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집 >
“삼성동 주택단지에 지하 2층이 있는 집은 이 집이 유일할 겁니다. 원래 이곳은 지하 1층까지만 구조가 나게 되어 있는데 집주인이 2층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허가를 받아서 아예 새로 지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넓은 주차 공간.
대충 봐도 10대는 주차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 1층은 창고와 개인 서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짜 넓네.’
말이 창고고 서재지 그 하나하나가 집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형태다.
“그리고 이건 저도 어디인지는 모르는데, 비밀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비밀공간이요?”
“네. 귀중품을 보관할 수 있는 금고의 역할과 함께 지하 벙커의 역할을 해주는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위치는 계약이 끝나고 집주인에게만 알려주겠다는군요.”
‘오오!’
지하 금고와 벙커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스케일이다.
“1층부터가 일반적인 주거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대리석과 고급 목재로 꾸며졌다. 1층은 2개의 방과 2개의 욕실 그리고 주방과 거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실의 고급스러움이 유럽의 귀족 저택 저리가라였다.
‘구조 자체가 일부러 각종 미술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어.’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거실이라는 특성상 다용도의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도록 이루어진 공간이다.
“건물의 외견은 최대한 자연과 함께하는 디자인이라면 건물의 내부는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해서 거주자에게 만족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명품은 섬세함에서 차이가 난다지 않던가. 주거환경의 편안함을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요소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들이 곳곳에 산적했다.
문지방이 없어서 각각의 공간으로 이동을 할 때 불편함을 덜었고 천장식 에어컨이라 불리는 시스템 에어컨까지 설비가 되어 있었다.
“2층에도 거실이 있군요.”
1층으로 볼 건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2층으로 올라가니 또 다른 세상이다.
1층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충분히 훌륭한 휴식공간이 되어줄 수 있는 거실은 물론이고 차광막을 이용해서 마치 영화관과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2층과 달리 주방이 필요하지 않기에 방이 1개 더 많은 3개의 방과 2개의 욕실로 이루어져 있다.
“총 5개의 침실과 4개의 욕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장점은 바로 이 테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테라스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경관은 두 가지다.
각자가 정원을 가지고 있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의 전경.
강남의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이 어우러진 도심의 경관.
낮에는 주변 조경을 보며 안정감을 가질 수 있고 밤에는 고층 빌딩을 통해 화려함도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까지 보니 두말할 필요도 없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지름신 강림이다.
‘이건 무조건 산다!’
애초에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내부를 보고부터는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남자들은 자동차와 집을 두고 일종의 꿈과 환상을 가진다. 그래서 드림 카 혹은 드림 하우스라는 표현도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 고급 주택은 내가 꿈꾸던 그런 집일까?
대답은 ‘절대로 아니다’였다.
‘이런 집은 꿈조차도 꿔 본 적이 없어.’
그렇다. 이 집은 내가 상상 바깥에 존재한 그 이상의 집이었다.
“당장 계약을 진행합시다. 얼맙니까?”
“12억입니다.”
“12억이요!?”
놀랐다. 진짜 엄청나게 놀랐다.
12억이라니 말도 안 된다. 너무 비싸냐고? 천만에!
‘싸잖아!’
원래 내가 꿈꾸던 드림 하우스는 파워팰리스다. 2002년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될 이 아파트는 35평형이 분양 당시 3억 4천이었는데 현재는 7억까지 오른 상태다. 내가 꿈꾸던 펜트하우스의 경우 상승곡선이 적은 편이지만 25억에 분양했던 게 현재 27억으로 2억이 올랐다.
‘그런데 이런 집이 고작 12억라니. 확실히 주택은 집값이 잘 안 오르는 건가?’
솔직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집이라 이런 집의 부동산이 미래에 어떻게 성장하는지는 잘 모른다.
‘···아니지. 나 여기 언뜻 본 적이 있어.’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부분인데 막상 와서 돌아보니 기억 한 줄기가 떠올랐다. 2010년대에 핫한 톱스타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바로 이곳이라는 기사였다.
‘배우 부부가 들어와서 사는 동안에 40억이 올랐다고 했던가.’
느낌이 왔다. 이곳은 지금 저평가 받는 거다.
97년 말에 IMF가 왔고 2001년 말인 지금은 많이 회복한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현금이 부족한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주상복합으로 돈이 몰리고 있으니 고급주택의 가격이 확 내려가 있는 것이다.
‘계속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파워팰리스도 나중에는 그 집값이 엄청 하락했었지.’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부동산은 결국 땅값에 수렴한다.
‘아무리 고급 자재를 사용해서 비싸게 짓게 되더라도 지역의 땅값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워팰리스의 시세 하락과 이 주택의 가파른 시세 상승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결정했다.
“계약하러 갑시다.”
“존명.”
···이제는 포기했다. 남들이 있을 때는 저리 대답하지 않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후 경호 형은 집주인과의 연락을 통해 빠르게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았고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룬 것이다.
진실로 뿌듯하다.
‘감개무량이네. 이게 복권은 복권인데 노력한 복권이라서 그런가··· 기분이······!’
현실성이 없게 억 단위의 돈을 막 풀면서 혹은 건물을 사서 건물주가 되면서 ‘아. 내가 정말로 성공했구나.’ 이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고 진짜 내 집이 되었다는 증명을 끝마치니 고급 주택은 이전과 또 다른 감동을 전해주었다.
성공?
간단하게 정의하는 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게 바로 내 손으로 구한 최초의 내 집이라는 느낌인 모양이다.
‘꿈속의 나는 끝까지 집을 장만 못 했으니까.’
구질구질하지만 진짜로 그랬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20대에 이런 호화저택을 구매한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두려워지곤 했다.
‘이게 꿈이고, 그게 현실이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런 걱정이 내 집이라는 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사라졌다.
내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었다.
퇴근과 동시에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자 곧바로 집에 돌아왔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니? 얼굴이 왜 그리 싱글벙글 이야?”
“그러게. 오빠 표정 진짜 이상해. 왜? 여자 생겼어?”
무슨 일이 있건 걱정부터 해주시는 어머니와는 달리 동생은 음흉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태희의 이 말에 가족들 모두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는데 특히 고여사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정말이니? 아이고! 우리 태식이 만나는 여자 생겼어?”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아니에요.”
“진짜? 정말 아냐? 아니 왜?”
“예?”
신체적인 문제라도 있냐는 듯 내 하반신을 보시기에 절대로 건강하다며 소리 높여 항변했다. 그러자 서운한 표정마저 보이시니 환장할 노릇이다.
“괜찮아. 엄마한테는 말해도 돼.”
‘아이고! 고여사님. 제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땀 흘릴 일이 없는데 어머니 앞에서는 영락없이 무너진다.
“정말 아니에요. 굉장히 좋은 일이 있거든요. 그런데 태희 요것이 말을 엉뚱하게 하는 바람에···”
“칫. 내가 뭐! 그럼 뭐가 그렇게 신이 난 건데?”
“그건.”
가족들 모두의 시선이 내 입에 집중된다. 나는 회심에 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이사 가요!”
“뭐?”
“이사 가자고요.”
“갑자기 무슨 이사?”
“아시다시피 저도 여기서 회사까지 거리가 꽤 되는 편이고 태희도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잖아요. 태희 성적에 어느 학교에 가게 되던지 인천에서 통학하는 건 쉽지 않을 거 아녜요?”
지난번에 태희가 수능을 볼 때 ‘이번 수능은 물수능이니 걱정하지 마라.’라며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착각했다. 쉬워서 문제였다는 물수능은 바로 작년이었고 올해가 그 불수능의 해였던 것이다.
‘꿈속의 나라는 놈은 너무 인생을 대충 산 것 같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좀 갖고 살지 그랬냐. 내가 기억 훑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런 걸 틀리다니. 쳇.’
살면서 수능에 관해서 관심 가진 어른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기억의 오류 정도는 있을 수 있다!
···라는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해 본다.
아무튼, 그랬던 덕분에 수능이 끝난 뒤 집에서는 아주 생난리가 났었다. 태희가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며 떨어진 점수 때문에 울고불고했던 것이다. 이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하던 차에 뉴스에서 불수능에 관련한 내용이 나오면서 내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사전채점이 아닌 정식 수능 성적표가 배포되었고 울상을 짓던 태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점수는 무려 381점!
‘사실 나도 점수만으로 이게 높은 건 알겠는데 이게 얼마나 높은 건지는 잘 몰랐지.’
성적표라는 것에는 이 점수가 얼마나 높은 점수인지, 또는 낮은 점수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등급과 백분위로 알려준다. 태희는 놀랍게도 99.7%였다.
3%도 아니고 전국에서 0.3%에 들었다는 말이다.
이걸 보고는 나 역시도 만세를 외쳤다.
‘우리 집에 천재가 있었다니까. 역시 나랑은 달라!’
원래부터 머리가 좋은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본래 내가 알고 있던 태희의 수능 성적은 1등급 턱걸이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레벨을 훌쩍 벗어난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직이 확 올랐던 것을 보면 무진장 비쌌던 그 과외가 효과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학부모들이 괜히 비싼 돈 들여서 사교육에 투자하는 건 아닌 모양이야.’
아무튼, 덕분에 태희는 수도대 수의예는 그냥 안정권이고, 수도대 의대는 힘들어도 그 외의 메이저 의대는 지원해볼 만한 성적을 냈다.
이러니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거라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여기서 30점을 낮춰도 전국대 수의학과는 장학생으로 합격하거든. 자랑스럽다, 내 동생!’
전국대는 수도대를 제외하면 수의학과? 가장 강한 학교다.
이렇게 기쁨 가득하니 이사라는 축포를 터트려도 된다.
“이사? 어디로 가는데? 아파트야?”
역시나 태희도 나처럼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말에 양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만들었다.
“땡!”
오답!
“아파트 아니야? 그럼 또 빌라? 빌라는 집값 안 오른다며?”
‘아니 무슨. 이제 막 수능을 친 녀석이 이런 걸 벌써 따지고 들어?’
내가 저 나이 때에는 이런 개념도 없었던 거 같은데 요즘 애들이 빠른 건지 그냥 내가 느렸던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빌라도 아니야.”
그러자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다.
“태식아.”
“넵~ 고여사님.”
“장남이라고 너무 부담가지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지금 집도 충분히 좋고···”
또 나온다. 뭐만 했다 하면 부담. 부담. 이제는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사람이 그렇게 금방 변할 수는 없는 듯하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요.”
“그리고 너도 나이가 있는데, 이제 혼자 살면서 결혼도···”
장난기를 섞어서 대답했다.
“아직은 안 합니다~”
독립과 여자.
나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런데 군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걸까? 일단 아직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 같이 살고 싶다는 건 어쩌면 그냥 내 욕심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그렇게 오래 사셨는데, 억지로 내가 모시는 거니까.’
그리고 여자 문제 역시 급할 것이 전혀 없다. 냉정하고 한편으로는 서러운 이야기지만 능력 출중한 남자는 굳이 결혼 적령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나는 자본주의라는 당대의 시류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낭만주의나 운명적인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야. 기회와 시간, 여자는 세상에 많다는 거지.’
당장 눈 뻘겋게 물들이고 헥헥 거릴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매 순간, 시기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최적의 선택을 한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여기에 속했다.
“커흠.”
그즈음 아버지께서 헛기침하셨다. ‘모녀의 차례가 끝났으니 이제는 내가 말해도 되는 차례 맞지?’ 이런 의미다.
“그래. 어디로 이사를 했으면 하는 거냐?”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늘 계약을 하고 왔어요.”
“이미 계약을 했다고?”
“네.”
“그래. 뭐 집이야 네가 직접 알아서 잘 했겠지. 그런데 회사 근처라면···”
“우와! 오빠 회사 근처면 강남이잖아!”
태희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훅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애써 무시하시며 말을 이으셨다.
“그거··· 엄청 비싼 거 아니냐?”
“에이. 몇 번을 말해요. 두 분은 그런 거 걱정하실 필요 없다니까요.”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럼. 이사 하는 거 다들 동의하신 거죠?”
긍정하시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희가 발표를 하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아직 대답 안 했는데?”
“넌 그냥 오빠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면 되는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싫으면 너 혼자 이 집에 살던가.”
“싫어!”
아들에게 너무 큰 짐을 주는 것 같다며 계속 미안해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자칫하면 무거워질 뻔했던 좋은 소식은 오두방정을 떠는 태희 덕분에 다행히 밝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좋은 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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