가 되는 존재가 게임이고 그런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가 강남 한복판에 있는 것이 거슬린다는 이야기일까.
‘뉘앙스가 영 아닌데··· 혹시 모르지. 일단은 이런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정치자금을 대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올지도. 에이. 내가 언제부터 궁예처럼 사람 마음을 읽으려 들었다고 이러는 거냐?’
모를 때는 닥치고 듣는 게 최고다. 나는 추리를 그만두고 순수하게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저도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현실을 보시죠.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절대로 평등하지 못합니다.”
굉장히 여러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다.
평등하지 못한 교육은 고액과외와 학원도 다니지 못하는 형편을 의미할 수도 있고 좋은 선생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을 짚을 수도 있었다. 말은 간명하지만, 해석은 이념과 의도에 따라 훨씬 더 다양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런 넘겨짚기를 모두 빼기로 작정했으니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평등한 교육을 만들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구청장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왜 이렇게 정상적이야? 곳간 털러 온 막무가내 강도인 줄 알았더니만.’
첫인상이랑 매우 다른 언사였다. 평등한 교육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경력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 치부해도 매우 솔깃하고 긍정적인 이야기였다.
당장 조금 전만 해도 수능 잘 보라며 응원하고 고사장으로 바래다준 동생이 있지 않던가.
‘태희는 수능 잘 보고 있으려나.’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나는 구청장의 자체평가를 ‘날도둑놈’에서 ‘인간’으로 격상시키며 말했다.
“어떠한 방식으로 평등한 교육을 만들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그리고 그 평등한 교육을 만드는 것과 제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시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남구라고 해서 모든 지역이 다 잘 사는 지역인 건 아닙니다. 강남에도 빈곤층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선뜻 이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몰랐다. 나 역시도 강남이면 어디를 가나 다 잘사는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부유층들이 선호하던 개포동의 아파트에서 몇 걸음만 가면 강남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사는 판자촌이 나옵니다. 비단, 강남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가장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이라 손꼽히는 곳이죠.”
권용민 구청장은 권위적이면서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액 과외를 받는 학생과 학교 급식비조차 내기 어려운 학생이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곳의 복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요.”
“그럴 만하겠습니다.”
“하여, 주기적으로 그곳을 방문했고 한 명의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판자촌에 사는 학생을 만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학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것은 이제 다 옛말이라고. 이제는 자본을 가진 이무기만이 용이 될 수 있는 시대라고 말입니다. 그 이후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교육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
참으로 옳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더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게임 회사에 왜 왔냐?’
답변이 지금 들렸다.
“그러다 제 아들 녀석이 클로버 스팅이라는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하.’
이제야 이해가 됐다.
“인터넷으로 강의를 공급하는 거군요?”
“역시 말이 통하는군요. 맞습니다. 클로버 스팅을 보고 난 후에 제작회사에 대해서 알아보았더니 게이머스 포럼이라는 곳이 나옵디다. 이곳이 게임 공략으로 성공한 회사라는 내용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의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시험. 그리고 문제의 공략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터넷이라면 충분히 공부도 게임처럼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이다.”
가능하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영 생소한 의미겠지만 인터넷 강의. 줄여서 ‘인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2004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07년 즈음부터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꼭 한두 명이 PDP를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깊게 자리 잡게 된다.
아울러 권용민 구청장이 새삼 달리 보였다.
‘이 사람 생각보다 대단하네. 그 개념을 클로버 스팅을 보고 지금 생각해냈다고?’
그의 인간성이나 품성이 어떤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일 자체는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레이컴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이것과의 연계만 잘 잡히면 상장 자체의 가치를 훨씬 끌어올릴 수 있는 무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인터넷 강의는 확실히 지역이나 물리적인 여타 제약을 벗어나서 교육의 평등함을 만들기에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치동 스타강사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보다 저렴할 수는 있겠지만 교육의 평등함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건 저희 강남구에서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전국에 강의 영상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마땅한 수단이 없더군요. 현재 저희가 가진 예산이나 기술력으로는 내년까지도 제대로 개설하기 힘들다고 합디다.”
오케이.
“저희 게이머스 포럼이 인터넷 강의를 개설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었으면 한다··· 는 겁니까?”
“맞습니다.”
‘물론 땡큐지.’
전국에서 스트리밍해야 하는 인터넷 강의의 규모를 생각할 때 적잖은 금액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 하는 게 무조건 옳다.
사교육비 부담이 빠르게 찾아온다는 점도 있지만 ‘게임은 절대 악’이라는 한국의 정서를 타파하는 데 크게 일조할 것이다.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가 나서서 제작한 교육 시스템!
한국 최초의 인터넷 강의를 제작한 회사!
이런 상징성과 이미지에 비교하면 들어가는 예산은 푼돈이라고 봐도 좋다. 그러나 사업은 좋다고 넙죽 받아먹어서는 곤란하다. 티 내지 않으며 챙길 것은 모두 챙기는 영리함이 필요하다.
“만약 저희가 이 사업을 지원한다면 어느 정도의 지원을 원하십니까?”
슬그머니 빼면서 딜을 제시하라고 했다.
“도곡동의 스타 강사분들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이미 도곡동에 방송국 자리를 잡아 뒀습니다. 귀사에서는 저희가 제대로 방송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술지원만을 원하시는 건가요?”
“그건···”
견적이 나왔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저희가 방송국 개국에 들어가는 서버와 기술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비용 일체 역시도 지원하지요.”
“모든 지원··· 물론 조건이 있겠군요.”
꽤 파격적인 제안인데도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되물었다. 역시, 정치인은 노련한 사기꾼이나 노회한 사업가와도 같다는 속설이 맞는 모양이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이니까요.”
그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친지 모르겠다. 다만 미숙하거나 애송이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두 가지 조건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익에 관한 내용이라면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미소지은 채로 내가 대답했다.
“첫 번째 조건은 우리 회사가 이 사업을 지지하고 지원했다는 것. 이를 외부에 알렸으면 합니다.”
인터넷 강의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분명히 여러 기사에 관련 내용이 실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누가 주목을 받을까.
강남구청장이다. 그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보통 이런 사업들은 대부분 해당 지자체의 대표 혼자만 집중을 받거든.’
현실은 영화 속 판타지가 아니다. 혼자서 1만 명을 쓸어버리거나 기적처럼 뚝딱뚝딱 업적을 세우지 못한다. 큰 사업 역시 큰 톱니바퀴의 역할을 할지언정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내가 접한 대다수의 사회적인 활동들은 관련해서 투자를 받았을 것이 분명함에도 한 번도 그런 내용이 언급된 적이 없었다. 또는 있더라도 매우 축소되기 일쑤였다.
즉, 인터넷 강의 역시도 오롯이 권용민 강남구청장의 치적이 된다면 내 처지에서는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결단코 그 꼴은 볼 수 없다.
‘돈이야 더 쓰라고 해.’
1억 투자하면 될 일이 10억으로 늘어날지도 모르지만, 우리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그것은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투자를 알리고 싶다는 건, 홍보 효과를 가지고 싶다는 의미입니까?”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강남구와 게이머스 포럼이 합작으로 이루어낸 성과로 만들고 싶습니다.”
바로 여기서 권용민 강남구청장의 첫인상이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그건 곤란하겠습니다.”
매우 단호한 표정이다. 풍기는 감정은 강한 불쾌감이다.
‘이 새끼가 어디 내 밥상을 넘봐?’라는 무언의 언어가 물씬 전해진다.
‘이럴 땐 요렇게.’
무시에는 무시, 욕설에는 욕설,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견 단순 명확하고 화끈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지는 청소년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거나 배제해 버리는 살인파 행동주의자가 아닌 바에야 우리는 사람과 얽히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며 살게 된다. 그렇기에 대립과 충돌이 많을수록 인생의 굴곡이 심해지고 종국에는 자신의 앞길을 망치는 자충수가 되고 만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건 보기에만 좋아. 당사자한테는 최악이라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폭력과 욕설을 저속하게 느끼는 것은 즉각적인 불쾌감 너머에 이러한 직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적을 만들지 않으며 소통하는 화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이익에서 교집합을 강조한다.’
나의 이익이 반드시 있는 지점을 찾는 것. 이게 없으면 호구다.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제안을 거절하신다는 건 강남구의 세금으로 이 모든 걸 마련해서 해 보이시겠다는 건데 과연 어떤 게 구청장님에게 더 이득이 되겠습니까?”
“이득이요?”
“‘세금으로 전국의 모든 학생이 혜택을 보는 인터넷 강의를 만든 구청장’과 ‘세금 대신에 기업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구청장’의 차이입니다. 이건 구청을 넘어서 시청을 바라볼 업적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워낙에 표정 변화가 없는 타입이라 자세히 봐야만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확실하다. 그는 지금 내 제안이 매우 마음에 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겠군요. 두 번째 조건은 뭡니까?”
구청장의 제안을 듣자마자 떠오른 것.
‘MP3P 사업과의 연계.’
국내의 포터블기기 시장을 보면 몇 개의 회사가 거의 모든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터넷 강의와의 연결점이다.
이를 이번에는 내가 취하겠다.
“동영상이나 음악 파일 같은 것들을 기기가 읽기 위해서는 해당하는 파일에 맞는 코덱이 있어야 합니다. 강남구청의 수능 강의를 인터넷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는 우리 케이리버로만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 인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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