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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김사범, 유망주가 되다(1)

경기가 끝나고, 광란의 현장을 빠져나온 나는 조용히 덕아웃으로 향했다.

‘전투속행? 이건 뭐지?’

[전투속행 : 전투 중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때, 해당 타격에 대한 후유증을 전투 후로 미룬다.]

돌아오기 전에도 본 적 없었던 스킬. 스킬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는 발렌사가의 특성상,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에 물어볼 수밖에 없다.

‘10년 뒤에나 알 수 있겠군.’

당장의 호기심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점점 아려오는 옆구리. 무모한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생각보다 심한 상태인지 점점 걱정된다.

옆구리에 신경 쓰며 라커룸으로 걸음을 옮기던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김사범!”

“왜.”

“고맙다.”

내 시선에 가득 찬, 우물쭈물하는 이한길.

빨리 쫓아 버리고 싶다. 이런 경험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알았다. 팀이니까, 그래서 한 거니까 마음 쓰지 마라.”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기에는 내 정신건강이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조금만 더 가면 라커룸이다. 그러면 쉴 수 있어.’

청춘 드라마는 내게 안 맞는다.

몰려오는 두려움에 쫓겨 걸음을 옮기는 내게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사범!”

아, 또 왜. 뭐가. 싫다고.

“넌 또 왜.”

경기장에서 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달려왔는지, 상기된 김병헌의 표정.

턱주가리를 날려 버리고 싶다.

“너, 메이저 가냐?”

“응?”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메이저는 네가 가는 데고.

“당연히 가겠지. 나도 가는데.”

혼자 말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는 녀석.

“나, 얼마 전에 에이전시와 계약했다.”

느낌이 이상한데. 이거 또 드라마처럼…….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을 펴 나에게 향하는 녀석.

“너, 긴장해라. 메이저에서는 절대 이렇게 쉽게 지지 않을 거다. 절대!”

아…… 아무래도 오늘 정형외과가 아닌 피부과를 먼저 가야 할 것 같다.

내 사정은 생각도 하지 않고 본인 할 말을 하고 휑하니 떠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김병헌!”

기대감에 찬 얼굴로 돌아보지 마, 제발.

“왜?”

“직구 좋더라. 팔 내려서 던지니까.”

“뭐?”

“대신 슬라이더하고 커터 던질 때도 같이 내려가야 할 거다.”

벙찐 얼굴. 속이 시원하다.

“뭐, 뭐야? 분명 그럴 리…… 잠깐!”

그 이상 떠먹여 주진 않는다. 이번엔 내가 쿨하게 돌아서서 라커룸으로 들어간다.

경기 후 서로를 껴안고 신나 있을 녀석들. 겉은 어린애지만 속은 어른인 내가 섞이기에는 조금 낯간지럽다.

……옆구리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니다. 정말.

얼마나 쉬고 있었을까. 붕대를 풀고 잠시 앉아 있다 보니 갑자기 벌컥 열리는 문. 놀라서 바라본 문에서 감독님이 나오셨다.

설마…… 또?

“김사범!”

나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다가오는 감독님.

“네, 네?”

“너 정말!”

아, 안 돼.

성큼성큼 다가온 감독님에게 잔뜩 쫄아 몸을 웅크린다.

그러자 갑자기 유니폼 상의를 확 들추는 감독님.

“너, 미친 거냐?”

다행이다. 생각했던 그런 상황이 아니라.

“이 정도 부상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고? 그것도 1회부터?”

“별거 아닐 겁니다. 보기에만 이렇지 별로…….”

“조용히.”

단숨에 내 말을 끊는 감독님.

“조용히 하고. 김 코치에게 말해 놨다. 짐 챙길 생각하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라. 이건 감독으로서 명령이야.”

“……네.”

그렇게 난 첫 우승을 했다.

* * *

한공고 그라운드.

얼마 전 우승의 기쁨을 뒤로하고 열심히 연습하는 녀석들이 보인다. 나 빼고.

“그래서, 얼마나 쉬래?”

“4주. 타박상하고 인대 쪽에 염증이 생겼다고 하던데.”

“잘됐네, 넌 너무 달렸어. 이 기회에 좀 쉬면서 팀이나 고르면 되겠네.”

“무슨 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김태연.

“뭐야. 너한테는 아직 연락 안 왔냐?”

“뭐가?”

“스카우터들.”

“템퍼링 금지된 지가 언젠데 연락이야?”

지금 시기에 구단들하고 만났다간 큰일 난다. 정말 큰일.

“말고 X신아. 메이저 구단들.”

“응?”

그러고 보니, 나 엄청 대단한 타자였지.

“폰 줘 봐. 이 새끼 연락 왔는데 구라친 거면 뒤진다.”

내 영혼의 파트너, 갤x시 4를 뺏어가는 김태연.

“언젯적 핸드폰이야? 너 이거 8까지 나온 건 아냐?”

“전화만 잘 터지면 된다.”

쓸데없는 잔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뒤지는 김태연. 찾아봐도 없을 텐데.

“수신거부, 수신거부, 수신거부. 너 무슨 전화를 다 수신거부한 거야?”

“모르는 번호로 자꾸 연락이 오길래. 난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는 안 받아.”

프로에서 2할 언저리 치면서 1군에 있으면 너도 안 받게 될 거야.

“야, 이거 다 스카우터들 아냐?”

“뭔 헛소리야. 그 많은 전화들이 다?”

“아니 봐봐. 이런 전화 오기 시작한 게 결승전 끝나고부터잖아.”

“그럴걸?”

점점 날 한심하게 바라보는 김태연.

“맞네, x신. 이거 다 너랑 연락하려는 에이전시랑 스카우터라는데 내 x알 두 쪽 건다.”

에이, 설마.

그거 가져 봤자 쓸 일도 없는데.

* * *

LA 다저스 극동아시아 스카우트 팀.

“샘! 킴한테는 아직 연락 안 돼?”

“누구요? 타자요, 투수요?”

“둘 다!”

“한 명은 전화 안 받고, 한 명은 에이전트하고 이야기 중이라던데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는 팀장 앨버슨.

“누가 누군데?”

“타자는 안 받고 투수는 이야기 중!”

“타자는 왜 전화를 안 받아? 어디 다른 곳에서 먼저 접근한 거 아냐?”

핸드폰을 들고 여기저기를 누르는 샘.

“아직까지는 소스 들어온 건 없어요.”

“아, 제기랄. 쉬운 것 하나 없군. 투수 쪽은 양키스하고 시애틀, 거기에 샌디에이고도 움직이는 것 같은데?”

“움직이지 않는 팀을 세는 게 빨라요, 앨버슨.”

“후. 그래서 어디랑 붙어먹었는지 파악됐어?”

곤란한 듯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는 샘.

“어…… 파악은 됐는데요.”

“어디야! 선수를 쳐야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어!”

“그 새끼들이요.”

“……오, 샘. 내가 아는 그 새끼들은 아니지?”

샘이 핸드폰 화면을 들어 앨버슨에게 보여 준다.

“그 새끼들 맞아요. 보라스.”

원래 흘러가던 미래에선 수술 경력으로 인해 크지 않은 에이전시와 계약한 뒤 본인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한 LA의 품에 안겼던 김병헌.

그 미래가 뒤틀렸다.

* * *

김태연과의 대화를 끝내고 배팅케이지를 기웃거리다 코치님에게 들킨 나는 결국 강제 귀가조치 당했다.

‘야구선수가 부상 좀 달고 사는 건 당연한 건데, 너무 과보호군.’

당연히 쉬어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연습을 못한다는 사실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 익숙한 풍경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돌아온 뒤 여유롭게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다.

‘이것도 나름 좋군, 익숙한 회색 담장, 여기저기 깨진 골목, 허름한 슈퍼, BMW 520d…….’

뭔가 이상하다.

우리 집 앞에 어울리지 않는 차가 서 있다.

“어머, 사범아! 벌써 왔니?”

“엄마, 왜 그러세요?”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 집이지만 묘하게 차려입은 복장도 거슬린다.

“네 손님이 오셨어. 빨리 들어가 봐.”

“손님이요? 집에?”

얼떨떨하게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서자, 거실 소파에 웬 외국인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뭐야, 진짜 그 전화들이 그거였어?’

돌아오기 전, 그저 그런 수준의 선수조차 아니었던 나는 이런 스카우트 행위 자체가 어색했다.

빌고 빌어 간신히 연습생 신분으로 시작했던 프로생활. 그래서 상상조차 못한 건가?

어버버하며 서 있는 내게 외국인이 다가와 자신을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탬파베이의 극동아시아 스카우트 팀장, 메이슨 왈쳐입니다. 메이슨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킴.”

영어를 읽고 쓰는 건 자신 있지만 말하는 건 자신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인 나는, 본능적으로 바짝 긴장하다 외국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유창한 한국말에 당황했다.

“네, 아, 안녕하세요.”

“하하, 저를 만나는 분들은 처음에 거의 당황하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앉아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정신 차리자, 김사범.

넌 10대 청소년이 아닌 닳고 닳은 30대 베테랑 선수야.

“일단, 아직 에이전시와 계약은 하지 않으셨죠?”

“네, 여러모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능숙한 거짓말. 이게 연륜이다.

“하하.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저와 같은 스카우터와 에이전시의 연락을 모두 피하신다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바로 지금 필요하다.

“그렇다면, 혹시 MLB로의 진출을 꺼려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하하. 잘됐네요. 제가 찾아온 건 당연하지만 김사범 선수를 저희 구단에 영입하고 싶어섭니다.”

바로 들어올 줄 몰랐다.

“현재의 성적을 오래 보여 주진 않았지만, 지금의 모습으로도 후에 충분히 빅리그에서 4번, 혹은 2번을 칠 수 있는 포텐셜을 가졌다고 판단했습니다.”

듣기에 정말 좋은 소리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탬파베이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했다.

“물론 그 이전에 마이너리그에서 잠시 지금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겠지만, 약속하건데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신다면 그 기간은 길지 않을 겁니다.”

마이너리그. 길었던 2군 생활도 겪은 나다.

“지금 당장 계약 조건을 말씀드리고 계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후에 받을 원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에이전시와 계약하시고 이걸 보여 주시면 됩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메이슨.

“그럼, 더 길어지면 실례일 거 같군요. 다음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다과를 가지고 들어오다 그 모습을 봤다.

“어머! 벌써 가시려고요?”

“네. 오래 있으면 그것도 실례니까요. 오늘은 인사차 온 거니 후에 기회가 되면 뵙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한국 사람 같다.

‘한국 사람도 저렇게 깍듯하게는 못 말할 거 같은데?’

그렇게 메이슨이 돌아가고, 상상만 해 왔던 메이저리그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 *

도로를 달리고 있는 BMW.

한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 그래. 거의 넘어온 것 같더군.”

“이제 적당한 에이전트 하나 물어서 접근시켜야지. 쓸 만한 사람 있어?”

“약물? 상관없어. 어차피 검사는 필수니까. 데려다 놓고 포지션 전환을 시켜도 되고. 만약 리그 적응에 실패해도 힘 하나는 진짜니 트레이드 카드로도 쓸 만할 거야.”

전화기 반대편에서 흡족할 만한 답변을 들었는지, 미소를 짓는다.

“그래, 그럼 진행하자고. 대물을 낚기 직전이야.”

* * *

침대에 누워 오늘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꿈만 같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메이저라니. 상상만 하던 곳인데.’

심지어 탬파베이다. 스몰마켓 팀이지만 2019년 중계권 계약을 시작으로 같은 지구의 레드삭스와 양키즈를 물리치고 10년 동안 월드시리즈에 6번을 올라간 강팀.

물론, 유망주를 마이너에 오래 박아 놓는 운영정책 때문에 유망주들에겐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 정도는 실력으로 이겨 낼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나는. 메이저리그의 4번 타자였다.

다음 날.

행복했던 나는 도망자가 되었다.

좀비처럼 날 따라오는 기자들 때문에.

* * *

그 시각, 한공고 감독실.

“그래도…… 팀 차원에서 좀 교통정리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됐어. 그 녀석은 좀 당해 봐야지. 결승전 끝나고 태연이에게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나?”

여유롭게 타놓은 커피를 홀짝이는 이정협 감독.

“그리고 아직 그 녀석은 본인이 어떤 위치인지 잘 몰라. 그걸 깨달아야 해.”

“그건 그렇습니다. 이런 편리한 세상에 인터넷 뉴스 하나 안 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본인이 깨닫고 도와달라 요청할 때까지 가만히 있게. 부상 관리 철저히 하고. 관리 안 하면 언제 연습한다고 날뛸지 모르는 녀석이니.”

“알겠습니다. 아! 오늘 사범이에 대한 기사가 또 나왔던데, 보셨습니까?”

“그래? 흠흠.”

이정협 감독이 꺼낸 핸드폰의 화면, 포털 사이트 스포츠 코너엔 이례적으로 고교 야구를 분석한 기사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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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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