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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고 게임하고
“이걸 그냥 레벨업하고 ‘아 좋다’해버리면 섭섭하지.”
회사의 대표가 이런 좋은 광고거리를 그냥 사장시켜서야 쓰랴. 플레지에 문외한인 사람들이라면 실감하지 못할 테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안다. 최초의 50레벨이 생각보다도 강력한 임팩트를 지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지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영역을 넘어선다는 상징과도 같기에 상당한 이슈를 만들어내기 적합하다. 그러니 동네방네 알려서 우리 플랫폼 광고에 콘텐츠 확보도 하는 일거양득의 소재였다.
‘김정규 팀장에게 이야기 하면 되겠지.’
동행할 플레이어는 오프로더와 본토행티켓으로 정했다.
“우리 작가님들이 글을 잘 쓰시거든.”
초대하여 함께 사냥하면서 실시간으로 50레벨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한 편의 게시물로 정리되어 올라왔다.
제목은 「‘특별편’ 본토행티켓의 첫 용던 모험기 (feat. 최초의 50레벨 구운몽)」였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썼으려나?’
기대되는 마음으로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했다.
딸깍!
본문 내용이 펼쳐졌다.
『화전민 마을.
“무법지대라는 이름이 정말 어울리는데.”
낡은 울타리와 널빤지 같은 문짝이 방어 수단의 전부인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물자가 풍족하지 않으니 사람들 역시도 생필품만을 겨우 보유할 정도였고 여타 도시에서 볼 법한 큰 건물이나 활발한 거래현장은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각박해.’
숲 속에 있으면서도 척박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마을에도 왁자지껄하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는 존재했다.
바로 주점이다. 먹고 살기 버겁다는 표현을 하면서도 술집이 성황리에 운영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화전민 마을의 인물들 대부분이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술을 마셔댔기 때문이다.
나는 드센 사내들의 패설이 삐져나오는 주점을 잠시 바라보았다.
‘구할 수 있을까.’
마을의 사내들은 대부분 밤이 되면 큰 술통을 놓고 자신들이 오늘 얼마나 대단한 사냥을 하고 돌아왔느냐에 대하여 허풍들을 늘어놓았다.
일부는 주사위 등으로 노름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방탕한 듯 유지되는 이 마을의 질서에 외부인인 내가 끼어들었다.
“어이. 이 마을에서 본적 없는 것 같은데? 너 뭐야?”
이맛살을 찌푸리는 그는 혼돈의 성향을 가진 붉은 이름의 나이트였다. 아마도 이 화전민 마을을 거점으로 삼고 주변을 약탈하는 자들 중에 하나로 보였다.
‘환영해주기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불쾌해할 줄은 몰랐다. 아마도 작은 마을이라 그럴 것 같다. 약탈자가 아니면 오크 요새의 수호자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새로운 이방인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로열인 모양인데, 이 주변은 너처럼 여린 놈들이 사냥을 다닐 정도로 어수룩한 동네가 아니야. 당장 꺼지는 게 네 놈의 목숨과 아이템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일 거다.”
애송이 보듯 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바로 대꾸했다.
“함께 용의 협곡을 찾아갈 동료를 구하러 왔소.”
새롭게 퍼진 소문.
전설의 한 토막을 직접 보고자 왔다. 이 포부를 밝히자 사내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뭐? 용의 협곡!?”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잠시일 뿐, 이윽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낄낄 거렸다.
“용의~ 협~ 곡? 이봐들! 들었나? 용의 협곡이라는군!”
그의 말에 주점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군. 어리다, 어려!”
“풋내기 모험을 할 거면서 로열은 왜 선택했담?”
“이봐, 여기 있는 놈들 전부가 본토에 가면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놈들 투성이야. 그런데도 용의 협곡은 엄두도 못낸다고.”
“거긴 화말의 전력을 통째로 가져다 놓아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동료를 찾아? 너 같은 여린 놈이랑 같이 갈 사람이 있겠냐?”
안줏거리 삼아서 툭툭 내뱉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일리는 있었다. 지룡 안사락스가 존재한다는 용의 협곡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며 로열인 내가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동료를 구하는 거야.’
혼자로는 버겁더라도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다. 또한 겁내는 저들과는 달리 누군가는 용의 협곡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찾는 이는 바로 그러한 실력자였다.
‘분명히 여기 있을 텐데.’
엘프들의 거주지인 엘븐 우즈를 제외하고 용의 협곡에서 가장 인접한 거점지역이 화전민 마을이다. 필시 실력자는 중간마다 이 마을에서 숨을 돌릴 테니 노력하면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주점 내의 상황을 보니 이는 포기해야 할 성 싶었다.
비웃던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어이, 용감하신 로열 양반. 레벨이 몇이유?”
“35요.”
“오오! 35레벨!”
“푸하핫!”
아주 대놓고 웃음을 터트린다.
“용의 협곡을 갈만큼 강력한 동료를 구하는데 정작 본인은 35레벨?!”
“깍두기지. 완전히 깍두기야. 이봐, 사냥에 도움이 될 엘프나 매지션을 데려갈까, 망토 풀풀 날리면서 약해빠진 로열을 데려갈까? 생각은 해 본 거야?”
그들의 비웃음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군주 클래스로 35레벨이라는 건 어느 정도 인정해줄만 하지만, 여긴 그 정도의 레벨은 수두룩한 곳이야. 그리고 40을 넘긴 나조차도 용의 협곡은커녕 사막만 가도 오래 버티지 못해. 그런데 용의 협곡? 미친놈.”
“거기에 모자란 놈을 얹자고.”
“얼간이도 하나 더!”
‘···오늘은 안 되겠어.’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한창 놈들의 비웃음을 듣다가 이내 포기하고 주점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가장자리에서 묵묵히 있던 한 소드 엘프가 내게 말했다.
“용의 협곡을 가겠다고?”
처음에는 다른 자들과 같이 나를 비웃기 위해 내 앞에 온 걸로만 생각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엘프는 태연자약하게 와서는 권유하는 것이었다.
“함께 가도록 하지.”
옆 동네의 친구 집으로 놀러가자는 듯한 여유로움이 돋보였다. 나는 한참 놀림 받은 처지인 만큼 그를 의심하고 물어보았다.
“용의 협곡에서 사냥을 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의도를 캐내려는 이유는 이 엘프가 나와 비슷한 수준 같았기 때문이다. 장비를 보거나 짐작되는 레벨을 모두 고려해도 나를 조금 웃도는 정도이지 용의 협곡에서 사냥할 실력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기존에 날 비웃던 사내들과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지금 자살을 위해 떠나는 여행? 뭐 그런 건가?”
“죽고 싶으면 뭘 못해.”
“신종 자살방법인가 보네.”
저들의 이죽거림에도 엘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처음이다.”
단답형의 대답을 듣자 일순간 나를 비웃던 주점의 약탈자들이 이해됐다.
‘뭐지? 병신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아 보인다.
‘그래도 같이 가겠다고 해주는 게 어디냐.’
내심 위로하면서도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엘프가 말했다.
“하지만 함께 갈 사람은 처음이 아니지.”
“다녀온 사람이 있다고요? 동료인가요? 누구죠?”
연거푸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언급할 이름이 아니야. 따라오도록.”
패기 넘치는 모습에 엉거주춤히 나섰다.
이윽고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이트를 마주하게 되었다.
세계 최강의 나이트.
켄헬의 용이자 최종 보스.
자타가 공인하는 강함의 정점.
‘구운몽!’
그가 우두커니 서서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니 왜?’
난데없는 거물의 등장에 마냥 얼떨떨할 따름이다.
묻고 싶은 것이 엄청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그때에 최강의 기사가 말했다.
“준비 되셨으면 이동하지요.”
“아··· 예!”
앞장서는 그의 뒤를 황급히 쫓아갔다.』
“어우··· 이 호칭들은 뭐야?”
괜히 머쓱하고 손과 발이 퇴행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읽는 맛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텍스트로 머리위에 띄웠을 메시지들이잖아. 그런데 저런 식으로 하니 정말 다르네.’
비록 표현방식이 과장되기는 했으나 덕분에 모니터 속 2D그래픽에 생동감이 부여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치 약탈자들의 표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고 당황해하는 애송이 군주의 모습이 장면처럼 펼쳐진 듯하였으니까.
여기서 나는 다른 독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했다.
그러나 마우스 휠을 돌려서 화면 밑에 내려가지는 않았다. 댓글이 좋고 나쁨에 따라서 내 기분 역시 영향을 받을까 우려한 탓이다.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다 읽고서 호인지 불호인지를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딸깍!
『용의 협곡.
그곳은 오크 숲에서 강줄기를 타고 한참을 올랐을 무렵부터 나타났다. 아름다웠던 숲과 물이 사라지고 황폐한 흙만이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이곳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제가 처리할 테지만 한 두 마리정도는 여러분이 잠시간은 맡으셔야 하거든요.”
“넵!”
물약과 마법을 아낌없이 써서라도 반드시 버텨내고 말리라, 다짐한다.
반면에 오프로더라는 이름의 엘프는 되물었다.
“우리 둘은 약해서 사냥할 정도가 못됩니다만?”
‘약하기야 하지. 그런데 당당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와는 달리 그는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 레벨이 발을 디딜 곳이 아니고 물약을 써봐야 별반 도움은 되지 못한다.
쿡 찔러오는 지적에 구운몽님은 간단히 대답했다.
“버티는 것은 가능하지요?”
“피해 다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야.”
어깨를 으쓱하고 장비 일체를 점검하는 오프로더였다.
‘태도만 봐서는 이쪽이 더 고수 같은데.’
최고라는 명성 때문일까. 구운몽님에 대해 거만하리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그는 오만하기보다는 겸손했고 매너 역시도 좋았다. 오히려 이 남성 엘프의 패기만만함이 구운몽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머지않아서 바로 드러났다.
본토의 필드에서 본 것보다 무장 상태부터 다른 해골병사들이었음에도 그의 칼에는 한낱 오크와 마찬가지였다.
- 콰직!
- 쿠직!
둔탁해 보이는 양손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맥없이 으깨져서 나뒹굴었다. 너무도 손쉬워 보여서 ‘용의 협곡이 생각보다 만만한 건가?’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 오해는 딱 한 마리를 직접 상대하고는 산산이 부서졌다.
여섯 마리가 달려들 때는 최강의 나이트가 놓치는 녀석이 존재했다. 여기서 한 마리를 상대했는데 그때마다 체력이 뭉텅뭉텅 줄어들었다.
“군주 클래스가 뭘 당당히 맞서!? 돌아!”
“으악! 악!”
언제 봤다고 다급해지자 막말을 일삼는 오프로더의 경고대로 몬스터의 공격을 당할 때는 주위를 돌며 시선을 끌었다. 그러다 타깃이 바뀌면 상대쪽에서 곡소리가 나오고 내가 달라붙어서 공격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우리가 잡는 거랑 구운몽님의 것은 다른 건가? 뭐가 왜 이렇게 힘들어?’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라는 점이다.
또한 동시에 펼쳐지는 현실이기도 했다.
엘프인 오프로더와 함께 빙글빙글 돌면서 몸부림치는 점, 구운몽님은 적게는 셋에서 많게는 여섯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전투를 벌이는 것까지 모두가 말이다.
‘괜히 주점의 약탈자들이 겁을 낸 게 아니구나. 우리끼리만 왔으면··· 어휴.’
감탄하면서도 끔찍하게 강한 몬스터들로 진저리가 날 즈음이었다.
- 용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을!
용의 협곡 깊숙이 들어섰을 무렵, 나는 과거 본토 던전의 캐스터에게서 느꼈던 공포를 다시금 떠올렸다.
‘흑장로!’
마법형의 보스답게 놈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마법을 쏘아댔다.
‘아무리 구운몽님이라도 혼자서는 위험할 거야.’
과거 본던에서 마주쳤던 보스들을 상대하는데 30명이 넘는 인원이 달려들었고 그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사망했다.
그만큼 보스 몬스터는 위험하고 강력하다. 이번에도 시선을 끌고 그가 공격할 틈을 주기로 했다.
“구운몽님! 잠시만 기다리시면 이 상급 해골을 해치우고 함께 공···”
그러다 말을 중간에 끊었다.
- 크억!
흑장로가 죽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었지요?”
“···협곡이 참 넓네요?”
“그런 편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코카트리스가 등장하니 한층 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넵.”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속도로 보스를 처리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재촉했다.
나는 멋쩍게 헛기침을 하다가 옆의 엘프를 힐끗 보았다.
“굉장히 바쁘신 듯한데, 뭘 그리 적으십니까?”
“최강의 나이트와 함께 하는 중이니까. 타격치와 공격속도, 물약 소진 등등에 대해 궁금해 할 사람들이 많을 테지. 그리고 이런 정보들은 돈이 된다.”
“아··· 네.”
이 엘프는 조금 전의 내 뻘쭘한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것이 틀림없다. 내심 신경이 쓰여서인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초면부터 자꾸 반말이신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게임에서 그런 걸 따지나?” 설정 상 엘프의 나이가 많다고 보는데?“
‘···내가 꼭 친해져서 오프라인 때 면상을 보고 말겠다!’
그 뒤로는 잠시간 편하게 구경하면서 협곡을 다니는 시간을 가졌다. 이 지역을 무대로 좋은사람들 길드의 실력자들이 상주하면서 사냥하는 탓에 몬스터들이 부대 단위로 몰리는 상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부동의 성주 길드다워. 싹 다 강해.’
그러던 중, 구운몽님이 경고했던 몬스터를 보게 되었다.
코카트리스!
닭의 머리에 공룡의 몸통을 지닌 몬스터.
필드 곳곳에서 여럿이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보스몬스터라고 착각했을 외형이었다.
‘그래도 잡아 봐야지.’
역시나 구운몽님이 5마리를 맡는 사이에 누수 된 녀석 하나가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아무리 30레벨대의 엘프와 로열 클래스라고 해도 일반 몬스터 한 마리를 못 잡겠는가.
호기롭게 마주 공격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내 선택은 잘못되었다.
‘공속이 빨라!’
- 코콕!
- 코콕!
- 코콕!
코카트리스는 느릿할 것 같은 덩치와 다르게 매우 민첩하게 부리로 찍어댔다. 그 탓에 내 머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했고 그 피해량은 물약의 회복속도를 앞설 정도로 빨랐다.
“몇 번을 말해? 돌아!”
다시금 오프로더에게 한 소리 듣고는 맞상대를 포기할 즈음이었다.
코카트리스에게서 빔이 뿜어져 나오더니 몸이 굳고 말았다.
‘석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내게로 무자비한 쿠기 공격이 가해졌다. 그나마 포션을 마시며 근근이 버텼고 그나마도 버거워서 도망치려던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아찔함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었으나 석화 된 상태로는 그조차도 불가능한 상황!
‘망했다···!?’
체력이 50이하로 떨어졌던 그때, 코카트리스의 머리가 썩둑 잘렸다.
“괜찮으십니까?”
피를 쏟으며 땅에 떨어지는 대가리 옆에는 구운몽님이 서 있었다. 뒤에는 이미 네 마리의 코카트리스 시체들이 널브러진 상태였다.
여기서 확실하게 알았다.
‘그냥 닥치고 구경이나 하자.’
이때부터는 돕고 말고의 생각 따위는 말끔하게 지운 채 졸졸 따라다니는 데에 집중했다. 싸움에 일조를 한다는 것보다는 처음 생각대로 ‘용의 협곡을 보고 싶다.’라는 목적에 맞춰서 부지런히 보고 다닌 것이다.
마음을 비우니까 몬스터들 하나하나를 오프로더처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며 자연스럽게 그의 장비에 관심이 갔다.
- 크와아아아!
“드레이크군요.”
흑장로에 이은 보스 몬스터, 드레이크.
내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드래곤이라 할 만큼 화염을 뿜어대며 거대한 한 쌍의 날개로 종횡무진 하는 괴물.
하지만 구운몽님에게는 좋은 경험치 덩어리에 불과해 보인다. 화염 브레스를 피하지도 않은 채로 무시하듯이 맹공을 가했고 드레이크는 등장시의 살벌함과는 달리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쓰러졌다.
‘무슨 보스 몬스터들을 일반 몬스터처럼 처리하지? 드레이크 짝퉁인가?’
시체와 함께 엄청난 양의 아이템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보스급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처리했다. 같이 구경하던 오프로더 역시 같은 감상을 내뱉었다.
“코카트리스보다 두 배는 빠르게 처리. 브레스는 자체적으로 반감하는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