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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 [길드] 지옥검 : 대박! 대박이 떴다!
- [길드] 범 : 뭐에요?
- [길드] 악마혈 : 뭐야? 너 설마 지른 거냐?
- [길드] 분노의활질 : 설마. 진짜 지름?
- [길드] 지옥검 : 이제 나도 9검의 대열에 합류 했다! 나도 9검이다!
그 말을 필두로 길드에는 러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뒤이어 강화 된 무기를 얻어 미소 짓는 승자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무기가 증발하며 울상을 짓는 패자로 나뉘게 되었다.
“근데 난 안전강화로만 한 건데······.”
이미 이런 분위기에서 나의 진실이야 저 안드로메다로 떠날 뿐이다.
18. 짬뽕
- 레몬치약 : 와! 적상어 단이다!
- 땅속폭포 : 어디? 진짜네! 적상어단 대박! 경비병을 끌고 다니는 거야?
적상어 단은 칸트 성을 차지한 길드원들만 고용할 수 있는 용병이다. 외모는 경비병과 동일하지만 폼만 그럴싸할 뿐 사실은 별로 세지 않은 NPC였다. 하지만 이따금씩 데리고 다니면서 코스프레를 하는 건 제법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었다.
“사냥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폼이 전부지만 길드원들 중에 이를 즐기는 이도 더러 존재했다.
- 엑스트라 : 어? 저 사람은 머리 위에 뭐가 떠올라 있는데?
- 엑수트라 : 헐? 진짜네?
- 폼생폼사 : 대박. 성주 프린스!
- 폼생품사 : 강한사람들? 골리앗의 검의 골리앗?!
이제는 강한사람들이라는 길드와 나의 아이디가 매우 많이 알려졌다. 명실공이 서버 내의 최상위 집단이라는 인식이 심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드를 보면 부러워하고 이것저것 질문하기 일쑤였다.
- 넘버쑤리 : 님. 님. 강한사람들 길드에 들어가려면 장비나 레벨이 어느 정도나 돼야 해요?
- 골리앗 : 현재는 정원이 가득 차서 추가 인원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 해충킬러 : 그럼. 길드원분들 장비는 어떻게 돼요?
- 골리앗 : 음··· 다들 7검에 4셋 이상은 착용하고 있습니다.
- 키위존맛 : 대박. 전부 7검 이상이래. 역시 성주님.
지배자라는 계층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건 동일하다. 그것은 현실이 아닌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바로 물어보지 못했지만, 이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벤트 아이템인 검에 대한 것과 더불어 초창기부터 반복해서 듣는 질문. 바로 수입에 대한 것이다.
- 여름엔수박 : 지금 세금을 30%정도로 유지하고 계신대요. 그럼 하루에 얼마 정도 들어오나요?
성을 가진 로열은 상점 세금을 10%~50%까지 결정할 수 있다. 정책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공성전이 끝난 뒤에 단 한 번씩 가능하다.
여기서 내가 50% 대신 30%를 선택한 것은 50%를 선택하게 될 시 물약을 칸트 성 관할이 아닌 초심자의 섬에서 공수하는 인원의 비율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 놈이 ‘나 부자요’하는 것처럼 배 아픈 상황이 또 없다.
나 역시 서민이었던 시절이 있다. 겸허하게 대응했다.
- 골리앗 : 그렇게 엄청나게 벌리지는 않아요. 생각보다 성을 가지면 이리저리 들어갈 돈이 많거든요. 기본적으로 성문도 우리가 돈 주고 수리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거짓말이다. 성문을 돈 주고 수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벌리는 돈은 정말 엄청나다.
“유저들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1,000만 돌파한지가 꽤 됐지.”
입에 지퍼를 단단하게 채워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랑은 부러움보다는 시기와 질투를 만들고 그것은 반드시 적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 해충킬러 :에이~ 그래도 꽤 많이 들어올 거 같은데요~
- 골리앗 : 나중에 성을 가져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놀아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골리앗 캐릭터는 어차피 40레벨에 도달했기에 더 레벨업에 투자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아쉬움이 있었다. 이보다는 차후의 업데이트를 위한 씨앗 뿌리기 작업을 하기로 했다.
“진수성찬. 마이 프렌드~”
꿈에서 볼 때 어차피 녀석들은 스타 드래프트를 하다가 플레지에 오기 마련이지만 그 시간을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
*
본격적인 플레지에서의 입지 확장을 위해서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나는 골리앗과 자판기들을 보여주며 ‘나 이만큼 번다. 너희도 해보련?’하고 설득하지 않았다. 우선은 녀석들이 게임에 푹 빠지도록 만들기로 할 계획이다.
우선 즐기도록 만든 뒤 그 다음에 ‘돈도 된다!’고 하면 더 열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야. 근데, 난 좀 걱정 된다?”
“왜? 뭐가?”
“요즘 뉴스에 엄청 나오잖아.”
“이거 중독성 강한 악마의 오락이라고.”
시대를 막론하고 게임이라는 존재는 모든 학부모의 적이다. 그리고 학부모는 유권자다. 정치가들은 당연하게도 유권자들이 공공의 적으로 매도하는 게임을 악으로 분류했고 그 영향은 언론에 미치게 되었다.
‘오죽하면 PC방에서 차단기를 내리는 희대의 병크를 만들었겠어. 그래놓고 화내는 사람들한테 게임의 폭력성 어쩌고를 하고 말이야. 아닌 말로 독서하던 사람의 책을 확 쳐내봐라. 똑같이 화른 내지. 그래놓고 책이 문제입니다! 라니 이건 기자인지 얼간이인지.’
지금보다는 더 미래의 일이라 앞으로 벌어질 일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튼 웃긴 건 그런 주제에 게임 산업의 순풍을 이용하는 정책은 펼친다는 점이었다. PC의 보급률을 늘리려 노력하는 부분 말이다.
‘개똥같기는.’
게임과 컴퓨터의 보급은 돈이 되니 장려한다. 하지만 게임은 악이다.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으랴.
“하여간 필요할 때만 이용해먹는 치사한 것들이야. 완전 구려.”
“응? 뭔 소리야?”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나온 모양이다.
“그냥 잡생각이 들어서.”
일축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도 게임하나 소개시켜주려고 그래. 스타랑은 성향이 다르지만 플레지도 꽤 재미있거든. 이 게임은 피지컬을 거의 따지지 않아서 컨트롤이 쉬워. 게다가 생각보다 돈도 된다?”
“돈? 현금?”
“어. 게임이 중독성이 강하고 그럼 뭐 어때. 남는 게 있으면 그만이지.”
슬쩍 운도 띄워두었다. 물론 진수와 성찬이의 반응은 웃긴다는 것이었다.
“야. 무슨 게임이 돈이 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유료 게임이니까 돈을 쓰는 거겠지.”
“기사에서 그러는데 현금 거래는 다 불법이래. 그리고 아무리 게임으로 돈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일부의 이야기지.”
“대부분은 게임비도 못 건진다고 하더라.”
“맞아.”
그래. 지금 이 둘의 이 말이 이 시대의 아주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더 시간이 지나서 게임으로 돈이 되는 시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것에 비판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다.
정부와 언론에서 그런 방향으로 다루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 역시 지금은 못 믿겠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녀석들과 함께 나는 지난번에 왔던 간석역의 PC방으로 들어섰다.
“세 자리 있나요?”
21세기에 들어서면 PC방에도 전산시스템이 자리를 잡는다. 회원가입은 물론 요금 충전이나 과자 및 음식의 주문까지도 사람 얼굴을 보지 않고 할 정도다. 아닌 말로 신용카드마저 받으니 할 말 다한 셈이다.
하지만 이때는 아르바이트생이 하나하나 입장한 사람들의 자리 번호와 입장 시간을 장부에 기록하고 시간이 다 되면 찾아가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라고 말해야 됐다.
‘간혹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간직한 곳에서는 당구장의 타이머를 모니터 위에 올려둔 곳도 있었지.’
이 때문에 손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컴퓨터를 먼저 켠 다음, 모니터 위의 타이머를 누르는 것이 필수 요소였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낭만도 있었다.
엄청나게 손님이 몰리지 않는 알바들이 5분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준 뒤 찾아오는 것이다. 살짝 여유를 주고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라고 해준다. 기계는 모르는 휴머니즘이었다.
“잠시만요. 붙은 자리는 없고 떨어져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붙은 자리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게임 도중에 자리를 옮기는 건 상관없다. 다만 요즘 플레지의 유저들이 너무 폭증하는 게 문제다.
‘접속이 꽤 힘들어졌거든.’
플레지의 서버는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이 약 5,000명인데 요즘은 ‘/누구’를 치면 대부분 5,500명 이상의 동시접속자들이 나왔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가 옆자리로 옮기는 것보다는 그냥 기다렸다가 같이 하는 쪽이 낫다.
“잘 모르겠어요. 요즘 플레지를 하시는 분들이 꽤 많이 오셨는데 그분들은 집에를 잘 안 가시거든요. 그래서 딱히 몇 분이라고 말씀드리기가··· 아! 저기 일어나시네요!”
플레지 게이머는 오래하기로 유명하다. 반면에 스타 드래프트 유저는 상대적으로 쉽게 일어나는 편이다.
“타이밍 좋네. 가자.”
우리는 스드 손님들이 일어나자 그 자리를 차지했다.
“후불이신가요?”
“네. 후불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PC방에서는 돈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대부분 선불을 받고 성인에게는 후불을 해주었다. 이용비를 내지 않고 도망치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였는데 이런 얌체들은 성인 중에서도 간혹 나타났다.
그래서 몇날 며칠을 게임만 하던 PC방 죽돌이가 아르바이트생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도주하고 이를 잡기 위해 알바가 추격전을 찍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접속해서 아이디 만들고 켄헬 서버로 들어와.”
“들어왔어. 캐릭터 만드는 건가 보네.”
클래스 선택창이다. 친구들이 왼쪽 두루마리에 쭉 나오는 직업별 설명을 읽는 사이에 내가 말했다.
“거기서 시약 병 모양으로 되어 있는 거 보이지?”
“어.”
“그거 누르면 매지션이거든? 지금 새로 나와서 그게 최고야.”
사실은 직업상 최고라서 권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길드에 믿을 만한 매지션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초보는 옆에서 고수가 ‘이거해. 그게 좋아.’라고 하면 ‘그런가보다.’하고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내가 지원해줄 것이기에 최고로 만들어준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 저거 왕관 만들고 싶은데?”
“로열?”
“어. 저거 프린세스.”
“그렇지! 역시 사나이는 여캐지!”
얼른 만류했다.
“쟤네 전투용 아니야.”
“그럼?”
“길드이라고··· 너네 길드는 아냐?”
“조합?”
“아··· 뭐··· 그래 조합 같은 건데.”
온라인 게임의 부흥기이긴 하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게임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다. 오죽하면 게임 공략북을 구매하면 기본적인 용어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꼭 들어가 있곤 했다.
당연히 길드라는 개념은 게임이 아닌 세계사 수업시간에 배운 쪽이 더욱 익숙했다. 때문에 이들을 이해시킬 개념이 필요했다.
“클랜은 알지?”
“그건 들어봤어. 스드에서 요즘 여기저기 만들어서 사람 모집하고 그러잖아.”
“아. 맞네. 성찬이 너 지난번에 그 SG에··· 읍! 읍!”
“하! 하! 하! 그 입 다물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진수의 입을 막는 황성찬. 듣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꿈을 통해서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스타 드래프트에 흠뻑 빠진 우리의 친구는 클랜에 지원했다가 대번에 떨어졌다.
SG는 솔개PC방이라는 곳에서 자리 잡았던 심주영이 만든 클랜이다. SG라는 이름 역시도 솔개에서 따왔는데 현재 국내의 스타 드래프트에서 가장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트롤 실력으로 가입하려 했으니 합격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미래의 전술을 알려줘도 안 통해.’
목숨 걸고 노력하는데다가 재능까지 갖춘 프로에 비하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아무튼 클랜은 로열 클래스만 창설할 수 있는데 얘네는 약해. 전투용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래도 예쁜데···”
진수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매지션 하라니까? 지금 매지션이 대세야.”
“그래. 판타지는 마법사지!”
“법사는 왜 여자가 없는거냐고. 쳇.”
나오기는 한다만 나중의 일이다.
“야. 그런데 우리 둘 다 매지션을 해? 엘프도 있고, 이 망치 보니까 대장장이랑 도둑도 있는 거 같은데?”
나중에 없어지는 부분이지만 초창기에는 캐릭터 생성 화면에 총 여섯 개의 클래스를 의미하는 문장들이 존재했다. 로열, 엘프, 나이트, 매지션은 선택할 수 있는 클래스. 그리고 주머니를 훔치는 모양과 망치와 모루가 있는 이 두 가지는 선택할 수 없었다.
도둑과 대장장이로 기대되는 직업! 모두가 이들의 업데이트를 기다리지만 나는 안다. 20년간 저것들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오크 숲 업데이트 때 저 표시들이 아예 사라져버리지.’
이후로는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만다.
‘마법도 그런 것들이 많았지. 의욕적으로 해보자 하고 구상은 했는데 아마 시스템적으로 구현이 힘들었던 것 같아.’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어찌어찌 여자 캐릭터에 환장한 진수를 설득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마친 뒤에야 캐릭터 생성을 위한 주사위 굴리기에 들어갔다. 요구 능력치는 지식과 지혜 18이다.
“게임 하기 전에 뭔 준비가 이리 많냐?”
“예쁘지도 않은 할배한테 내 시간을 투자하라니!”
“자자. 그러지 말고 짬뽕 먹자. 이 형님이 쏜다!”
“주사위는 아까부터 굴리는 중이었어.”
“곱빼기 잊지 마라.”
‘아. 이건 정말 요즘에만 할 수 있는 거지.’
나중에는 PC방 자체에서 음식물을 판매하게 되기에 외부 음식물의 반입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때는 그렇지 않았다. RPG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장시간 게임하는 것이 익숙했고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PC방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곤 했다.
‘누가 뭐래도 PC방에서는 얼큰한 국물이 최고지.’
왜 라는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다.
“악! 아! 미치겠다!”
“왜?”
“아! 방금 두 개 다 18이 나왔는데 모르고 주사위 클릭했어!”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경우다. 렉 때문에 숫자가 갑자기 두 번 바뀌는 경우도 있고 하도 잘 나오지 않다 보니까 무의식적으로 주사위를 계속 클릭하곤 했다. 그러다 뒤늦게 ‘아차’하면 머리를 부여잡게 되는 거다.
“집중해서 해. 그래도 엘프에 비하면 쉽게 나오는 편이라 할 만할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17이라도 만족하고 하기는 하는데···”
“어. 17 잘나오는데 이거 어때? 고작 1차이인데.”
“단언컨대 그거 나중에 만족 못하고 지우게 돼. 그러니까 그냥 처음 만들 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두 수치 다 18로 맞춰.”
더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아이템의 등장으로 힘 18 마법사 혹은 체질과 지혜 혹은 지식을 18에 맞추는 배틀매지션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지혜와 지식의 시대다. 또한 이 매지션은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는 스탯이다.
“아. 이거 진짜 지겹네. 아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해서 하면 안 되는 거야?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거야?”
“짬뽕 올 때가 다 된 거 같은데.”
“사나이라면 자고로 1818이지.”
“···욕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