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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김사범, 2021시즌(더, 조금 더)(5)

7회 초.

버로우즈의 장기인 브레이크 없는 상남자 피칭이 화이트삭스 타자들을 잠재웠다.

“좋은 피칭이었네! 뷰. 내 남은 수명이 1/3 정도 준 거 같지만.”

웃으며 말하는 론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그리고 7회 말. 나와 이삭은 말없이 배트를 들고 그라운드로 향했다.

[사실상 오늘 경기의 승부처라고 봐야 합니다. 이번 이닝에서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하면 디트로이트는 2021 첫 퍼펙트게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생각하자.

끝에서 살짝 가라앉는 패스트볼.

무브먼트 자체는 리그 최정상급으로 평가받는 슬라이더.

최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서드 피치로서는 제법 괜찮은 체인지업.

그리고 특출나진 않지만, 원하는 곳 근처로는 넣을 수 있는 제구력.

‘이런 능력을 갖춘 투수가 기세를 타고 퍼펙트를 기록하고 있으면 뭘 해야 할까.’

대기타석에서 공을 지켜보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누가 좋지? 본즈? 맥과이어? 소사?’

아무튼, 내가 저 투수라면 저런 타자들을 놓고 어떤 공을 던질까?

일단 몰려서 맞으면 홈런이라고 생각하고.

반응속도도 괜찮지만 게스히팅에 능한 타자.

스윙 궤적 자체는 약간의 어퍼컷 스윙.

음.

투수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스트라이크!”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살펴보자.

첫 번째 타석에선 헛스윙 삼진. 슬라이더에 당했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첫 타석에서 내가 본 구종들이다.

패스트볼은 90마일 초반, 생각보다 느렸지만 끝이 제법이었고, 슬라이더는 80마일 중반쯤. 횡 무브먼트도 어마어마했지만 떨어지는 움직임도 심했다. 파워커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볼!”

두 번째 타석.

오직 슬라이더. 슬라이더 3개에 난 뜬공으로 물러났었다.

나름 허를 찌르는 볼배합이었던 거 같은데.

첫 슬라이더는 몸쪽,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예의 그 슬라이더.

두 번째 슬라이더는 좀 더 빨랐던가? 각이 덜 예리했던 거 같다.

세 번째 공이 좀 이상했는데, 거의 80마일 후반대까지 나오면서 짧게 꺾였다. 커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움직임.

“스트라이크!”

그리고…… 5회부터 부쩍 사용 빈도가 는 체인지업.

구속 자체로 보면 별로 무섭진 않다.

80마일 초반대니까 패스트볼과 구속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문제는 방금 공처럼 뚝 떨어지는 무브먼트인데.

‘스플릿이라고 했지? 그래서 저렇게 뚝 떨어지는군.’

아무래도 슬라이더보단 저 공이나 패스트볼을 노려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이삭의 타석까지 지켜보고 결정하자.’

“스트라이크! 아웃!”

[이삭 페레데스 선수가 4구 만에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마지막 공은 존 정중앙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이었는데요, 이삭 선수는 상단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습니다.]

[일종의 실투 같은데, 그게 우연히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느린 그림에서도 나오지만 포수도 하이 패스트볼을 요구했죠? 패스트볼 자체가 좀 가라앉는 성질을 가진 투수다 보니까 가끔 저렇게 공을 과도하게 채면 마치 싱커 같은 무브먼트가 나오게 되는 거죠.]

[아. 카를로스 로돈 선수에게는 다행이고, 이삭 선수에게는 아까운 공이었네요.]

조금 어이없이 헛스윙하고 돌아오는 이삭에게 물었다.

“뭐 있어?”

“별건 없는데, 패스트볼이 좀 풀려서 들어오는 느낌이야. 마지막 공을 제외하면.”

“음.”

“그래서 휘둘렀는데, 갑자기 그렇게 더 살아 들어올지는 몰랐지.”

“오케이. 알겠어.”

이걸로 확실해졌다.

지금 마운드에서 여유를 부리는 저 녀석도 지금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는 거다.

방금 이삭에게 던진 공을 합해서 투구 수가 91개. 우리 팀은 퍼펙트게임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상대 투수를 꽤 귀찮게 만들고 있다.

생각보다 몸은 정직하니까. 100개 정도 던지고 퍼펙트가 깨지면 훅 가라앉겠지. 지금이야 뇌가 몸을 속이고 있는 것 같지만.

“타석에 들어오지. 노린 거면 앞으로 내가 여기 서 있는 동안은 하지 말고.”

구심의 지적에 재빨리 타석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했다.

‘빠른 볼이 풀린다……. 마지막 공은 실투…….’

패스트볼 제외.

‘슬라이더는 저번 타석에서 이미 재미를 봤고.’

슬라이더 제외.

그렇다면 남은 건 체인지업이다.

혹시 모르니 직구 타이밍으로 기다리다가 안 오면 체인지업이라 생각하고 크게 휘두를 거다.

슬라이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볼!”

“볼!”

“파울!”

“볼!”

“파울!”

“파울!”

[아, 김사범 선수가 끈질기게 버티고 있습니다.]

[2볼에서 들어온 슬라이더를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게 아쉽네요.]

나에게 던진 6개 공 중 존에 들어온 건 1개뿐이다.

놓친 슬라이더가 좀 아쉽지만, 그래도 배트가 나가 줘서 다행이다. 아예 바라보고 있었으면 하이트삭스 배터리가 내 생각을 알아챌 수도 있으니까.

‘그래, 이제 어떡할 거야? 퍼펙트 할 거야? 아님 노히터? 여기까지 왔는데, 욕심 한번 내봐야지?’

분명 지금 투수의 머리는 지금 폭발하기 직전이겠지.

“타임! 잠시…….”

사인이 몇번 어긋나자마자 포수가 올라가는 걸 보면, 내 생각이 맞았다.

마운드에서 몇 마디를 나눈 둘이 곧 고개를 끄덕였고, 화이트삭스의 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포수와 투수가 사인이 어긋나면, 보통 투수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지지 아마?’

포수가 자기 자리로 오기 전, 배터박스 앞쪽으로 최대한 붙어 타격을 준비했다.

처음 계획처럼. 슬라이더는 버리고 체인지업만 본다. 타이밍은 일단 패스트볼 타이밍.

그리고 7구.

[로돈 선수, 공을 던집니다!]

왔다. 체인지업.

존 아래, 깊숙한 곳으로 처박히도록 던진 공 같은데…….

이미 저 투수의 몸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고, 그의 공 또한 투수가 던지려는 곳보다 위를 향했다.

‘조금 낮긴 하지만…….’

변화가 절정에 다다르기 전에 띄워 올린 작은 공.

빠아악!

이걸 노리고 내가 배터박스 앞으로 한껏 붙어 있었지.

[김사범 선수의 타구가 쭉쭉 뻗어나갑니다!]

[볼 것도 없네요. 시즌 66호 홈런입니다.]

[1999년의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공동 4위를 기록하고 있던 홈런 기록을 단숨에 공동 3위로 끌어올립니다! 신기록까지 남은 홈런은 8개!]

플레이트를 밟으며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다가온 미기에게 말했다.

“이게 제 답이에요. 어때요?”

미기는 말없이 엄지손가락만 치켜올렸다.

* * *

[디트로이트, 아쉬운 패배. 카를로스 로돈의 퍼펙트는 무너트렸지만…….]

9회 말,게임이 끝날 때 전광판에는 5-4란 스코어가 적혀 있었다.

야구란 스포츠가 그렇다.

퍼펙트게임이란 큰 기록을 깨면서 흐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올 것 같았지만, 결국 승리하진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홈런 이후 미기도, 스튜어트도, 페이스도 손맛을 봤다는 것.

잘 나가다가 무안타 경기 한 번에 뚜껑을 열어 놓은 콜라처럼 김이 확 빠지는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다행…….

다행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진 않다.

띠링!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돌아온 집, 도착과 동시에 허물을 벗듯 옷들을 땅에 던져버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 귀찮은데…….’

움직이기 싫은 마음을 참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경기 아쉬웠어. 그래서 내가 힘을 좀 주려고 하는데, 어때?]

수리에게 온 메시지. 설마?

[나야 좋지. 음…… 사실은 진짜 좋아.]

띠링!

[사진]

[나 아빠하고 싸웠어. 그래서 짐을 싸서 나와 버렸지 :)]

핸드폰 화면에는 수리 몸의 2배는 될 것 같은 트렁크와 그 트렁크를 끌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수리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로 가려고? 잘 데는 있어?]

[내일 아침 티켓이야. 지금은 공항 앞 호텔로 가는 중!]

[뭐?]

[나 좀 재워 줘.]

어?

당연하지.

내가 보호해 줘야지. 아버님이 걱정하시니까.

그럼.

* * *

다음 날.

곧 나를 향해 날아올 즐거운 소식과는 별개로, 코메리카 파크에 오자 기분이 다시 다운되는 게 느껴졌다.

어제의 패배가 몸에 와닿는 느낌.

“여. 오늘은 좀 늦었네?”

라커룸의 분위기도 마찬가지. 모두 차분하게 경기 준비를 하고 있지만, 뭔가 가라앉아 있다.

바로 그때, 론이 라커룸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기 준비까진 아직 좀 남았을 텐데?’

“헬로우, 레이디스. 모두 잘 잤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아주 좋군. 잘 잤다고 대답하는 놈이 있으면 붐에게 부탁해서 저 담장 너머로 날려 버리려고 했으니까.”

하하.

“다들 아주 좋은 자세군. 당장 어제 뭐가 어떻게 됐건 우리는 아직까진 승리자네. 어제까지 우리가 일궈 낸 성적이 올해 우리의 퍼포먼스를 말해 주니까.”

론이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놈이 있다면…….”

갑자기 매서워지는 그의 눈빛.

“뭐, 그건 다들 알 테니 따로 말하진 않겠네. 패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보지.”

징크스가 되기 직전인 ‘론의 연설’이지만, 그래도 쳐져 있는 선수단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이것만 한 게 없지. 결과가 안 좋아서 그렇지 론이 말을 잘 못하는 편도 아니고.

“우린 지금보다 더, 조금 더, 아니, 많이 더 위로 올라가야 해. 우린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충분하죠.”

“맞아요.”

서서히 론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한 선수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즌을 한 달이나 남겨 놓고 99승을 올린 팀이야. 이런 우리 말고 누가 자격을 논하지?”

갑자기 나를 보는 론.

“여기 붐을 봐, 붐은 66개의 홈런을 때렸어. 저기 아처는? 19승.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고, 다른 사람을 볼까? 23홈런, 21홈런, 36홈런, 19홈런. 오! 이삭은 출루율로 이야기하지. 4할 5푼.”

모두가 자신의 성적이 불릴 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저기 우울함에 빠진 친구는 메이저 첫 시즌에 9승을 올렸고, 옆에서 매일 헛소리를 내뱉는 불펜투수는 41세이브를 올리고 있네. 자, 우리가 이래도 매일 승리를 거머쥘 자격이 없나?”

“우린 자격이 충분해요, 보스.”

“제기랄! 그럼 나가서 증명해야겠군. 빌어먹을 감독 아래에 있는 더 빌어먹을 플레이어들이 어떤 방식으로 저기 멍청하게 웃고 있는 화이트삭스 놈들의 양말을 눈물로 적시는지!”

-Yes, Boss!

“더! 조금 더! 뛰고 치고 던져! 그게 오늘 작전이고, 전략이다.”

* * *

“뛰어! 뛰라고 붐!”

“더 빨리! 더! 슬라이딩!”

사인을 보자마자 0.1초의 고민도 없이 몸을 날렸다. 하얀 가루와 뒤섞인 흙이 내 유니폼을 더럽혔으며, 나는…….

“세잎!!”

이번 경기에서만 4번째 득점을 올렸다.

그리고 경기는 아직 중반이다.

[세잎! 세잎입니다! 타이밍상으론 거의 비슷했는데 아쉽게도 코스가 안 좋았어요.]

[김사범 선수의 득점으로 6회 말까지 11점을 올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입니다.]

[어제와 전혀 다른 타격 응집력을 보여 주네요. 특히 김사범 선수 뒤를 받쳐 주는 네 명의 선수가 모두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쾌조의 타격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루 좋았어. 요즘 잘 못 봐서 까먹고 있었는데.”

“타점을 올리고 싶으면 꼭 홈런을 쳐야 해요, 스튜어트. 미기는 이렇게 못하거든요.”

“하하하. 콜.”

시즌 66홈런을 때리고 있는 타자를 거르면 타율이 3할 5푼인 베테랑이 나오고. 그 베테랑 뒤에는 36홈런 1루수, 23홈런 포수와 21홈런 외야수가 나온다.

“나이스 플레이.”

“항상 신기한 게, 어떻게 저런 덩치에서 방금 같은 스피드가 나오는 거지?”

“이삭 너보다 보폭이 두 배 정도 길거든.”

푸풉!

아, 분위기 한번 잡아 보려다가 케이시가 던진 한마디에 빵 터지고 말았다.

따아악!

“뭐야!”

순식간에 덕아웃 난간에 달라붙는 선수들.

[크리스틴 스튜어트 선수! 투런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스코어는 13:2!]

[세 번째로 나온 투수가 마운드에 주저앉고 마네요. 한번 불이 붙은 디트로이트의 타선을 상대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 * *

[21타석 16타수 12안타 5홈런. 디트로이트의 ‘다이너마이트 박스’가 폭발했다.]

[디트로이트의 론 가븐하이어 감독, ‘붐의 우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

[야구는 이토록 재미있다! 강타자를 거른다는 것의 득-실에 관하여.]

[디트로이트, 화이트삭스와의 3차전도 승리. 휴스턴-양키스-탬파베이로 이어지는 원정 10연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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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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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스탯 999 4번타자 - 힘 스탯 999 4번타자-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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