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이닝 로드의 긴급 수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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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세 그룹의 감독과 무사히 계약을 마쳤다. 나는 이들에게도 쏘우리스트의 제작자들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해주었다. 할리우드를 구경할 겸 우리 숙소에서 지내라고 붙잡아 둔 뒤에 몇몇 영화 배급사들과 약속을 잡았다.
배급사와의 계약은 딱히 중요할 것이 없었다. 어차피 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에 일체는 게이머스 포럼에서 전액 제공한다. 본래라면 배급사에서 투자하지만, 그 부분이 빠진 것이다.
‘영화 한 편에 통상적으로는 투자배급사가 6. 영화 제작사가 4의 비율이지만 우린 다르지. 투자와 제작에 대한 책임을 전부 짊어지니까.’
리스크를 감당하는 만큼 수익 분배 비율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게이머스 포럼과 배급사의 분배 비율은 우리가 조금 양보해서 8대 2로 조율했다. 여기서 8은 당연히 우리였다.
원래 배급수수료가 10%이니 9대 1로 맞추는 것이 좋지만, 사람이나 기업이나 자기들의 수익에 따라서 예민해지는 것이 당연한 법.
‘10% 더 챙기려고 하다가 마케팅의 질이 떨어지면 오히려 내가 손해지.’
이건 간단한 이치였다. 만약 쏘우리스트의 마케팅이 떨어져서 총 수익금이 500억이 된다고 해보자. 그 경우에는 90%의 지분을 가져도 450억이다.
반면에 배급사에 10%를 더 줌으로써 1,200억의 수익을 낸다면?
1080억의 수익이 된다.
“그러니 이 정도는 양보하는 게 좋다는 말씀.”
우리와 계약한 배급사는 총 두 개다. 우선 호러 장르인 쏘우리스트와 Open sea는 롱스 게이트와 계약했다. 마이너 배급사이지만 이쪽 장르에 강한 파트너였다. 아울러, 꿈속 미래에서도 배급한 회사이니 너끈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슈퍼사이즈 위와 나폴레옹 마이너붐버는 할리우드의 메이저 배급사 중 하나인 파라 마운틴과 맺었다. 여기에는 장기적 플랜이 있었는데 바로 나중에 만들 마다가스칼을 파라 마운틴과 계약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까지 날아온 사업적인 업무들은 모두 마무리 지었다. 남는 시간은 관광하고 한국과 사이즈가 다른 음식들을 즐기며 보냈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회장님.”
“고생은 무슨.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그때부터 고생 시작이죠.”
한국은 이제 한창인 것들이 많다. 차라리 LA에 있는 지금이 휴가나 마찬가지인 셈이니까.
[대장님! 한국에 꼭 가야 해요?]
굳이 공항까지 찾아온 에밀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다.
‘굳이 왜?’
에밀리와 나는 말도 안 통한다. 거기다가 아직 아리조나에 사는 이 소녀와 얼굴을 마주할 일도 거의 없다. 한국에 있으나, LA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한국이 내 무대니까.”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내 무대가 한국이라는 의미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에밀리의 표정이 밝아졌고 이내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는 대답을 했다.
‘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여자 아이의 정신세계는 알 도리가 없다니까.’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90. 샤이닝 로드의 긴급 수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빨간 국물.
새큼하며 매콤한 묵은 지 냄새가 침을 가득 고이게 했다. 나는 돼지고기와 한 몸을 이루면서 폭 익은 김치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쉽사리 찢긴다. 이렇게 잘 찢은 묵은지로 돼지고기를 둘둘 감은 뒤 입에 넣으면!
“크아! 그래 이거지! 한국의 맛!”
3주가 조금 못 되는 기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토록 김치를 갈구했던 시기가 있었던가 싶다. 한국에 돌아와서 먹는 이 묵은지 김치찌개의 맛은 미국에서의 느끼함을 한순간에 날려주는 청량음료와 같았다. 맛깔나게 먹는 내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천천히 좀 먹어. 미국에서는 쫄쫄 굶다 왔니?”
식탁의 맞은편에 앉은 어머니는 만족스러움과 걱정을 보이셨다. 맛있게 먹는 모습은 좋지만,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탈이라도 날까 우려하는 모습이시다. 하여간 다 커도 어머니는 자식을 여전히 어린아이로 대하신다.
“굶기는요. 고여사님 아들이 짱짱하게 잘 나가는 부자잖아요. 어디 가서 굶고 다니고 그런 일은 전~혀 없답니다.”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밥 차려 달라더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
“요리가 환상적이잖아요. 게다가.”
“게다가?”
나는 한가득 넣은 음식을 꿀떡 삼킨 뒤 대답했다.
“어머니도 들어보셨죠? 외국에 나가면 한국 음식이 그립다는 거요. 저도 알고는 있었는데』 우와. 이게 그냥 머리로 아는 거랑 달라요. 진짜 나가봐야 알죠. 어때요? 실감해보시게 아버지랑 미국 여행 한 번 다녀오시는 건?”
“됐다. 다 늙어서 미국 여행은 무슨······.”
윗세대의 부모님 대부분이 가진 인식이었다.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 여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부자들의 특권이라고 여기신다. 하지만 막상 타보면 별거 아니다.
물론 버스비나 택시비보다는 훨씬 비싼 이용료를 자랑하지만 무슨 신분 계급의 격차로까지 여길 필요는 없다.
‘아들이 돈도 잘 버는데 부모님은 너무 절약하신단 말이지. 안 되겠어. 등을 떠밀자.’
자발적으로는 놀러 다니실 분이 아니다. 나는 게 눈 감추듯 밥 한 공기를 해치우고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진짜 한 번 다녀오세요. 가게야 과감하게 ‘쉽니다!’라고 붙여놓고요.”
“괜찮아. 엄마는 그냥 송도 해수욕장이나 다녀오면 그거로 됐어.”
“아이고, 고 여사님. 거기는 지금까지 살면서 100번은 더 갔잖아요. 이제 자식들도 다 키웠으니 좀 놀아보시라고요. 그만큼 고생했으면 이제 호강을 바라도 됩니다.”
거듭 채근하자 어머니는 빈 밥그릇에 밥을 수북이 뜨며 웃으셨다.
“됐으니까 그냥 밥이나 먹어. 호강은 무슨··· 그건 너 말고 저기 웬수 같은 골방 늙은이가 시켜줘야지.”
“으잉? 뭐어?”
가만히 있다가 봉변당한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서 뚱한 반응을 보이신다.
“지금 나보고 골방 늙은이라 한 거야?”
“맨날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는 게 딱 골방 늙은이 아니면 뭐야?”
“아니, 모자간에 한창 오붓하더니 왜 불뚱이 이리 튀는 거람?”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결론은 부모님의 가벼운 투닥거림으로 끝났다.
이유는 잘 안다. 아들 돈을 함부로 하고 싶지 않은 어머니가 일부러 말을 돌려버렸다는 걸.
‘태희가 방학하면 그때는 가족여행을 갈 수 있게 미리미리 준비해둬야겠다.’
가고 싶으신 곳이 어디냐는 물음은 부모님에게 불필요했다. 내가 잘 알아보고 여행하기 좋은 장소를 알아본 뒤 티켓 구매까지 다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강제로 휴가를 즐기다 보면 두 분도 여가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라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소리랑 똑같아.’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건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팍팍했던 꿈속 미래와 다른 현재의 모습에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
이튿날인 3월 25일.
이튿날, 회사로 출근했는데도 어제 맛있게 먹은 김치찜이 떠올랐다. 나보다 훨씬 자주 나가는 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마침 곽지원 전무가 보여서 물어보았다.
“곽 전무님은 김치가 그립거나 그렇지는 않으셨죠?”
아무래도 미국 생활이 길었던 만큼 나보다는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적었을 거라는 생각에 한 소리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라며 그가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한국인은 김치가 소중한 법이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큼한 얼큰함이랄까요? 그래서 지난 주말 내내 잘 먹다가 왔습니다.”
“그래요? 저도 그랬는데!”
서로 감동적으로 먹은 음식과 숨겨진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업무 이야기로 전환했다.
“오늘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요?”
“예, 회장님. 제가 입사하기 전에 투자하셨던 ‘정의의 적’ 투자금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야~ 빠르네요.”
영화가 1월 이맘때 즈음 개봉했으니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직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리라 보았는데 예상보다 조금 빨랐다. 물론, 이건 기분 좋은 오차였다. 이건 전부 내 쌈짓돈이니까.
“일단 1차 투자 원금을 먼저 보내주고 나머지는 5월 초순 무렵에 입금된다고 합니다.”
‘캐시 카우로는 아주 좋아.’
‘정의의 적’에 투자했던 금액은 10억. 개인의 돈으로는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기에 원금이라도 먼저 보내주는 건 좋은 일이다.
“다른 언급은 없었나요?”
“뉘앙스가 다음에 개봉할 영화를 준비 중인데 ‘그 영화에도 투자해주었으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개죠? 어떤 것이고?”
“김형빈 사원의 분석으로 세 편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될 것 같다고 합니다. 조만간에 각 영화의 계좌가 열릴 것이고요.”
올해 개봉작 중에 투자를 결정한 영화는 총 5개.
투자가 끝난 것이 2개니까 남은 영화 전부가 비슷하게 투자를 원한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10억씩 투자한다고 보면 총 30억이 된다.
‘내 지갑 사정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액수지.’
내가 아무리 잘 벌고 있다고는 당장 현금으로 30억을 움직이는 건 무리가 있다.
‘앞으로도 돈 벌 건수는 넘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과욕 부리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정했다.
“계획을 바꿔야겠군요. 10억이 오늘 들어온다 치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23억입니다.”
“그러면 ‘가내의 영광’에 최대한 많이 투자해서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세요. 남는 자금을 다른 영화에 얼마만큼 투자하는지는 그 이후에 또 이야기합시다.”
어차피 핵심은 가장 큰 수익이 날 가내의 영광에 투자하는 일이다. 나머지 영화도 흥행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와 비교하면 빛이 많이 바래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올해 영화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하는 도중에 김정규 팀장이 찾아왔다.
“회장님. 조금 급한 건이라 직접 오셔서 보고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급한 건이요?”
“예.”
무슨 일일까.
김정규 팀장의 안내를 따라서 게이머스 포럼의 회의실로 들어가니 팬더그램의 간부들이 모두 모여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굳은 것을 보면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다들 모이다니 보통 일이 아니긴 한가 보군요. 뭐죠? 샤이닝 로드에 무슨 큰일이 생긴 겁니까?”
“그게······.”
“말씀해보시죠.”
주저주저하며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 가장 젊은 나이로 보이는 한 남자가 동료들의 눈치에 못 이겨 앞으로 나섰다.
“샤이닝 로드의 제작 팀장인 김훈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혹시, 저희 게임이 본래는 콘솔로 개발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김훈 팀장은 살짝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렇게 한창 콘솔로 개발하던 도중 저희가 기획했던 콘솔이 망하였고 결국 온라인으로 게임을 개조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 나도 안다고. 지금 문제가 생겼으니까 당신들이 이렇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날 찾아 왔겠지.’
자꾸 맴도는 대화에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라고 일갈하고 싶지만, 성질을 내리눌렀다. 상급자의 호통이 하급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는 것쯤은 군대부터 꿈속 미래를 두루 포함하여 숱하게 경험했다.
가만히 보며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솔직히 출시까지 쉬쉬하다가 출시를 하고 문제가 터진 뒤에 알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미리 찾아서 보고하는 쪽이 나아.’
곧 김훈 팀장이 말했다.
“게임의 전체적인 틀을 콘솔로 잡았기 때문에 이대로 출시하면··· 추후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응?’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게 될 경우 얽히고설킨 코드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듣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꿈속 미래의 MC에서 샤이닝 로드를 종료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개발사인 팬더그램이 고객이 원하는 수준으로 업데이트하기에 여의치 않다고 판단해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했는데, 그게 변명이 아니었던 건가?’
플레지를 위협하는 게임이네, 유료화 모델이 없어서 망했네, 축구복 때문에 망했네, 인 줄 알았는데 서비스 종료의 진짜 이유는 실제로 MC에서 공개했던 바로 이것이었다.
< 샤이닝 로드의 긴급 수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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