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정확하게 남자 여섯 명에 골렘은 세 마리였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은.
“오러 사용자도 있네요?”
검에 맺힌 오러를 보아하니 이제 5성에 입문한 새내기임이 분명했다.
옅고 농밀하지 못한 검기가 추측의 근거.
오러는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며 불안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5성이면 오러 엑스퍼드급이잖아요. 골렘 정도는 쉽게 잡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러가 없는 나도 사냥에 성공한 놈이다.
그러니 5성 검사가 쩔쩔매는 건 어딘가 순리에 맞지 않아 보였다.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네 말이 맞다. 암석 골렘 따위, 5성 검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지.”
“그런데 왜 저래요? 승급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그보단 상성의 문제다.”
“상성이요?”
“그래. 골렘의 공격은 무겁고 깊게 밀고 들어오지. 검으로 방어하기엔 쉽지 않은 상대다.”
“흐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저 사람들은 무기라도 휘두르며 싸우고 있지… 나는 저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내며 힘겹게 버텨 냈었다.
더군다나 저들은 인원마저 두 배 아닌가.
저들의 어설픔이 당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드러난 걸까.
“네놈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빅터는 선을 그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골렘의 공격엔 진동과 비슷한 독특한 파장이 있다.”
“그거라면 알죠. 한 대 맞을 때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으니까요.”
“그래, 그것이 파장이다.”
사실 지금이니까 여유 있게 바라보는 것이지, 처음엔 지옥 문턱을 오락가락했었다.
“하여 검으로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롭지. 검날과 골렘의 파장이 공명하면…….”
그 뒤에 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잘 날아가네요.”
결과는 이미 드러났으니까.
허공을 가르는 한 자루의 검이 이어질 말들을 대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검 주인인 5성의 검사는 망연자실하게 빈손을 바라보았다.
“보았느냐? 충격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면, 골렘은 사냥할 수 없다.”
빅터의 말을 들으니 일견 이해가 됐다.
검조차 바로 쥘 수 없는데 싸움인들 가능했겠나.
지금의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는 빅터가 말한 훈련의 결과 가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충격 내성]
이렇게 대놓고 나타났는데 못 견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그러고 보니 저기 마법사도 있구나.”
빅터는 전장을 살피며 상황을 가늠했다.
사실상 대열은 이미 무너졌고, 도망치기 바쁜 후열의 저 남자가 마법사인 듯했다.
“전위가 흔들리니 저럴 수밖에.”
빅터는 고개를 저으며 쓰게 혀를 찼다.
위태로운 전위에 보호받지 못하는 후위. 풋내기인 내가 봐도 저건 뭔가 이상했다.
그야말로 다 죽게 생겼으니까.
하여 나는 질문했다.
“도와주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도대체 왜 그냥 지켜보는 거냐고.
답답해진 나는 붉은 머리의 여인을 향해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하나 그녀는 침묵했고, 어린 동생을 바라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어린 남동생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러다 큰일 날 것 같아.”
“아니야! 분명히 골렘 전문 헌터라고 했는걸!”
보다 못한 여인의 말에 남동생은 주먹을 쥐며 현실을 부정했다.
뭐, 대충 상황은 알겠는데.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군.”
지켜보던 나는 끼어들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사연이 얼마나 기구한지 몰라도, 이러다가는 두 눈 뜨고 송장 치르게 생겼다.
“잠시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지금 가시면 전리품이… 아니, 용병 계약이… 아,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사람부터 살려야지.
정신 못 차리는 녀석을 뒤로 하고 나는 전투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전황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으니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바쁜 나의 걸음은 몇 발자국 못 가 멈춰 서고 말았다.
그 녀석이었다.
“지금 사냥이 마지막 기회예요. 여기서 합류하게 되시면 전리품이 문제가…….”
앞을 가로막은 녀석은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얘길 들어줄 틈이 없다.
“나중에 얘기하자.”
녀석을 밀어낸 나는 전장을 향해 내달렸다.
* * *
일단 첫 번째 타깃은 저 남자다.
무려 5성의 검사임에도 칼을 잃고 멍하게 서 있는 한심한 녀석.
‘답답하네.’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든가.
전의를 상실한 녀석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 차려, 윌리!”
곁에 있던 검사가 나서 보지만 부질없다.
5성도 감당 못했는데 4성이 어찌 막아 내겠나.
오러의 수준은 신체 강화 정도에 들고 있는 무기는 평범했다.
그러니 현 상황은 당연히 무리.
부우웅―
뼛속까지 울리는 골렘의 주먹 앞에 남자의 방패는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드드드드드드득―
뒤를 따라온 또 다른 골렘이 주먹을 치켜드들었고.
“이런 시발…….”
남자의 오른쪽으로 새로운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퇴로가 없는 암담한 상황.
닥쳐온 위기 앞에 이 남자의 사고도 정지된 듯 보였다.
비보는 계속되었다.
“또 올라온다!”
소란을 감지한 다른 놈들이 이곳을 향해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찰스, 뭐하는 거야! 윌리 데리고 어서 튀어!”
후위에 있던 마법사가 발작하듯 고함을 질렀다.
하나 전위에 서 있던 두 남자는 반응이 없었으니.
“야, 이 등신 같은 놈들아! 뒈진다고!”
처절한 마법사의 절규는 덧없이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기로에선 마법사가 주위를 살폈다.
이미 쓰러져 있는 세 명의 동료와 짐 덩이로 전락한 전위의 두 명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뒤돌아 달리면, 마법사의 목숨은 확실히 보장받을 것이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나는 그가 돌아서길 바랐다.
그 어떤 의미를 붙여도 죽음 이후엔 부질없는 법이니까.
돈도 명예도 목숨이 붙어 있을 때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여 도망치기를 원했지만.
“찰스 고개 숙여!”
마법사는 싸움을 선택했다.
그의 두 손으로 불꽃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뒤로 물러서.”
나는 마법사를 밀치며 전위로 달려 나갔다.
삼면에서 날아드는 거대한 주먹.
그 중심을 향해 날듯이 몸을 밀어 넣었다.
쩌억―
콰지직―
뻐억!
작렬하는 흉악한 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5일간 들어온 지긋지긋한 소리.
처음은 왼팔을 들어 안면을 지켜 냈다.
다음은 오른팔로 측면을 막아 냈고, 마지막에 날아든 회색의 주먹은.
“이건 좀 아프네.”
훤히 드러난 복부로 덤덤히 받아 냈다.
그리고 지금 나의 눈앞에는.
[충격 내성으로 인해…….]
[충격 내성으로 인해…….]
[충격 내성으로 인해…….]
익숙한 메시지가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생략된 말은 대충 그런 거다.
대미지가 감소했다는 그런 거.
쉽게 말하자면.
“말도 안 돼…….”
이정도 충격으론 나를 어쩔 수 없다는 얘기였다.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도망가요. 걸리적거리니까.”
넋이 나간 방패검사를 향해 나는 퉁명스레 말을 건넸다.
“…에?”
“‘에?’가 아니라 뛰라고요. 당신들 때문에 싸우질 못하잖아.”
그러니 당장 돌아서서.
“뛰어!”
“그게 무슨…….”
“귓구멍에 말뚝 박았어? 뛰라고!”
“아, 네엡!”
정신이 돌아온 방패검사는 5성 검사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준비는 끝났다.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갔으니 이제 시작만 남아 있다.
그동안의 고생은 오늘을 위한 포석이었을 터.
“일단 세 마리.”
날아오는 골렘의 주먹을 향해 묵색의 해머가 달려들었다.
콰아앙!
당연히 이변은 없었고.
[휘두르기 숙련도 1,034/10,000]
비산하는 파편 사이로 또 다른 문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승리를 향한 나만의 비밀 공식.
“간만에 쭉쭉 올려 보자고!”
몰려드는 암석 골렘을 보며 나는 미친놈처럼 히죽거렸다.
그리고 달려갔다.
아래로.
더 깊은 곳으로.
마주하는 모든 것에 해머를 때려 박으며.
쩌어억―
날아오는 주먹에 거침없이 맞섰다.
[충격 내성으로 인해…….]
[충격 내성으로 인해…….]
[내려치기 숙련도 1,032/10,000]
[충격 내성으로 인해…….]
한마디로 치솟는 중이다.
일일이 살펴보기가 성가실 만큼, 떠오르는 문자의 향연은 미친 듯이 계속되었다.
드드드드드―
콰앙―!
쾅!쾅!쾅!
몰려드는 암석 골렘들이 마른 흙처럼 부서져 내렸다.
박살 내고.
또 때려 부순다.
비산하는 골렘의 잔해를 해치며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이게 마지막인가.”
초토화된 주변을 살피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한 놈 더 있었는데…….’
어쩐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찾을 수 없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죄다 똑같으니.’
어느 것이 암석이고, 어느 것이 골렘인지 구분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미간을 좁히며 잔해를 뒤적이던 그때, 도망가라 보낸 용병들이 다시 돌아와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이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인사하는 용병의 뒤로, 느긋하게 걸어오는 빅터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려던 순간.
“어어! 뒤에 조심하세…요오… 악!”
난데없는 마법사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순간 들이치는 거대한 주먹.
콰아앙!
바위틈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주먹이 나의 몸통을 가격했다.
준비 안 된 두 다리가 주르륵 밀려났고.
“아씨, 깜짝이야!”
나는 밀려난 다릴 박차며 놈의 머리에 해머를 내리꽂았다.
상황은 그것으로 종료, 멀쩡히 서 있는 나를 보며 용병들은 기가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그에 더해 걱정 어린 질문까지.
“괜찮으세요?”
“네.”
“주먹에 정통으로 맞으셨잖아요. 제가 잘못 본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남자는 정확하게 본 것을 말했다.
나의 몸뚱이가 특별했을 뿐.
“오러도 안 쓰신 것 같았는데… 혹시 엄청난 경지에 오르신 기사님?!”
경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난 몸이란 건 충분히 공감한다.
이번엔 좀 끝내 줬으니까.
하여간 위험하던 순간은 이렇게 안정을 찾았고, 다가온 빅터가 대화에 참여했다.
“제법이구나.”
빅터는 수고의 말을 건네며 잔해를 살폈다.
역시나 찾고 있는 건 마력석.
잔해를 뒤적이던 빅터는 몇 개의 핵을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쭈뼛거리는 녀석을 향해 가볍게 집어던졌다.
그 녀석이다.
앞길을 가로막았던 어린 남동생 녀석.
“…….”
“원하던 것이 그것이더냐.”
빅터는 침묵하는 녀석에게 질문을 건넸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간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하지만 지금은 매입할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린 건데…….”
녀석은 말끝을 흐리며 빅터의 말에 대답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데요.”
나는 수상한 분위기를 느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답답한 건 질색이니까.
“남매가 곤란해진 모양이다.”
그에 빅터는 눈썹을 끌어 올리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의 시선은 남동생에게 향했고.
‘저것 때문인가?’
녀석에 손에 들린 마력석을 보며 대략의 상황을 떠올렸다.
“흠…….”
추측은 여기까지.
남동생에게 다가간 나는 작은 어깨에 팔을 둘러 적당히 잡아당겼다.
긴장한 녀석의 눈이 동그래졌고.
“우리 할 얘기가 남아 있었지?”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으슥한 곳을 찾아 나섰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