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 >
2002년 3월에 오픈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 샤이닝 로드는 유저들의 호응이 무척 좋았고 잘 나갈 때는 국내 동시 접속자 수 4만 명, 해외 동시 접속자 수 20만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여타의 게임사들처럼 이벤트를 진행했다.
'붉은 악마 유니폼!"
예전부터 응원단은 붉은 악마 훅은 86 ㅏ16 8005라는 명칭을사용했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붉은 악매라는 단어는 2002년 월드컵 때 아이콘으로서 또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흡사 스페인의 투우와 붉은 천처럼 정열과 열정, 활력의 상징이었다. 이들 붉은 악마의 응원과 함께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하니 긍정적인 이미지는 더 강화된다..팬더그램의 이
벤트는 이 유니폼을 게임 속에서 얻게 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기획은 그럴싸하지만, 훗날 피눈물을 흘리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만다.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합시다! 아자아자!
-붉은 악마유니폼은! 우리 선수가 1골을 넣을 때마다 회피율이 대폭 증가합니다!
-붉은 악마유니폼은! 대한민국이 승리할때마다 방어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붉은 악마파이팅! 아자자잣!!!!
특별 옵션들은 월드컵의 열기로 한창 뜨거워져 있던 당시 한국 게이머들에게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아울러 샤이닝로드와같은 귀여운 느낌의 게임을좋아하는 유저들이 대거 몰려와서 동시접속자수가 껑충 ! 뛰는 기쁨의 시기를 아주 잠시 누렸다.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왕창 몰려든 유저들은 모조리 '붉은 악마 유니폼'을 인벤토리에 챙긴 상태다. 볼 맛 나는 축구를 선보이는 한국의 경
기력 덕분에 유저들은 기분 좋게 한국을 응원하며 게임을 즐겼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미친 결과들이 나타났다.
- 한국 VS 폴란드 210 한국 승리!
- 한국 VS 미국 1:1 무승부!
- 한국 VS 포르투갈 1:0 한국 승리!
- 경축! 사상 최초 16강 진출!
이때부터 파국의 문이 열렸다.
아이템이 미치도록 강화되기 시작한다.
- [16강] 한국 VS 이탈리아 2:1
이탈리아를 상대로 2점이나 넣고 승리!
- [8강] 한국 VS 스페인 00 무승부
하지만 무려!승부차기 5:3이라는 결과로 한국이 승리한다.
- [4강] 한국 VS 독일 0:1 한국 패배.
- [3, 4위전] 한국 VS 터키 2:3 한국 패배.
여기까지가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이룬 결과
물이다. 대한민국에서 개최한월드컵은 그렇게 성황리에끝을 맺었다.
"이제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모든 응원을 끝마치고 자신의 인벤토리를 확인한 유저들은 경악을 금할 수 없게 된다.
3번의 승리.
2배, 2배, 2배=8배.
아이템의 방어력이 이만큼 올랐다. 회피성능 또한 감당할수 없을 만큼 상승해버렸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갓신규생성한 캐릭터한테 유니폼만 입혀 놓으면 곧장 고렙 존에서 고렙 몬스터들을 잡아버리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명실상부한 게임 세계관 최강 장비인 셈!
게다가이건 이벤트때아낌없이풀어버린 아이템이었다.
"개나 소나'라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국민당 한 벌씩 강제로 지급한 수준이다.
모든 유저가 장착한 지존 장비.
초보가 고레벨 몬스터를 두드려패고 미칠 듯이 레벨업!
기존 고레벨 유저들은 사냥 의욕이 뚝 떨어진다.
'개 망했지.
샤이닝 로드의 시장과 경제는 그렇게 뻥 터져버렸다.
물론 게임사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쓰기는 했다. 붉은 악마유니폼의 드롭 확률을 뒤늦게나마 낮추고 전용 조합, 레벨 제한을 걸면서 어떻게든 공급량을 낮추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월드컵 이벤트 자체는 괜찮았어. 의도는 좋았다고. 단지 16강도 못 가던 우리나라가 4강까지 가버린 게 문제였을 뿐이야."
붕괴하고만 샤이닝 로드는 현재플레지를 개발-운영하고 있는 엠씨소프트에 인수된다. 이후 어찌어찌 관리하다가결국에는 '지존장비 축구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버를 종료해 버리고 말았다.
남은 유저들에게는 '플레지2를 하세요~"
라며 선심 쓰듯7일 이용권을 주는 것.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샤이닝 로드의짧은 흥망성쇠이며 게임 업계에 두고두고 회자하는 망한
이벤트의 대명사였다.
"운이 좋네. 그렇잖아도 아쉽게 망한 게임 목록으로 메모해 놨었거든. 단지 개발사가 어딘지 몰라서 미뤼둔 상태였는데 이런 식으로 저절로 잡게 될 쿨이야."
내심 웃음이 나왔다.
하나 때문에 망했다. 이 얘기는 하나만 바로 잡으면 성공할수 있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이토록 탐나는 게임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따름이다.
하지만 티 내면 안 되니까, 마인드 컨트룰.'
자꾸만 씰룩이는 입가를 진지한 척 내리눌렀다.
"저희는 이 샤이닝로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해도과 언이 아닙니다. 현재 게임을 거의 완성하고 막바지 작업을하는 실정이지요. 그런데 도저히 일본 게임과 경쟁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온..."
"예?"
또다시 그의 말을 꼽었다. 오늘 이 아저씨가 나를 자꾸만
당황하게 만든다.
'샤이닝 로드는 온라인 게임이잖아. 그런데 이걸왜 이웃나라랑 왜 경쟁한다는 거야?'
정중하게 물었다.
"방금 일본과 경쟁을 한다고 하신 게 맞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샤이닝 로드는 86게임이 아니라 일본의 게임기인 드림패스트로 제작했으니까요."
"드림패스트요?"
"네. 저희는 아직 패키지 시장에 희망을 걸어보고 있었거든요."
'허헐!"
드림패스트는 일본의 유명 게임사인 젠가에서 만든 세계최초의 6세대가정용 게임기다. 경쟁 종으로는 닌덴도의 게 임큐빅, 소나의 플레이 스타일러2, 마이크루 소프트의 ZBOX가 있다.
내가세 번째로 깜짝 놀라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팬더그램의 앞날이 먹구름이었던 건 이유가 있었구나.
드림패스트는 시장에서 실패한콘솔이잖아. 뭐가이렇게곳곳에 지뢰들이 넘쳐 나냐?"
현재 시점으로 보면 게임기 중 가장 성공적인 콘솔이지만 미래가 매우 암울하다. 굳이 비유하면 샤이닝 로드와 비슷한 운명을 가진 게임기라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것들끼리는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김상윤 사장이 내 반응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만 국내 패키지 시장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해외 콘솔시장을 노려볼까 했습니다."
이제야 그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또,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했다.
"그런데 게임수준이 일본의 패키지 게임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진다, 이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게 어떤 제안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저희는 샤이닝 로드를 온라인 게임으로 수정하고 싶습니다"
"직접 하실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팬더그램은 이미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던 경력이 있다.
해당 게임이 망하기는 했지만 노하우는 쌓인 상태다. 마음먹고 샤이닝로드를 수정하려고 하면 충분히 자체적으로해낼 역량을 가진 회사였다.
이를 지목하자그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씁쓸한 대답을했다.
"돈이 없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재화와 역량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와서 게임을 추가로 수정할자금?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정황 역시 공감했다. 하지만 나는 내 식구들이 있고 책임질 직원들을 대표하는 위치였다. 돌다리로 두들겨야 하는 책임을 짊어진 만큼 세심하게 반문할필요가 있다.
"자본이라... 그건 게임이 성공만 하면 어떻게든 끌어올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때까지만 직원들에게 참고 기다려
달라고 하면 되고 이는 업계에서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김상윤 사장님이 그 외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는 않나, 의구심을 갖게 되는군요."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직원들의 급여를 미뤼본 일이 없습니다. 차라리 회사를 폐업했으면 폐업했지 직원들의 급여를 미루고 성공을 위해서 이를 저당잡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 믿습니다."
슬쩍 찔러보는 물음에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것은 썩 불쾌하지 않은, 기분 좋은 나의 오판이었다.
"이렇게 정상적인 사장도 있었구나.'
한국 경영자들의 마인드로 따진다면 딱히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잣대를 대 보면 정말 옳은 이야기였고 내가 보기에도 이게 정상이었다.
직원들은 매달 입금되는 급여만을 바라본다. 그 급여로 삶을 유지해나간다. 이 책임감과 무게를 견지하고 있다는 의미는 직원을 한낱 부속품이자종으로 보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으로 대우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급여를 못 줄 바에야 회사를 폐업하는 게 낫
다!는 이런 신조,
아주 마음에 든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저희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좋겠습니까?"
"샤이닝 로드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투자받고 싶습니다. 지분의 409%를 드리겠습니다."
"상당히 포괄적인 말이시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여쭘습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김상윤 사장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앞으로 반년."
계산을 끝내고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6개월간총 30억의투자를 받았으면 합니다."
30억.
'용기가 필요한 액수다.'
당장 개발을 못 해서 무너질 수도 있는 회사. 그곳사장이
40%의 지분을 넘기며 요구한 액수였다. 당장 액면가로 보면 이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킹덤 언더 플레임의 브랜드와 팬더그램의 역량.
나아가 미래를 보자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오히려 저렴하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나는 저들의 훗날을 보고 배팅하는 것이기에 팬더그램의 미래를 수중에 넣기로 했다.
"40억"
"예
딜을 건다. 손가락 네 개를 보였다.
"이렇게 합시다. 40억을 투자하지요. 지분은 51%를 원합니다."
"그건.."
"저는 제 산하에 들어오는 회사가 확고하기를 바랍니다.
409%라도 최대주주가 될 것은 확실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불확실한 지분을 가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머뭇머뭇하던 그가 숙고 끝에 대답했다.
"그렇게 드리면... 저도 보유하는 지분이 7%밖에 되지 못합니다."
"7%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경영권이 걱정이신가요?"
회사 직원들은 잘 안다. 내가 이렇게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며 씩 웃으면 그 미래는 무조건 현실이 되어왔다는 것을.
김상윤 사장은 처음 볼 테지만 분위기는 전해 받으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는 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게임만 잘 만드신다면 그건 평생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후 거듭 한숨을 내쉬었고걀팡질팡하는 심리가 표정으로 보일 정도가되었다.
재축하지 않는다. 침묵하며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악수를 청했다. 그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좋습니다. 8월 안에 20억을. 남은 시간 동안 나머지 20억을 투자하는 쪽으로 투자를 진행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땀으로 척척한 그의 손.
앞으로 지금과 같은 고민은 없게 해주겠다, 스스로 약속했다.
그와 일별한 후 두근거리는 가슴과 흥분의 여운을 즐겼다.
'팬더그램. 이 대어를 잡게 될 줄이야.'
한국에서 제대로 된 콘솔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회사.
이게 바로 팬더그램이다.
PC 패키지, 온라인, 콘솔 그리고 나중에 생겨날 모바일게임까지!
이 모두가 총망라된 게임제국이 내 머릿속에는 존재한다.
큰 그림은 있었다. 하지만 붓과물감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로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리 엔진만 완성된다면!'
큰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일은 함께 온다는 말이 있던가. 준비를 충분히 했기에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일주일이 지난 8월 27일.
대규모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아낌없이 투자한 보람이있다.
대전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새 게임을 만들어보자."
게임 개발 소프트웨어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낭보였다.
<새로운 도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