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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김사범, 2021시즌(노리는 자 vs 노려지는 자)(2)

디트로이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오클랜드와의 시리즈를 위닝시리즈로 장식한 여파로 객실의 분위기는 매우 후끈거렸다.

“케이시, 목이 좀 마른데…….”

“내가 왜…… 아, 미기. 탄산수? 맞죠?”

마지막 경기, 7회까지 5실점을 하며 5:2로 지고 있던 경기를 4번으로 출장한 미기의 그랜드슬램으로 한 번에 뒤집었다.

물론 나는 2루에 나가 있었고.

“어흠, 내가 예전에는 홈런 하나 가지고 이렇게 티 내고 그러지 않았는데…….”

“알죠. 미기가 어떤 선수였는지. 그래서 제가 디트로이트에 왔잖아요?”

한때 신봉시되던 투승타타가 옛말로 물러난 2022년, 그래도 아직 투수의 승리는 특별하다.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미기, 상대할 땐 몰랐는데, 이런 성격이었어요?”

크리스 아처가 비행기 내에 준비된 간식거리를 씹으며 미기에게 말을 걸었다.

“작년까진 아니었지. 클럽하우스에서 나 말고 딱히 여기서 오래 굴러먹던 사람이 없었거든. 올 시즌에는 저기 붐도 있고, 크리스 너도 있고. 이젠 슬슬 나도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웃음 섞인 말로 대꾸했지만, 그 내용은 조금 복잡하게 다가왔다.

‘슬슬 은퇴시기를 보는 건가? 과거에도 계약기간이 끝나고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었으니…….’

개인적으로 미기의 팬이었던 나는 미기가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에 메이저리그에 변혁의 바람이 부는 모습을 보고 아쉬웠었던 기억이 난다.

본인이 원했다면 분명 한두 시즌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었을 테니까.

“붐, 너는 뭐해? 그건 뭐고?”

넥타이를 풀어 헤친 스튜어트가 내가 다가와 물었다.

“아, 구단 측에서 오늘 준 분석자료예요.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요즘 괜히 잘 치는 게 아니네. 페이스 저 친구가 오고 나서 부쩍 자료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우리 팀의 특성상 아직 빅리그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 모인 팀이다 보니, 다른 누군가가 성적이 좋으면 빠르게 그 방식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보통 빅리그 경험이 오래된 선수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니까.’

“그렇죠? 스튜어트도 한번 도전해 봐요, 맨날 분석자료 내팽개치고 스윙 연습만 하지 말고.”

“난 경기 전 분석자료로 충분해. 일단 내 스윙부터 완벽해져야지.”

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법이니까.

[요청한 자료입니다.]

다른 곳으로 향하는 스튜어트에게 눈인사를 하고 들고 있던 자료로 시선을 옮겼다.

분석팀에서 친절하게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떼서 좌석 한구석에 잘 붙여 놓고 한 장씩 넘기며 정독을 시작했다.

‘데이터상으론 정말 체인지업, 그것도 존을 벗어나는 공에 약한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난 거의 무결점의 타자다.

타석에서 느끼기에 몸쪽 공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공을 칠 만하다고 느껴 왔고, 쳐내 왔으니까.

‘몸쪽 공이야 뭐, 강한 타자가 드무니까.’

하지만 분석팀이 준 자료에는 몸쪽 공 말고도 존을 벗어나는 오프스피드 피치에 약하다는 사실이 분명히 나와 있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사범, 시간 있나?”

뒤에서 들리는 페이스의 목소리에 몸을 돌리며 대꾸했다.

“그럼. 왜?”

“시미즈와 이야기하다가 네 이야기가 나와서.”

“응?”

몸만 돌려서 이야기하기엔 좀 길어질 거 같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떤 이야기야?”

“시미즈가 이야기해 줄 거다.”

어…… 좀 부담스러운데, 여전히.

“그…… 체인지업…….”

“아, 네.”

“지금 킴이라면 상관없을 거 같아서요…….”

“네?”

“저번 시즌의 스윙 궤적과 올해 스윙 궤적은 많이 다르니까…… 투수 입장에서도 어퍼 스윙으로 공을 띄우는 타격을 하는 타자에게 낮은 공을 주는 건 부담스럽거든요…….”

“제 스윙은 어퍼 스윙이라고 보기엔 좀…….”

“그렇지만 가능하니까요……. 발사각도 그렇고, 타격 폼도 그렇고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지거든요…….”

확실히 작년의 스윙보다는 어퍼 스윙에 가까워지긴 했지.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페이스가 답답했는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스윙 자체가 레벨 스윙, 심할 땐 다운컷에 가깝던 스윙이 아니니까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니 뭐, 딱히 걱정은 안 해. 애초에 오프스피드 볼 자체가 신경만 쓰고 있으면 치는데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니니까.”

“그건 일반적인 공의 경우고, 아무튼, 내 생각엔 함정을 파놓는 것도 괜찮을 거 같군.”

“함정?”

갑자기 웬 함정?

“체인지업을 치는데 부담이 없다면 시즌 초반에 몇 타석을 희생해서 그런 이미지를 남겨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작년과 다르게 우리 타선이 꽤 괜찮으니까.”

“음…….”

“어차피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견제는 심해질 거고, 그때 널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프스피드 볼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지.”

“그건 그렇겠지.”

“그때 가서 본격적으로 때리는 것도 좋을 거 같군.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너라면 그게 불가능할 것 같진 않은데?”

어…….

“날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냐? 그러다가 진짜 내가 그런 공을 치지 못하면?”

“그땐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어차피 완벽한 타자는 없고, 드러나지 않은 약점보다 드러난 약점을 고치는 게 훨씬 쉬우니까. 상대방의 볼 배합을 어느 정도 강요하는 효과도 있을 거 같고”

“음, 일단 생각해 볼게.”

만화의 나라 일본에서 와서 그런지 너무 판타지 같은 소리를 하는 페이스와 시미즈.

‘지금 나도 만화 주인공 같은 존재인데, 어차피 상관없나?’

조금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

페이스가 말한 대로 이뤄지기만 하면 참 좋을 거 같긴 한데.

* * *

커다란 사무실, 고풍스러운 집기들 속에서 한 백인 남성이 통화를 하고 있다.

“그렇지. 지금 거기 상황은 어때?”

삐이-

“잠시만…….”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한 그가 인터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누구지?”

“디엔스 씨입니다.”

“들어오면 된다고 전해 줘.”

중요한 사람인 듯, 남성은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며 핸드폰의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사무실로 들어오는 한 흑인 남성.

“그래, 디엔스. 좋은 소식이 있나?”

“커미셔너가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떤 결정 말하는 거지?”

“아마 다음 시즌부터 액티브 로스터가 26명으로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또…….”

“아, 그만. 다 아는 이야기 말고. 겨우 그런 이야기만 가지고 온 건 아니겠지?”

“당연하죠. ‘그걸’ 다음 시즌부터 시행할 거 같습니다.”

디엔스라 불린 사내의 말에 백인 남성은 그의 몸을 의자 안으로 깊에 묻으며 대답했다.

“확실한가?”

“거의, 어차피 선수노조야 항상 찬성하던 이야기니까요.”

“음…… 결국 칼을 뽑아 드는군. 이번 겨울은 아주 핫한 겨울이 되겠어.”

“그렇겠죠.”

“좋아, 나가 봐도 좋네. 다른 변경사항이 있으면 즉시 알려 주고.”

“네, 알겠습니다.”

흑인 남성이 나간 뒤,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백인 남성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결국 그런 선택을 내리는군, 반발이 심할 텐데…….”

같은 시각, 디트로이트.

사람으로 가득 찬 연회장에 디트로이트의 단장, 알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그래요, 오랜만이군요. 요즘 타이거즈의 성적이 괜찮다죠?”

“하하, 맞습니다.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죠.”

알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맴돌았다.

“시 입장에서도 연고를 두고 있는 스포츠팀의 활약은 중요한 요소죠. 시를 대표해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그것도 그렇고…… 슬슬 그때 이야기했던 계획을 진행하고 싶은데요.”

위원의 말에 알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이내 다시 펴졌다.

“아, 공익 광고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디트로이트 내의 다른 구단들은 이미 동의했어요.”

“음…….”

알의 반응에 위원이라 불린 남자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무래도 백인, 적어도 흑인 선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인이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팀의 성적은 미국인이 아닌…….”

“그거야 뭐, 타이거즈의 단장인 알 씨의 마음에 달려있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알의 대답을 의미심장한 말투로 되받아치는 남자.

“음…….”

“하하, 농담입니다.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도시의 재개발이 시작될 겁니다. 도시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싹 바뀔 정도의 큰 규모로.”

“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돈이 몰릴 겁니다. 아니어도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그때까지 잘 부탁합니다.”

“제가 무슨…….”

“아시다시피 스포츠엔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으니까요.”

“아…….”

“지금같이, 아니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어젠 즐거우셨습니까?”

“그럴 리가.”

“어젯밤에도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리더군요.”

“받았나?”

“그럴 리가요. 시키신 대로 퇴근했습니다.”

“잘했네. 롭 그 인간의 한마디 때문에 애꿎은 우리만 힘들군.”

“부임 이후부터 줄곧 주장해 왔던 일이니까요.”

“그리고 매년 흐지부지됐던 일이지.”

띠리리리.

갑자기 무섭게 울리기 시작하는 알의 핸드폰.

“젠장, 삶의 여유가 없군. 멧? 이 시간에 전화할 이유는 하나뿐이지?”

“하퍼를 달라고 하세요. 그럼 끊겠죠.”

“더해서 아리에타와 세구라까지 달라고 할 거야.”

띠리리리리!

“끊을 생각을 안 하는군. 후.”

전화가 끊어지길 바랐던 알이 결국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띠.

“멧, 어쩐 일로…….”

잠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던 알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 * *

비행이 끝나고, 오랜만에 돌아온 홈 스윗 홈의 안락함을 느낄 새도 없이 피곤함에 잠이 들었다.

온 종일 너와 햇볕 가득한- 길을 걷고 싶어-

평소에 못 듣던 알람을 듣고 일어날 정도로 깊은 잠을 자고 난 뒤, 하루를 시작했다.

딸깍, 딸깍.

역시 아침엔 커피와 함께하는 웹서핑이지.

[아메리칸리그, 변화의 중심이 되다.]

한참 동안 야구 영상을 찾아보던 내 눈에 마우스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칼럼이 보였다.

딸깍.

[2021시즌, 아메리칸리그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한동안 지구 우승을 독식하던 중부지구의 클리블랜드가 셀링 클럽으로 돌아서며 시작된 이 변화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디트로이트와 함께 동부지구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시즌, 성공적인 중계권 계약을 시작으로 팀의 체질 개선에 노력했던 탬파베이가 바로 그 주역이다.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제치고…….

……두 팀의 공통점이라면 성공적인 리빌딩을 통한 세대교체를 꼽을 수 있는데, 탄탄한 팜의 유망주를 바탕으로…….

……그런 두 팀이 마침내 오늘 저녁에 격돌한다. 탬파베이와 디트로이트는 각각 1선발인 브랜트 허니웰과 크리스 아처를 선발로 예고한 가운데, 성급한 일부 전문가들은 미리 보는 챔피언십 시리즈라고 평하고 있다.]

브랜트 허니웰.

오늘의 먹잇감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대 탬파베이 레이스의 중계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경기가 미리 보는 디비전 시리즈, 혹은 챔피언십 시리즈일 수도 있어요. 그만큼 두 팀의 초반 기세가 아주 좋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시나요?]

[두 팀 모두 선발투수로 내세운 선수들의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아처 선수의 경우 4승, 허니웰 선수의 경우 3승을 거두면서 전반기 10승도 가능한 수치입니다. 이 선발 투수들을 각 팀의 타자들이 공략해 줘야 해요.]

[아처 선수야 오랜 기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기 때문에 시청자분들이 익숙하실 거 같고, 허니웰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꿀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죠? 좋은 패스트볼 컨트롤과 희귀한 구종인 스크류볼을 던지는 투수입니다.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쌓고 스크류볼로 마무리하는 타입의 투수인데, 이 스크류볼을 공략한 선수가 드뭅니다.]

[스크류볼은 어떤 구종입니까?]

[쉽게 말하자면 역방향 커브, 혹은 횡방향 무브먼트가 더해진 서클 체인지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페이드 어웨이’라는 별명처럼 우투수,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움직임을 보여 주는 공입니다. 부상 위험이 아주 큰 구종으로 손꼽히는데요, 이 구종을 던졌던 선수로는 크리스티 메튜슨이나 페르난도 발렌주엘라, 칼 허벨 등이 있는데 이 구종을 주 무기로 사용했던 칼 허벨 같은 경우는 은퇴 당시에 팔이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악마의 구종이네요. 이제 경기가 시작됩니다.]

“플레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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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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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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