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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이튿날, 내가 작업해놓은 결과를 보고 입만 떡 벌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말했다.
“쩔지?”
“말이라고 하냐?”
“개 쩔지!”
흐뭇하게 웃으며 제안했다.
“이거 살래?”
“게임 신이 졸라게 편애하는 사장님아. 저거 얼마임?”
“약 1,500만 골드지. 원래대로라면 1,300만이 적당한 시세인데 보다시피 이건 지존 장비잖냐? 그러니 프리미엄을 붙여도 살 사람은 살 거라고.”
도리도리.
진수와 성찬이가 바로 대답했다.
“우리에겐 둥둥이가 있다는 사실. 그냥 수준에 맞는 거로 끼련다.”
“매지션이 +7짜리는 과분해. 저거 없어도 사냥에 전혀 지장 없다고.”
게임을 즐기기는 해도 최강자의 자리에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친구들다운 대답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답변해 준 뒤에 당초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길드원들에게 채팅을 올린 것이다. 그 결과 뒤이어 돈 많고 장비 욕심 있는 길드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고 장비는 금방 분배되었다. 그즈음에 지옥검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 →[귓속말] 지옥검 : 일단 나한테 말을 해줘서 고맙기는 한데, 내가 지금은 조금 부담스럽네. 나보다는 악마형에게 말해봐. 악마형이 +7파건을 살 생각이 있으면 내가 악마형이 사기로 했다는 +6 파건을 살게.
- →[귓속말] 골리앗 : 알았음~
검이에게선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1500만에 구매하겠다는 답변이 왔지만, 예상외로 지옥검은 주춤하면서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소개 받은 다음 고객을 찾았고 이번에는 격한 호응을 받았다.
- →[귓속말] 악마혈 : +7도 있었습니까?
- →[귓속말] 골리앗 : 네. 생각 있으신가요?
- →[귓속말] 악마혈 : 그럼요. 당연히 사야죠! 얼마인가요? 제가 지금 1,600만까지는 쓸 수 있습니다!
- →[귓속말] 골리앗 : 1,300만에 팔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길드원끼리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서 무엇하랴. 양심적으로 거래를 마쳐서 길드의 전력 강화 작업을 이루었다.
“이러니 타 혈에서 우리를 넘볼 수가 없지.”
다른 세력에서는 최고수 몇몇만이 +5 파워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격수들 전원이 착용하고 있는 거다. 이 차이는 전쟁에서 더욱 큰 격차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다음은 메일 브레이커의 차례다.
“오늘은 뭐할까? 언제나처럼 오우거 무한 사냥?”
“제작부터 하자. 돈을 썼으면 다시 채워 넣어야 하거든.”
“뭐로?”
“다이아몬드로.”
지하에 기어들어간 보석 값을 다시금 끄집어 올릴 때가 왔다. 그간의 재료 매집을 통해 창고에는 2,341개의 다이아몬드가 쌓여 있다. 장담하건데 서버 내의 총 물량 중 85%는 우리가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에 들어가는 다이아몬드는 1개에 불과하니 이는 곧 2,341자루의 검을 찍어낼 수 있는 수량이었다. 성찬이가 메일 브레이커의 제작 레시피를 보며 내게 물었다.
“이걸 다 완제품으로 팔 거냐?”
“아니. 입소문 낼 정도까지만 만들고 나머지는 재료로 팔 거야.”
완성품을 팔면 수고비를 더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수익이 높아지기는 한다. 하지만 수고료는 괜히 받는 게 아니다.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을 돈으로 받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노동 시간에 더 큰 이익을 볼 방법이 있다면 발품 팔아서 완제품을 제작하지 않는 게 나았다.
다만 ‘써보니 좋았어요!’라는 입소문을 낼 만큼의 불씨는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가장 뜨겁게 가격이 치솟는 극초반의 이익. 이 단물올 쪽쪽 받아내기 위해서 약 300개는 제작할 요량이다. 싹 팔고 냉큼 빠지는 거다.
“이제 갑옷 파괴자라는 이름이 결코 아쉽지 않다는 것을 소문 내 보자고.”
“어? 메일 브레이커로 치면 갑옷이 부서지는 거였어?”
진수가 내게 물어보자 성찬이는 녀석의 뒤통수를 때렸다.
“짜샤. 싸장님이 똥폼 좀 잡아보는 거잖냐. 분위기 파악 좀 해라.”
“내가 눈치가 없어서 미안하다. 좋아! 갑옷 파괴자의 진정한 위력을 서버 전체에 알려보자!”
“···너네는 둘 다 쌍놈이다!”
“반사.”
“초딩이냐?”
어른스럽게 혀를 차고는 대꾸했다.
“그리고 너네들 엘프족 검 다 처분해.”
“응? 왜?”
“그거 곧 시세 떨어진다.”
“왜? 디자인이 못나져서?”
레이피어의 등장으로 엘프족 검의 외형이 변경 됐다. 본래의 날렵한 모양이 레이피어에 적용됐고 엘프족 검은 넓고 투박하게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가격 하락의 요인이 되지 못했다.
“그거밖에 없을 때는 다르지만 레이피어라는 대용품이 나왔잖아. 지금이야 원체 고가에 거래되니까 엘프족 검이 그 값을 유지하지, 조만간 레이피어 가격대가 떨어지면 바로 엘프족 검에도 영향을 주게 돼.”
“거품 꼈을 때 팔아재끼라는 거구나?”
“그렇지.”
진수와 성찬이 갖고 있는 +7 축복받은 엘프족 검은 현재 135만이다. 하지만 메일 브레이커 작업이 성과를 보이면 며칠 만에 100만 골드 밑으로 추락할 것이다.
“퀘스트도 생겨서 타격이 바로 올 거야.”
이번 엘븐 우즈 업데이트 더불어 엘프 유저들에게 레벨 15 퀘스트가 나타났다. 완료하면 나이트 클래스가 붉은 기사의 검을 획득하듯이 엘프 유저는 체질이나 지식 스탯이 추가된 엘프족 검을 받게 된다.
추가 능력치가 없는 옛날의 아이템이 더욱 외면 받는 것은 실로 당연한 순서다.
“게다가 사람들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선호한다고.”
플레지 유저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그래서 유행에 맞는 아이템은 거품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트렌트에 맞지 않는 품목은 본래 성능보다 훨씬 더 저평가 되는 경우가 잦다. 엘프족 검은 이제 그 트렌드에 뒤처지는 검이 될 것이다.
“오케이. 이해했음.”
“역시 플레지 족집게 강사다워. 바로 처분할게.”
뒤이어 아이템 처분과 제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완성된 메일 브레이커는 우리 카페에서 게시물을 연재하는 7명의 작가들에게 무료로 선물했다.
“아깝게 그냥 주냐?”
“반값이라도 받는 게 어때?”
“이 똥 멍청이들아. 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라고. 써보고 좋으면 바로 다음 연재물에 나올 테고 그러면 독자들을 통해서 소문이 확 퍼지는 거야.”
친구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우와?!”
“너 천재다?”
“맨날 인천의 3대 천재라며?”
“진담이었겠냐? 당연히 놀리는 거였지.”
“신통방통하네. 이 새끼, 게임 말고도 진짜 똑똑할 거 같아!”
“훗! 나도 반사.”
“···태식아. 너 초딩이냐?”
“우리 싸장님, 유치하기는.”
“이 개놈들아! 니네가 먼저 했잖아!”
이른바 블로그 마케팅이다. 일례로 일반인의 맛집 탐방기를 들 수 있다. 미래에는 자주 경험하는 일인 데 블로거의 소개를 보고 막상 찾아갔더니 맛집이라서 소개한 게 아니라 해당 식당에서 지원을 받고 쓴 게시물인 경우 말이다.
분명히 같은 메뉴를 주문했는데 내가 인터넷으로 본 것과 사뭇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험. 나도 꽤 해봤다.
‘메일 브레이커는 그런 가짜 맛집이 아니라 진짜배기라는 게 다른 점이지만.’
비단 작가들에게만 선물한 게 아니었다. 카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반 유저들 중 세 명을 골라서 이들에게도 메일 브레이커를 상품으로 보내주었다. 10자루의 값이 결코 적지는 않지만 시세 조작을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깔끔한 광고수단이다.
“메일은 얼마쯤 될 것 같냐?”
진수의 물음에 꿈 속 기억을 되새겼다. 내가 알기로 이맘때의 시세는 대략 4만 골드였다. 하지만 그때보다 불을 지폈고 소문도 나름 공신력 있는 이들을 통해 카페를 기반으로 퍼트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레이피어의 가격대가 16만 골드에 형성된 만큼 더 윗줄로 잡아도 좋을 것이다. 나는 기억 속 시세에 곱하기를 해서 말했다.
“7만에서 8만 본다.”
“오케이.”
이제 남은 일은 언제나처럼 골드를 갈퀴를 긁어서 담는 일 뿐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정확하게는 노련하기 그지없는 장사꾼들의 면모를 엿보았다.
시작은 사흘 뒤, 본토행티켓의 글을 비롯한 카페의 게시물들이 올라왔을 때부터 일어났다.
진수는 출근하기 무섭게 나를 잡아서 끌었다.
“태식아. 이거 봐봐. 내가 심심풀이로 메일 브레이커를 자판기에 올려뒀거든?”
올린 가격은 10만 골드였다.
“그런데?”
“다 팔렸어!”
“뭐? 10만 짜리가?”
“어. 게다가 지금 채팅창 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메시지들은 현재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 [월드] 매지숑 : 메일브레이커 삽니다! 메일브레이커나 걍 다야 삽니다!
- [월드] 악마혈 : 메일브레이커 삽니다! 걍 메일 ~ 8메일까지 아무거나 삽니다!
생각보다 우리 카페의 영향력이 큰 모양이었다. 단 하루 만에 메일 브레이커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실로 마케팅의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캬! 우리한테 팔았던 장사꾼들은 피눈물 흘리겠다.”
“엄청 후회하고 있을 거임. 흐흐.”
아마도 자다가도 이불을 박차는 심정일 것이다.
“싸장님. 어쩔깝쇼?”
“지금 팔까?”
“당연히 팔아야지.”
“오케이~!”
예상가를 넘어서서 이미 천장을 찍었다. 여기서 더 욕심내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자고로 주식계의 명언에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지 않던가. 나는 발가락에서 사고 정수리에서 파는 격이니 최고의 결과를 맞이한 셈이었다.
자판기 메뉴에 10만 골드의 메일 브레이커와 2만 골드의 다이아몬드가 올라갔다. 500골드에 거래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폭리다. 그런데 이 가격대에도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 아닌가.
가히 골드를 삽으로 퍼서 담는 지경이다. 그렇게 하루에 미친 듯이 팔아치워서 최고의 수익을 창출했을 때, 괴소문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상대의 방어구를 부수는 메일 브레이커!>
<이제 모두의 필수템입니다. 꼭 사용하세요!>
온라인 게시판은 물론 우리 카페에도 올라오는 글들에는 저마다의 경험담과 함께 이런 공통된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최고점을 찍은 줄 알았던 가격이 그 이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메일 브레이커 12만 골드. 다이아몬드는 2만 5천!
“저런 거 없다며?”
“없지.”
“그런데 왜 있데?”
“그러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알아보았다. 그 결과, 이 거짓 소문들은 장사꾼들이 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담합을 했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시작하고 여기에 재량껏 합류하며 소문이 급물살을 탄 듯했다.
자신들이 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아이템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루머를 통해서 말이다.
“우와. 이러면 손해는 누가 보는 거냐?”
“일반 유저들이지.”
정확하게는 소문에 어두운 플레이어들이 된다. 주식으로 따지면 개미들만 피해를 보는 것과도 같다. 진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들 바본가? 아이템 설명에 없는 거잖냐. 왜들 속는데?”
“플레지에는 숨겨진 요소들이 꽤 있잖아. 데스나이트한테 힐 들어가던 것처럼. 우리야 태식이 요 자식한테 물어보면 정답이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닐 거라고.”
“하긴. 지난번에 턴 언데드 한 방에 데스나이트 잡았었잖냐. 이것도 힐 들어가는 거 배운 다음에 해본 거였으니까, 메일 브레이커도 뜬소문 말고 무슨 특성으로 볼 수도 있겠네.”
대화를 나누는 진수와 성찬이는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다 단호한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어쩔 거냐?”
“왜?”
“쟤네들 말이야.”
“다들 살려고 머리 쓰는 건데 어쩌긴 뭘 어째?”
참으로 그럴 법하고 신속 과감한 행동력 아니겠는가. 배부른 승자의 위치에 있는 나이니 저들의 노력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 줄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물량을 그 비싼 가격에도 용감하게 사들이는 저 패기! 높이 사야 마땅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다른 모양이다.
“이 악마야. 정의구현 해야지! 저런 새끼들은 상도덕이 없는 거라고.”
“진수 말이 맞아. 우리는 이득은 봐도 구라는 안 쳤다 이거야.”
‘미친. 정의로운 도둑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의욕을 불태우는 녀석들과는 달리 나는 볼 짱 다 봤다. 맥주나 마시며 구경이나 할 겸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럼 너희가 메일 브레이커에 저런 기능 없다고 진상규명이라도 하던가. 대신 계정 새로 파라. 카페 운영진이란 거 들키면 손해가 더 크니까.”
“오케바리!”
“그 말을 기다렸다고. 우리가 나가신다!”
그 때부터 악성 루머에 대항하는 글이 플레지 트레이더스에 올라왔다. 어디건 광고성 게시물이 있는 곳에는 집요하게 찾아가서 ‘이거 구라임!’이라고 도장을 찍었다. 그 결과, 25,000 골드에 팔려나가던 다이아몬드는 이틀 만에 15,000까지 곤두박질쳤다.
친구들은 그제야 축배를 들고 우리가 해냈다며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다.
“사람이 말이야. 그런 식으로 남을 속여서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정직하게 팔아야 진짜 상인 아니겠냐! 바로 우리처럼~!”
지켜본 입장에서는 영락없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었다.
이후로 골드를 벌고 현금으로 팔며 레벨업을 하는 일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배추가 열정을 다해서 제작한 사이트, 게이머스 포럼의 오픈 준비가 완료됐다.
29. 낚시
<*공지* 읽어주세요!
플레지 트레이더스가 더욱 다양한 온라인 RPG들을 다루고자 게이머스 포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이트의 주소는 www.Ga....com입니다.
앞으로 보름동안만 플레지 트레이더스와 게이머스 포럼을 함께 운영하며, 15일 이후에는 플레지 트레이더스의 서비스를 종료하오니 이때부터는 게이머스 포럼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페에서의 안정적인 이주를 위해 자료 글들을 옮겼다. 이를 마친 뒤에도 이용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바로 이동하지 않고 안내글을 올렸다. 이후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한편, 하루하루 지나며 초읽기에 들어갈수록 피골이 상접해지는 사람도 있었다. 눈 아래에 짙은 다크 써클이 내려온 그의 이름은 배추. 영혼이 빠져나간 듯 보이는 친구 규환이었다.
하지만 몸동작은 흐느적거리는 듯해도 정작 눈빛만큼은 매서워진다는 점이 보는 우리를 이따금 긴장시키곤 했다.
“내가 배추한테 카리스마를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거 아니냐.”
“위엄이라기보다는 똘끼랄까?”
부스스하고 힘없는 배추의 눈초리를 보며 진수와 성찬이가 흠칫 몸을 떨곤 했다. 그러다 화장실에 가던 배추가 자빠질 듯 기우뚱하다가 균형을 잡는 것을 보고는 내게 물었다.
“쟤 일단 집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저러다 송장 치우겠어.”
‘하긴··· 무리하기는 했지.’
그가 이렇게 된 것에는 마지막에 욕심을 부렸던 한 가지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