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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김사범, 끝, 그리고 시작

5월. 주말 경기를 앞둔 코메리카 파크.

“그래서, 너하고 대결한 다음에 폴리가 재계약을 한 거라고?”

“그렇지. 아니라면 왜 그런 뜬금없는 타이밍에 계약했겠어?”

“구단하고 줄다리기를 한 거겠지. 그렇게 지고 무서워서 피했다고? 폴리가? 그럴 리가.”

“붐, 네 차-례야!”

웬일로 배팅 케이지까지 찾아온 케이시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순서가 돌아왔다.

따악-

딱!

빠아악!

하늘은 맑고, 날씨도 좋다. 배트도 생각한 대로 뻗어 나가는 게 컨디션도 최상.

‘오늘 정말 사고 하나 치겠는데? 이 정도로 컨디션이 좋으면…… 3개? 2개? 어쩌면 4개도…….’

이왕 4개를 칠 거면 사이클링 홈런도 도전해 봐야지. 일단 경기 초반에 녀석들을 쪼아서 만루를 만든 다음에 하나 치고, 그다음엔…….

“야! 김사범!! 야!!”

날 부르는, 다급한 음성.

심지어 한국말이다.

“왜? 너 야구장 안에서는 한국어 안 쓴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그게 중요하냐!! 빨리 나와! 가야 해!”

“어딜? 뭐 트레이드라도 됐어? 나 거부권 있는데?”

“이 멍청한 새끼야! 지금 하별이하고 수리하고 둘 다 병원에 실려 갔다고! 진통이래!”

아.

“야! 야! 같이 가!”

뛰었다.

주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말든.

그냥 뛰었다.

“붐, 무슨 일…….”

론이다. 찾느라 시간 낭비는 안 해도 되겠네.

“후욱, 후우…… 론. 휴가요.”

“휴가?”

“킴하고 저, 둘 다.”

“무슨 일이길래? 아, 혹시 고국에 문제가 있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뇨. 애가 나옵니다. 둘 다요.”

“애……? 아, 알겠네. 바로 가 보게.”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체력관리고 뭐고 경기에서 미친 듯이 치고 달렸다.

“야, 허어어업. 후. 그렇게 빨리 튀어나가면…….”

“말 아끼고 뛰어. 바로 주차장으로 가자.”

“아니, 짐은?”

“그게 문제야?”

복도를 뛰는 내내 심장도 터질 것처럼 뛰었고, 내 마음은 이제 곧 처음으로 만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 * *

“흐윽…… 흑…… 후우…….”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병원 가는 길이 마침내 끝이 나고. 나는 김태연과 함께 분만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 나 너무 아파……. 우리 그냥 제왕절개 할까? 아까 의사 선생님이 물어봤는데…… 그냥 하겠다고 했는데……. 그냥 할 걸 그랬어. 으으흑…….”

수리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내게 항상 했던 말이 있었다.

“자기, 난 무조건 자연분만으로 낳을 거야. 그게 아기한테도 좋대. 내가 너무너무 아파서 제왕절개를 하자고 말해도 무조건 말려. 무조건! 알겠지?”

“그…… 수리, 근데 몸 상태도 그렇고…….”

“아냐, 난 할 수 있어. 알지? 나 강한 거?”

“응…….”

“약속이다?”

수리와 손가락까지 걸어가며 했던 약속.

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자궁문이 5cm까지만 열리면 무통 주자 맞을 수 있대. 알지?”

“그게 언젠데……. 나 그냥 제왕절개 할래, 할 거야……. 너무 아파…….”

“그럼, 일단 기다려 보다가 정 안 되겠으면 하자. 지금은 조금만 참아 보고.”

꽤 큰 침대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던 수리가 날 매섭게 노려봤다.

“아플 거 다 아프고 수술해 봤자 뭐해!”

“아…….”

“흐으윽…… 흑…….”

급기야 눈물을 보이는 수리.

‘사범아, 침착하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대로. 그대로만 하면 돼.’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천천히, 천천히 숨 쉬면서…….”

수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한 손은 수리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은 수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작은 몸이 계속해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프고 무서운 건가? 출산이라는 게?’

남자니까 모르는 고통.

하지만 이렇게라도 수리의 아픔을 나누며…….

“치워!”

순식간에 치워진 내 손.

“아니, 그, 힘내라고…….”

“알아. 아니까…… 그냥 거기 앉아만 있어. 제발.”

“어? 어…….”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었다.

* * *

- 으애앵! 으앵!

“내 아기…… 이리 온……. 흐흑, 못생겼어……. 고구마 같아…….”

수리는 촉진을 위해 들어온 간호사, 의사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제왕절개를 외쳤지만, 결국 제왕절개를 할 수 없었다.

분만에 있어 프로인 그들은 수리를 어르고, 때로는 혼내며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데 성공했고, 주사를 맞은 수리는 더 이상 제왕절개를 입에 담지 않았으니까.

“그, 저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요?”

“지금 엄마와 충분한 교감을 나눠야 해요. 곧 젖을 물린 다음에 씻기러 나올 테니 그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나도 보고 싶다. 빨리 보고 싶다. 원숭이를 닮은 못생긴 우리 딸.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간호사의 손에 안겨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말했다.

“쭈글쭈글하네.”

* * *

[2027 월드시리즈 4차전. 종료까지 단 한 이닝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앞서나가고 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입니다.]

[바로 직전 이닝이죠? 8회 말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 상황에서 케이시 마이즈 선수가 타구에 엉덩이 쪽을 맞았거든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지만…… 아마 투수를 바꿀 겁니다.]

[네, 맞습니다. 제이슨 폴리 선수가 나오는군요. 시즌 70경기에서 69.1 이닝을 소화하며 63세이브,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운 선수입니다.]

[원래 포심 패스트볼 - 체인지업의 투 피치 투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청난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 장착했어요.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끔찍한 일입니다.]

[바로 그 끔찍한 일을 오늘 LA 다저스 타자들이 당하겠네요. 연습 투구가 끝나고, 어쩌면 이번 포스트시즌의 마지막 이닝이 될 수도 있는 LA 다저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2021년부터…… 2027년까지면…… 7개인가? 연승은…… 76경기. 이번 경기까지 이기면 77경기.’

수아를 낳은 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더니, 이번 시즌에도 이렇게 연승 기록을 이어 나가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앞두고 있다.

“헤이!”

“아냐, 그냥 데이터 생각하고 있었어. 데이터.”

꼭 이렇게 경기를 마무리하는 순간이 오면 경기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런 풍경이 꽤 오랜 기간 반복된 거 같기도 하고…….

아마 이미 이런 루틴이 생겨 버린 거 같다. 그래도 긴장은 안 되니까. 됐지 뭐.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사인교환을 하는 제이슨 폴리, 다저스타디움의 팬들은 엄청난 야유를 보내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크!!”

코디 밸린저의 바깥쪽 높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패스트볼.

난 쟤가 저런 공을 던질 때마다 심장이 떨린다.

[102마일! 그야말로 광속구를 던지는군요!]

[제이슨 폴리 선수가 무서운 건 저런 공을 던지면서도 기본적인 제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거기다가 굉장히 공격적인 선수기 때문에 어어 하는 사이에 카운트가 몰릴 수도 있어요.]

-우우우우우-

다저스타디움이 울고 있다.

월드시리즈에 세 번 올라와서 세 번 스윕패를 당한 게 -이번 시리즈를 포함해서- 치욕적이어서인지, 아니면 스트라이크가 선언될 때마다 웃으며 공을 돌려받는 폴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볼!!”

- 우와아아아아!!

‘폴리 때문이네. 확실해.’

그러고 보면 운명이라는 게 참 얄궂다.

원래라면 김병헌과 함께 여기 이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며 기록을 쌓아 나갈 녀석이 이젠 코메리카 파크에서 뼈를 묻겠다고 저러고 있으니.

따악!!

“파울!”

[아, 1루 쪽 파울라인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타구입니다.]

[들어가기만 했더라면 최소 2루타 코스였는데요. 아쉽겠어요.]

볼 하나 빼고 존에 패스트볼 쑤셔 박더니 저러고 웃는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생각이 없는 건지.

[공 하나쯤 빼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체인지업을 떨어트려도 되고, 아니면 슬라이더를 몸쪽 깊숙이 넣어서 셋업피치로 사용해도 될 거 같네요.]

공을 돌려받고 바로 투구자세를 잡은 폴리가 무릎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퍼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진입니다!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이끌어 낸 제이슨 폴리! 구속은 자그마치 107마일입니다!]

[하하하, 이 긴장된 순간에도 아주 꾸준히 자신의 피칭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이제 남은 건 두 개.

따악!

[김사범 선수, 백핸드 캐치로 잡아서…… 아웃입니다!}

[과감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시작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저런 상황에서 공을 앞에 두려고 노력하다 송구 타이밍을 못 잡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김사범 선수는 그런 게 없습니다.]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해지는 야구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험, 험…… 방금 그 멘트는 적절하지 않네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5분 후.

[카운트는 3-2.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흐으읍!”

폴리가 낸 소리가 조용한 다저스타디움에 퍼져나갔고.

“스트라이크!! 아웃!!”

우리는, 또다시 우승했다.

* * *

[광란의 디트로이트, 매드맥스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해.]

[7번의 월드시리즈 진출, 그리고 우승.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연속 우승 기록과 타이를 이루기까지 1년이 남은 디트로이트.]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알 아빌라는 어떻게 디트로이트를 강팀으로 키워 냈나.]

[0.392 - 0.712 - 1.643, 그리고 82홈런 102도루. 세 번에 한 번은 안타를 치고, 두 번은 걸어 나가며, 도루한다. ‘붐’의 믿을 수 없는 기록.]

[알 아빌라, ‘붐을 데려가려면 배리 본즈와 베이브 루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그리고  리키 핸더슨과 호너스 와그너를 데려오라. 그럼 고려는 해보겠다.’]

[월드시리즈 4차전 승리투수, 케이시 마이즈, ‘이젠 우승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월드시리즈 MVP, 붐, ‘이 모든 영광을 내 보물, 수리와 수아에게 바치겠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제시한 새로운 구단 운영론.

- 빅마켓, 스몰마켓. 오늘날의 메이저리그 팀들은 매우 간단하게 나뉜다.

빅마켓 팀들은 대도시를 연고지로 두고 큰 규모의 팬들과 높은 중계권료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더욱더 높은 곳을 꿈꾸며, 스몰마켓 팀들은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이면서 그런 빅마켓 팀들에게 좋은 선수들을 제공하는 역할로 전락했다.

최근 그런 스몰마켓 팀에서 유행이 되다시피 한 ‘탱킹’은 ‘꿈’의 영역을 ‘현실’이 침범하며 만들어진 괴물과도 같다.

1~2년 동안 저렴하게 쓸 선수들로 로스터를 돌려막으며 낮은 순위를 유지하고, 거기서 만들어낸 여러 가지 이득으로 탑 실링의 유망주를 영입하고, 이 유망주들이 터지기를 기대하는 운영은 어떤 관점에서는 스몰마켓 팀들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리그의 질적 하락을 초래했으며, 적어도 리그에서는 팀을 망치는 지름길이 됐다.

결국 한 번의 우승을 위해 팬들의 바람-승리, 혹은 최선-을 담보 잡아 벌이는 도박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타이거즈’가 등장함과 동시에 판이 무너졌으며, 이제 도박을 하려 했던 팀들은 이탈하는 팬들을 붙잡기 위해 다시금 아꼈던 돈을 풀어 놓아야 하는 처지다.

- 그렇다면, 타이거즈는 어땠는가?

그들은 빅마켓이면서, 빅마켓 팀이 아닌 구단이었다.

관중 동원이나 중계권료에서 나오는 이득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구단주의 ‘부’에 기대 높은 페이롤을 감당했던, 다소 기형적인 이 구단은 ‘파파’가 사망하면서 예전의 빛을 잃어갔으며, 새로 단장 자리에 취임한 알 아빌라의 계획대로 리빌딩에 착수했다.

그리고. ‘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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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아빌라는 코어로 지목된 네 선수를 빠르게 장기계약을 맺으며 묶었고, 각 선수의 연봉 상승률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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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경제와 긴밀하게 이어진 모습도 타이거즈의 새로운 모습 중 하나다. 결국 이는 티켓 파워의 증가와 새로운 중계권 계약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요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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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제 더 이상 메이저리그 구단은 노골적인 ‘탱킹’으로 팬들을 떠나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역사회에 투자하는 비중을 늘림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윈-윈, 메이저리그 구단과 지역 연고지와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이 스포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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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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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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