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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김사범, 실감하다(3)

대한민국, 서울.

“와, 왔어?”

“그래 왔다. 한국에 왔지. 지금 네 앞에 왔고.”

“일단 마실 만한 걸…… 음, 레모네이드?”

“탄산 안 마신다.”

“으응…….”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틀 차. 공항에서 익숙하게 인터뷰를 끝낸 나는 하루를 푹 쉬고 동네 카페에서 김태연을 만났다.

“됐고, 언제부터냐?”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여는 김태연.

“3년? 네가 미국에 가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락하기 시작했으니까.”

“3년? 그때면…… 김하별이 고등학생 때?”

“아니! 아니! 그때부터 만난 건 아냐!”

“읊어 봐.”

나는 팔짱을 끼며 영화 속 못된 엄마처럼 말했다.

‘크크크큭.’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사실 뭐, 김하별이 누굴 만나든 내가 상관할 건 아니다. 그게 내 고등학교 친구라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뭐 당사자들끼리 좋다는데 그걸 막는 것도 이상하고.

‘이상한 놈이었으면 대충 허리를 반으로 접어 버리고 다시는 접근 못 하게 아랫니를 다 뽑아버렸겠지만.’

이건 그냥 여흥이다.

그리고 조금 진지하게는…… 하별이가 행복할 수 있느냐 대한 시험?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나 때문에 마음고생만 하다 그런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미국으로 도망치듯 유학을 떠난 녀석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하별이를 최대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

“처음엔 그냥 네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잘 통해서……. 마침 나도 1군에 올라갔고 여, 아니 하별이도 스트레스 풀 거리를 찾다 보니까 야구장에 초대했고, 그러다 보니까…….”

이 둘이 언젠가 싸워서 이별하든 말든, 그저 만날 동안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물론 김하별과 사귀는 이 녀석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이지만.’

“그래서 내가 먼저…… 아니 뭐, 사실 동시에…… 사귀자고 말해서…….”

“야, 그만.”

“잠깐만, 이제 이 부분이 엄청 달달한 부분인데.”

“그만하라고.”

“어, 응…….”

덤으로 이 자식을 놀리는 것도 재미있고.

김하별 약점을 잡은 건 더 좋고.

“됐고, 잘 만나라.”

“응?”

“잘 만나라고. 좀 더러워도 이해하고. 성격도 더럽긴 한데 그건 뭐, 네가 하기 나름이고.”

“정말?”

“둘이 좋다는 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냐? 근데,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뭔데?”

“어디가 좋냐? 아, 아냐. 말하지 마. 제발!”

아 씨…….

괜히 들었나? 토 나올 거 같아.

괜히 더부룩해진 속 때문에 화장실을 갔다 온 뒤, 우리는 야구선수답게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다 같이 운동하자고? 해외에서?”

“응. 민수하고 너하고 나하고. 다른 녀석들도 같이 하면 좋은데……. 우리 세 명 말고는 아직 프로 진출한 녀석이 없잖냐.”

“음, 좋긴 한데…….”

“그렇지? 너야 뭐, 거기 있다가 바로 캠프에 합류하면 되고. 나하고 민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고.”

“그렇긴 하지.”

“가자, 이 기회에 나도 메이저리거 타격법 좀 배워 오게.”

이게 목적이구만.

아무튼 욕심은.

“게임 하나 잡아서 힘에 몰빵해라.”

“뭐?”

“됐어, 농담이야. 아무튼 그건 생각해 볼게. 지금 대답할 수가 없다.”

김태연의 표정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다.

“제수씨 때문에?”

제수씨?

“야, 호칭.”

“아…… 잠깐만. 음…… 뭐지? 형수인가?”

“됐고, 아니까 됐네. 한동안은 안 돼. 한…… 일주일 정도?”

이제 비시즌 기간에 일주일 정도 쉬는 사치 정도는 부려도 된다. 나는 이제 예전의 김사범이 아니니까.

“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김태연.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한국 야구선수.

난 일주일을 쉬어도 내 실력을 유지할 수 있지.

* * *

가평의 어느 한적한 풀빌라.

“정말 이거면 돼? 이런 풍경은 미국 가서도…….”

“괜찮아. 이거면 충분해. 그리고 한국은 한국만의 공기가 있으니까.”

그 말을 하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수리.

‘한국만의 공기? 음…… 미세먼지?’

물론 한국의 좋은 관광명소들을 놔두고 괜히 여기 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수리를 위한 관광코스를 짜 놨다.

한 가지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3일 전, 서울 명동.

“수리, 여기가 명동이야. 저번에 왔을 때 못 봤다고 했지?”

“응. 우와…… 진짜 사람이 많네. 관광하러 온 외국인들도 많고.”

“그렇지? 여기 맛집이…….”

나도 명동엔 두어 번 와 본 게 전부지만, 내게는 블로그가 있으니까!

“저…… 혹시 김사범 선수……?”

“네?”

수리의 손을 잡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맛집을 향해 출발하려는 순간. 누군가 날 알아봤다.

“맞네요, 우와, 실제로 보니까 더 크시고 더 멋지세요! 옆에 분은…… 아! 그분이구나! 여자친구분!”

“아, 네…….”

“우와, 여자친구분도 너무 미인이시다! 저 사인 좀 해 주시면 안 되요? 제가 너무 팬이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팬이 가지고 있는 가방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어? 아, 왜 펜이 없지? 잠시만요!”

급기야 가방에 있는 모든 물품들을 꺼낼 듯한 기세로 펜을 찾던 여성 팬은 결국 한숨을 쉬며 연필을 꺼냈다.

“아…… 가지고 있는 게 이거밖엔 없네요. 가능할까요?”

연필로 사인을 해본 적은 없지만, 뭐 이 정도쯤이야.

이상하게 심 부분이 끈적거리는 느낌의 연필로 사인을 해 주고 난 뒤, 셀카를 같이 찍고 나서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쿡쿡거리며 내 옆구리를 찌르는 수리.

“자기, 인기 좋네?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그러게? 작년에는 입국할 때 말고는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봤는데.”

아마 작년에 찍은 화보와 광고 때문일 거다.

이번 비시즌엔 짐과 협의하에 모두 거절했지만.

“아무튼, 조심해야겠어. 자기를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어?”

앞을 바라보다 놀란 눈을 한 수리.

따라서 시선을 돌린 나도 깜짝 놀랐다.

잠깐 사이에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어…….

“김사범 선수 맞죠?”

“야, 맞나 봐, 맞나 봐! 대박!”

“빨리! 빨리! 핸드폰!”

“아빠? 여기 명동인데 여기에 김사범 왔어요! 누구요? 아니 말고! 야구선수 김사범!”

“꺄아아아악!”

그제서야 깨달았다.

선수들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켜주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혹시 사인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저도요! 저도요!”

“오빠! 너무 멋져요!”

그런 게 없다는 걸.

네 시간 뒤, 청계천.

“후아…… 겨우 빠져나왔네. 수리, 배고프지?”

“으응? 아니, 아니야.”

정말 좀비 영화의 실사판을 보는 것 같았다.

사인을 해 주고, 해 줘도 줄어들지 않는 사람들.

사인을 해 주는 사이사이마다 밀려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수리를 보호하느라 힘을 빼기도 했다.

결국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와서 상황정리를 해 주고 나서야 도망치듯 빠져나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음…… 조금 다르지?”

“으응. 처음엔 뭔가 신났는데, 이제는 좀…….”

“팬들이라 밀고 나올 수도 없고…….”

“계속해서 밀려오고…….”

“팔은 저려 오고…….”

“나는 막 사람들 틈에 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이번 사태에 대한 감상을 캐치볼 하듯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우리 둘 다 웃고 있었다.

“그래도 재미있었어.”

수리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할리우드 스타의 여자친구가 된 느낌? 나쁘진 않던데? 조금 무섭긴 해도.”

“하하하하, 다행이네. 내가 그래도 한국에선…….”

톡톡.

“저…… 혹시, 김사범 선수?”

“아, 아닌데요.”

나는 수리의 손목을 잡고 뛰었다.

나중엔 거의 안다시피 해서.

그리고 다음 날. 경주.

“우와, 저게 한복이지? 진짜 이쁘다.”

“우리도 입어 볼까?”

“어디서 파는 거야?”

“아니, 여기 보면 빌려 입을 수 있는 데가…….”

싸늘하다.

“저…….”

목소리가 비수…….

“김사범 선수? 맞죠? 역시! 맞네!”

우린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김하별의 추천을 받아 가평의 독채 펜션을 빌려 놀러 오게 된 거다.

“나도 내가 여기서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몰랐어.”

“정말? 사실 나도 그래. 아니, 인기가 많을 줄은 알았는데…….”

“알았다고?”

“하별이가 미국에서 어떤 커뮤니티를 보여 줬는데 거기서 봤었어.”

“뭘?”

“요즘 제일 섹시한 남자 운동선수.”

어…… 음…….

“1등이었어, 자기가.”

“그래?”

“압도적으로. 한국 여자들은 어떤 의견에 동의하면 막 숫자를 적던데?”

“아.”

“내가 본 댓글 중에서 제일 긴 숫자였지. 자기가.”

조금 부끄럽긴 한데, 이런 걸 덤덤하게 말하는 수리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

“수리, 혹시…… 질투 같은 건…….”

“질투?”

아니 뭐,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들한테 섹시하단 소리를 듣고 있으면 좀.

상황이 반대였으면 난 아이피 추적을 위해 흥신소에 내 연봉을 다 갖다 바쳤을 텐데.

“질투를 왜 해?”

갑자기 수리의 눈빛이 바뀌었다.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빛을 한 채 날 향해 다가오는 수리.

“결국 내가 차지한 남잔데.”

그리고 우린…….

* * *

디트로이트.

“계약서는 잘 검토했습니까?”

“좋더군요. 제 고객도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좋아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꽤 오래.”

“물론이죠.”

알과 에이전트가 악수를 나눈 뒤, 에이전트는 자신이 가져온 서류가방을 가지고 단장실을 나섰다.

“숨 돌릴 틈도 없군. 후.”

의자에 쓰러지듯 앉은 알은 최근 팀에 합류한 ‘전력구성이사’에 대해 떠올렸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 차라리 구단을 사지, 왜 이런 간접적인 방식으로 구단 운영에 참여하는 거지?’

알이 생각하기에 지금 이런 방식은 ‘전력구성이사’에게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차라리 구단을 사는 게 더 효율적으로 보일 정도로.

물론, 메이저리그 구단이 꽤 비싸긴 하지만-2021년 기준으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가치는 15억 달러 정도다- 그 사람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컨소시엄을 통해 이 구단을 살 수도 있었으니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덕분에 이 사무실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고.’

똑똑.

“들어와.”

“알, 퀸이에요.”

“오, 퀸. 반가워, 2시간 전에 봤지만 말이야.”

타이거즈의 CFO인 스테판 퀸은 요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방금 나간 남자, 에이전트죠?”

“물론이지. 영국 측 비밀 요원이더군.”

“하하하, 요즘엔 알의 그런 우스갯소리도 제법 들어줄 만해요. 누구예요?”

“케이시.”

“오, 맙소사. 던 딜?”

“던 딜.”

“유후!”

“서비스타임 3년 차에게 5년 6천500만을 쥐어 준 팀의 CFO가 그렇게 좋아해도 되나?”

알의 말을 듣던 스테판이 알에게 되물었다.

“그 탬파베이도 스넬을 잡으려 5년 5천만을 썼어요, 알. 그것도 2년 전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제길, 야구도 잘 모르면서.”

“돈은 잘 알죠. 그리고 지금 우리 구단은 사치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잖아요? 지출을 생각하지 않고 지르는 삶이라니. 오, 우리의 ‘전력구성이사’에게 신의 축복을.”

알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메인 디시만 남은건가요? 나머지는 다 정리됐잖아요?”

“그렇지. 그 메인 디시가 문제지만.”

“돈을 더 줘요. 그럼…….”

“빌어먹을. 그게 문제가 아냐. 이상한 조건 때문에 문제지.”

“조건? 옵션?”

“옵트아웃.”

“그건 일반적이잖아요.”

“매 4년마다. 선수 옵션으로.”

퀸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알은 자신의 잔에 위스키를 채워 넣었다.

“알, 설마 이거?”

“그렇지. 그런 의미지.”

“오, 갓.”

“괘씸하지? 그래서 준비 중이야.”

“설마…… 오, 안돼요. 그는 아마 미래에 최…….”

알은 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쪽 말고. 긍정적인 쪽으로. 오랜만에 호구를 낚을 준비를 좀 했지.”

* * *

텍사스.

“필,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알고 있네. 하지만 때로는 비효울적인 투자가 큰 이득을 가져다줄 때도 있지.”

“음…….”

“그래도 많은 걸 얻지 않았나? 이건 단순히 곁가지일 뿐이야.”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이미 거의 사장된 도시입니다. 최근 다시 안정화되고 있지만…….”

“그만. 내가 실패한 걸 본 적 있나?”

“……없습니다.”

“그래. 그거면 충분히 대답이 됐겠지?”

“……예.”

“나가 보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서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위험하다라…….”

필은 책상에 올려진 여러 데이터를 살펴보며 자신의 판단을 다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길 잠시.

위이잉-

[아빠!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인 거 같아요! 오늘은 한국 전통 캐슬에 가서…….]

[사진]

수리가 보낸, 환하게 웃고 있는 수리와 사범의 사진을 보며 필은 생각했다.

‘수리가 이렇게 웃는 걸 본 게 몇 년 만이지?’

옆에 있는 덩치 큰 딸의 남자친구가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봐줄 만하기도 하고.

‘그래도 수리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군. 돈은 좀 못 벌긴 하지만…… 사람은 좋으니까.’

계속해서 울리는 딸의 메시지에 잠시 대답을 해 준 필은 이내 다시 데이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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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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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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