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스승과 제자 (5)
“스승님! 서진욱 씨!”
머리에서 진득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서진욱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4층짜리 상가 건물은 통째로 위쪽이 날아가서 하늘이 훤히 보였다.
서진욱을 부축하려고 다가가려 하자, 그가 내게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오지 마세요!”
“하지만……!”
위쪽을 올려다보자 평소보다 피부가 붉게 변한 오우거가 다시 우릴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쌔엥-
오우거는 우릴 향해 팔을 뻗었지만, 눈 깜빡할 새에 팔이 수십 조각으로 나뉘었다.
가속?!
자신의 팔이 날아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짓밟으려는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스으읍.”
처음 내게 가속 능력을 보여 줬을 때처럼 숨을 깊게 들이마신 서진욱은 오우거에게 검을 겨누었다.
파앙-!
여전히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그가 서 있던 바닥 타일들이 공중으로 흩어졌고, 오우거가 갈기갈기 찢겨 버렸다.
“…방금 오우거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저희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요.”
“브루탈의 밤이 시작된 건가요?”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몸을 비틀거렸다.
“스승님!”
옆으로 다가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일단 근처에 있는 베이스캠프로 가요! 다른 치유계 헌터가 있다면…….”
“지금부터 제 말에 집중하세요. 싸우는 동안 제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모든 자세를 눈에 새겨 두세요.”
“이런 상황에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희가 무사히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벽 쪽으로 이동해서 서진욱을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앉혀 주었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니 달빛을 받으며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오우거의 피 냄새를 맡고 더 많은 몬스터가 이쪽으로 몰려들 겁니다.”
“브루탈의 밤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몬스터가 흉포해지고, 강해진다고밖에 들은 게 없어요.”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벽에 기댄 서진욱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반적인 몬스터는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도망치기도 하고, 부상을 당하면 움츠러들기도 하죠. 하지만 브루탈의 밤엔 오직 싸우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건 마치 게이트 안에서 봤던 데스나이트와 같았다.
데스나이트는 죽은 기사가 부활한 몬스터이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을 리 없었다.
오직 나를 죽이기 위해 공격해 오고, 자신이 어떤 타격을 입어도 전혀 개의치 않던 놈들이다.
“10년 전 그날, 저희는 해가 졌을 때부터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계속 싸울 수밖에 없었죠.”
“여기만 빠져나가면 그리 멀지 않아요. 조금만 참으세요.”
내 머릿속엔 온통 서진욱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주변을 살피는 내 손목을 잡은 서진욱이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신 차리세요. 이미 이 주변은 몬스터들이 겹겹이 몰려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모든 베이스캠프는 몬스터를 막기 급급할 겁니다. 아마 몇 군데는 당했을지도 모르죠.”
알고 있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도피하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내게서 소중한 사람이 떠나가는 게 두렵다.
무언가 손에 쥐려고 하면 작은 손바닥 안에서 흘러내려 가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이번에도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는 건가.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살짝 미소를 지은 서진욱은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제 헌터로서의 시작은 당신의 아버지인 최준 씨를 만났을 때겠네요. 그리고 그 끝은 최현 씨에게 제 모든 걸 넘기는 것입니다.”
“저는 못 해요.”
그의 따듯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저는 스승님처럼 강하지 못해요. 여전히 몬스터가 무섭고, 죽는 게 무섭고, 잃는 게 무서워요. 저는 어떻게 하면…….”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저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각오했는데 무섭거든요.”
어째서일까.
그의 옆에 있으면 속에 있는 말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입술을 비집고 빠져나간다.
“지금부터 제 자세, 움직임 하나하나를 기억해 두세요. 최현 씨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나중에 혼자 익힐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혼자 익히다뇨. 왜 그런 말을…….”
“애초에 저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현 씨에게 많은 걸 보여 줄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네요.”
스릉.
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평소에는 그렇게 든든해 보였던 서진욱은 당장 쓰러질 것처럼 연약하게 느껴졌다.
“같이 싸우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산다고 해도 앞으로 저는 다시 검을 들지 못할 겁니다. 부디 마지막 부탁은 들어주세요.”
서진욱의 말대로 이미 주변엔 몬스터들이 우글거렸다.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가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몬스터들은 시뻘게진 눈으로 침을 뚝뚝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형씨! 너무 위험해! 이러다 정말 저 사람 죽을 거라고!”
“알고 있어.”
너무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절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서진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월하백화식. 제1공식, 목란”
파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진욱의 검과 일직선에 있던 몬스터들의 몸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생겼다.
여전히 빛이라곤 하늘에 있는 커다란 달에서 쏟아지는 달빛뿐이었지만, 방금 소리로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렸다.
몸에 구멍이 뚫리든, 팔다리가 날아갔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몬스터들은 미친 듯이 우릴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쿠아악!”
“제2수식, 연화.”
공격해 오는 몬스터와 오히려 거리를 좁힌 그는 가장 가까운 몬스터의 목을 베었다.
바로 이어서 부드럽게 검을 쳐올리며 옆에 있는 몬스터를 반 토막 냈다.
죽어가는 사람의 움직임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앵화.”
앵화까진 나도 실전에서 써 봤지만, 4식부터는 아직 미숙해서 다뤄 본 적이 없었다.
“제4공식, 매화.”
쒜액!
월하백화식은 상당히 단순한 움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움직임인 매화는, 자신의 몸을 껴안듯 팔을 최대한 몸으로 당긴 뒤, 검을 횡으로 휘두르는 기술이다.
월하백화식을 사용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단순할수록 기술을 익히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런 쉬운 동작으로 그런 파괴력을 얻으려면 그만큼 세세한 부분에서 완벽함을 추구해야만 했다.
서진욱 앞에 있는 몬스터들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고, 그들의 상체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서진욱은 이미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5공식-화왕.”
스르륵.
검을 집어넣은 서진욱이 검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파앙-!
잔뜩 눌린 스프링이 단숨에 펴지듯 검집에서 검이 뿜어져 나왔다.
발도기인 화왕은 월하백화식에서 가장 빠른 기술이었다.
“제6수식, 송화.”
서진욱은 일부러 날 보여 주기 위해 1식부터 순서대로 월하백화식을 사용하고 있다.
충분히 내가 그의 기술을 볼 수 있도록 가속 능력도 쓰지 않았다.
월하백화식의 마지막 기술은 ‘송화’는 수식이라고 하기엔 적의 공격을 막는 기술이 아니었다.
마치 텝댄스를 추는 것처럼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을 피하는 기술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을 부드럽게 피한 서진욱은 검을 앞으로 쏘았다.
다시 목란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연결.
그가 월하백화식을 한 번 연달아 사용하는 동안 이미 그의 주변엔 몬스터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최현 씨는 이미 좋은 헌터예요. 지키기 위해 강해지고 싶다는 건 최현 씨를 성장 시켜 줄 겁니다. 어쩌면 최현 씨라면 정말 던전을 완전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자신이 없어요. 서진욱 씨처럼 강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최현 씨가 저를 지켜봐 주세요.”
내게 다가온 서진욱은 그 어느 때보다 나를 강하게 껴안았고, 그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게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아까보다 더 많은 몬스터가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서진욱의 검이 단숨에 뿜어졌다.
파앗!
나를 지키면서 자비 없이 몬스터를 베어 버리는 그의 모습은 꽃처럼 연약하고 화려했다.
서진욱의 모습이 달 아래의 꽃, ‘월하백화식’ 그 자체였다.
***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
“그렇게 무서우면 넌 빠져.”
S급 헌터인 진천우는 F-5 구역의 지휘관을 맡고 있었다.
전날 밤, 예상한 대로 브루탈의 밤이 덮쳐 왔고, 베이스캠프로 수많은 몬스터가 공격해 왔다.
안 그래도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헌터가 목숨을 잃었다.
이젠 베이스캠프라고 하기도 우스울 정도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날이 밝고 몬스터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는 바로 주변을 정찰하기 위해 움직였다.
베이스캠프를 복구하려면 일단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처리해야 편하니까.
“하아,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마 다른 베이스캠프도 우리랑 비슷한 상황이겠지. 어쩌면 전멸한 곳도 있을 거다. 더 이상 전력을 잃으면 다시 던전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해질지도 몰라.”
상황은 최악이었다.
진천우는 10년 전 브루탈의 밤에 참전하진 못했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건 달랐다.
사지가 뜯겨도 자신을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몬스터는 그 자체로 사기를 꺾이게 했다.
옆에서 동료들이 죽어 가는 걸 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그 어떤 부상보다 치명적이었다.
“이쪽엔 베이스캠프가 없었던 거 같은데.”
“맞아. 그래서 일부러 온 거야. 베이스캠프가 없으니 이쪽엔 몬스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거든.”
“으윽… 굳이 일부러 몬스터를 찾아다녀야 하나요.”
“베이스캠프 복구하는데 기습해 오면 오히려 골치 아파. 이쪽에서 먼저 처리하는 게 속 편하지. 그리고 여긴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이동하는 길목이라 아마 제법 수가 많을 거야.”
진천우의 말에 그의 부하인 ‘김정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으, 그럼 진짜 위험한 곳이잖아요.”
“한 번만 더 징징대면 너부터 베어 버린다.”
“…….”
진천우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몬스터의 피 냄새가 점점 코를 후벼 팠고, 있어야 할 몬스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그의 눈에 비쳤다.
“……!”
“이건 대체…….”
몬스터의 시체는 말 그대로 산을 이루고 있었고, 주변은 온통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건물이란 건물은 모조리 무너져서 그야말로 폐허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 남자가 품에 누군가를 안고 울고 있었다.
아니, 그는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누구보다 크게 울부짖고 있었다.