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김사범, 2022시즌(캠프, 파이어!)(1)
[이름 : 4번 타자
칭호 : 힘이 999인
직업 : 전사
스탯
힘 : 999+(현재 적용 : 999)
민첩 : 10
지능 : 10
내구 : 13
스킬
정안(펼치기)
999999번의 스윙(펼치기)
기분 나쁜 선생님(펼치Γ)
스킬 묶음(펼치기)]
돌아오고 나서 4년.
참 긴 시간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부터는 의식적으로 상태창을 펼쳐 보지 않다 보니 좀 어색하기도 하고.
“오늘은 여기서 끝낼 건가요?”
“아, 제임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고마워요.”
트레이너-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고용한-를 돌려보낸 뒤, 처음으로 999 스탯을 찍었을 때를 떠올렸다.
* * *
“저기 봐봐, 저 사람 여기 혼자 왔나 봐.”
“무시해. 시비 붙으면 피곤하니까. 전문 몰이꾼일 수도 있고.”
“소환사 아냐? 아니면 여기 혼자 오는 게 말이 돼?”
“세상 어느 소환사가 판금 입고 둔기를 쓰냐?”
“하긴…….”
어느 때와 같이 발렌 사가를 했던 나는 날 대상으로 하는 이런저런 소리들을 무시하며 미노타우로스 초원의 심층으로 나아가던 중 만렙을 찍었다.
“후우, 후우. 후아아…… 아?”
두어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를 잡고 나서 지쳐 있던 몸이 갑자기 회복됐다.
쓸데없이 현실감 넘치게 만들어져 격한 운동을 한 뒤에 느껴지는 탈력감까지 구현해 놓은 발렌 사가에서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현상은 단 하나뿐. 레벨업.
[칭호, ‘힘이 999인’을 획득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힘 스탯을 999로 맞추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뻐어어어억!
“음머어어!”
“뭐, 뭐야?”
환상적인 손맛.
단 한 방에 쓰러지는 미노타우르스 전사.
998 스탯에서 적어도 2방, 운이 나빠 갑옷 위를 치면 3방도 견디던 놈이 가볍게 휘두른 한 방에 쓰러졌다.
‘수치상으론 1일 뿐인데…… 뭐지? 이런 거도 그…… 히든피스 같은 건가?’
그리고 그때부터 내 게임 생활이 좀 더 재미있어졌던 거 같다. 안 그래도 올힘으로 강했던 데미지가 최소한으로 가정해도 2~3배는 올라간 거와 마찬가지였으니까.
* * *
‘이번에도 똑같으려나? 여기서 더 강해지면 누가 해부해 보자고 달려들지도 모르는데…….’
지금이야 워낙 많이 당해서 별로 쫄지도 않지만, 메이저리그 첫 시즌 때는 샘플을 넘겨줄 때마다 마음을 졸였던 때도 있다.
혹시 다른 사람과 다른 결과가 나올까 봐.
“뭐하냐?”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뭐라는 거야? 약 먹었냐? 아니, 잘됐네. 메이저리그 도핑센터 번호가 뭐지? 112로 하면 되나?”
옛날 기억을 더듬다 보니 갑자기 내 내면의 강한남자 김사범이 튀어나와 버렸다.
“요즘 유행하는…… 아무튼, 웬일이야? 갑자기? 오늘까지는 야간 운동 안 한다며?”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김병현.
“야, 한판 할래? 짧게 두 타석만.”
이 미친놈이. 선발투수가 12월에 공을 잡는다고?
“너 그러다 팔 빠진다. 빠질 때 빠지더라도 올해 아시안게임은 뛰고 빠져라.”
“아, 쫄리면 뒈지시던가. 싫어?”
싫을 리가.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판인데.
잠시 후.
“스트라이크! 아웃!”
102마일에 달하는 투심이 정확하게 내 몸쪽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크하하하하하하! 아, 진짜 기분 째지네!”
“이럴 수가…….”
매덕스의 투심을 연상케 하는 무브먼트, 몸쪽 존을 정확히 공 반 개만 걸치고 들어오는 완벽한 제구.
‘이건…… 김병헌이 아냐. 절대.’
충격에 빠진 내게 김병헌이 다가와 말했다.
“야, 뭘 그렇게 충격받았어? 내가 말했잖아, 내 커스텀 기기라 무조건 내가 이길 거라고.”
내 VR 게임 경력이 얼만데…….
“아, 재미있었다. 어땠냐?”
“……뭐가.”
“공. 조금 다르긴 해도, 이 정도면 쓸 만하지 않냐? 처음에 완전 사기꾼처럼 접근해서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쓸 만하더라고 이거.”
확실히 쓸 만하긴 했다.
아이디어도 괜찮고.
쓸데없이 팔다리에 주렁주렁 달린 이 장비들만 빼면.
“수건 들고 쉐도우 하는 거보다 재미도 있고, 입력된 폼만 정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공도 잘 뻗어 나가고. 안 그래도 공 못 던져서 지루하던 참에 잘됐어.”
“이렇게 구속이고 무브먼트고 뻥튀기하면서 던지다가 나중에 진짜 던질 때 자괴감 안 들겠냐? 이건 뭐…… 진짜 사긴데.”
“누가 사기래? 그거 철저하게 계산된…….”
자기는 실제로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고 나불대는 김병헌의 말을 무시하며 VR 헬멧에 적혀 있을 상호를 찾았다.
‘헤븐, 역시…….’
발렌 사가를 만들기 전, 스포츠 계통에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는 것 같은데……. 일단 나중에 시간이 나면 좀 더 깊게 알아봐야 할 것 같다.
* * *
두 달 뒤.
[닉, 거기 가서도 잘하길 기원할게요. 리그가 달라 많이 보진 못해도, 월드시리즈에선 볼 수 있겠네요.]
[너무 늦은 인사 아냐? 대신 다음 맞대결에선 무조건 삼진 2개 이상 먹고 시작해. - 닉 카스테라노스]
[그건 좀…….]
“아오, 지고 가려니까 힘이 쭉 빠지네. 분명 일정은 겁나 빡셌는데……. 어째 힘이 쭉 빠진 느낌이야.”
“맞지? 나도 그래. 게임에서 자꾸 져서 그런가?”
아니. 너네가 모르는 그런 거 있어.
아마 돌아가서 푹 쉬면 체감이 확 올 거야.
“게을러서 그래, 게을러서. 한국 프로들은 다 이런가? 안 가길 잘했네.”
역시, 오늘도 어그로를 잔뜩 끌어 주는 김병헌.
두 달 내내 저렇게 털어대다가 진짜 언제 한 번은 크게 싸움이 날 뻔했다.
김태연이고 김병헌이고 단순해서 술 한 잔 마시고 풀었지만.
“게임으로 사기 치면서 그딴 말 하지 마라. 이 중국인 같은 놈아.”
“사기? 사기?”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물구나무서서 ‘나는 정직합니다’ 10번 외쳐 보든지.”
“차 안에서 그게…… 됐다. 내가 마이너리거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냐.”
오. 잘하면 오늘도?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내가 봐도 재수 없게 말하는 김병헌에게 김태연이 카운터펀치를 꽂았다.
“신인왕 하나도 없는 놈보단 나은데? 킁킁, 어디 냄새 안 나? 신인왕도 없는 패배자의 냄새?”
“너…… 아오…….”
김태연 윈.
문제는 뒷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신민수도 같이 스플래시 데미지를 입었다는 거지만.
공항으로 가는 내내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게이트를 앞에 두고서야 겨우 진지한 분위기가 될 수 있었다.
“야, 그래도 도움 많이 됐다. 다음 시즌엔 200안타 4할 치는 거 보여 줄게.”
김태연의 헛소리와.
“난 뭐, 좀 더 선진 야구의 훈련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오프시즌에도 부탁하자.”
진짜 조금 진지해진 신민수의 한마디.
“가라, 멀리 안 간다. 그리고 이 덩치 큰 멍청이는 내가 올 시즌에 깨부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깨부숴? 누굴?
“응, 상대 전적 130승 24패. 너 핵 쓰면서도 나 못 이겼음.”
감만 잡으면 이 정도야 뭐.
아무튼, 한국야구 신인왕과 1군 후보 외야수, 그리고 말 많은 예비 사이영 컨텐더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나서야 진짜 평화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 진짜 야구를 하러 갈 시간이다.
“붐, 이번에도 일찍 온 건가? 하하하, 변하지 않는 모습이 좋긴 좋군.”
“오, 론. 좋아 보이네요? 투수들 컨디션이 좋은가 봐요?”
“좋다마다. 폴리는 벌써 불펜피칭을 한다고 난리지.”
“그 멍청이는 재활부터 마치라고 해 주세요. 아, 재활은 끝났나?”
“거의 막바지지. 아무튼, 올해 느낌은 어떤가?”
“좋죠. 이번엔 정말 큰 사고를 칠 수도 있어요. 많은 발전이 있었거든요.”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리고 내 경험으로 예상해 보면.
“좋군, 그래도 조심하게. ‘그’ 배리 본즈도 2002시즌엔 46개밖에 못 쳤어.”
“대신 타율이 5푼이나 올랐죠. 기대해도 좋아요.”
사실 올해 홈런 개수는 내가 아닌 내 앞뒤의 타자에게 달렸다.
내가 아무리 괴력을 발휘해 오는 공마다 족족 홈런으로 만들어 내도, 앞뒤가 강하지 않다면 상대팀은 날 피하면 그만이니까.
‘호세 라미레즈도 왔고, 또 나머지 한 명도……. 아, 그러고 보니 지금 불펜으로 가면 볼 수 있으려나?’
감독실로 오기 전, 라커룸에 들렸을 때 그의 이름을 봤다.
스프링캠프, 그 복잡한 라커룸들 사이에서 크리스와 함께 당당히 두 칸을 차지하고 있던 이름.
“좋아!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그리고 불펜에 도착하자마자, 투수 코치의 외침과 함께 불펜의 문을 열고 나오는 ‘그’와 마주칠 수 있었다.
“클루버, 반갑습니다. 사범 킴입니다.”
“……이제 나도 반갑군. 코리라 불러도 돼.”
전혀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저번 시즌 아처에 이은 두 번째 빅네임 투수, 코리 클루버가 FA로 디트로이트에 왔다.
* * *
디트로이트.
“붐의 에이전트에게 연락은 왔나?”
“왔습니다. 붐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더군요. 플로리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직원의 말에 큰 한숨과 함께 의자에 몸을 기대는 알 아빌라 단장.
“이제, 이제야 끝난 기분이야. 후우, 이제 남은 건 시즌에 들어가는 것뿐인가?”
“우리가 할 일은 다 끝났습니다. 재계약, 영입, 트레이드…… 후…….”
“론이 잘해 줘야 할 텐데. FA와 트레이드로 꽤 큰 이름들을 영입했으니, 잘못하면 휘둘릴 수도 있어.”
“설마요. 론이 그럴 사람은 아니죠.”
“그렇긴 하지. 나도 그냥 해본 소리네.”
띠- 띠-
[알, 전력구성이사의 전화입니다.]
“때마침 우리 ‘숨겨진 보스’의 전화가 오는군. 나가 보게.”
직원이 나가는 걸 확인한 알은 이내 전화기의 버튼을 눌러 ‘전력구성이사’와의 통화를 시작했다.
[알? 이제 팀 구성은 다 끝난 건가요?]
“아하하, 역시 단도직입적이시군요. 네, 끝났습니다.”
[흠…… 외야에 따로 큰 보강 없이?]
“네. 1루를 보던 크리스틴을 다시 좌익수로 보낼 생각입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영입한…….”
[프레디 프리먼?]
“하하하, 잘 아시는군요. 프리먼을 1루로 쓰고 크리스틴을 좌익수, 중견수엔 저번 시즌에 좌익수를 보던 파커를 쓸 생각입니다.”
[그럼 우익수가 비는군요.]
“아, 그건 현장에서 요청한 선수들을 트레이드해 왔습니다. 하하하, 론이 재미있는 생각을 했어요.”
[지명타자는 전에 이야기했던 그 선수로 갈 겁니까?]
“그것도 역시 현장 요청입니다. 론이 그 친구를 굉장히 오래 지켜봤다고 하더군요.”
[흐음…… 뭐, 일단 알겠습니다. 추가적인 지원은 시즌이 시작되고 이야기하도록 하죠. 그럼.]
“네, 알겠습니다.”
짧은 전화 통화가 끝나고, 알 아빌라 단장은 론과 상의한 주전 라인업을 펼쳐 들었다.
[1. 이삭 페레데스(2B)
2. 프레디 프리먼(1B)
3. 사범 킴(SS)
4. 호세 라미레즈(3B)
5. 페이스 달턴(C)
6. 크리스틴 스튜어트(LF)
7. 클리어 피스(DH)
8. 라테 헤미체(RF) or 플랫 휘트니(RF)
9. 파커 메도우즈(CF)
투수
1. 코리 클루버
2. 크리스 아처 or 케이시 마이즈
3. 케이시 마이즈 or 크리스 아처
.
.
.]
“지명타자 자리가 좀 비어 보이긴 하는군, 흠. 론이 자신하긴 했지만…….”
알이 생각하기에 32세의 나이에 다시금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린 늦깎이 선수가 갖기에는 이 팀의 지명타자 자리는 너무…… 위험했다.
삑-
“론에게 연락해 줘, 지명타자 자리를 메꿀 다른 선수는 필요 없냐고.”
선수단 구성은 알의 책임이자 권리였지만, 그렇다고 현장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그 권리를 행사하면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걸 알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흠…… 지명 타자라……. 스탠튼? J. D? 둘 중 하나만 계약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총알 때문인지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