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드 리그
그의 말에 송진호가 코웃음 쳤다.
“에이~ 형. 솔직히 ‘이길 줄 알았는데’는 좀 아니죠. 초반부터 끝까지 제가 다 몰아쳤거든요?”
까불까불 약을 바짝 놀리는 모습이었다. 사장인 나만 없었다면 확 쥐어박았을 텐데, 하는 임동수의 기색을 보며 나는 어떤 방식으로 조언해줄지를 고민했다.
선수들 아니라 그 누구라 해도 사람은 자존심이 있다. 윗사람이고 조언하는 처지라고 해서 상대방의 심정을 무시한 채 내 할 말만 툭 던져서는 곤란하다. 때문에 김요환 때에도 ‘입구 막기를 하세요.’라고 말로 하지 않고 게임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는 게 나으려나.’
생각하는데 임동수 선수가 먼저 도움을 청해왔다.
“사장님. 솔직히 다른 사람들한테는 자존심이 상하는데 사장님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혹시 지난 번 요환이 때처럼 토스 쪽에도 무언가 해결책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존재한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게임 해볼까요?”
“아뇨. 제가 아니라 지난번 요환이 때처럼 사장님이 게임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는 관전하며 분석하는 편이 훨씬 이해하기 좋은 모양이었다. 승낙하며 물었다.
“토스로 어느 쪽을 상대하는 것이 보고 싶습니까? 버그? 휴먼?”
“요즘 버그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기왕이면 버그를 상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곽도경과 연성철이 움찔하고 진태목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들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김요환 선수는 아쉬워하고 있어.’
??픽? 다르긴 다르다.
그때 송진호가 손을 들었다.
“버그라면 제가 나서야죠! 사장님을 상대해드리겠습니다!”
“또 너냐?”
“헉! 사장님. 또 너라니요? 저 상처 받습니다!”
“그러냐? 미안.”
“이번엔 제가 꼭 이길 겁니다!”
너무 까불어서 그런 걸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말이 쉽게 나와 버렸다. 그래도 송진호 선수는 아랑곳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래서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지도 모른다.
외국어 회화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어설프게라도 자주 써보는 쪽이 훨씬 효율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번에는 토스로 버그를 상대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게임이 이루어지려는 데 박민희 매니저가 말했다.
“사장님. 방은 제가 만들게요. 그래도 되죠?”
직접 방을 만든다는 것은 옵저버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세요.”
이미 이번 리그를 위해서 스드 리그의 주최 측은 옵저버 맵을 만들어둔 상태다. 곧 옵저버로는 임동수와 박민희 매니저가 들어왔고 그 외 김요환, 연성철, 곽도경, 진태목까지 모두가 하던 게임을 그만 둔 채 둘의 화면을 관전하였다.
‘나쁠 건 없지.’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상승한다면 그것은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이다.
“다들 게임을 관전하는 건 좋은데 상대에게 전략이 노출이 될 수 있을 수준으로 대화를 하고 그러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당연하죠!”
그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스드 리그의 초창기에는 이런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못하게 일어났다.
‘일명 귀맵.’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불리한 상황이 되면 ‘아아! 안 돼요! 거기 로커! 로커!’라던가 ‘일꾼 아래! 아래!’라고 말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외쳤다. 그 결과 해당 선수는 알아차리지 못해야 정상인 상대의 전략에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이후로는 엄청 큰 소리를 틀어서 선수들이 팬들의 소리를 못 듣게 했다지.’
참으로 다사다난한 사고들이었다.
우르르 몰려든 시선들을 보며 송진호 선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 다들 구경하시는 거 보니까 괜히 긴장 되네요~”
“진호야 걱정할 거 없어.”
“역시 성철이 형만 저를 생각하는군요!”
감동한 것 같은 얼굴을 하던 송진호 선수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우리는 어차피 네가 진다는 것을 다 알아. 그러니 마음 편히 해.”
“아! 그게 뭐예요!”
발끈하는데 핀잔들이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뭐냐? 너 설마 사장님을 이길 생각으로 하는 거야?”
“쟤가 정신머리가 없다니까. 쯧쯧.”
“생각해봐. 너나 요환이가 딱 막혔을 때 듣도 보도 못한 전략을 바로 알려주시는 분이야.”
“이번에도 또 다른 전략이 나올 걸? 너 그거 상대할 수 있겠어?”
“쳇. 두고들 봐요! 제가 꼭 이길 테니까!”
진호가 승리를 위한 다짐을 하거나 말거나, 구경꾼들의 관심은 이미 그에게서 벗어나 있었다.
이윽고 게임을 시작했다.
- 5··· 4··· 3··· 2··· 1···
- Start!
맵은 딥 셔플이었다.
이곳은 헌터 맵을 6인용으로 수정한 지역인데 사실상 헌터와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11시와 12시, 6시와 7시는 매우 가깝고 나머지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다.
‘내 위치는 5시.’
일단 상대가 버그기 때문에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위의 4가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 매우 다행스럽다 할 수 있었다.
‘진호는 6시일까 1시일까.’
어디를 먼저 보내서 정찰을 해야 할 것인가? 전략게임에서 상대를 정찰하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첫 정찰을 선택한 방향이 게임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렇게 큰 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의 선택은 6시.
‘럭키.’
운 좋게 바로 찾았다. 상대의 일꾼이 정찰이 온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송진호 선수 역시 나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는 자신의 빌드 상황을 생각하면서 거리를 계산하지.’
아직까지는 버그의 하이로드가 정찰을 오지 않은 상태다. 이는 진호의 하이로드는 5시로 정찰을 떠났다는 이야기이고 내 쪽으로는 두 번째를 생산해냈을 때 보낼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 상황에서 송진호가 선택할 유닛은 빠른 저글링이 된다.
‘5시 6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결국 1칸. 가까운 거리.’
이에 대응하는 내 전략은 바로 더블 넥이었다.
초반 방어능력이 매우 우수한 방어건물인 '포토 캐논'을 활용해서 앞마당을 빠르게 가져간다. 이후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고급 테크와 다수의 유닛을 확보하는 것이다.
단, 이 전략에는 두 가지 난제가 항상 함께 했다.
- 상대의 초반 찌르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 상대 역시 나와 동일하게 자원을 확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때문에 더블넥은 토스의 전략에서도 정파보다 사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는 후에 포스토스 최초로 양대 리그를 모두 석권하는 강인 선수에 의해 양지로 올라서게 된다.
‘맞아. 가정형편이 굉장히 어려워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지. 유리공장에서 일하다 질병마저 얻을 정도였으니까 이번 판을 끝내면 바로 찾아봐야겠어.’
구시대 최고의 포스토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업적의 주인공을 깜빡 잊고 있었다. 일찍 연락하고 도움을 주면 그가 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건강하게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게임은 쭉쭉 진행되었고 관전하는 팀원들 사이에서는 토론이 이어졌다.
“일꾼이 왜 저렇게까지 멀리 나와서 파이톤을 짓는 거지? 동수형,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아니. 전진 배치라고 하기에는 고작해야 앞마당이고··· 굳이 이렇게 지으실 필요가 있나?”
“혹시 휴먼처럼 입구를 막으시려는 거 아닐까?”
“에이. 토스는 휴먼처럼 건물을 띄울 수도 없어요. 그렇게 했다가는··· 어?”
그럴리 없다고 말하던 임동수의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입구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 막으시네요?”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하시려는 거지?”
“아!”
“왜? 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임동수의 탄성에 모두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이거 그거잖아요. 임기석 선수가 잘 쓰는 거.”
“더블넥?”
“네.”
“더블 넥은··· 그렇구나!”
이번에는 김요환 선수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감탄했다.
“요환이형. 왜요? 뭐 알아냈어요?”
“그래. 바로 그거였어.”
“말 좀 해달라니까 혼자 감탄만 하고 있네. 에이!”
홀로 주억거리는 김요환을 보며 답답해하는 동생들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박민희 매니저가 말했다.
“더블넥은 임기석 선수는 물론이고 다들 종종 사용하기는 해요. 그런데 그들 중 아무도 저렇게 입구를 막고 한 사람은 없었죠. 핵심은 심시티 같아요.”
“이제 이해했어요!”
“아하!”
“이야~ 우리 매니저님. 확실히 전체를 보는 눈이 남다르신데? 이참에 배워서 프로게이머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때요?”
“선수는 뭐 아무나 하나요? 저는 손이 안 따라줘서 안 돼요.”
“그거야 연습하다보면 느는 거지. 아무튼 그걸 눈치 챈 요환이 형이나 매니저님이나 대단하십니다.”
선수들이 포인트로 삼고 보는 핵심이 바로 첫 번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초반 찌르기는 치밀한 심시티로 방어한다.’
토스 최고의 전략가라고 불렸던 강인조차도 이 더블 넥을 완성시키기 전에는 시도만 하다가 번번이 패배했었다. 그 탓에 ‘져블넥’이라는 오명을 갖기도 하였다.
그의 성과를 당겨쓰는 셈이지만 나는 강인 선수의 건강과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상쇄하기로 했다. 전략과 평생의 건강을 맞바꾼다손 치면 절대로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심시티는 휴먼만의 장점이 아니지.’
이는 모든 종족에 통용 되는 것이며 특히나 방어적인 성향을 가진 플레이어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1 파이톤, 1 게이트, 1 차지.
이것이 기본적인 방어를 위한 심시티 구성이다. 완성도 높은 심시티이며 질럿이 두 마리만 되어도 저글링은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 여기서 버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 계속 저글링을 시도할 것인가.
- 휴드라로 넘어갈 것인가.
그리고 버그의 결정에 따라서 토스의 대응 역시 당연히 변경된다.
버그가 저글링에 집중한다면 질럿을 이용한 싸움으로 응전!
휴드라로 넘어간다면 포토 캐논을 더 많이 짓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송진호 선수의 선택은 전자의 것이었다.
‘일단 저글링으로 밀어붙여 보시겠다?’
무의미한 시도일 뿐이다. 예정된 결과로 송진호 선수의 저글링들은 토스의 진형을 통과하지 못했고 외려 큰 피해만 받고 말았다. 이러면 버그는 불가항력으로 어쩔 수 없이 체재를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버그의 선택은 아주 단순해진다.
기본적으로 레어를 진화시키면서 휴드라 로커 조합으로 가느냐, 공중 유닛인 모탈로 가느냐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뭘 해도 결과는 정해져 있지.’
지금 같은 버그의 운영으로는 완성 된 더블 넥을 만나면 이리저리 휘둘리다 끝나는 수밖에 없다. 특히나 송진호 선수 같은 가난한 플레이는 더더욱 그렇다.
“진호도 앞마당 먹네. 그래. 먹어야지.”
“같은 자원이면 버그가 훨씬 유리한 거 아냐?”
“3개의 멀티를 같이 돌리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앞마당만 먹은 수준에서는 버그가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겠죠?”
“하긴, 버그는 자원에 여유가 생기는 순간 병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까 앞마당에 가스가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 맵은 앞마당에 가스가 있는 맵이다.
“사장님 질럿 계속 나오는데?”
“굳이 멀티까지 돌리시면서 이러실 필요가 있나?”
선수들은 엉뚱하다는 생각보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토스 유저인 임동수 선수였다.
“와··· 진짜 이건 엄청난 거 같아요.”
“엄청나다고?”
“왜? 뭐가?”
“보시면 계속해서 버그가 자원을 허비하도록 소모전을 하고 있어요. 이러면 당연히 먼저 멀티를 한 토스가 유리하죠. 게다가 어떻게든 시간을 끄는 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버그 일꾼을 꾸준히 잡아내잖아요.”
“아!”
“계속해서 오는 질럿을 막으려니 진호의 입장에서는 병력을 뽑거나 성큰을 지어야 하는데, 버그는 특성상 그러면 일꾼이 늘어나지 못하죠.”
그러는 도중에 토스의 공중유닛 생산 건물인 스페이스 게이트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생산되는 유닛은 수송선과 오직 대공 유닛만 서로 공격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닌 콜시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죠?”
“콜시어를 너무 많이 뽑으시는데···”
“스카웃이 낫지 않나? 저건 너무 약하잖아.”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저라도 콜시어 뽑을 바에는 스카웃을 뽑죠.”
이번에는 임동수 선수를 포함한 누구도 추측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해결법을 보여줄 차례지.’
- 상대 역시 나와 동일하게 자원을 확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해답은 바로 견제였다.
일명 스플레쉬 토스인데 콜시어와 디버 조합 견제에 매우 탁월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뭉쳐서 날아다니는 비행유닛을 본 송진호가 김치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에이~ 사장님. 고작 오는 게 콜시어에요? 대세는 스카웃 아닌가? 이상한 플레이를 하시다가 져도 저는 몰라요?”
스카웃은 워낙에 강력해서 하늘의 왕자라는 별명이 붙은 공중 유닛이다. 물론 대공전에서는 강력하지만 땅에는 딱총을 휘갈기는 정도일 만큼 공격력에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공중전을 선택할 때는 스카웃을 선택하지 콜시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뭉치면 엄청나지.’
버그의 인구수를 담당하는 하이로드는 공중유닛이다. 게다가 아무리 이동속도를 업그레이드 한다손 쳐도 콜시어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4기 이상의 콜시어가 붙으면 버그는 토스에게 휘둘리기 시작하는 타이밍이었다.
하물며 현재의 내 콜시어 숫자는 6마리다.
“어?! 어?!”
순식간에 버그 종족의 하이로드 4마리가 잡혔다. 송진호 선수는 다급히 하이로드를 휴드라가 있는 곳으로 옮겼지만 이 역시 내가 그린 그림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수송선 출동.’
휴먼의 탱크와 비견되는 토스 족의 강력한 한방 유닛. 디버를 수송선이 싣고 버그족 본진으로 들어갔다.
2003년도까지 디버 드롭은 말 그대로 공포였다. 이유는 이 당시의 일꾼들은 부대 이동시에 서로 길이 엉키면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일꾼으로 앞마당을 클릭해줌으로 한 줄로 이동했지만, 현 시점은 해당사항이 없다.
디버의 범위형 포탄 한 방에 일꾼들이 8마리씩 터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 펑!
- 쿠엑!
- 취엑!
“이거 뭐야!?”
순식간에 버그의 일꾼들이 단체로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